Ⅶ5. 전망과 고려사항
4. 경제정책과 현황의 측면
김정은 시대 북한과 1980년대 후반 중국의 경제변화 양상은 대체로 일치한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변화가 중국의 경제변화에 상응하는 성 과를 낼 개연성은 낮다. 그 이유는 중국과 비교할 때, 외부적 환경뿐 아니라 내부적 조건이 제기하는 부정적 제약이 북한의 경우 훨씬 강하 기 때문이다.
가. 김정은 시대와 중국 1980년대 후반의 동질적 양상128
김정은 시대(2012년~현재) 북한과 1980년대 후반(1985~1989/
1992년) 중국의 경제 변화 양상의 동질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국유기업에 대한 계획 지령의 폐기와 경제특구 확대 설 치와 같은 개혁 조치의 기본 구상이 일치한다. 둘째, 시장기구의 존재
128_이 부분은 통일연구원 온라인 시리즈로 미리 발표되었다. 박형중, “김정은 시대 북 한경제 변화에 대한 평가: 1980년대 후반 중국과의 비교,” (통일연구원 Online Series CO 15-09, 2015.4.29.).
정당성은 승인되지만, 민간 사기업이 인정되지 않는 가운데 반관-반민 기업을 주축으로 시장활동이 확대되고 있다.
(1) 정책적 제도적 측면
먼저 첫째 사항에 대해서 알아보자. 사회주의 경제의 일반적 변화양
상은 4가지 단계로 파악할 수 있다. 첫째 단계에서 사회주의 경제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 생산수단의 국유 + 공산당 통치>로 구성된 다. 둘째 단계에서는 <분권화된 계획경제 + 생산수단의 국유 + 공산당 통치>, 셋째 단계는 <계획지령의 폐기 + 생산수단의 국유 + 공산당 통치>, 넷째 단계는 <생산수단의 민영화 + 공산당 통치>이다.
김정은 시대와 중국의 1980년대 후반은 위의 단계 중 셋째 단계에 해당한다. 이 단계의 핵심 특징은 두 가지이다. 첫째, 국유기업의 경영 이 계획 지령이 아니라 상업적 원칙에 기반한다. 이데올로기적 수사로 분식하면서 에둘러 표현하고 있지만, 북한의 경우 ‘5·30 조치’의 내용 이 궁극적으로 이러한 원칙을 선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유기업은 원료·설비의 구매, 생산품의 판매, 노동의 사용, 이윤의 사용 등에서 대 폭 확대된 자율권, 다시 말해 시장원칙에 의거할 권한을 가진다. 물론
‘생산수단의 소유자’인 국가는 거시경제 운영에서 그리고 국유기업의 내부 경영사항에 대해 여전히 매우 포괄적이고 강력한 권한을 유지 한다. 이를 표현해주는 것의 하나가 이러한 단계의 중국경제에서 특징 적이었던 ‘이중경제’ 또는 ‘이중가격제’이다. 국가는 직접 관장하는 기 간산업에 대해 시장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국정가격으로 재화를 공급 한다. 그렇지만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유기업의 경영 그리고 주민의 일상적 소비생활은 시장가격에 기초하여 운영된다. 김정은 시대 북한 의 경우에도 수령경제, 김정은 치적용 건설 사업, 군수경제 등에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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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국정가격이 적용되고 있을 것이다.
둘째, 경제특구 확대 등 대외개방 확대 노력이다. 김정은 시대에 들 어서면서 북한은 19개의 경제개발구 설치를 서류상으로 선포했고, 적 어도 표면상 외자 도입을 위한 노력을 공식적으로 진행 중이다.
(2) ‘사회주의 모자를 쓴 시장기업’의 번성
사회주의 경제 3단계에서의 특징은 계획이 포괄하는 범위가 축소하 는 대신 시장기구가 관장하는 범위가 확대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 여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시장기구는 사회주의 경제를 구성하는 정당한 구성 요소로 정 치적으로 승인받는다. 1980년대 후반에서 중국에서는 ‘사회주의 상품 경제’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또한 ‘시장이라는 새를 계획이라는 새장에 가두어 놓고 활용한다’는 비유가 사용되었다. 이 단계에서는 대부분 국 유기업의 경영이 기본적으로 상업적 원칙에 의거하며, 또한 일반 주민 의 일상 소비생활은 시장경제와 대체로 다름없게 된다.
둘째, ‘사회주의 모자를 쓴 시장형 기업’이 경제와 경제성장의 주축 이 된다. 그 이유는 이 시점에서 시장기구는 법적·정치적 존재정당성 을 인정받지만, 민간 사기업의 존재 정당성은 정치적으로 부정되고 있 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사회주의 모자를 쓴 시장형 기업’
에는 세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첫째 유형은 일반 국유기업이다. 이들은 (경영상 여전히 국가의 포 괄적 간접 통제를 받고 있지만 적어도) 계획지령의 직접적이고 구체적 통제라는 족쇄에서는 벗어나 확대된 자율성에 기반하여 상업적 원칙 에 의해 경영하도록 요구받는다.
