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문인들은 원림경물에 문인의 청아하고 고상한 아취를 기탁하였다. 사마 광은 당시에 자주 보이던 자연산수식의 배치를 취하지 않고 ‘玉玦’의 모양처럼 水池를 만들었는데, 옥결은 고대의 일종의 장식품으로 決絶의 뜻을 나타낸다. 따 라서 사마광은 水池의 모양을 통해 대장부의 기백을 담고자 하였으며, 세상 사 람들이 독락원을 좋아했던 이유 역시 그 아름다운 水景보다는 거기에 담겨있는 조원가의 훌륭한 품성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242) 한편 문인들은 경물배치에 曲을 강구하여 도가적 심미관을 발현하기도 하고, 원림경물을 政事 판단의 기준 으로 삼기도 하였다.
아아! 난정의 무성한 수풀과 길게 자란 대나무는 右軍의 아름다움을 더하 기에 충분하지만, 평천의 초목은 贊皇의 허물을 대신하기에는 부족하다. 午橋 의 燠館과 凉臺는 晉公의 늙음을 편안히 하기에 충분하지만, 금곡의 池亭은
241)歐陽修, <真州東園記>: “歲秋八月, 子春以其職事走京師, 圖其所謂東園者來以示予曰:
‘園之廣百畝, 而流水橫其前, 清池浸其右, 高臺起其北. 臺, 吾望以拂雲之亭;池, 吾俯
以澄虛之閣;水, 吾泛以畫舫之舟. 敞其中以爲清宴之堂, 辟其後以爲射賓之圃. 芙蕖芰 荷之的歷, 幽蘭白芷之芬芳, 與夫佳花美木, 列植而交陰, 此前日之蒼煙白露而荊棘也;
高甍巨桷, 水光日景, 動搖而上下, 其寬閑深靜, 可以答遠響而生清風, 此前日之頹垣斷 塹而荒墟也; 嘉時令節, 州人士女, 嘯歌而管弦, 此前日之晦冥風雨、鼪鼯鳥獸之嗥音也.
吾於是信有力焉. 凡圖之所載, 蓋其一二之略也. 若乃升于高以望江山之遠近, 嬉于水而 逐魚鳥之浮沉, 其物象意趣、登臨之樂, 覽者各自得焉. 凡工之所不能畫者, 吾亦不能言 也, 其爲我書其大概焉.’ ” (《唐宋八大家文鈔校注集評》 권48, 2267쪽.)
242)孫培博, <中國文人園林起源與發展硏究>, 北京林業大學, 碩士, 2013, 35-36 참조.
季倫의 허물을 덮기에는 부족하다. 이것이 바로 園囿臺沼의 즐거움이니, 반드 시 그 즐거운 까닭을 안 연후에야 그 즐거움을 즐길 수 있다.243)
謝逸, <小隱園記>
북송 문인들은 다양한 원림경물에 그들의 아취를 발산하였지만 이하에서는 초 목과 화훼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북송 문인들의 식재와 원예 활동은 관 상적, 실용적 의미뿐 아니라 깊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일이었다. 소식이 <於 潛僧綠筠軒>에서 “육고기 없이도 식사를 할 수 있지만, 대나무 없이는 살 수가
없다.(可使食無肉, 不可居無竹.)”고 할 만큼 역대로 대나무는 문인들에게 매우 중
요한 상징이었다. 북송 문인원림에도 대나무가 빠지지 않고 식재되어 있는데, 사 시사철 푸르고 쭉쭉 뻗어 잘 굽어지지 않는 그 특성이 문인들에게 절개의 상징 으로 숭상되었기 때문이다. 白居易의 <養竹記>에서 대나무가 갖는 상징적 의미 를 보다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대나무는 현명한 사람과 비슷한데, 왜 그런가? 대나무 뿌리는 단단하여 단 단함으로써 덕을 세우고 있다. 군자는 그 뿌리를 보면 곧 뽑히지 않는 훌륭한 덕을 세울 것을 생각하게 된다. 대나무의 성질은 곧아서, 곧음으로써 자신의 몸을 서게 하고 있다. 