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공사대금채무에 대한 조합원의 책임
2. 정비조합의 결의에 의한 조합원의 책임
가. 조합원에 대한 직접청구와 법인격 부인론
정비조합에 대한 법인격의 부여 여부는 정책적 판단의 문제이고 정비 조합의 실질은 통상의 법인과는 다르다. 정비조합에서도 상법상 합명회 사처럼 그 실질에서 조합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견해에 따르면, 이 와 같은 직접책임의 가능성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122) 다만 회사 법에서 주주에 대한 직접청구의 가능성을 법인격 부인의 경우에 한하여 매우 제약적으로 인정하는 이상 법인격을 가지는 정비조합에서 역시 조 합원에 대하여 조합채무를 직접청구하는 것은 제한적으로만 인정되어야 한다. 회사법에서는 법인이라는 형식을 갖추었으나 법인이라고 볼 만한
121) 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6다46278 판결 122) 김종보, 건설법의 이해, 피데스, 2013, 442면.
실체가 없는 경우에 법인격 부인 또는 법인격 남용 문제로 본다. 이 법 리는 법인을 그 구성원으로부터 독립적인 주체로 취급하는 법적 형식을 개별적인 경우에 예외적으로 부인하거나 무시하고 법인과 그 구성원 등 을 실질상 동일시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 실무에서 법인격 부인 이나 남용을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123)
물론 정비조합에 법인격이 부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주식회사에 준하 여 조합원을 보호할 당위성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법에서 주식회 사의 지위는 독특한 것으로, 주식회사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자본과 부 채의 구분 등 그 특유의 법리를 발달시켜왔다. 주주의 책임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은 주식회사에서 주주의 경영 참여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과 동전의 양면의 관계에 있다. 즉 주주는 한정적 책임만 부담하는 대신 경 영은 경영 전문가에게 맡김으로써 회사 자체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상법에서는 조합의 실질을 가지는 합명회사의 경우에는 그 구성원들에게 무한책임을 인정하며, 이렇게 책임을 지우는 이상 제3 자에게 경영을 맡길 수 없으므로 구성원 개개인이 업무집행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원이 업무집행의 권한을 가지는 것은 무한책임을 지는 연장선상에서 인정된다는 것이다.124)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정비조합은 근본적으로 공동사업 목적을 가진 사 람들의 집합체인 조합에 그 이념적 근거가 있으며 조합의 논리는 주식회 사의 논리와 그 방향을 달리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비조합의 법적 성질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령과 판례는 정비조합의 업무집행에 참 여할 가능성을 제한해왔다. 그렇다면 조합원의 조합 의사결정 및 업무집
123) 김재형, 법인격 그 인정과 부정―법인격 부인 또는 남용에 관한 판례의 전개를 중심으로―, 『민법론 IV』, 박영사, 2011, 23면.
124) 송옥렬, 위의 책, 1243- 1248면.
행에 대한 참여 가능성은 제한하면서 책임만을 가중하는 것은 균형에 맞 지 않는다. 즉, 정비조합은 법인격이 부여된 단체이므로 합명회사에서의 사원처럼 조합원들이 조합의 업무집행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이 상 조합원들이 직접, 무한책임을 인정할 수는 없다. 물론 정비조합의 법 적 성격에 보다 타당한 규율을 위해서는 조합원에 대하여 업무집행에 참 여할 가능성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관련 제도의 개정이 있기 이전에는 조합원의 책임은 사업의 성공 정도에 따라 청산금, 부과 금의 부과처분에 의하여 추가적인 의무를 부담할 가능성이 있는 데 그쳐 야 한다. 결국 조합원으로서는 조합 총회의 결의가 있는 경우에는 청산 금 등에 의하여 추가적인 책임을 질 가능성도 있다 할 것이지만 그 외의 직접적인 책임을 인정할 수는 없다.
나. 정비조합의 청산금, 부과금 부과 방식
정비조합은 사업이 진행되면서 채무를 부담하면 그 조합원들이 비용을 분담한다는 내용의 결의를 하고, 결의가 있어야만 조합원은 조합에 대하 여 금전을 지급할 채무를 진다. 정비조합이 조합원에 대하여 도시정비법 제57조에 기한 청산금, 동법 제61조에 기한 부과금을 부과, 징수하여 비용을 조달할 여지가 있다. 이 때 청산금이란 “대지 또는 건축물을 분 양받은 자가 종전에 소유하고 있던 토지 또는 건축물의 가격(권리가액 평가액)과 분양받은 대지 또는 건축물의 가격(분양가액) 사이에 차이가 있을 때 그 차이에 상당하는 금액”을 말한다(동법 제57조). 실무에서 는 조합이 시행자인 경우 조합원들이 조합에 납부하는 청산금을 ‘분양 대금’, ‘분담금’, ‘분양차액금’ 등의 용어로 지칭한다. 한편 그 청 산금 지급의무가 불이행될 경우 징수권을 지방세 체납처분에 따라 징수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125)
이와 별도로 재건축조합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도시정비법이나 다른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업시행자가 부담하므로 (동법 제60조), 결국 조합원이 납부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동법 제 61조 제1항은 “사업시행자는 토지등소유자로부터 법 제60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비용과 정비사업의 시행과정에서 발생한 수입의 차액을 부 과금으로 부과ᆞ징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동법 제61조 제3항은 부과금의 부과, 징수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정관 등으로 정하 도록 하고 있으며, 제24조에서는 제61조의 규정에 의한 비용의 금액 및 징수방법에 대하여 총회 결의 사항으로 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부과처분은 무효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도시정비법의 규율체계에 비추어볼 때 조합원은 자신의 건 물, 토지를 조합에 이전한 것 외에는 별도의 총회 결의 및 부과금, 청산 금의 부과 절차가 없는 이상 아무런 추가적인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정비조합이 적극적으로 총회를 열어 조합원에 대하여 부과금 등을 부과 하지 않는다면 조합원에게 새로이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다. 채권자대위소송의 가능성
조합은 조합원들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결의를 하여 조합원으로부터 비용을 지급받은 뒤 이를 통하여 조합채무를 변제한다. 이에 따라 조합 채권자는 자신의 조합에 대한 채권을 피보전권리로 하여 무자력자인 조 합을 대위하여 조합의 조합원들에 대한 비용부담금반환채권을 행사할 여 지가 있다. 이에 대하여 인천 지방법원은 “주택재개발조합의 임원인 원
125) 장찬익.송현진, 위의 책, 779면.
