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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작업과 관객 기대지향성 간의 불일치와 한계

최인호의 소설과 영화가 1970-80년대를 아우르며 인기를 끌면서 비슷하게 계열화되는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다. 소설 『별들의 고향』에서 파생된 영화

<별들의 고향>과 그 방계 작품들이 멜로드라마의 호흡으로 여성 인물의 고난 서사를 다루었다면, <바보들의 행진>류의 대학생 남녀를 다룬 청년 주인공을 다룬 영화들의 계열이 있고, 『고래사냥』에서 파생된 <고래사냥> 시리즈의 로 드 무비 작품들이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당대 최고 흥행작으로 인기를 끌 게 되면 영화 산업의 관점에서 안정적인 흥행성을 담보한 것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비슷한 스타일로 다시 만들어 대중을 유인하려 했던 것이다. 이 영화 들은 흥행작의 공식을 차용하여 다시 관객의 감정에 접속되기 용이한 특성이

293) 문재철,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영화」, 문재철 외 지음, 『대중영화와 현대사 회』, 소도, 2005, 23면.

294) 위의 책, 21면.

있었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더 익숙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낮은 강도의 지적 자극을 요하는 익숙한 장르영화나 에로티시즘 이 강조된 영화들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관객의 감정 지각 과 대중성 사이의 관계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님을 이미 최인호는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 소설은 팔려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시인의 시집도 베스트셀러가 되어야만 한다고 나는 믿는다. 소설은 많이 읽혀야만 한다. 그래야만 된 다. 나는 알고 있다. 대중의 인기가 언젠가는 한번쯤 내게 식상해서 자기 를 즐겁게 해준 만큼 나를 비난할 것쯤은 알고 있다. 그것을 모르는 바보 가 어디 있는가. 하지만 난 가수나 영화배우는 아니다. 그들에겐 은퇴가 있는 법이다. 내겐 은퇴가 없다.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난 점차로 이 <별 들의 고향>이 던진 파문이 영화계에, 소설계에 파문되어질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한 마디 더 건방진 소리를 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젊은 작 가에게도 신문소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으며 젊은 작가의 책들도 아니 꼬운 출판사들에게 눈치코치 보지 않고 만들어질 수 있으며 젊은 작가의 작품도 흥행이 되는 영화가 되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 각한다. 비평가의 편견 있는 평가 없이도 직접 대중과 정면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와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295) (이하, 밑줄 인용자)

나) 절대로 사회 변혁은 몇몇 개인의 힘으로만은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읽을 거리를 찾게 되었으며 공통된 흥미거리를 찾으려 했 다. 권위의식에 염증이 나 있던 시민들로서 보다는 친구로서 존재해 주기 를 기원했다. 그래서 작가들은 대중 쪽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것을 네가 말하는 ‘대중에의 아부’ 내지는 ‘흥미거리의 편승’인 더러운 타락이라 고 하는 것은 결론이 빠른 판단이다. 그것은 좋게 말해서 네가 늘 부르짖 었던 ‘서민과의 융화’로서도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작가들 이 모두 아부하고 눈치보고 편승한다면 어쩌겠는가 하는 너의 질문은 당 연한데, 안심해도 좋은 것은 만약 작가가 대중의 눈치에 아부했다면 얼마 못가 그는 도태되어 버린다. 일반 서민은 잔인해서 한순간의 홈런 타자를 295) 최인호,「나의 문학노우트-1975년간 <최인호 전작품집>수록」,『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예문관, 1979, 304면.

대중적인 쟁점과 정서를 그 소재로 삼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중의 욕망과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며, 또 장르가 반복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특정 장르가 형성되면 ‘산업-텍스트-관객 대중’의 삼각점을 순환하면서 특정한 시 대의 집단 의식(혹은 무의식), 사회적 생활 양식 등을 형성한다고 설명한 다.293) 그런 의미에서 최인호의 로드 무비들에서 드러나는 고향 찾기의 여정 과 자기 발견이라는 인식이 관객들에게 적극적인 호응을 얻었다는 것은 역설 적으로 관객들이 원하는 욕망과 새로움의 이야기를 최인호가 제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통속적인 영화라도 결코 완전히 진부하지는 않은 것은 통속성이 늘 새로움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므로, 그 쾌락은 변화 속에서 익숙한 것을 확인할 때 생기는 것이라는 점에서 대중영화 들은 통속성을 이용하되 여기에 새로움을 적절히 가미해야 한다.294) 그런 의 미에서 최인호가 이 시기 구가했던 대중성의 지속 여부는 그 ‘새로움’의 향배 에 있었다. 이를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다.

