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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계급 및 출생에 따른 차별: 과거와 현재의 ‘성분 ’ 제도

Dalam dokumen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보고서 (Halaman 192-200)

개 요

1. 사회 계급 및 출생에 따른 차별: 과거와 현재의 ‘성분 ’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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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분류는 수년 사이에 조정된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은

‘성분’ 제도를

통해 주민들을 3개의 광범위한 계급과 약 51개의 세부 계층으로 분류한다.288

288_ 계급은 한 개인의 가족이 가지는 북한 정치 체제와 최고지도자에 대한 정치적 충성심을 가정하여 반영한다.

거, 직업, 식량 접근권, 의료, 교육 및 기타 서비스를 결정하는 것은

‘성분’에 달려

있다.

‘성분’은 또한 지리적 분리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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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평양에 사는 것이 공식적으로 허가된 330만의 인구 가운데 엘리트 계층의 비율이 높다. 그 중에서도 지배 엘리트층은 수도의 가장 현대적인 지역에 거주하도록 배정된다. 평양의 재화와 공공 서비스는 다른 지역에 비해 우수하다. 하위 또는 중간 성분의 일반 주민들은 평양에서 거주하는 것이 불가 능하며 심지어 평양 여행증을 발급받는 것조차 어렵다.

[한국의] 통일연구원의 김수암 박사는 서울 공청회에서

성분

제도의 지속적인 영향에 대해 설명하였다:

“가족적 배경 또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핵심 요소로, 식량권에 대해 각각 다른 수준 의 접근을 허용합니다. 평양이나 다른 주요 도시에 거주하는 핵심 엘리트층은 의료 에 있어 여전히 혜택을 누리고, 리[마을]에 사는 수준의 주민들은 의료 시설에 대한 접근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건강한 생활을 향유할 권리 또한 차별을 받고 보장을 받 지 못합니다…”290

∙ 서울 공청회의 한 증언자이었던 권영희 씨는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남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가족이 직면했던 차별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들은 함경북도 무산을 떠나 평양으로 이사하려고 했을 때 차별을 당하였다:

“저는 우리가 평양으로 이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거부 사실을 알았을 무렵 우리는 우리가 차별을 받고 있음을 절감할 수 있는 나이였는데, 언니 는 원하지 않는 다른 대학에 지원을 해야 했고, 형제자매들은 이런 종류의 차별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291

273 ‘성분’ 제도는 최고지도자가 소작농과 인부들을, 과거 지주들과 일본 협력

자로 여겨지는 사람들보다 위로 승격시키고자 시행했던 북한 초기 정책에서 그 전

289_ IV장 C.

290_ 서울 공청회, 2013년 8월 21일, 오후(02:31:00).

291_ 서울 공청회, 2013년 8월 24일, 오전(02:57:55).

례를 찾을 수 있다. 1946년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일본 식민통치와 연관이 있던 관료들을 숙청하기 시작했고 첫 주민등록사업을 착수하였다.

‘성분’ 제도의 공식적

인 출발은 ‘반혁명분자들과의 투쟁을 전당, 전인민적으로 전개하는 데 대하여’(5

30) 라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결정이 있었던 1957년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결정의 채택은 김일성의 잠재적 경쟁자들의 숙청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 주민 구분은 세 개의 광범위한 분류인 핵심, 동요, 적대 계층으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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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30결정과 함께 내각에서는 적대 계층 사람들이 어디에서 거주할 수 있 는 지를 지시하는 제149호 결정을 내렸고, 근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더 외진 지 역, 더 열악한 생활 환경으로 추방하였다. ‘성분’ 제도의 다른 제도화 단계로는 성분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또 하나의 운동을 일으킨 1964년 결정

“각계각층 군중과의

사업을 더욱 강화할데 대하여”를 예로 들 수 있다. 1966년에는 1970년까지 지속된 주민재등록사업으로 주민이 3개 계층과 51개 세부 부류로 다시 분류되었다.292 1983~84년의 공민증 갱신사업과 같이 정치적 충성심과 가족적 배경을 재검토하기 위한 다른 운동들도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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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성분’은 (비록 그들 중 상당수가 수 년 사이에 숙청을 당했지만)

