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동아시아의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기독교, 유교는 모두 교리 상으로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방법론과 그 이론적
71_1960년 미국, 인도, 일본 등에서 세계 종교 지도자들이 ‘평화’에 대한 공동의 관심을
확인하고, 인류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에 공동 대응하고자 1970년 조직한 세계 종교인평화회의(World Conference of Religion for Peace: 이하 WCRP) 하에 지역 회의로서 아시아 종교인평화회의(ACRP)가 있으며, 한국 종교인평화회의(KCRP)
는 ACRP그룹에 속해 있다.
72_“Koreans fund peace center in Mindanao,” Ucanews, November 27, 2009,
<http://archive.ucanews.com/2009/11/27/koreans-fund-peace-center-in-min danao/?key=buc>.
배경이 존재하며, 무엇보다도 평화를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 아시아에서는 장기간 지속되는 종교 분쟁이 적지 않다는 일종의 역설 적 상황이 존재한다. 그러나 종교란 일반적으로 신도들에게 배타적 신 념체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쟁을 야기할 수 있는 소지는 원 칙적으로 있다. 그러나 세계화를 통한 종교 간의 접촉 및 대화 강화와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원칙적으로 허용되는 종교의 자유는 종 교 간에 순전히 배타적 신념체계로 인해 분쟁을 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도 내에서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 은 순수하게 종교적 이유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선거와 밀 접한 관계가 있다.
전형적으로 이 폭동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힌 두 민족주의자들이 예상되는 소수 무슬림의 범이슬람주의에 대항하여 동원이 된다. 그러면 사이비 종교 행사들이 힘의 과시를 위해서 조직되고, 매우 선동적인 행사들은 국가 차원 에서 정치적이고 선거와 관련이 있는 폭동들의 방아쇠를 당 긴다. (…) 종교적 폭동과 선거 일정과 매우 강한 상관관계를 예상할 수 있다.73
즉, 종교 분쟁에서 종교는 ‘우리와는 섞일 수 없는 다른 집단’의 명칭 일 뿐 그 내적 교리와는 대부분 무관하다. 따라서 종교 분쟁을 살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사회, 경제, 정치적 차별과 정치적으로 의도된 폭력 의 유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역으로 종교 분쟁이 관계된 종교의 내적 교리만으로는 극복
73_Institute of Defence and Strategic Studies, Anatomy of Religious Conflict in South and Southeast Asia (Singapore: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2005), 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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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즉, 종교는 인간사회에서 삶의 의미를 부 여하나 인간사회는 종교에 물질적 토대를 제공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종교가 이러한 물적 토대의 중요성보다는 삶의 정신적 가치를 주장하 고, 나아가 자기 희생 혹은 개별적 자아의 초월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 이다. 바로 여기서 종교의 내적 모순이 드러나는 듯이 보인다. 종교는 한편으로는 신도들에게 물질적 소유와 폭력의 사용을 초월할 것을 요 구하지만, 종교 자체의 물질적 토대가 위협받거나 외부로부터의 폭력 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74 즉, 평화란 평화를 지향하는 내면적 평화주의와 함께, 그 토대가 되는 사회, 경제, 정치적 토대가 반 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양자 중 어느 하나라도 무시될 경우 평화 는 지속적이기 힘들다. 예를 들어 이점은 하나의 종교 공동체 내에서 의 분쟁보다 타종교 간의 분쟁이 역사적으로 더 많을 것이라는 예상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다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같은 종교와 다른 종교 간에 발생한 전쟁의 빈도를 조사한 결과는 예상과 상당히 다르다.
리처드슨(Lewis F. Richardson)이라는 학자는 같은 종교를 믿고 있는 정치 집단들의 관계는 다른 종교를 믿는 집단들과 의 관계보다 훨씬 평화로울 것이란 가설을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밝혀낸 사실은 같은 종교를 믿는 집단(혹은 국 가)이거나 종교를 달리하는 집단이거나 전쟁 발발 빈도는 차 이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유교를 공유하고 있는 국가 들 사이에서는 전쟁의 빈도(頻度)가 낮았다는 사실을 밝혀냈 다. 사실 유럽의 대부분 전쟁은 기독교 국가들끼리의 전쟁이 었고 2차 대전 이후 중동 국가들은 같은 이슬람 종교를 공유 하고 있었지만 거의 끊임없이 상호 갈등을 벌였다. 같은 종 교라 할지라도 국가 간 혹은 집단 간의 전쟁 발발을 방지하
74_Oscar E V Fernando, “Role of religion in Peace Building,” Asian Tribune, January 27, 2008, <http://www.asiantribune.com/?q=node/9310>.
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이 현대 국제정치학의 연구 결 과이다.75
평화를 지향하는 종교 내에서도 전쟁이 상대적으로 적지 않게 발생 하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즉, 속세적 비폭력주의에 근 거하든 혹은 특정 종교의 영향을 받았든 간에 주관적 평화 지향성만으 로는 평화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점은 당사자들 간에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평화의 사회, 경제, 정치적 구조를 정착시킴으 로써 평화지향성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나오기 시 작했다.
