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성숙한 세계국가(Global Korea)’란 구호와 함께 지구 적 수준으로 외교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G20이나 핵 안보 정상회의와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관심이 그 일례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의 물리적 역량(군사력, 경제력)이 전 지구적 확장(global reach)을 감 당할 정도는 되지 못한다. 또한, 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 쉽지 않 으며 특히 역내 대국인 일본이나 중국과 경합하는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비물질적 차원에서 역량을 동원, 물리력의 열세를 보완하 는 외교가 중시되어야 한다. ‘신아시아 외교구상’이란 구체적인 외교 정책을 인도할 전략 개념(guiding concept)도 이런 차원에서 모색되어 야 한다.
소프트파워가 그 전략 개념 중 하나이다. 이는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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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물리적 자원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강제하는 전통적 외교보다는 지식, 이념, 문화 등 비물질적 자원을 활용하여 상대방의 선호를 바꾸 어 동의를 이끌어내는 외교이다.151 사실, 소프트파워는 국제정치에 대 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 속에서 제기되는 개념이다. 21세기 국제정치는 지구화와 민주화, 정보 혁명, 특히 인터넷의 확산으로 대변되는 삶의 물적‧지적 조건의 변화를 바탕으로 해서 권력의 장이 본질적으로 변화 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향 에서 전개되고 있다.
첫째, 국제정치의 근간이 되는 권력에 대한 존재론적 변화가 일어나 고 있다. 기왕의 국가 간 경쟁이 기본적으로 군사력과 경제력의 획득 을 위한 경쟁이었다면 21세기에는 지식과 기술이 국력의 기반적 요소 로서 점차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정보기술, 생명공학기술, 나노기술 등은 사회와 국제질서 변화에 커다란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지식국가(knowledge state)가 강조되는 이유이다.
둘째, 근대국가로서 웨스트팔렌체제는 커다란 시련을 맞고 있다. 지구 화와 민주화, 정보화를 겪으면서 비정부 행위자의 위상이 현격히 증대되 고 있다. 다국적기업의 국가에 대한 상대적 영향력은 꾸준히 증대되고 있 다. 또한, 초국적 네트워크를 짜면서 힘을 축적하는 비정부기구(NGO), 종교 조직, 강력한 개인(super-empowered individual) 등은 지구적 시민 사회를 조직하여 국제사회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국가 간 거래에 따라 이루어지는 기존의 국제정치 체제에 도전을 해오고 있다. 정보화는 이런 변화의 핵심적인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21세기 외교는 물 리력이 아닌 정당성에 기반을 둔 규범과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
151_Joseph Nye, Soft Power: The Means to Success in World Politics (New York:
Public Affairs, 2004).
셋째, 국제정치에서 문화의 역할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 여기서 문 화란 예술과 관련된 문화 활동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활, 행동 양식, 경 제 체제, 가치관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지구화와 정보화를 매개로 다양한 정보 매체가 등장함에 따라 기존의 정부 간 외교를 넘어서서 다양한 채널을 통한 교류가 확산되고 이를 통해서 특정 국가의 문화가 전파되며 그 결과로 권력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공 외교 (public diplomacy)와 문화 외교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소프트파워에 근거 한 외교가 요청된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하드파워 외교가 쇠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이 소프트파워를 내건 맥락은 강력한 하드파워 를 보완한다는 데 있었다. 따라서 하드파워는 여전히 핵심적인 국력 결정 요소이다. 미국은 우월한 하드파워에 소프트파워를 적절히 가미 하는 이른바 ‘스마트파워’를 논하고 있다. 양자의 배합을 상황적 맥락 에 따라 똑똑하게(smart) 하자는 것이다.
동아시아는 여전히 하드파워적 경쟁이 지배하고 있다. 전통적 세력 배분 구조의 변화 등에 따른 안보 불안이 상존하는 근대적인 권력 정 치의 장이 지속되고 있다.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흔들어 놓은 이래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가시화되고 중국과 인 도 등 신흥국의 부상이 현저한 속에서 국제제도는 후자의 목소리를 담 는 방향으로 변화 중이다. 미국과 일본 등 현상 유지 강대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 등 신흥국의 부상 사이에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국제 체계 내에서 새로운 위상을 확보해야 하는 고민을 안게 되었다. 또한, 전근대적 요소, 즉 역사 문제, 영토 문제 등도 엄존하고 있다. 독도 문 제나 센카쿠 문제와 같이 역사와 영토 문제가 결합하여 외교적 파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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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나아가 한국은 분단과 핵 문제라는 짐을 지고 있기 때문에 하드파워적 경쟁 환경 아래에 있다. 이러한 지역의 현실 때문에 한국은 하드파워 외교에 경도되어 왔다.
