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언론방송분야 거버넌스 활성화 방안
1. 언론방송교류 현황
가. 교류연혁
1960년대까지는 북한이 남한에 언론방송 교류를 일방적으로 제의하는 상 황이 진행되었고, 반대로 1970년대부터는 남한이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북 한에 적극적인 언론방송교류를 제안하였다. 특히 남한정부는 1988년 7.7선 언을 발표한 후, 북한의 로동신문과 TV 및 영상자료를 공개하였고, 1990년 에는 평양에서 열린 통일축구경기의 녹화중계가 이루어졌다.
1991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북단일팀 평가전을 남북이 방송을 연결하여 직접 생중계함으로써 첫 번째 방송교류가 공식적인 교류 협력의 결과로 이루어졌다. 이어서 1992년에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되고, 여기에 남북언론분야의 교류협력이 명시됨에 따라 남한의 언론방송에서는 북한에 상호협력을 제안하였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1992년에 KBS는 ‘남 북교향악단 교환’과 관련하여 박경윤 금강산국제그룹 회장과 접촉을 하고 협의를 진행하였으나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추진이 중단되었고, 이 외에 도 수차례 북측의 대외경제위원회 등과 방송교류를 위한 접촉이 추진되었 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에 수용불가 입장을 통보한 경우 외에는 대부분 회신 조차 없었고, 북한의 핵문제가 발생하면서 남북한의 언론방송교류는 진전 되지 못했다.
결국 남북한의 언론방송교류는 김대중정부가 출범하여 정치성, 이념성이 없는 북한 자료와 영상물의 방영을 허용한 이후에 진전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각 방송사가 북한 드라마와 영화를 방영하였고, 신문사에서 북한의 산하와 유적을 취재하고 방송을 통해 방영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또 통일음 악회와 통일농구경기가 방영되는 등 남북한 언론방송교류가 진전되면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맞게 되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전의 남북 언론방송교류를 보면, 남북한의 대립
이 지속되는 한반도 정세 하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음 을 잘 보여준다. 남한의 민주주의제도 하에서는 언론방송의 독립성과 자율 성이 대단히 중요한 영역이지만, 남북한의 대립 하에서는 각 언론과 방송
모두가 일정한 정도로 자율성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음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정부가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북한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남한 보다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교류의 한쪽 상대방인 북한의 언론방송 이 자율성을 전혀 가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한의 언론방송교류를 활성화하는 일차적인 과제가 어디에 있는가는 간단명료하다.
이러한 정부 역할의 중요성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또 한번 뚜렷 하게 확인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북측은 남북방송교류사업 에 부분적으로 수용적 태도를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남북정상회담 후에는 김정일위원장의 결정에 따라 남한의 언론방송 사장단 40여 명의 방북 초청 이 이루어졌다. 2000년 8월 남한 언론방송사 사장단이 방북을 하였는데, 북 한은 남한의 방송협회나 신문협회가 회원사를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 하고, 남한 언론방송에 대한 통제를 위해 ‘공동합의문’을 도출하려는 입장이 었다. 이에 반해 남한 언론방송의 사장들은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사의 방북 불참에서 알 수 있듯이 남한 언론방송의 현실을 이해시키며, 어렵게 남북 언론기관의 ‘공동합의문’을 채택하였다. ‘공동합의문’을 통해 남북한은 각각
「언론교류협력위원회」와 「조선기자동맹중앙위원회」를 접촉 파트너로 결 정하였는데, 이후 남북한 언론방송교류에서 ‘공동합의문’의 접촉 파트너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이 전개된 이유는 북한의 「조선기자 동맹중앙위원회」가 남북 교류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한 반면, 남한의 「언론교류협력위원회」는 각기 자율적인 결정을 내리는 개별 언론방송사를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후 남북한의 언론방송교류는 남한의 개별 언론방송사와 북한의 대남기구 사이의 개별적 접촉을 통해 진행되었다.
남한 신문의 남북교류는 1997년 중앙일보사 통일문화연구소가 북한지역 문화유적 조사 사업을 펼치면서 시작되었다. 2000년 남북한의 신문 상호교 환이 제안되었지만 유야무야 되었고, 방송에 비해 교류사업이 활발하게 진 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연합뉴스가 2002년말 조선중앙통신사 기사자료를 제공받아 국내 언론에 공급하는 체계를 갖추었고, 한 월간지가 북한의 통일 신보와 기사교류를 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한겨레신문의 경우 북한에서 개 최하는 경제사업을 취재하거나 전시회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교류사업을 진 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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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방송사 프로그램 제목
2000
KBS <북녘 땅, 고향은 지금> (3부작) <남북교향악단 합동공연>
KBS 2000년 한민족특별기획 <백두에서 한라까지>
SBS 평양 현지 뉴스 생방송
2001
MBC MBC 스페셜 <춘향, 평양가다>
MBC <여기자 북한방문기, 평양 10박 11일>
MBC 노동절 행사 뉴스보도 KBS <여기는 평양입니다>
KBS 일요스페셜 <남과 북이 함께 부르는 노래>
KBS 보도특집 [1부] 은둔의 땅, 관광으로 빗장 연다 보도특집 [2부] 대동강 밸리의 꿈
KBS 자연 다큐멘터리 <백두고원을 가다>
신문의 남북교류가 방송에 비해 저조했던 원인은 남한의 신문사들은 각 회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북한에 대한 비판 기조가 높았던 점과 남북교류 에 필요한 재정적 부담을 감수할 수 없었던 점에 주된 이유가 있다. 대형신 문사의 경우, 정치경제적 자율성과 전문성 역시 갖추고 있었지만, 신문이라 는 매체가 갖는 특성으로 인해 남북교류의 필요성을 방송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느끼는 것도 교류사업이 활발하지 못한 한 원인이 되었다.
