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87년 형법 전면개정과 1992년 형사소송법의 전면개정을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1987년 형법 개정에서는 유추해석 제한 규정을 도입하였고, 2004년 형법 개정에서는 근대형법의 인권보
169)도경옥 외, 위의 책, pp. 122~123.
170)UN Doc. A/HRC/WG.6/19/PRK/1 (2014), para 40.
장적 기능의 핵심인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도입했다. 1992년 형사소송 법 개정에서는 인권보장에 관한 원칙을 명시하고 이후에도 구체적인 절차를 갖춰나가는 등 제도적 측면에서는 발전적인 변화를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실체법 규정 내용들이 불명확하거나 추상적이어서 법집 행기관에 따라 오남용 될 수 있는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실제 형사법의 운용과정에서 정치범죄에 대해서는 제 도의 긍정적 변화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으며, 적법절차가 무시된 채로 형사사법절차가 이뤄지고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된다. 이하에서는 상기 검토한 북한 형사법 제도와 실태를 중심으로, 이러한 변화추이에 미친 지속요인과 변화요인을 분석하고자 한다.
가. 지속요인
먼저 북한 형사법의 변화추이에 있어서의 지속요인은 ① 근본적 요인,
② 제도적 요인, ③ 실태관련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북한 형사법과 형사사법제도의 운용실태의 지속과 관련, 근본 적 요인은 사회주의법제의 차이와 법치주의의 미비에서 찾을 수 있다.
법규범과 제도는 한 사회의 역사와 문화적인 사유를 배경으로 한다.
특히 형사사법을 포함한 사법제도는 개별 국가마다 독특한 특성이 있 기 때문에, 보편적 인권의 요구와 각국의 사법제도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유주의적 법체제에서의 형사법은 개인의 생명과 신체, 재산 등 개인적 법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법체제에서의 형사법은 국가적, 사회적 법익을 중시하며, 개 인의 인권보장보다는 사회주의제도 수호의 역할이 강조된다.
171)
기본171)사회주의법제도로서의 북한형사사법제도의 이해에 대해서는, 박학모 외, 통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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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북한사회에서 법은 계급투쟁과 사회주의 국가관리의 수단이며, 특히 형사법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서 사회주의체제를 보호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형사법의 본질과 기능에 변화가 없는 한 법률규정의 일부 개선만으로 는 그 한계가 있다.
172)
실제 북한에서의 형법은 “조선에 세워진 노동자, 농민의 주권과 사회주의 제도를 전복하며 혁명위업의 실현을 반대하는 반혁명 범죄자들을 진압하고, 사회주의 제도의 공고한 발전에 지장을 주는 일반범죄자들을 제재할 목적으로 국가가 제정한 범죄 및 형벌을 규정한 법규범의 총체”라고 정의된다.173)
북한은 형사법의 기능을 국 가주권과 사회주의제도의 보위를 위한 수단으로 보며, 시민과 사회의 이익 보호 및 인권보호기능은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형벌론적 측면에 있어서도 형벌의 의의를 개인의 기본권보장이 아닌 전체주의적 질서유지에 두고 있다.174)
북한은 또한 ‘법치국가’가 아니다. 법치국가는 법이 국민 개인뿐 아 니라 국가권력도 쌍방적으로 구속하는 법공동체를 의미한다. 법치국가 는 국가권력을 법에 구속시킴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한다.
175)
북한 역시 “사회주의국가는 법으로 나라 를 다스리는 법치국가”여야 하며, 북한이 그러한 ‘사회주의법치국가’임을 강조한다.
176)
그러나 북한에서의 법치는 법을 존중하는 법치(rule대를 위한 형사사법통합방안 예비연구 -북한 형사사법체계의 운용 현황에 대한 연 구-, pp. 25~60 참고.
172)이백규, “북한의 개정 형사소송법의 동향과 평가,” p. 183.
173)김근식,
형법학 1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996), p. 6.174)박정원, “북한의 체제수호를 위한 규범통제,” pp. 247~248.
175)이재승, “반인권적 악법과 사법기구의 인권침해,” 법학논총, 제17집 (2005), p.
170.
176)최일복, “주체의 사회주의법치국가건설사상의 독창성과 정당성,” 력사, 법학, 제 61권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2015), pp. 73~76; 진유현, “사회주의법치국
of law)가 아닌, 법을 통치수단으로 이용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이다.
177)
북한에서의 법은 기본적으로 당 정책의 구현과 프롤레타 리아 독재를 실현하는 도구로서의 성격을 가진다.178)
북한은 북한이“건설하고자 하는 사회주의 법치국가는 인민을 위한 법치국가, 당이 령도하는 법치국가, 민주주의중앙집권제원칙에 기초한 법치국가”라고 설명한다.