2. 감정 작업과 관객 기대지향성 간의 불일치와 한계

최인호의 소설과 영화가 1970-80년대를 아우르며 인기를 끌면서 비슷하게 계열화되는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다. 소설 『별들의 고향』에서 파생된 영화

<별들의 고향>과 그 방계 작품들이 멜로드라마의 호흡으로 여성 인물의 고난 서사를 다루었다면, <바보들의 행진>류의 대학생 남녀를 다룬 청년 주인공을 다룬 영화들의 계열이 있고, 『고래사냥』에서 파생된 <고래사냥> 시리즈의 로 드 무비 작품들이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당대 최고 흥행작으로 인기를 끌 게 되면 영화 산업의 관점에서 안정적인 흥행성을 담보한 것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비슷한 스타일로 다시 만들어 대중을 유인하려 했던 것이다. 이 영화 들은 흥행작의 공식을 차용하여 다시 관객의 감정에 접속되기 용이한 특성이

293) 문재철,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영화」, 문재철 외 지음, 『대중영화와 현대사 회』, 소도, 2005, 23면.

294) 위의 책, 21면.

있었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더 익숙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낮은 강도의 지적 자극을 요하는 익숙한 장르영화나 에로티시즘 이 강조된 영화들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관객의 감정 지각 과 대중성 사이의 관계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님을 이미 최인호는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 소설은 팔려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시인의 시집도 베스트셀러가 되어야만 한다고 나는 믿는다. 소설은 많이 읽혀야만 한다. 그래야만 된 다. 나는 알고 있다. 대중의 인기가 언젠가는 한번쯤 내게 식상해서 자기 를 즐겁게 해준 만큼 나를 비난할 것쯤은 알고 있다. 그것을 모르는 바보 가 어디 있는가. 하지만 난 가수나 영화배우는 아니다. 그들에겐 은퇴가 있는 법이다. 내겐 은퇴가 없다.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난 점차로 이 <별 들의 고향>이 던진 파문이 영화계에, 소설계에 파문되어질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한 마디 더 건방진 소리를 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젊은 작 가에게도 신문소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으며 젊은 작가의 책들도 아니 꼬운 출판사들에게 눈치코치 보지 않고 만들어질 수 있으며 젊은 작가의 작품도 흥행이 되는 영화가 되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 각한다. 비평가의 편견 있는 평가 없이도 직접 대중과 정면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와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295) (이하, 밑줄 인용자)

나) 절대로 사회 변혁은 몇몇 개인의 힘으로만은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읽을 거리를 찾게 되었으며 공통된 흥미거리를 찾으려 했 다. 권위의식에 염증이 나 있던 시민들로서 보다는 친구로서 존재해 주기 를 기원했다. 그래서 작가들은 대중 쪽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것을 네가 말하는 ‘대중에의 아부’ 내지는 ‘흥미거리의 편승’인 더러운 타락이라 고 하는 것은 결론이 빠른 판단이다. 그것은 좋게 말해서 네가 늘 부르짖 었던 ‘서민과의 융화’로서도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작가들 이 모두 아부하고 눈치보고 편승한다면 어쩌겠는가 하는 너의 질문은 당 연한데, 안심해도 좋은 것은 만약 작가가 대중의 눈치에 아부했다면 얼마 못가 그는 도태되어 버린다. 일반 서민은 잔인해서 한순간의 홈런 타자를 295) 최인호,「나의 문학노우트-1975년간 <최인호 전작품집>수록」,『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예문관, 1979, 304면.

