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모티프 차용의 스타일 구성과 원천 소설의 중층적 각색

최인호는 당대의 자본주의적 영화 산업의 체제들을 전유(appropriation) 하면서 그 안에 작가적 정체성을 새겨 넣기 위해 영화 시학을 사용하였다. 보 드웰에 따르면 영화 장르에서 ‘시학’ 개념은 영화가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 는가에 관한 것으로, 영화가 특정한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에 관한 이론이다.126) 그에 따르면 전통적인 영화 시학의 연구는 그 핵심적 질문에 따라 세 가지의 대상 영역을 산출해왔다. 첫 번째는 제재와 주제를 구 성적 과정의 요소로 다루는 주제론(Thematics)으로, 여기에서는 질료나 구성 적 원리, 혹은 구성적 원리의 결과로서 모티프나 도상학, 주제 등이 연구 대

문이다.” -마츠모토 토시오, 앞의 책, 36면.

125) 요하임 패히, 앞의 책, 1997, 257면.

126) 데이비드 보드웰, 『영화스타일의 역사』, 앞의 책, 348면.

글 웃고 있는 마네킹을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비틀거리면서 걷기 시작하였다.

-안녕히 가세요. 내일 또 만나요.

낯익은 경아의 목소리다 생각하고 고개를 드니 경아는 도시의 건물 꼭대 기 선전 야광판 위에서 장난스레 웃고 있었다.

-임마, 내려와. 내려오래두. 떨어진다. 나는 걱정이 되어서 소리를 질렀 다.

그러자 정말 경아는 떨어졌는지 마치 방파제에 앉아 바닷물에 첨벙첨벙 발을 담그고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의 경아는 순간 보이질 않았다. 나는 놀 라서 떨어지려는 경아를 받기 위해 두 팔을 벌렸다. 그러다가 다시 빌딩의 꼭대기를 보니 경아가 여전히 앉아서 깔깔깔 웃고 있었다. 반짝반짝 경아 는 보이다가는 녹아 사라지고 보이다가는 사라지곤 하였다.123)

경아의 환영은 시각적으로 포착될 뿐만 아니라 마치 두 사람이 대화를 나 누는 것처럼 묘사되어 청각적으로도 표현된다. 여기서 경아는 ‘반액 대매출을 알리는 쇼우윈도우 속 마네킹’이나 ‘건물 꼭대기 선전 야광판’이라는 도시적 풍속도의 기표들 위에 얹힌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최인호는 이처럼 1970년 대 거리의 풍경을 매우 기민하게 포착하고 있다. 실제의 경아는 마네킹이 되 거나 방파제나 전광판 위에 올라갈 수 없으므로 이는 문오의 의식 속에서 재 조직된 경아의 환영이다. 그러니까 실제 경아의 삶의 양태, 즉 여러 남자와의 관계에 실패하고 술집에서 접대부로 살아가는 도시의 하위 감정노동자로서의 경아의 모습과는 괴리된 인식을 경아에게 투영한 것이다. 시각적 이미지들을 매개로 문오는 경아의 현실이 아닌 자신이 보는 경아의 이미지로 굴절시킨다.

경아를 그리워하던 문오는 이후 경아를 만나 함께 생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경아의 전 남자인 동혁의 등장과 함께 끝내 경아를 떠나보내고 고 향으로 내려간다. 문오는 스스로 경아를 사랑했다고 생각하지만 그에게 경아 는 ‘요정’처럼 술과 위안을 주는 존재이자 밤거리의 쾌락을 부여하는 환영으 로 존재했던 것으로 실제와 인식의 ‘어긋남’124)을 보여준다. 이처럼 소설 속에

123) 최인호, 『별들의 고향』上, 앞의 책, 146-148면.

