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음에도 비핵화가 궤도에 오 르지 않는 이유는 목표와 이행 방법, 상응조치에 있어 양국의 입장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비핵화의 최종 단계까지를 포함한 일 괄타결식 포괄적 합의(북한의 선비핵화, 한국전쟁 당사국과 평화협 정 체결, 대북경제원조 제공, 체제보장을 한 번에 하는 패키지 합의) 를75) 한 후 단계적으로 이행하기를 원하는 반면, 북한은 단계적, 동 시적 비핵화 합의 및 단계적 이행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노이회담에서 밝혀진 것처럼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비핵화 첫 단 계의 최대치는 영변핵시설 폐기였으나 미국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하노이 회담은 양국이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결국 노딜(no deal)로 끝났다.
그리고 하노이 회담 노딜 이후 제14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 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정연설을 통해 협상 시한을 ‘연말까지’로 제시하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라고 주문하였다.76) 수개월 동안 북‧미 대화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그동안 몇 차례 양 정상 간의 서신교환이 이뤄짐으로써 정상 간의 신뢰와 대화의 생명 력은 지속되었다. 2019년 9월 중순 리비아모델(선비핵화-후보상) 을 주장했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경질되고 북한 당국 역시 대 화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며 긍정적인 신호를 주면서 대화 재개의 환경이 조성되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9월 18일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리 비아모델 주장이 북‧미 간 대화에 큰 차질을 초래했다며 “새로운 방 법(a new method)”이 좋겠다고 언급하자, 9월 20일 북한의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담화를 통해 “이제는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조
75) “그레이엄 美상원의원 “북한 비핵화 ‘일괄타결’해야”,” 연합뉴스, 2019.9.27., <htt ps://www.yna.co.kr/view/AKR20190927065400504?section=nk/news/all> (검색 일: 2019.9.28).
76)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시였다,” 조선중앙통신, 2019.4.13.
미관계에 접근해야 한다는 트럼프대통령의 현명한 정치적 결단을 환영한다.”며 희망적 메시지를 보냈다.77)
북한 당국이 미국에게 요구한 “새로운 계산법”과 미국 트럼프 대 통령이 언급한 “새로운 방법”이 동일한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 나 대화가 재개되고 실제 합의에 이른다면 아마도 미국이 기존 주장 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가 합의서에 담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전문가 내에서도 ‘단계적 비핵화’에 미 국이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애초에 미국 트럼 프 대통령이 처해있는 정치적 시간표와 비핵화의 시간표는 너무나 큰 간격이 있었기에 양국 정상은 중간 단계의 목표에서 합의할 가능 성이 현실적일 수 있다. 그 중간단계의 목표는 비록 범위의 논쟁(영 변핵시설이냐 아니면 그 이상이냐)은 남아있지만 형태적으로는‘핵 동결’일 가능성이 높다.
2019년 9월 16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이 발표한 담화에서,
“우리의 립장은 명백하며 불변하다. 우리의 제도안전을 불안하게 하 고 발전을 방해하는 위협과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비핵화 론의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78) 언급한 것은, 향후 북‧미 대화가 재개되었을 때 북한이 요구할 상응대가를 가늠하는데 중요하게 참고할 내용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제도안전”
은 군사적 측면이고 “발전”은 경제적 측면이다. 따라서 “불안”해소 및 “위협과 장애물”제거를 위해 종전선언, 한‧미 연합훈련의 무기한 중단, 북‧미 수교를 위한 상호 대표부 설치, 경제제재의 해제(최소한 2016년과 2017년에 채택된 5건-2270호, 2321호, 2371호, 2375호, 2397호-의 제재 해제) 등을 요구할 수 있다.
77)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 담화,” 조선중앙통신, 2019.9.20.
7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담화,” 조선중앙통신, 2019.9.16.
설령, 첫 번째 단계의 비핵화 합의가 성사된다하더라도 그 이행 시기가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순 없다. 어쩌면 첫 번째 단계의 합의 를 이행하는데 만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첫 번째 단계의 비핵화 합의가 이행되는 시기 동안 북한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를 전망해보는 것이 바로 이 글에서 주목하는 부분이 다. 여기서는 두 번째 단계의 비핵화 합의에 대해서는 괄호에 넣어 두고자 한다.