향후 한국의 과제는 기존의 하드파워 외교를 기반으로 하되 어떻게 소프트파워적 요소를 키워 적절히 배합, 활용할 것인가에 있다. 사실 한국과 같은 중견국에게 소프트파워의 의미는 크다. 대다수 강대국들 은 경제력이나 군사력과 같은 자원을 동원하는 하드파워 외교를 주로 하고 소프트파워를 보완하는 스마트파워 외교를 추구하고 있지만, 상 대적으로 하드파워가 부족한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소프트파워의 측 면에 역량을 경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아시아 외교의 일환으로서 역내 평화를 추진하려면 한국은 역내 강국인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상 대적으로 하드파워 자원이 부족하므로 소프트파워 자원을 적절히 동 원한 외교술을 강구하여야 한다.
여기에서는 신아시아 외교를 구현함에 있어서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는 한국의 스마트파워 외교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논의의 핵심은 소프트파워에 둘 것이다. 왜냐하면, 스마트파워는 분석 개념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드러나는 권력 현상을 표현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를 적절히, 똑똑하게 배합하면 스마트파워가 되 고 따라서 정책 언어의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소프트파워와 달리 스마트파워가 학문 영역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실 당장 한국에 주어지는 과제는 소프트파워의 증진과 활용이다.
한국은 아직 소프트파워의 개념을 원용하여 외교정책을 체계적으로 수 립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일차적으로 소프트파워의 활용에 연구의 초점을 둘 것이고, 하드파워와의 결합의 배분율 등 구체 적 정책 방향과 내용은 피상적으로 다룰 것이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시아에서 강대국의 소프트파워와 스마트파워 외교를 검 토, 비판적으로 평가한 다음, 둘째로 한국이 추구할 수 있는 소프트파워 개념을 설정한다. 이는 제국적, 지배적 개념으로서 소프트파워를 극복 하는 시도이다. 셋째, 이 글은 대안으로서 한국이 수행할 소프트파워 외교로 위치적 권력(positional power), 규범적 권력(normative power), 사회적 권력(social power), 문화적 권력(cultural power)이라는 세 가 지 권력의 추구를 제시한다. 끝으로, 이를 토대로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결합하여 중견국으로서 수행할 수 있는 평화 외교의 방향과 접근방식으로서 중재 외교를 제시하고자 한다.
나. 소프트파워와 스마트파워의 개념과 이론
(1) 미국의 소프트파워/스마트파워론
소프트파워와 스마트파워 외교는 미국에서 창안되었다. 따라서 소 프트파워의 글로벌 담론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소프트파워란 용어를 창안한 조지프 나이(Joseph S. Nye)는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의 실천 적 문제의식이라는 편향 속에서 소프트파워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하 드파워의 기준에서 지구 초강대국인 미국이 자신의 패권을 재생산하 기 위한 차원으로 소프트파워를 활용하는 문제에 주안점을 두고 논의 를 전개하고 있다. 미국은 압도적인 하드파워를 보완하는 기제로써 소 프트파워 활용을 제기하면서 “미국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공공재를 국제 사회에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의도를 숨기 지 않고 있는 것이다.152
152_Richard L. Armitage and Joseph S. Nye Jr., CSIS Commission on Smart Power:
A More Secure, Smarter America (Washington, D.C.: CSI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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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권력은 실행적(performative) 측면을 갖고 있다.153가령, 하드 파워적 측면을 강조하는 권력 개념을 채용한다면 미국은 압도적인 군 사력을 바탕으로 자국의 이익을 더욱 강하게 밀고 일극적 리더십을 발 휘할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된다. 반면 소프트파워적 권력 개념을 강조 하게 되면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고려한 보다 신중하고 정당성을 갖는 외교에 주력하게 될 것이다. 권력을 어떻게 개념화하는가에 따라 특정 한 정치적 선택이 정당화된다. 따라서 권력의 개념화는 정치적 경합의 재현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21세기 작동하는 권력 현상을 개 념화하는―소프트파워로 부르는―일은 앞서 미국의 국제적 지위 변화 와 관련된 특정 현실을 정치의 영역으로 이끌어내는, 그리고 무엇이 소망스러운 것인지를 지시하는 전략적 행위를 의미한다. 나이(Nye)의 소프트파워는 나이가 인식하는 미국의 고민과 전망을 담는 전략적 개 념이란 측면을 담고 있다.
나이의 권력 개념은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의 실천적 문제의식이라는 편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 그의 소프트파워는 미국의 패권쇠퇴론에 대 한 지적 반격이라는 현실적 관심에서 출현하였다. 1980년대 후반 일본 과 독일의 부상 속에서 미국쇠퇴론이 회자하던 때 그는 소프트파워 개 념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폴 케네디(Paul Kennedy)의 강대 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erat Powers) 등의 서적들이 베 스트셀러가 되면서 새 강대국이 부상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속에 서 그는 주도국일 수밖에 없는 미국(Bound to Lead)라는 책을 통해 오히려 미국의 패권은 지속할 것으로 전망하였으며 그 이유를 소프트
153_Stefano Guzzini, “The Concept of Power: A Constructivist Analysis,” Felix Berenskoetter and M. Williams (eds.), Power in World Politics (London:
Routledge,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