124) “드라마에서 사실이 어떤가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드라마의 진실 은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거기에 서로 어긋남이 드러난다고 하는 현실 그 자체, 그것을 통해서 보이는 인간의 부조리, 말하자면 그러한 존재 그 자체에 있기 때

서 환상적인 장면들로 재현된 경아의 이미지는 작품 속에서 경아가 처한 현실 과 괴리되기 때문에 시각적 이미지들로 매개되는 과정에서 간극이 발생한다.

이러한 의미론적 결락들은 재현 체계의 방식을 활자가 아닌 영상으로 사용할 때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소설에서 제시된 환영적 이미지들이나 환상이 영화화될 때 형식상의 분절과 접합되는 형태가 바로 몽타주이다. 영화에서의 글쓰기 방식은 공간-시 간적 연속성을 단절시켜 몽타주로 만드는 활동사진의 태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영화 이전의 장면적 혹은 활동 사진적인 의미를 새로운 맥락에서 검증할 수 있는 요소들을 산출해 낸다.125) 최인호의 소설에서 종종 포착되는 아파트 나 병원 등의 공간에 대한 투시도적 시선은 시각적 감각의 양태를 넓히며 영 상화에 유리한 조건이 된다. 최인호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환영적 이미지들 역시 당대의 풍속도를 재현해낸다는 점에서 미장센으로, 또 시공간적 단절과 의미의 결락을 이미지의 매개로 재현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몽타주의 기법과 연결된다.

2. 모티프 차용의 스타일 구성과 원천 소설의 중층적 각색

최인호는 당대의 자본주의적 영화 산업의 체제들을 전유(appropriation) 하면서 그 안에 작가적 정체성을 새겨 넣기 위해 영화 시학을 사용하였다. 보 드웰에 따르면 영화 장르에서 ‘시학’ 개념은 영화가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 는가에 관한 것으로, 영화가 특정한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에 관한 이론이다.126) 그에 따르면 전통적인 영화 시학의 연구는 그 핵심적 질문에 따라 세 가지의 대상 영역을 산출해왔다. 첫 번째는 제재와 주제를 구 성적 과정의 요소로 다루는 주제론(Thematics)으로, 여기에서는 질료나 구성 적 원리, 혹은 구성적 원리의 결과로서 모티프나 도상학, 주제 등이 연구 대

문이다.” -마츠모토 토시오, 앞의 책, 36면.

125) 요하임 패히, 앞의 책, 1997, 257면.

126) 데이비드 보드웰, 『영화스타일의 역사』, 앞의 책, 348면.

상이 된다. 두 번째는 구성적 형식(Constructional form)인데, 여기에서 가장 현저한 연구 영역은 내러티브의 이론과 분석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스타일론 (Stylistics)으로, 구성적 과정의 요소로 영화 매체의 질료와 패턴화 (patterning)를 다루는 영역이다.127) 영화 연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 는 것이 ‘주제론’과 ‘구성적 형식’의 영역이며, ‘스타일론’은 비교적 덜 다뤄 져 온 경향이 있다. 다만 이들 영역을 경직되게 구분하기보다는 신형식주의 관점에서 유연하게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강호에 따르면 신형식주의는 내러티브의 이해에 있어서 스타일, 즉 어떻 게 특별한 장치나 기법들이 ‘플롯(plot)’을 ‘스토리(story)’로 바꾸어 주는가에 주목한다. 플롯은 구성요소(스토리 사건들과 상태)를 명확한 원칙들에 따라 배 열하여 하나의 체계를 구성하게 되며, 이때 스타일은 영화적 장치들의 체계적 인 사용을 말한다는 것이다. 즉 영화에서 유형화된 방식으로 특정한 영화기법 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스타일이라고 부르는데, 스타일은 일련의 영화 기법들로 이루어진 자율적인 체계로 간주된다고 본다. 플롯, 스토리, 스타일은 각각의 체계로 존재하면서 상호작용하는데 미장센, 촬영, 편집, 음향 등 영화 기법은 그 형식 체계와 상호작용하면서 내러티브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법 자체에 관객의 주의를 끌어모으기도 한다고 설명한다.128)

