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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유의 프랜차이즈화와 표현주의적 스타일 실험

‘각색’이라는 용어는 범위 규정이 확고하지 않다는 점에서 상당히 ‘불안정’

하다.173) 좁게는 내용상의 상동성을 취하는 것부터 넓게는 각색자의 적극적인 전유까지 상당히 폭넓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다만, 정전적 문학 작품들에 대 한 영화, 텔레비전, 또는 연극 각색들은 선구적 정전에 대한 하나의 해석 또 는 다시-읽기(re-reading)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원작’(original) 또는 ‘원 천’(source)이라는 개념에 대한 재공식화가 네트워크화된 분배와 집합적 해석 의 논의로 시작된다.174)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각색에 대한 논의는 원천 텍 스트에 대한 복기 및 해석이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상호텍스트성 (intertextuality)의 문제를 제기한다. 원천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은 영향-수 용의 관계망 속에서 각색을 봐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원작 소설을 필연적으 로 상위 위계의 구도에 놓이게 하는 것이다.

각색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충실도(fidelity)’의 문제 로, 이는 초기부터 각색 연구를 억제하고 불분명하게 했으며, 이 문제에 대한 부정적 설명을 가속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175). 원전에 얼마만큼 가깝게 각색 되었는지를 확인하려는 태도는 각색 연구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론이지만 원전 에 대해 지나친 무게감을 둠으로써 논의의 방향성을 협소화한다. 원천으로서 의 우월성과 그 텍스트에 대한 복제의 열망이 양자 간의 차이점과 열등감을 더욱 강조시킨 것이다. 또한 각색 연구가 평가 기준으로서의 ‘충실도’에 집착

173) 줄리 샌더스, 『각색과 전유』, 정문영·박희본 옮김, 동인, 2018, 18면.

174) 위의 책, 16-17면.

175) Brian Mcfarlane, Novel to Film: An Introduction to the Theory of Adaptation, Oxford; clarendon press, 1996, p.157.

기고 떠나 버린다. 영빈은 미애와 다시 재회하지만 다음날 미애가 죽은 상태 로 병원에 실려 온다. 이 영화는 알콜과 약물 과다 복용으로 여주인공이 죽는 설정에서 원작 소설 속 경아의 마지막을 연상하게 한다. 또 악한에게 괴롭힘 을 당하며 그 남자 이름이 동혁이라는 것과 마지막에 병든 여자를 떠넘기고 가는 설정 역시 <별들의 고향>에서 경아의 세 번째 남자인 동혁을 연상케 한 다.

이렇듯 최인호에게 있어 영화 작업은 원작 소설의 일대일 각색뿐만 아니라 소설에서 나온 모티프나 보조 서사들을 변주하여 영화 여기저기에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장편 『별들의 고향』이 최인호의 영화 작 업에 있어 중요한 원천 텍스트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컨텍스트적 맥락에서 더 욱 중요한 작품임이 확인된다.

Ⅲ. 각색에 드러난 작가주의적 의식과 자기반영 성의 미학

1. 자기 전유의 프랜차이즈화와 표현주의적 스타일 실험

‘각색’이라는 용어는 범위 규정이 확고하지 않다는 점에서 상당히 ‘불안정’

하다.173) 좁게는 내용상의 상동성을 취하는 것부터 넓게는 각색자의 적극적인 전유까지 상당히 폭넓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다만, 정전적 문학 작품들에 대 한 영화, 텔레비전, 또는 연극 각색들은 선구적 정전에 대한 하나의 해석 또 는 다시-읽기(re-reading)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원작’(original) 또는 ‘원 천’(source)이라는 개념에 대한 재공식화가 네트워크화된 분배와 집합적 해석 의 논의로 시작된다.174)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각색에 대한 논의는 원천 텍 스트에 대한 복기 및 해석이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상호텍스트성 (intertextuality)의 문제를 제기한다. 원천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은 영향-수 용의 관계망 속에서 각색을 봐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원작 소설을 필연적으 로 상위 위계의 구도에 놓이게 하는 것이다.

각색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충실도(fidelity)’의 문제 로, 이는 초기부터 각색 연구를 억제하고 불분명하게 했으며, 이 문제에 대한 부정적 설명을 가속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175). 원전에 얼마만큼 가깝게 각색 되었는지를 확인하려는 태도는 각색 연구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론이지만 원전 에 대해 지나친 무게감을 둠으로써 논의의 방향성을 협소화한다. 원천으로서 의 우월성과 그 텍스트에 대한 복제의 열망이 양자 간의 차이점과 열등감을 더욱 강조시킨 것이다. 또한 각색 연구가 평가 기준으로서의 ‘충실도’에 집착

173) 줄리 샌더스, 『각색과 전유』, 정문영·박희본 옮김, 동인, 2018, 18면.

174) 위의 책, 16-17면.

175) Brian Mcfarlane, Novel to Film: An Introduction to the Theory of Adaptation, Oxford; clarendon press, 1996, p.157.

하는 주된 이유는 각색이 충실도의 보루 없이는 답하기 어려운 저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176) 즉, 어디까지가 원저자의 것인지 또 각색 본의 저자는 어느 정도까지 창작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다. 그런 의미에서 그간의 각색 연구에서는 원본에 대한, 그리고 각색자의 창 작 범위에 대한 위계에 있어 다소 수세적인 입장을 띄는 방식으로 설명되어 온 것이다.

