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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평화의 새로운 협력구조

가. 아시아 평화 협력구조의 요소

(1) 세력균형

(가) 미국 주도 동아시아 질서의 동요

제2차 세계대전의 주전장이었던 유럽에서는 미‧영‧프‧러 4강에 의 한 점령으로 전쟁이 종료되었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의 항복 이후 중국과 한국에서 내전이 잇달아 발발하였다. 1949년 중국 내전에 서 국민당 장제스군이 대만으로 패퇴하여 본토에서는 사회주의 중국 이 들어섰으며, 한반도에서는 남북한 지역에 단독정부가 들어선 이후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벌어져 마침내 정전 협정과 함께 적대적인 두 개의 체제가 수립되었다. 미국은 우세한 군사력과 일본, 한국과의 쌍무동맹관계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압도적인 세력 우위를 보이고 있다.

냉전기 동안 미국은 ‘미‧일 안보조약(1952)’과 ‘한‧미 상호방위조약

(1953)’의 쌍무동맹관계(Hub and Spokes System)를 체결하여 미군을

전진배치하고 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패권을 확립하였다. 하지만 역사 적 갈등으로 인해 한‧일동맹이 맺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서유럽의 북대 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이하 NATO)와 같 은 한‧미‧일 집단 방어 동맹은 성립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중국‧북한, 러시아‧북한도 1961년에 각각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과 ‘조‧ 소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하였으나, 중‧러 분쟁으로 동유럽 의 바르샤바조약기구(Warszawa Treaty Organization: 이하 WTO)와 같이 러시아‧중국‧북한을 묶는 집단 방어 동맹은 형성되지 못하였다.

1970년대 들어 동‧서유럽의 긴장 완화와 베트남 전쟁의 종식에 힘 입어 동아시아 지역에도 긴장 완화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였다. 냉전 이 한창이던 1972년 중국과 일본이 먼저 관계를 정상화하였으며 미국 과 중국은 연락사무소의 설치에 뒤이어 1979년에 수교하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냉전 구조가 해체되기 시작한 것은 동유 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가 시작된 1980년대 후반부터로 1990년에 한국이 러시아와 수교했고, 2년 뒤인 1992년에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 하였다. 북한은 일본과 수교 논의를 진행하였으나 ‘이은혜 사건’으로 중단됐고 미국과는 1994년의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 이후 연락사무 소의 설치가 추진됐다가 중단되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반관‧반민 차원의 동북아 안보대화가 시작되었 으나, 역내 세력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미국은 무관심하였고, 세력 열 위에 있었던 중국은 감히 세력 변경을 시도하지 않아 진전이 없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압도적 군사력을 갖고 있던 미국은 쌍무동맹관계 에 치중한 채 안보 레짐의 형성에 무관심하였으며, 중국 역시 1990년 대 중반까지는 동북아 안보 레짐의 구축에 나설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이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오르면서 새로운 주변 국제질서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전환했으며, 특히 동아시 아 지역에서 자국의 영향력 확보를 위해 다자안보 대화에 참여하기 시 작하였다. 하지만 세력 우위에 있는 미국은 새로운 다자안보 질서 형성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한‧미, 미‧일 간 쌍무동맹에 기초한 위기 관리와 억제 기능을 유지‧개선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135

135_Ralph A. Cossa, “U.S.-ROK-Japan: Strengthen the Ties that Band,” Tae-hyo Kim and Brad Glosserman (eds.), The Future of U.S.-ROK-Japan Relations:

Balancing Values and Interests (Washington, D.C.: CSIS, 2004).

부시 1기 행정부에 들어와 미국은 중국의 적극적인 외교 자세를 미 국 주도의 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중국을 전략적으 로 포위하는 동아시아 전략을 구상하였다. 이는 미국이 아직 냉전 해 체에 따른 안보 이익을 중국, 러시아 등과 공유하려는 의사나 행동이 부재했다는 것을 노정하는 것이다. 그 대신 미국은 한국, 일본과 기존 쌍무동맹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동맹 국가들 간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

‧미‧일 동맹 네트워크’의 강화를 시도하였다.

미국이 주도하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의 테러와의 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북핵 문제를 이들과 함께 처리해야 하는 상황 에 몰리게 되자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 체 등 동아시아 질서 재편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인 식하기 시작하였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남북관계의 급진전과 한‧중 관 계 심화, 일본과 한‧중 양국의 갈등 양상을 지켜보면서, 미국은 1기 부 시 행정부 정책으로는 역내 주도권의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동아 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부상하는 중국을 관리하기 위해 봉쇄 정책을 취하기보다는 적극적인 포용 정책을 통해 중국을 다자 간 안보레짐 속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 내에서 힘을 얻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새롭게 구 상한 동아시아 질서는 제2기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 한‧미, 미‧일 쌍무 동맹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중국과 협력하는 ‘동아시아 다자안보레짐’ 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나) 중국의 부상과 세력전이

199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의 부상으로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유럽의 경우와 달리, 동아

시아 지역의 중국과 극동 러시아의 군사력은 여전히 미국의 군사력에 필적할 정도로 크지 않기 때문에 아직 세력균형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 는 미‧중 간의 G2 대화는 완전한 세력균형의 결과라기보다는 경제적 으로 급부상하는 중국을 맞이하여 ‘평화적인 세력전이’의 필요성을 인 정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이 여전히 우세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전략적 타협 을 시도한 것은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고 있으나 과거 소련처럼