둘째 유형은 중국 농촌에 주로 등장했던 중소규모의 집체(集體)기
업이다. 중국에서 1979년 가족농의 도입에 의해 인민공사가 해체되는 가운데, 향·진·촌과 같은 농촌 지방행정 기관의 투자 그리고/또는 지역 농민의 투자에 의해 향진기업이 설립된다. 향진기업은 1, 2, 3차의 모 든 산업에 걸쳐 활동했었고,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번성 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아직 협동농장을 해체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해체하는 경우 협동농장의 자산과 농민들의 노동력 및 자본 기여를 바 탕으로 중국의 향진기업과 유사한 형태의 기업의 설립을 촉진할 가능 성이 있다.
셋째 유형은 반관-반민기업이다. 이러한 기업은 겉으로는 당·정·군 의 각종 기관이 운영하는 하부(상업)조직이라는 문패를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민간업자가 투자하고 경영하는 기업이다. 북한의 경우에는 이 세 번째 유형이 ‘시장기업’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주 류가 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상황 때문이다. 한편, 민간은 자본과 경영 능력이 있지만, 사기업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또한 대부분의 상업 적 경제활동이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면, 각종 기관은 스스로의 재 정을 벌어야 하는데, 자본과 경영 능력은 없지만, 일정한 설비 또는 재 산을 보유하며 상업적 활동에 대한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에서 이와 같은 반관-반민 기업이 김정은 시대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가지 변화가 있었 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북한 정권 그리고 사회가 공히 이러한 반관- 반민 기업에 대해 점차로 익숙해지고 경계를 풀게 되는 한편, 둘째, 정 권의 차원에서 그 활용가치를 인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시 대의 정책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첫째, 김정은 정권은 반관-반민 기업에 대해 훨씬 관용적 태도를 취하 고 있으며, 둘째, 반관-반민 기업이 포괄하는 업종이 확대되고, 사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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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화되며,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5·30 조치’의
‘독자경영’ 개념은 이미 상당히 확산되어 있는 반관-반민 기업 형태에
정치적 존재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더욱 활성화시킬 것이다.
나. 김정은 시대와 중국 1980년대 후반의 차이점
핵심적 차이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김정은 시대 북한의 개혁조치는 중국의 1980년대 후반 조치와 비교할 때, 기본 개념은 같지만 그 폭과 깊이, 그리고 정치적 의지 표명에서 현저히 취약하다. 농업 부문에서 보면, 중국이 1970년 가족농을 도입하면서 인민공사를 해체한 데 비해, 김정은 정권은 여전히 협동농장 체제를 고수하면서 분조의 규모 축소 와 자율성을 강화 차원에 머물고 있다. 공업 측면에서 보면, 국유기업 경영과 관련하여 ‘독자경영’ 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일반화의 속 도와 폭은 분명하지 않다. 또한 ‘독자경영’의 원칙에 서자면, 경제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지만 그에 대해 분명한 조치가 취해지 고 있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김정은 지도부는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선은 현실에서 김정 은이 경제 개혁보다는 군사력 강화를 위한 행보를 보이는 것, 그리고 경제건설을 위해 북한의 핵 보유 고수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다는 것으 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 김정은 시대 경제변화가 중국의 1980년대 후반과 같은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과를 내기 어려울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김정 은 시대 북한과 1980년대 후반 중국의 대내외 조건과 환경이 매우 다 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김정은 시대 북한은 중국의 1980년대 후반 에 상응하는 개혁 조치를 도입했지만, 중국의 1980년대 후반 경제제도
와 정책이 성공할 수 있게 만들었던 대내외 여건을 구비하고 있지 않 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두 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세 가지만 지적한다.
(1) 대외 환경의 차이
첫째, 대외 환경이 매우 다르다. 개혁·개방 당시, 중국은 미국 등 서 방국가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 때문에 중국은 투자, 기술, 시 장을 확보할 수 있었고, 군비를 감축할 수 있었으며, 대서방과의 접촉 과 학습을 어렵지 않게 고도화할 수 있었다. 김정은의 북한에게 이러 한 조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북한과 유사한 경우가 과거의 베 트남이었다. 사실은 베트남도 1980년대 후반 중국과 유사한 조치를 도 입했었다. 하지만, 베트남의 경제 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채 혼조가 계 속되었다. 당시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인한 군비부담의 증가 및 국제적 제재와 고립 때문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의 지속적 경제성장은
1990년 초·중반 캄보디아 철군 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루면서
시작되었다.
(2) 대내 체제의 차이
둘째, 대내 체제가 매우 다르다. 상대적으로 볼 때, 1980년대 중국은 김정은 시대 북한에 비해 현저히 분권적이었다. 일반적으로 권력 체계 가 집권적일수록 기득권 세력의 발언권이 커지며, 현상 변경의 개혁조 치에 대한 저항이 증대한다. 권력체계가 집권적일수록, 이윤 기회를 정 치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용이해진다. 이렇게 되면, 권력을 많이 가질 수록, 더 좋은 이윤 기회를 배타적으로 차지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경 제의 독과점 구조가 강화된다. 이렇게 될수록 각 경제주체들은 생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