영원한 홈런 타자로 기억해 주지는 않는다. 만약 작가가 죽을 때까지 대중 의 인기를 인식하려 든다면 그는 곧 히트곡 하나 내고 사라지는 가수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대중은 곧 망각해 버린다.296)

가)에서 보듯 최인호는 문학이 팔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면서도 대중성 과 관련해 자신 역시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작가들도 흥행력을 가져야 하며, 비평가를 거치지 않 고도 대중과 직접 대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에서는 대중성이라는 것이 결국 ‘서민과의 융화’의 관점으로 봐야할 것이며 무조건 대중성에만 복무한 작품만을 만든다면 도리어 도태되어 버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는 최인호에 게 대중성이라는 점이 단순히 인기에 영합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독자들에 대해 의식하는 행위로써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고민 없 이 반복되는 작품들은 오히려 대중 편에서 먼저 알아채게 된다는 점을 강조함 으로써 대중 독자들을 매우 판별력 있는 독자들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인호의 인식처럼 관객의 감정적인 지각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와 그러한 감정의 관성에 대해 실제의 영화가 상응하거나 상응하지 않은 경우 관객의 기 대와 부응 사이에서 균열이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영화 관람에 있어 관객의 수용의 정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렇듯 감정적 관성과 기대 지향성의 균열은 세 가지 차원에서 관객들의 호응의 실패를 불러온다.

첫째, 감정의 밀도 차이와 목표 지향성의 정도가 영화마다 다를 수 있는데 이것이 관객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경우이다. 스미스는 ‘무드 필름(mood film)’297)을 분석하면서 목표 지향성의 정도와 감정의 밀도 사이에서 영화가 덜 조밀해진다면 관객들에게 어렵게 다가갈 수 있음을 설명한다. 즉, 작가가 의식적인 차원에서 헐리우드의 전형적인 장르스크립트의 공식들과 맞서며 서 사적 공백의 길이를 늘린다든지, 장르적인 관행 비틀기를 시도한다면 관객의

296) 위의 책, 307면.

297) <Local Hero>처럼 목표 지향의 정도가 다양하고, 정보를 적게 제공하는 감성 영화는 명확한 기대치가 적은 영화이기 때문에 이는 평론가들에 의해 ‘약간’, ‘미 묘한’ 영화인 ‘무드 필름’으로 불렸다. 이러한 ‘무드 필름’은 헐리우드의 장르 스크 립트와 맞서며 익숙하고 쉽게 내용을 전달하는 대신 긴 멈춤과 관행 비틀기로 실 험적 시도를 하는 영화를 의미한다. -Greg M. Smith, op.cit., p.54.

지각적 차원에서는 정보의 밀도가 적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영화 텍스트는 감정에 대해 얼마나 조밀하게 정보를 제공하는지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촘촘한 감정 정보를 담고 있는 영화는 감정을 매우 빈번 하고 구체적으로 이끌어내려고 한다. 이 텍스트에는 많은 중복 단서가 포 함되어 있으며 자주 사용하고 전면에 표시된다. <Raiders of the Lost Ark>는 매우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감성적인 텍스트로, 어떻게 대응해 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단서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시끄러운 음악 소리, 로우 앵글 돌리 샷, 위협적인 얼굴 특징을 사용하여 나치 캐릭터인 중요인 물들의 소개를 강력하게 표시하여 증오할 캐릭터로 명확하게 표시한다. 빌 포시스(Bill Forsyth)의 <Local Hero>와 같은 영화는 덜 촘촘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감성 텍스트이며, 감정 신호가 거의 없다. 짐 자무쉬(Jim Jarmusch)의 <낙원보다 낯선>은 정보를 조밀하게 제공하지 않는 감정 텍 스트로, 영화적 감정 신호의 범위 중에서 몇 가지 형식적 가능성으로만 제 한된다.298)

최인호가 직접 연출한 작품 <걷지말고 뛰어라>(1976)는 우연히 만난 두 남 자가 도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실패를 거듭하다 다시 헤어진다는 스토리 이다. 두 남자의 좌충우돌이 작품의 전반부에서는 전반적으로 웃음을 유발하 는 장면이 많으며 후반부에서 인물들의 갈등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언뜻 <고 래사냥>의 병태와 민우와 비슷한 구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길영과 상민이 크게 싸우게 되면서 전/후반부가 갈리는데 그 갈등이 다소 느 닷없이 전개된다. 또한 앞서 살펴보았듯 각색 과정에서 최인호의 작가주의적 의식이 많이 투영된 작품이기 때문에 미장센이나 카메라의 촬영 기법, 화면의 색감 조절, 화면의 속도를 조절하는 편집상의 기법 등 영화 연출의 여러 부분 에서 영화 매체에 걸맞은 새로운 표현방법을 고심한 흔적들이 드러난다. 특히 인물들의 중압감이나 불안감을 표현하기 위해 환각적인 장면을 넣거나 사일런 트 등으로 음향을 조절하는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주의적인

298) Ibid, pp.5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