1급 위협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전략적 판단에 기인한다. 중

국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의 군사력이 미국에 크게 미치지 못하며,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력 부상을 활용할 가치 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의 몰락을 추구하기보다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구상은 부시 2기 행정부에 들어와 바뀌기 시 작하였다. 부시 2기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은 북한 문제를 계기로 주 변 강대국들을 하나로 묶어내어 동아시아 다자안보협력의 기회로 삼 고자 하는 외교적 전략에 따른 것이다.136 미국은 중국을 세계 시스템 에서 ‘책임 있는 이해 상관자’로 인정하고, 중국과 장관급 경제전략 대 화와 부장관급 고위 안보 대화에 착수하였다.137 중국도 역시 2001년 SCO 창설을 계기로 다자안보 협력의 유용성을 확인하고 동아시아 다

136_Philip Zelikow, “The Plan That Moved Pyongyang,” The Washington Post,

February 20, 2007. 당시 라이스 미 국무부장관의 자문관이었던 필립 젤리코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을 방어적 전략(defensive strategy)과 외교적 전략(diplomatic

strategy)의 두 가지로 나누었다. 여기서 방어적 전략이란 대북 금융 제재나 유엔

제재 등을 통해 북한의 각종 불법 활동을 저지토록 하는 방안이다.

137_Kerry Dumbaugh, “China-U.S. Relations: Current Issues and Implications for U.S. Policy,” CRS Report for Congress (CRS, July 14th, 2006), p. 8.

자안보협력에 적극성을 띠는 등 국가 전략이 변화하고 있다. 중국의 국가 전략 변화는 군사력 증대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일 본의 군사 대국화를 견제하며,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주변 환경 을 안정시키는 데에 다자안보 대화를 활용하려는 의도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아주담당 부부장은 “중국 도 동북아 안보협력체제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검토해 왔으며, 현 국 제상황이 이러한 접근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고 언급하였다.138 그 리하여 미국과 중국 간에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 서를 논의할 전략 대화가 시작되었다. 2005년 8월 1일 베이징에서 개 최된 제1차 미‧중 전략 대화에서는 중국 대표 외교부 다이빙궈 상무부 부장이 먼저 동북아 안보레짐의 필요성을 미국에게 먼저 제안하였고, 결국 2007년 6자회담 ‘2・13합의’에서 미국, 중국을 포함한 6자회담 참 가국들은 6자회담 산하에 ‘동북아 안보 포럼’의 형성을 논의할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실무그룹을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미국도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 이후 “정치적 결단이 가능한 중국의 정상급 인사와 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하기 시작하였다.139 그리하여 오바마 정부는 정치, 경제, 안전 보장을 포함한 정상급의 전 략 대화를 신설한다는 방침 아래 중국 측과 대략적 합의에 도달하였다. 미국 바이든 부통령과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참석하는 정상급 전략 대 화가 이미 두 차례 개최되었다. 이러한 전략 대화가 ‘미‧중 협조체제

(Concert of U.S.-China)’의 서막이 될지, 아니면 단순한 이해 조정 기

구에 불과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138_Wu Dawei 외교부 아주담당 부부장(2006.6.13) 및 Ma Zhaoxu 외교부 정책연구국장 (2006.11.7)과의 면담 내용. 동북아시대위원회 자료(2007.3).

139_󰡔読売新聞󰡕, 2009年 2月 2日.

(2) 이익균형

(가) 동아시아 안보 현안의 중층‧복합구조

동아시아 지역의 안보 현안에는 근대 국가의 이행 과정에서 비롯된 현안과 전형적 근대 국제정치에서 나온 현안, 21세기의 새로운 현안 등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근대 국가의 이행과정에서 비롯된 현안으로 는 해양 영토 및 배타적 경제수역(EEZ) 확정 문제, 양안 문제, 남북 분 단 문제 등과 여기서 파생된 역사 교과서 갈등,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 제 등이 있다. 그리고 근대 국제정치에서 나온 현안으로는 군비 경쟁, 무역 마찰 등이 있다. 최근에 21세기의 새로운 안보 현안인 해적 문제, 재해 공동 구제와 같은 인간안보 문제 등이 등장하였다.

서유럽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에서 비롯된 동아시아 국가들의 근 대국가 이행 과정은 불완전한 상태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은 제국 주의의 일원이 되는 데에 성공했으나, 한국과 중국 등은 식민지, 반식민 지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태국을 제외한 나머지 동남아 국가들은 제국 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경험했다. 그렇기 때문에 동북아 지역에서 발생 하고 있는 영토 문제는 예외 없이 일본 제국주의와 관련이 있다.140 이 에 비해 동남아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국제 현안들은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옛 제국주의 세력들 간의 이해가 다양하게 얽혀 있다.

중국의 부상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근대 국제정치에서 나 온 이익 갈등의 문제가 새롭게 부상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력 신장 과 군사력 증강은 동북아 및 동남아 지역 내의 세력균형을 크게 흔들 고 새로운 이익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무역 마찰, 환율 변동과 같은

140_일본은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중국, 대만, 필리핀과 분쟁, 북방 4개 도서를 둘러싸고 러시아와의 갈등, 독도를 둘러싸고 남북한과 대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