고들이 재개발 시공사에 대하여 사업추진비 상당의 손해배상채무를 부담 하게 되자, 재개발조합원인 피고들을 상대로 조합이 피고들에 대하여 가 지는 비용부담금반환채권을 대위 청구한 사안에서, 조합의 자산과 부채 가 정산되어 조합원들의 분담금 액수가 확정되지 않았고, 나아가 조합에 서 위 분담금에 관한 결의가 없었으므로 조합의 피고들에 대한 비용부담 금반환채권이 발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 은” 바 있다.126) 채권자대위권이란 채무자가 행사하지 않은 권리를 채 권자가 대신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취지의 제도이므로,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채무자의 권리를 대위 행사할 수 있다고 이론구성하기는 어렵기 때 문에 위와 같은 판례의 태도에는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조합의 분담결의가 없다고 하여 청구의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는 경우 조합은 청산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분담결의를 계속하여 해태할 위험이 있다. 대법원은 용역업체가 지역주택조합에 대여한 금원 을 받기 위해서 각 조합원들에게 소송을 제기한 사안에서 예비적 청구였 던 확인의 소에 대하여, “확인의 대상은 장래 청산이 종결될 경우 피고 들이 배분받게 될 이 사건 조합의 채무로서 이는 장래 확인의 소에 해당 되는데, 아직 이 사건 조합의 해산결의나 청산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상 태에서 원심 판시와 같이 청산 종결 후의 잔여 재산과 잔존 채무가 모두 확정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나아가 향후 조합원 총회의 결의를 통하여 조합원들의 분담금에 관한 사항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어서 위와 같은 조합규약만으로 이 사건 조합의 원고에 대한 채무 전부가 청산 종결 후 반드시 피고들에게 현재 조합원의 수에 비례하여 배분될 것이라고 단정 하기도 어렵다고 할 것이므로, 원고가 피고들을 상대로 미리 청구할 필 요가 있는 경우 장래 이행의 소를 제기함은 별론, 피고들에 대하여 지금 장래 분담금 채무에 관한 확인판결을 받는다고 하여도 그것이 원고 주장
126) 인천지방법원 2016. 1. 4. 선고 2015구합52122 판결
의 현존하는 법적불안을 해소하는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이라고 할 수 없 어 이 사건 예비적 청구에 관한 소는 그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시하 였다.127)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원고가 피고들을 상대로 미리 청구할 필요가 있는 경우 장래 이행의 소를 제기함은 별론’이라는 단서를 두어
‘장래 이행의 소’를 제기할 경우에는 청구가 인용될 여지가 있을 것처 럼 판시하고 있다. 이때 대법원은 미리 청구할 필요가 구체적으로 어떠 한 것인지는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정비조합은 주식회사와는 달리 그 자체의 이익을 영속적으로 극대화하 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사업이 완료되면 해산의 절차를 밟을 뿐 이다. 또한 정비조합은 조합원들로부터 신탁받은 토지 등 부동산 이외에 정비조합만의 재산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업이 완료되기 이전에 공사비를 지급하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 이외에는 방 법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비조합이 법인의 형식을 가지는 이상, 조합채권자는 조합원에 대하여 직접 책임을 묻거나 부당이득반환 청구를 할 수 없다. 채권자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조 합의 조합원에 대한 채권을 대위행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법원의 입장에 따르면 조합의 분담금 결의 없이는 조합의 조합원에 대한 채무가 확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조합이 채무를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총회결의를 해 태하는 경우에도 조합채권자에 대한 구제 수단이 없다. 그런데 정비조합 의 실질적 성격에 따라 조합에 관한 민법의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본 다면 민법 제711조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민법상 조합의 경 우 제711조에서 당사자가 손익분배의 비율을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각 조합원의 출자가액에 비례하여 이를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
127) 대법원 2014. 11. 13.선고 2009다38155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