감독들에게 영화는 특정한 표현 수단으로 이들은 영상과 동작, 인물, 리듬 을 이용하고 시간과 공간을 바탕으로 하여 일정한 형식을 창조하고 여타의 예 술들처럼 적절하고 새로운 방식, 즉 스타일로 고유한 문제의식을 표현하고자 한다. 자기 나름의 일관성 있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스타일은 화가 에게는 색채, 음악가에게는 음악인 것과 같이 영화감독의 표현 수단이 된 다.129) 또한 감독의 예술가적 기질은 한 작품을 만드는 데 ‘주제와 이야기’,

‘영상과 움직임’, ‘대사와 여타 소리들’, ‘배우의 연기 지도’, ‘모티프 및 상징 성’이라는 각각의 조건들을 주관적・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사용된다.130) 이 중에서 특히 작가주의의 감독들에게 요구되는 항목은 작품 자체에 개성적 스타일이 존재하는지, 즉 그들의 주제적 관심이나 영화적 기법에 일관성이 있

127) 위의 책, 349면.

128) 신강호, 『영화 작가 연구』, 월인, 2006, 270-271면.

129) 안니 골드만, 지명혁 옮김, 『영화와 현대사회』, 민음사, 1998, 18-19면.

130) 정재형, 『영화 이해의 길잡이』, 개마고원, 2005, 43면.

으며, 스타일의 요소가 보여지는지의 여부다.131)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 장르에서 스타일 분석은 주제나 내러티브 연구에서 간과하기 쉬운 영화적 장치들의 사용과 그 효과를 논한다. 그간 현대문학 연 구에서 서사를 중심으로 소설에서 영화로의 단순한 비교-변형 연구가 이뤄져 왔음을 상기할 때 이러한 스타일 연구는 원천으로서의 소설에 방점을 두는 관 점이 아니라 영화로의 매체 전유 과정에서 새롭게 획득한 영화 미학을 확인하 는 데에 더 의의를 둔다. 따라서 스타일 분석은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된 기법의 면밀한 검토를 바탕으로 그러한 기법들이 어떻게 한 영화작품의 전체 체계 속에서 유의미하게 기능하는가를 밝히는 데에 있다.132) 본고는 최인호의 소설과 시나리오들에서 등장하는 반복적인 모티프들이 일종의 스타일의 구성 원리로서 기능한다고 보고 각각 영화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 다.

마츠모토 토시오에 따르면 영화의 고유한 이미지는 프레이밍(framing), 몽타주(montage), 구성(construction)의 세 가지 형식적 요소에 의해 형성된 다.133) 이 가운데 구성의 측면에서 최인호의 작품 속에 자주 반복되는 모티 프들을 살펴보고, 이것들이 영화에 어떻게 전유되어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지를 확인해 보겠다. 최인호의 작품들 속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들을 선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31) “특정 작가의 작품 전체가 각각의 독립된 단위로서가 아니라 전체 작품을 관류 하는 일관성을 지니고 있을 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식적 이고도 강력한 예술관을 드러낸다고 보는 것이다.” -팀 비워터・토마스 소벅, 이 용관 외 옮김, 『영화비평의 이해』, 영화언어, 1994, 79면.

132) 위의 책, 273면.

133) 토시오는 영화적 이미지의 세계는 프레이밍이 대상의 소여성을, 몽타쥬가 유클 리드적인 운동 구조를, 구성이 상식적인 인과율과 이야기 구조를 부정하는 것에 서 시작되는데, 대상적 외부 세계에 대한 소박한 신앙을 거절하고, 일상적인 대상 에 대한 조화된 관념이나 감성의 스테레오 타입을 파괴하는 것에 의해서만 이미 지가 창조된다고 설명한다. -마츠모토 토시오, 유양근 옮김, 『영상의 발견-아방 가르드와 다큐멘터리』, 동국대학교출판부, 2004, 6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