2007년 10월에는 연합뉴스 사장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기룡 조선중앙통신 사장과 만나 뉴스통신사 간의 교류‧협력 방안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연 합뉴스 사장은 연합뉴스와 조선중앙통신이 평양과 서울에 특파원을 교환, 상주시킬 것을 제의했고, 더불어 상호 지국 설치와 베이징 올림픽 등 국제무 대에서 취재협력, 사진과 동영상 등도 남북 통신사 간 협력할 것을 제안하였 다. 이에 대해 북측의 조선중앙통신 사장은 북측에서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하 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인터넷 언론에서는 사회문화교류의 형식을 빌어서 방북행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을 언론교류라고 보기는 충분치 못한 측면이 있다.
2000년 이후 주요 방송교류는 아래 <표 Ⅴ-1>과 같다.
<표 Ⅴ-1>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방송교류
KBS 역사스페셜 <북의 10대 민족문화유산>
[1편] 고구려 평양성 등 8편 제작 방영
2002
KBS <제국의 아침> 백두산 현지제작 (2회분) MBC 2002 부산아시안게임 특집 <북한이 온다>
KBS <남북 통일축구 경기>
KBS 평양공연 특별취재 <9시뉴스> 생방송
민족의 명절 추석맞이 <남북교향악단 합동 연주회>
MBC 평양 특별공연 <이미자 공연 우리는 하나>, <윤도현 공연>
KBS 남북최초 공동답사 <세계문화유산 한반도의 고인돌>
2003
KBS <남북·해외학자 평양 통일회의>
KBS 8.15특집 <평양노래자랑>
보도특집 <남북경협현장을 가다-평양,남포 그리고 개성>
SBS 정주영 체육관 개장기념 <평화친선음악회>, <통일농구>
<평화친선음악회, 평양에서의 7일>, <북한 농구단 서울체류기>
2004
MBC MBC스페셜 <북녘의 음식 기행> (2부작) MBC 특집 다큐멘터리 <살아오는 고구려>
KBS 역사스페셜 <고구려는 살아있다>
[1편] 고구려 수도 평양 / [2편] 고구려 벽화, 세계와 만나다
2005
MBC <MBC뉴스데스크> 북한의 설 풍경/ PD수첩 <개성을 말하다>
KBS 드라마 <사육신> 24부작 제작 진행, <금강산 열린음악회>
MBC <MBC 뉴스데스크> 미리 가 본 백두산 관광코스 SBS <조용필 평양 단독 콘서트>
2000년이후 활발히 전개되던 남북방송교류사업도 ‘북핵문제’로 인해 한
반도 정세가 악화됨에 따라 차츰 정체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2005년 SBS의 조용필 평양공연과 KBS의 드라마 ‘사육신’ 제작을 제외하고는 의미를 부여 할 만한 방송교류사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북한의 방송교류사업은 남 북한 공동방영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데, 2002년 KBS 교향악단과 조선국 립교향악단의 평양합동공연과 MBC의 남북예술인 평양공연이 남북한에 동 시방송된 이후 진척이 없는 상태이다. 오히려 이러한 남북방송교류는 한반
97 V. 언론방송분야 거버넌스 활성화 방안
도정세라는 측면 외에도, 북한 내부의 체제와 관련된 정치적 판단에 따라 부분적으로 후퇴되는 모습도 나타내고 있다. 또 남한 내부에서도 정부, 여당 과 야당의 대북 정책이 대립됨으로 인해 여론이 갈등을 빚는 문제도 남북방 송교류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러한 남남갈등이 남북방송교류에 미치는 영향도 작지 않다.
나. 주요 행위주체와 역할
현재 언론방송분야의 남북교류에 참여하고 있는 주요 행위주체는 국내차 원과 남북관계차원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국제차원에서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관련되어 남한의 방송위원회와 개별 방송사가 국제올림픽위원회 등과 협력하여 북측에 중계지원을 하는 경우가 있을 뿐, 언론방송교류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가진 행위주체는 없다.
(1) 국내 차원
북한의 언론방송기관은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조선중앙방송, 로동신문 등 으로 단순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들 기관 외에도 몇몇 기관이 더 있지만, 남북교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상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 남북교류의 북한측 주체가 노동당과 「민화협」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언론방송기관의 자율성은 매우 적다. 하지만 남한의 언론방송의 현황 은 북한과 매우 다르다.
남한의 언론방송은 그 수가 매우 많고, 또 매체별로는 규모가 매우 큰 경우도 있다. 언론의 경우 중앙 일간지만도 10개에 이르고, 거의 도마다 1개 이상의 지방지가 있다. 방송의 경우에는 지상파 방송 3사가 있고, SBS의 경우 각 도별로 완전히 독립된 개별 회사들이 존재한다. 또 수십 개의 케이 블TV방송도 존재하고, 주목할 만한 인터넷 언론도 존재한다. 특히 공공재 인 전파를 이용하는 방송은 다양한 규제와 지원을 받는 공적 기관의 역할이 강조되는 반면, 개별 신문사는 자율성이 보다 강조되는 성격의 차이가 있다.
이들 각 언론방송은 각자의 관심과 능력에 따라 상호간의 협력보다는 경 쟁적으로 남북교류를 추진하였는데, 이러한 결과는 남한 언론의 특성에 기 인하는 것이다. 남북교류를 추진한 언론방송은 각자 직접적으로 북측과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