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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근대기 이전 영등포의 원풍경

2.2 영등포의 지형과 마을

2.2.1 영등포의 지형과 산업

영등포 지역은 앞 절에 나온 『구한말한반도지형도(舊韓末韓半島地形圖)』에서 도 알 수 있듯이 용산(龍山), 여의도(汝矣島) 등과 더불어 한강변에 펼쳐진 비교 적 넓은 저지대(低地帶) 중 하나로 일대의 면적은 대략 10㎢이다. 영등포 지역 내의 지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 그림과 같다.

그림 6 영등포 지역의 지형

(朝鮮總督府, 1988『一萬分之一朝鮮地形圖集成』(영인본), 京仁文化社.을 바탕으로 필자 작성)

영등포 지역은 강과 구릉으로 둘러싸여 전반적으로 저지대를 이루고 있으나, 그림과 같이 내부에도 일정한 기복이 존재한다. 특히 한강변에 면한 강변 일부는 지대가 상당히 높아 언덕을 형성하여 선유봉(仙遊峰)19)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 데, 이는 한강변 경승지(景勝地) 중 하나로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도

『양천팔경첩(陽川八景帖)』 중 하나로 이 선유봉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저지대인 상황에서 안양천변의 서측 지대의 지형이 특히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영등포 지역은 대부분 강과 접하는 저지대이기 때문에 수해(水害)가 잦아 쌀농 사에는 적합하지 않았기에 재배 기간이 짧은 채소와 과일을 겨우 재배하는 척박 한 지역이었다.20) 실제로 1911년도에 작성된 지적도의 지목(地目)을 살펴보면, 일 부 마을에서 나타나는 대지(垈地)와 안양천변(安養川邊)에서 나타나는 잡지(雜地) 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밭과 논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중에 서도 수전(水田), 즉 논을 의미하는 답지(畓地)는 대부분 동남측 구릉 주변의 비 교적 고지대(高地帶)에 자리하고 있으며, 영등포 지역의 저지대는 대부분 밭을 의미하는 전지(田地)가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조선시대에 도 거의 비슷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으로 이 지적도를 통해서 주로 등고선을 따르는 동서 방향으로 개울이 나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영등포는 토질이 요업(窯業)에 적합하여 근대기 이후 기와, 항아리 등의 제조가 활발히 이 루어져 왔는데, 이러한 요업(窯業) 산업이 조선시대에도 성행했다는 근거 자료를 찾을 수는 없었다. 단, ‘시흥(始興) 특산(特産)하면 영등포 토기라고 누구나 시인 할만치 재래부터 토기 만드는 사람이 만헛스며’라는 1926년의 신문기사21) 내용으 로 보아 20세기 이전부터 토기 제조가 이루어져 왔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19) 1962년 양화대교를 건설하면서 절삭되었다.

20) 영등포구청, 『영등포구지』, p.53.

21) 「永登浦土器組合」,『東亞日報』, 1926.10.03.

그림 7 1900년대 영등포 지역 지목 추정

(1895년도 『舊韓末韓半島地形圖』 및 1911년 지적도를 바탕으로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