179)
근본적으로 법치주의가 미비한 상황에서 외형상 국제적 기준에 따른 법제의 정비는 의미가 없으며, 북한 당국에게 보편적 인권 기준에 미달하는 인권규정을 고치라고 촉구하는 것 또한 북한의 인권 현실을 개선하는데 실질적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이다.180)
이러한 요인 들은 북한주민의 시민적 권리 실현과 관련 형사법제의 역할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둘째, 북한 형사법과 형사사법제도의 운용실태의 지속과 관련, 사법 부 독립의 미비의 제도적 요인을 꼽을 수 있다. 북한의 사법부 독립의 미비는 국제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지적된 바 있다.
181)
사법권의 독립가건설에 대한 주체의 리론,” 력사, 법학, 제51권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2005), pp. 45~49.
177)조정현 외,
북한인권백서 2013, p. 17.
178)이백규, “북한의 개정 형사소송법의 동향과 평가,” p. 155.
179)리경철, “우리식 사회주의법치국가의 본질적 특성,” 교원선전수첩(평양: 교육신 문사, 2014), p. 40.
180)김동균, “북한의 인권문제: 북한의 인권 법제를 중심으로,” p. 66.
181)2005년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사법부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는 헌법 및 법률 조항들, 특히 중앙재판소가 최고인민회의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의 헌법 제162조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또한 헌법 제154조는 판사의 임기를 5년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형법 제129조는 불공정한 판결을 이유로 판사에 게 형사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법률 규정들은 규약상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자유권규약 제14조 제1항이 요구하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UN Doc. CCPR/CO/72/PRK (2001), para 8. 제2차 UPR에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서 준비한 취합보고서 는 북한의 사법시스템이 정부에 종속되어 있고, 판사, 검사, 변호사, 배심원들이 정 부기관의 일부로 지위를 가지며, 따라서 사법부의 독립과 피의자를 위한 보호수단이 부재함을 지적한 바 있다. UN Doc. A/HRC/13/47 (2010), para 30, para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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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인권보장의 요체라 할 수 있다. 국가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는 법관 이 오직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자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할 때만이 개인 이 인권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권력분립사상 자체 를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북한식 사회주의법치국가는 민주주의중앙집 권제원칙에 기초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 북한의 문헌을 보면,
“법치국가를 건설한다고 하여 《3권분립》원칙을 끌어들여서는 절대로 안된다. 권력을 분립시키지 않고서는 법치를 할수 없는것처럼 생각하 는 것은 부르죠아적사고관점이며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이다.”라고 말 한다.
182)
실제 북한의 사법부는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이라기보다 는 권력에 대한 협조자로서의 성격이 강하며, 실제 당의 정치적 지도이 념의 구현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183)
북한의 헌법과 재판소구성법, 형사소송법 등에 재판소의 독립을 명시하고 있으나, 이는 법관의 직무 상 독립이 아닌 재판소 조직체계로서의 독립만을 의미하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재판의 독립이라고 할 수 없다.184)
또한 북한의 최고재판소 등 북한의 사법기관은 당 우위 및 중앙집권제원칙에 따라 최고지도자 또는 노동당의 통제를 받으며, 최고인민회의의 관리 감독을 받는 제한182)리경철, “우리식 사회주의법치국가의 본질적 특성,” p. 40.
183)한명섭, 남북교류와 형사법상의 제문제, p. 31; 제성호, “북한의 인권실태와 구체 적인 개선방안 모색,”
2003년 남북법제 연구보고서
(법제처, 2003), p. 402.184)북한은 1948년 인민민주주의헌법 제88조는 “판사는 재판에 있어서 독립적이며 오 직 법령에만 복종한다.”라고 명시하여, 법관의 독립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1972년 12월 27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된 사회주의헌법은 기존에 있었 던 법관의 독립에 관한 규정을 삭제했다. 1972년 사회주의헌법은 제140조에서 “재 판소는 재판에 있어서 독자적이며 재판활동을 법에 철저히 의거하여 수행한다.”라 고 재판소의 독립을 명시했으나, 제142조에서 “중앙재판소가 자기 사업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 및 중앙인민위원회 앞에 책임진다.”
라는 규정을 넣었다. 또한 하급재판소(도(직할시) 재판소, 인민재판소)도 자기 사업 에 대하여 해당 인민회의 앞에 책임을 지도록 했다. 북한의 2012년 개정 헌법 제 166조 또한 “재판소는 재판에서 독자적이며 재판활동을 법에 의거하여 수행”한다 고 하고 있지만, 제168조에서 “최고재판소는 자기사업에 대해 최고인민회의와 그 휴회중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앞에 책임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