군자는 그 성질을 보면 곧 어느 편에도 의지하지 않는 마음이 서게 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대나무 속은 비어서, 비어 있음으로써 도를 체득하고 있다. 군자는 그 빈 속을 보면 곧 자기 마음을 비우고 남을 받 아들이는 방법을 응용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대나무 마디는 곧아서, 곧음으 로써 뜻을 세우고 있다. 군자는 그 마디를 보면 곧 자기 이름과 행실을 갈고 닦아서 순탄한 상황에서나 험난한 상황에서나 한결같을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군자들이 이것을 많이 심어 정원수로 삼고 있는 것이다.244) 白居易, <養竹記>
243)謝逸, <小隱園記>: “嗚呼! 蘭亭之茂林脩竹, 足以益右軍之美, 而平泉之草木, 不足以貸
贊皇之辜; 午橋之燠館凉臺, 足以佚晉公之老, 而金谷之池亭, 不足以蓋季倫之愆. 是則 園囿臺沼之樂, 必知其所以樂者, 然後樂其樂也.” (《全宋文》 권2876, 243쪽.)
244)白居易, <養竹記>: “竹似賢, 何哉? 竹本固, 固以樹徳. 君子見其本, 則思善建不抜者.
竹性直, 直以立身. 君子見其性, 則思中立不倚者. 竹心空, 空以體道. 君子見其心, 則思 應用虚受者. 竹節貞, 貞以立志. 君子見其節, 則思砥礪名行, 夷險一致者. 夫如是故, 君 子人多樹之, 為庭實焉.” (황견 편찬, 김학주 역저, 《고문진보 후집》, 명문당, 2005, 597쪽 참조.)
문인원림에는 대나무 외에도 소나무, 매화나무, 복숭아나무, 오얏나무와 연꽃, 모란 등이 심겨져 있는데, 《洛陽名園記⋅李氏仁豐園》을 일례로 든다.
이위공에게는 <평천화목기>가 있는데, 백여종을 기록했을 뿐이다. 지금 낙 양에는 훌륭한 장인과 솜씨 있는 장인이 붉은 화훼를 깎고 흰 화훼를 갈라 그것을 나무에 접붙여 자연과 아름다움을 다투고 있다. 그리하여 해마다 더 기이해지고 확대되어 복숭아꽃과 오얏꽃, 매화꽃과 살구꽃, 연꽃과 국화가 각 각 수십종이다. 모란과 작약은 백여종에 이른다. 또 먼 지방의 기이한 화훼들 은, 예를 들어 紫蘭, 茉莉, 瓊花, 山茶 무리는 심기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데 유독 낙양에 심으면 번번이 그 현지소출과 다르지 않다. 그런 고로 낙양의 園 囿 중에는 꽃과 나무가 천 가지 종류에 이르는 곳도 있다.245)
李格非, 《洛陽名園記⋅李氏仁豐園》
이처럼 북송 문인들이 원림 속 초목과 화훼에 신경을 쓴 것은 花木에 대개 유 가적 比德사상이 기탁되어 있기 때문이다. 比德이란 춘추전국 시기에 출현한 자 연미에 대한 관점으로 윤리 도덕이나 정신[德]을 상징이나 비유[比]하는 것을 말 한다. 자연경물과 인격 사이의 내재 관계를 찾아서 단순히 자연경물을 감상하는 기초 위에 이상인격에 대한 찬미와 추구를 더하는 것이다. 대나무 뿐 아니라 매 화 역시 추운 겨울에도 꽃을 피운다는 데서 절개와 기골을 상징하며 주렁주렁 열매가 매달린 복숭아와 오얏 역시 겸허와 지조의 상징으로 문인들에게 긍정적 인 景象으로 간주되었다.246)
유반은 <兗州美章園記>에서는 美章園의 긴 수풀에 담긴 세월의 무게를 노성한
245)李格非, 《洛陽名園記⋅李氏仁豐園》: “李衛公有平泉花木, 記百餘種耳. 今洛陽良工巧 匠, 批紅判白, 接以它木, 與造化爭妙. 故歲歲益竒且廣, 桃李、梅杏、蓮菊, 各數十種.