292_ 51개 분류는 핵심군중: 노동자의 가족, 노동자 가족에 고용된 사람, 고농(머슴), 빈농,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 기의 행정 사무원, 혁명유가족 노동당원(반일투쟁에서 희생된 핵심 당원), 애국열사유가족(6․25 당시 비전투 원으로 희생된 자), 혁명인테리(8․15 이후 북한이 양성한 자), 6․25 당시 피살자 가족, 6․25 당시 전사자 가족, 군인 가족(인민군 장교 및 군인의 가족),영예군인 및 상이군인 가족(6․25 당시 부상한 상이군인의 가 족); 기본군중: 중․소상인, 수공업자, 소공장주, 하층접객업자, 중산층접객업자, 무소속 남한출신, 월남자 가 족(3개의 별개 부류), 전직 중농, 민족자본가, 중국귀환민, 8․15이전 인텔리, 핵심군중 중 안일․부패한 자, 접 대부, 미신 숭배자, 유학자, 지방유지, 경제사범; 복잡(동요 및 적대)군중: 부농, 상인, 기업가, 지주 또는 개인 재산을 완전 몰수당한 자, 친일․친미행위자, 반동관료배, 입북자, 천도교 청우당원, 불교신자, 천주교신자, 출 당자, 철직자, 6․25 당시 남한을 도운 자, 체포․투옥자 가족, 간첩, 반당․반혁명 종파분자, 처단자 가족, 출

김일성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웠던 게릴라 대원의 가족들에게 수여되었다.

∙ 한 전직 고위간부는 집에 할아버지가 6 ․

25전쟁에 참여한 것에 관한 증서가 있었기

때문에 10살 즈음부터 자신의

성분

지위를 알았다고 조사위원회에 설명하였다. 그 는 또한 가족들로부터 낮은 지위의 사람들과 놀거나 어울리지 말라고 들었다. 그는

좋은

‘성분’이 곧 김씨 가문과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으며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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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성분’은 그중에서도 예전에 부유했던 기업가, 첩자 혐의자, 천

주교신자, 그리고 불교신자에게 주어졌다. 사실상 북한이 수립되기도 전의 가족사가 북한에서의 주민들의 운명을 선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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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성분’이 출생부터 모든 주민들의 진로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었

다. 좋은

‘성분’인지가 군대(특히 엘리트 부대), 대학 및 조선노동당에 들어갈 수 있

는지를 결정지었는데, 이것은 공공 서비스 분야 모든 진로에서의 필수 전제 조건이 었다. 반대로, 나쁜

‘성분’인 사람들은 상당수가 채굴과 농사일을 배정 받았고 그들

의 자손들은 대부분 고등 교육에서 배제되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 개인의 능력, 그 리고 개인의 정치적 충성심은 한 사람의 성분을 향상시킬 기회에 제한적인 영향만 을 끼쳤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불충하다고 여겨지는 행동은 개인과 그 가족 전체의

유리한

‘성분’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278 ‘성분’의 결정은 모든 성인 주민과 그 가족들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함께

종합주민등록시스템에 기록되어 있다. 보안 단체와 조선노동당의 기관들이 이 기록 들을 조직적으로 편찬하는 과정은 투명하지 않고 그 결정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 다.294 게다가

‘성분’ 제도 아래의 공식적인 차별은 또한 몇 세대에 걸친 현상으로

293_ TSH019.

294_ TJH022, TJH023.

개인의 분류는 개인의 행동뿐만 아니라 한 세대를 넘어 그 사람의 친척들의

‘성분’

분류에 따라서도 결정된다. 그리하여 카스트 제도와 비슷하게 출생에 따른 종신적 차별 제도가 북한에 만연하게 되었다.