비록 첫 번째 단계의 비핵화 합의를 하더라도 북한의 ‘(암묵적)
핵보유국’ 지위는 상실되지 않는다. 핵보유국 지위 유지는 김정은 국
무위원장의 유일영도체제의 지속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내적으로 핵동결로 상실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보완 또는 대체라는 과제가 남게 된다. 그 과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핵동결의 대가’로 얻게 될 상응대가를 최대한 활용하는 데 있을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재래식 무장력을 확충하는 것으로 제도안전의 불안을 해소하려할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경제발전을 통해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지지로 바꾸 려 할 것이다. 경제제재가 해제되면 경제발전의 가능성은 훨씬 높아 진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협력은 이미 약속되어 있으며, 남한 역시 교류협력을 재개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체제 부담을 최소화하 면서 김정은 정권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특구 및 경제개발구 중심의 제한적인 개방정책을 추구하는 것이다.
가. 대외환경 전망
미‧중 무역 갈등을 비롯하여 대결적인 미‧중 관계는 장기화될 것 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고, 중국의 내수경제도 예상보다 활발하지 못하다. 북‧미 비핵화 합의가 성사되면 중국은 국경 주변지역의 안정과 동북 지역의 경제 활로를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미 비핵화 합의를 지지할 것이다. 그런데 가시적인 비핵 화가 완료되기 이전에 미국의 대북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가 능성은 낮다. 38North 역시 대북제재가 해제되더라도 당장 큰 규모 의 미국 투자가 북한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은 과장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79) 왜냐하면 비즈니스 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빠르고 쉽게 구축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중국의 이해가 큰 이익을 선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북 경제제재가 해제되면 북한의 최 대 교역국인 중국이 가장 큰 수혜국이 될 것이다.
한편, 북한 경제에서 중국의 지배력은 대북제재 해제 이후 남북 간 경제협력에서 나아가 경제통합을 이루려는 남한 정부의 목표를 실현시키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또한 남북 간 교류협력 이 재개되더라도 주도권이 더 이상 남한에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 정도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외화 획득이 시급한 북한 당국은 그동 안 관광업 발전을 위해 인프라 구축에 주력해 왔으며, 만일 남북교 류협력이 재개된다면 관광개발구에 대한 남한 기업의 투자에 관심 을 가질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부분적 비핵화라는 국면이 아직 북한 경제발전에서 남한과의 경제협력을 필요로 한다. 또한 북 한 내에서 중국의 대북 경제 지배력이 지나치게 커지는데서 오는 정 치적 예속의 불안을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아직 남한 경제협력의 효 용성은 남아있다.
다른 한편, 만일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합의의 상응조치로 종전선 언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무기한 중단을 약속한다면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남북한 군사 분야의 대화가 장기간 이뤄질
79) Benjamin Katzeff Silberstein, “The North Korean Economy, August 2019: Why China Will Continue to Dominate,” 38North, September 10, 2019, <https://www.
38north.org/2019/09/bkatzeffsilberstein091019> (Accessed September 20, 2019).
것이다. 또한 한‧미 동맹 역시 상당한 관계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전망은 이 연구의 주요 연구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생략한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북한에 대한 주변국 및 국제사회의 진출 이 본격화되면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지위는 상당히 위축될 것이 다. 따라서 일본 역시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재개할 것이다. 우선 일 본은 2009년 6월 18일 북한에 대한 전면적 수출금지 조치를 해제할 것이다. 또한 일본은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면서 동북아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시작할 것이다.
북‧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교섭의 출발점으로 2002년 9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가 합의한 ‘북일평양선언’이 준 거가 될 것이다. 쟁점은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과 식민지 배상 처리 가 될 것이다. 평양선언에서는 국교 정상화 실현을 위해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발생한 일에 대해 “두 나라 및 두 나라 인민의 모든 재산 및 청구권을 호상 포기하는 기본원칙에 따라” 국교정상회담에서 이 를 협의해 나가겠다고 합의하였다.80) 하지만 2019년 1월 몽골을 방 문한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북‧일 협상이 이루어지면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일본 정부에 전한 바 있다.81) 더불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향후 북 ‧ 일 국교 정상화 교섭에도 영향 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80)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조일평양선언”(2002.9.17.), <http://www.tongil-i.net/
bbs/board.php?bo_table=data&wr_id=266&sca=&sfl+wr_subject&stx=%ED%8 F%89%EC%96%91&page=2> (검색일: 2019.9.20.).
81) “북 외무상, 북일협상하면 일에 강제동원 문제 거론할 것,” 오마이뉴스, 2019.1.1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0 3490> (검색일: 2019.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