각색 연구에서는 원작의 구성과 각색본의 구성을 비교하는 것이 기본적인 단계이다. 홍재범에 따르면 관객들이 원작과 각색 영화 사이의 상동성 또는 원작에 대한 각색의 충실성을 인식하게 되는 층위는 크게 세 가지로 이루어진 다. 가장 단순한 것은 대사가 원작에 기술된 인물의 말을 차용하는 빈도이다.

두 번째는 원작이 제시하고 있는 서사의 배경인 ‘주어진 상황(given circumstance)’, 즉 서사가 시작되기 전 주인공의 현재 삶을 구성한 환경과 그 안에서 행위를 통해 형상화되는 인물의 성격 및 주제의식에 근거한 둘 사 이의 유사성이다. 마지막에 파악되는 것이 서사의 추동력과 서사구조이다.177) 본고에서도 이러한 방식처럼 원작 소설과 각본, 각색본, 영화로 구별한 텍스 트의 판본을 놓고 비교를 할 예정이다. 다만, 원작과의 비교 연구는 단순히 내용상의 차이를 변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각색본이 일정한 형식적인 스타 일을 담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 강조된 특정 부 분과 삭제된 부분들을 면밀히 대조해 봄으로써 원작의 핵심적인 모티프와 주 제론적인 측면을 계승하는 것인지 혹은 변별력을 가지려는 목적의 각색물인지 가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인물의 변형은 미묘하게 원작의 주제론적 층 위에 균열을 가져온다. 나아가 결말의 차이는 주제론적인 핵심을 완전히 뒤바 꾸는 성질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주목을 요한다고 볼 수 있다. 각색 연구 는 이러한 지점들에 대한 면밀한 비교 분석을 기본으로 하며 ‘충실도’의 측면 을 의식하면서도 각색본이 가지는 새로운 성취 지점을 변별해 내어야 한다.

한편 원작에서 과거의 회상이나 기억의 편린 등이 영화에서는 주로 플래시 백으로 드러난다. 영화적인 표현 방식으로는 디졸브나 청각적인 사운드의 변 형, 화면 색감의 변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고려가 얼마나

176) Leitch, Thomas, “Twelve Fallacies in Contemporary Adaptation Theory”,  Criticism; Detroit Vol.45, Iss. 2, Spring 2003, p.162.

177) 홍재범, 『각색의 기술: 재현과 창조 사이』, 연극과인간, 2014, 18면.

각색본에서 창조적으로 이뤄졌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각색 연구에 있어 중요하 다. 시간상의 문제에 있어서도 단순히 과거의 회상을 드러내는 플래시백이냐 아니면 현재와 과거를 끊임없이 교차 편집하면서 편집 체계 내에서 각각의 시 간대에 부여하는 균형감각을 유지하려 하느냐도 중요한 분기점이다. 때로는 영화 전체의 구조가 현재-과거-다시 현재의 액자형 구조로 이뤄지기도 하고, 미장아빔(mise en abyme)178)의 트릭을 취해 원본을 일종의 알레고리화 하는 방식으로 영화에 새겨 넣기도 한다. 원천 소설의 각 모티프들을 포착해 배우 의 표정이나 행위를 통해 상징적인 의미를 증폭시켜서 셔레이드(charade)로 색다름을 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각색 연구는 원천을 의식하면서도 원작과 각색의 결과물로서의 시나리오가 동등한 위상의 상호텍스트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각자의 미학적 성 과에 의해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며, 각색 시나리오에 대한 예술적 가치는 원 작과의 관련성과 무관하고 극 텍스트 자체로서 독자적 기준에 의해 판단되어 야 한다고 볼 수 있다.179)

최인호의 각색이 가진 특성을 추출해내기 위해 비슷한 시기에 같이 활동했 던 김승옥의 각색 작업과 비교해 보고자 한다. 김승옥이 1960년대의 새로운 시대 정신을 가장 잘 묘파한 작가로 유종호의 명명처럼 ‘감수성의 혁명’이라 는 수사 그 자체였다면, 최인호는 1970-80년대를 아우르는 작가들 중에서도 가장 감각적이고 세련된 감성을 드러냈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중적 호명을 받 았던 작가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작가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먼 저 주로 창작 활동 초반기에 단편 소설을 중심으로 문단의 고평을 받았다는 점, 그리고 창작 활동이 원숙해질 무렵 영화 작업에 투신하여 당대 주요 영화 들의 원작자 혹은 각색자로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정 시기를 지나 이들은 시나리오 작가 혹은 각색자로서의 활동을 멈추게 되며, 작품 활동의 말기에는 신앙에 귀의하게 되는 수순을 거친다는 점이다.180) 두 사람은 각각

178) ‘미장아빔’은 소설 속의 소설, 그림 속의 그림처럼 하나의 작품이 같은 모양의 작품 안에 (무한히) 반복되는 재현방식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서는 3장에서 후술 하겠다.

179) 위의 책, 같은 면.

180) 김승옥과 최인호는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었는데, 최인호가 교양잡지 <샘터>

지에 「가족」이라는 작품을 연재(국내 최장 기록인 35년 6개월)하게 된 것은 편 집 주간이던 김승옥의 추천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