279 ‘성분’ 지위의 존재와 관련성은 법률로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닌 것으

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근로인민대중이 사회의 주인이 된다는 헌법 참고 문헌과 국가의 모든 공민과 기관들이 계급적 원수에 충실하게 투쟁하도록 하는 권고에서 은연 중에 퍼져나간다.295 이 개념은 또한 내부 지도와 교육 자료에도 적용된다.296 조사위원회가 면접을 진행한 전직 보안원과 당 관료들은 한 사람과 관련된 중요한 결정들에 있어서 ‘성분’에 대한 고려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지적하였다. 예를 들 어 한 전직 관료는 사회안전성(현 인민보안부)이 사람들의

‘성분’에 따라 기록부를

색깔로 구분하였다고 조사위원회에 설명하였다. 핵심 계층 가족들의 기록부는 빨간 색 서류철에 보관된 반면, 가족 중에 정치범수용소(‘관리소’) 수감자가 있는 등의 가 족 서류는 검정색 서류철에 보관되었다.297

280 ‘성분’은 또한 범죄에 대한 처벌을 고려할 때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 증언자가 설명한 바와 같이 성분이 좋은 사람이 ‘성분’이 더 나쁜 사람과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면 ‘성분’이 더 좋은 사람이 더 가벼운 처벌을 받을 것이다. 어 떤 사람이 보안 기관에 의해 구금시설로 보내지면, 가장 먼저 평가되는 것은 그 사 람의 족보와 가족 배경일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핵심 계층 출신이면(즉,

‘성분’이

좋으면), 범죄와 관련 없이 그 사람은 국가를 배신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가정하에

295_ 북한 헌법, 제8조와 제162조.

296_ 1993년 인민보안부가 발간한 “주민등록사업참고서”라는 제목의 자료는 주민등록 조사관들이 ‘성분’ 조사 동 안 활용해야 할 지침을 주었다. Robert Collins, “Marked for Life: Songbun North Korea’s Classification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을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나쁜

‘성분’ 출신이라면, 그는 나

쁜 짓을 하도록

“되어 있다”고 여겨지고 더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된다.

298

∙ 권영희 씨는 1994년 김일성 사망 애도 기간 중에 중국에서 체포되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그녀의 오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중국에 불법적으로 간 것에

대해

“경제”범으로 처리된 것이 아닌 정치범으로 기소되었다.

“만약 저희가 범죄를 저지르거나 범법 행위를 하면 부모님이 남한 출신이라는 이유 만으로 항상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불공평한 일 중 하나 였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오빠 중 한 명을 찾을 수 없게 되고 또 한 명은 감옥에 보 내졌던 이유입니다.”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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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여러

‘성분’ 계급들의 정확한 비율을 확인하기는 어렵고, 시간이 흐

르면서 이것들이 얼마나 변했는지 알기도 어렵다. 2009년 수치에 따르면 핵심계층 이 인구의 약 28%인 반면, 기본계층은 45%를 이루고 있고, 복잡(동요 및 적대)계 층이 나머지 27%를 구성한다.300 핵심계층 내에는 지배 엘리트층이 있다. 이 집단 은 김일성의 친척 및 보통 가장 좋은 성분의 선조들을 둔 소수의 다른 가족들로 구 성되기 때문에 때때로 혁명계층으로 불린다. 지배 엘리트층에는 정치국 위원의 가 족, 조선노동당 비서 및 중앙인민위원회, 내각, 중앙군사위원회, 그리고 국방위원회 의 위원들이 포함된다.301 그들은 주요 정책 결정 준비에 직접적으로 관여되어 있고 정책 수립의 중추 세력에 참여한다.

298_ TAP011.

299_ 서울 공청회, 2013년 8월 24일, 오전(02:05:00). IV장 A의 다른 증언들.

300_ 세 개의 광범위한 범위는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 것으로 보여지는데, 동요 및 적대 계층이 “복잡” 계층으로 압 축되었고 중간 분류는 “기본” 계층으로 규정된다. 이 수치들은 통일연구원 자료이다. 북한개요(2009), p. 330.

301_ “공직에서 위원직이 중복되는 것이 흔하기 때문에, 최고위 공무원은 1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Federal Research Division Library of Congress, Robert L. Worden ed., North Korea: A Country Study (2009), p. 211.

Dalam dokumen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보고서 (Halaman 19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