다른 한편 세계화 시대에 종교가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대폭 증대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76 실제로 종교 간의 갈등이 종 교의 배타적 성격으로 촉발될 수도 있지만, 모든 세계 종교는 사실상 내적 평화지향성이 존재의 이유라는 점에서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 동 일한 평화지향성을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 뿐만 아니라 종교기관 이 구호나 교육, 의료 등에 오랫동안 기여하여 왔다는 점 역시 종교가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토대를 갖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가. 물적 토대와 정신적 토대의 상호관계
동아시아 대부분 국가의 주민 다수는 종교가 자신의 삶에 매우 중요 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동아시아 국가와의 지속적 평화 관계를 구축하는 데에 필요조
75_이춘근, “미국을 향한 테러 공격과 이슬람의 전쟁론.”
76_R. Scott Appleby, “Globalization, Religious Change and the Common Good,”
Journal of Religion, Conflict and Peace, Vol. 3, Issue. 1 (Spring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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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타종교에 대한 이해나 종교 간의 대화를 촉진하는 데에 한국이 기여하는 것은 그 자체가 동아시아의 평화에 기 여하는 직접적인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 특히 특정 종교의 내적 폭 력성을 상정하거나, 종교지향적 인간이 그렇지 않은 인간에 비해 교육 을 덜 받았다거나 하위 계층에 속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경험적 으로 밝혀졌다. 이런 점에서 대외정책의 수립과 결정에 해당 지역 종 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국내 정치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점과 사실 하등 다를 바가 없다.77 왜냐하면, 동아시아의 종교는 대부분 종족 및 문화와 절충되어 주민의 정체성과 분리 불가능하기 때문에 평화의 기본 공식인 ‘타자의 이해와 존중’이라 는 점에서도 종교의 중요성은 십분 강조될 수 있다.
그러나 종교 분쟁 및 분쟁 해소 시도의 사례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평화 정착의 주요 요소로서 종교의 중요성뿐 아니라, ‘평화
의 조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점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수많
은 종교 분쟁이 종교 간의 교리 싸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정치, 경제 적 ‘물적 토대’와 밀접하거나 혹은 이러한 이해관계의 관철에 종교 간 의 적대 관계가 이용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종교에 의 한 분쟁 해소의 과정에서 오랜 분쟁 관계에서 적대 관계가 굳어진 분 쟁 당사자들이 타자에 대한 이해와 대화를 시작하려면, 결코 평화의 물적 토대뿐 아니라, ‘정신적 토대’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국내적이든 국제적이든 평화의 조건은 ‘내적 평화지향 성’과 ‘외적 평화구조’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우리가 ‘적대
77_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USAID), Religion, Conflict and Peacebuilding (Washington, D.C.: USAID, September 2009),
<http://www.usaid.gov/our_work/cross-cutting_programs/conflict/publicatio ns/docs/Religion_Conflict_and_Peacebuilding_Toolkit.pdf>.
적 갈등(전쟁, 폭력분쟁)의 부재’로서 소극적 평화라 할 수 있는 비평 화와 정치, 경제 및 문화의 영역에서 이른바 ‘인간안보(human security)’
를가능하게 해주는 사회 내적 구조가 존재할 경우의 적극적 평화를 구분한 것도 실은 평화의 조건이 갖는 두 측면을 이르는 것임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평화의 두 토대는 어떤 근거에서 출발할까? 그것은 인간 본성의 여러 측면과 관계된다. 모든 생물처럼 인간도 생명유지에 물질 적 자원이 필요하며, 우리는 데카르트식의 심신 이원론자(mind - body-
dualist)가 아니라면 정신적 삶의 전개에 반드시 의‧식‧주의 확보가 필
요함을 인정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사회 내에서만 존 재할 수 있으므로 제한된 물질적 자원의 확보에는 사회적 갈등이 거의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이른바 생존 경쟁이 그것이다. 따라서 크건 작건 한 사회에서 평화의 유지는 본질적으로 생존 경쟁이 제도적, 규범적으로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렇지 못할 때 전쟁과 같은 적대적 폭력이 동원되어 왔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인간은 생존경쟁을 통해서 존재의 물질적 자원을 확보하는 데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여기서 삶의 목표로 설정된 행복을 얻기 위해 ‘욕구의 만족’이라는 길과, ‘욕구로부 터의 해방’이라는 두 개의 길이 있었다. 전자가 일반인이 흔히 선택하 는 길이라면 후자는 세계의 모든 종교가 ‘진정한 행복의 길’이라고 제 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행복의 정의가 무엇이든 행복이란 물질적 조건의 단순한 확보와 일치하지도, 물질적 조건의 많고 적음과 일치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쇼펜하우어가 말했듯이 “하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면 열 개의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나타나기” 때 문이다. 종교의 내적 평화지향성은 기본적으로 물질적 토대에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