牡丹、芍藥至百餘種. 而又逺方竒卉, 如紫蘭、茉莉、瓊花、山茶之儔, 號爲難植, 獨植 之洛陽, 輙與其土產無異. 故洛陽園囿花木有至千種者.” (李廌 記, 《洛陽名園記》, 北 京: 中華書局, 1985, 10쪽.)
246)각 경물에 대한 문인아취에 대한 고찰은 이하의 작품을 참고해볼 만하다. 대나무에 대해서는 白居易의 <養竹記>와 蘇轍의 <墨竹賦>, 돌에 관해서는 蘇軾의 <雙石詩>, 연꽃에 대해서는 周敦頤의 <愛蓮說>, 모란에 대해서는 歐陽修의 <洛陽牡丹記>가 있 다.
사람에게 축적된 군자의 면모에 비유하였다.
보배로운 문장과 아름다운 풀은 안색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하루면 갖춰질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긴 수풀과 아름다운 그늘은 높이 가 열 길이고 크기는 아름을 이어야 잴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세월이 누적되 지 않고서는 이 정도에 이를 수가 없으니, 노성한 사람에게는 덕과 군자의 기 풍이 축적되어있다고 하는 것입니다.247) 劉攽, <兗州美章園記>
소식은 <靈壁張氏園亭記>에서 장씨가 조성한 원림의 초목과 화훼에는 江湖의 생각, 山林의 기운, 京洛의 자태, 吳蜀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고 언급하였다.
부들, 갈대, 연꽃, 가시연에는 강호의 생각이 깃들어있고, 의나무, 오동나무, 전나무, 측백나무에는 산림의 기운이 있으며, 기이한 꽃과 아름다운 풀에는 낙양의 자태가 있고, 화당과 하옥에는 오촉의 아름다움이 있다.248)
蘇軾, <靈壁張氏園亭記>
주장문 역시 <樂圃記>에서 문인의 고아한 인격을 눈과 서리에도 그 기상이 망 가지지 않는 화훼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가지와 잎이 서로 엉켜 바람에 나부끼는데 높은 것은 간혹 구름에 닿고 큰 것은 간혹 한 아름이다. …… 비록 눈과 서리에 압도되고 폭풍과 천둥에 흔들 려도, 삐죽빼쭉 어수선한 모습이거나 꺾여버릴지언정 기상은 망가지지 않는 다.249) 朱長文, <樂圃記>
247)劉攽, <兗州美章園記>: “夫珍章嘉卉, 所以逞顔色、娛心意者, 可一日而具也. 今此長林
美陰, 高十尋, 大連抱, 非千百年之積不能至此, 以謂有老成畜徳君子之風.” (《全宋文》 권1504, 190쪽.)
248)蘇軾, <靈壁張氏園亭記>: “……其外修竹森然以高, 喬木蓊然以深. 其中因汴之餘浸, 以
爲陂池;取山之怪石, 以爲岩阜. 蒲葦蓮芡, 有江湖之思;椅桐檜柏,有山林之氣;奇花 美草, 有京洛之態;華堂廈屋, 有吳蜀之巧.” (《唐宋八大家文鈔校注集評》 권120, 5599쪽.)
249)朱長文, <樂圃記>: “柯葉相蟠, 與風飄颺, 高或參雲, 大或合抱. ……雖雪霜之所摧壓, 颷 霆之所擊撼, 槎牙摧折而氣象不衰.” (《全宋文》 권2025, 161쪽.)
이처럼 북송 문인들은 추상적인 사상과 감정, 아취를 실제적 공간과 구체적 경물을 통해 표현하고 구현함으로써, 원림을 ‘상징적’ 공간으로 적극 향유하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