Ⅶ5. 전망과 고려사항
3. 권력 재편의 측면
2015년은 김정은이 집권한 지 4년째 되는 해이다. 2009년 후계자 지명
으로부터 따져보면 7년째이다. 2012년 이후 현재까지 북한의 정치 과정 은 김정은의 1인절대독재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이다. 북한의 대내외 정책은 김정은 1인절대독재체제의 재수립에 필요한 여러 요구에 의해 상당부분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는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권력 정치적 측면에서 북한에서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지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정치적 측면 의 변화를 보면, 김정은 친정 독재체제의 수립, 공안 관련 인물과 기관 의 득세, 중앙당과 내각의 역할 강화, 국방위원회와 군부의 약화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권력 관리의 측면은 김정은 집권 이후 가장 많은 주목 을 받았던 부분이다. 특히 고모부인 장성택의 유혈 숙청, 군부의 주요 인물에 대한 갑작스런 승진과 강등, 그리고 관련 인물의 처형에 있어 잔혹성과 엽기성이다. 이러한 권력 관리 방식이 김정은 정권의 존속과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알아본다.
가. 김정은 집권 이후 내부 정치의 변화
일반적으로 독재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는 집권 초반에 권력을 장악해가는 과정이다. 이는 김정은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특히
Ⅰ
Ⅱ
Ⅲ
Ⅳ
Ⅴ
Ⅵ
Ⅶ
거의 40년에 걸쳤던 김정일의 후계자 시절과 비교할 때 김정은에게 주 어진 권력 장악 및 공고화 시간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로 매우 짧 았다. 김정일은 이 짧은 시간 내에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버금가는 1인 절대독재자로 정착해야 했다. 김정은의 권력 공고화 과정은 2009년부 터 김정일의 후원하에 김정일 치하의 유력자를 중심으로 하여 후견 그 룹 결성을 통해 시작되었다.
그런데 2012년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두 가지 새로운 동향이 나타
난다. 첫째, 세습 과정의 후견그룹을 해체하고 새로운 김정은의 친정 그룹을 구성해가는 과정이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고모부이자 가장 유 력한 인물로 간주되었던 장성택을 비롯하여 상당한 정도의 숙청이 발 생한다. 둘째, 주요 정권 기관 사이의 힘의 관계에서 변화가 발생한다.
과거 선군정치 시절 득세했던 국방위원회와 군부의 영향력이 약화되 는 대신, 중앙당 기구와 내각, 그리고 각종 공안 기구가 강화되는 현상 이 나타나고 있다.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김정은 친정체제 수립 작업이 시작되었 다면, 2015년 11월 현재 그 작업은 어디까지 진행되었을까? 김정은의 친정체제 수립은 완성되었고, 김정은 체제는 공고화된 것인가? 아니면 김정은의 친정체제는 아직도 미완성이며, 앞으로도 어려운 권력 투쟁 을 진행해야 하는가? 만약 김정은이 1인절대독재 확립에 이미 성공했 다면, 김정은은 아마도 종신 집권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 은 1인절대독재자의 경우 내부 엘리트로부터 도전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일성, 김정일이 그러했고, 스탈린, 마오쩌뚱, 차우체스쿠 등이 그러했다. 1인절대독재자의 경우는 자연사하거나 또는 인민봉기 와 외부 세력에 의해 제거되는 방식으로 축출되었다. 만약 아직도 권 력 장악이 미완성이라면 앞으로도 내부 권력 투쟁과 상당 규모의 숙청
을 예견할 수 있다. 또한 대남/대외정책에서도 내부 권력 불안을 외부 긴장을 통해 장악할 목적으로 또는 절대독재자의 권위 강화를 위한 목 적으로 추가 도발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김정은의 1인절 대권력이 확고하다면, 내부 정치상황이 안정되는 가운데 대외·대남정 책도 신중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질문과 판단을 염두에 두면서, 이하에서 다섯 가지 사항에 대해 서술한다. 첫째, 김정은은 2012년 4월 집권한 이후 상당한 정도의 엘리트 교체를 단행하는 것을 통해 자신에 충성하는 새로운 인물들로 상층 지도부를 재편성했다. 애초에 김정은의 권력 장악은 세습과정에서 김정일의 후견 아래 진행되었다. 2009년 9월 28일에 개최되었던 제3차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은 권력 세습을 뒷받침할 후견체제를 성립시 켰다. 그런데 김정일이 만들어준 후견체제는 김정은이 집권한 2012년
4월 이후 점차적으로 해체되는 과정을 밟아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
장 주목을 많이 받았던 사건은 장성택과 그 일파가 2013년 12월 숙청 된 것이었다. 군부도 주요한 재편 대상이 되었다. 선군정치 시절 득세 했던 이영호 총참모장이 2012년 7월 숙청된 것을 시작으로 나이 많은 군부 장령들이 대부분 퇴진했다. 김진무의 연구에 따르면 김정일 집권 의 마지막 3년 동안 해마다 20회 이상 현지지도를 수행한 인물은 25명 에 달했다.104 이들의 대부분은 김정일의 오랜 핵심 측근들이었다. 이 에 비해 김정은의 현지지도를 2013년부터 3년 동안 20회 이상 수행한
인물은 3명(황병서, 최룡해, 이영길)뿐이다. 이 밖에도 2012년 집권 이
후 3년 동안 현지지도 수행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인물은 11명(이 재일, 염철성, 홍영칠, 박정천, 김양건, 김원홍, 윤동현, 한광상, 이병철,
104_김진무, “김정은 정권 엘리트 변화 분석과 함의,” 주간국방논단, 1584호 (15-37, 2015.9.14.).
Ⅰ
Ⅱ
Ⅲ
Ⅳ
Ⅴ
Ⅵ
Ⅶ
오금철, 오일정)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김정은 시대의 최고지도부를 구성하는 핵심인물은 14명 정도로 판단되는데, 이는 김정일 시대의 최 고지도부 25명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둘째, 김정은 집권 이후 공안 및 보위 관련 기관 및 인물들이 득세하 고 있다. 먼저 조직지도부와 총정치국 등 당계열의 정권 보위기관 출 신들이 당·정·군의 다른 기관의 주요 간부로 임명되는 경향이 존재했다.
그리고 조직지도부가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면서 재차 가장 중요한 권력 기관으로 복권되었다. 조직지도부는 김정은 집권 과정에서 장성택이 관장해오던 중앙당 행정부 및 군부의 견제를 받았었다. 당 계통 이 외의 보안기관으로서는 국가안전보위부가 역할과 위상을 증대시켰다.
국가안전보위부는 주요 간부에 대한 숙청을 실무적으로 주도하고 있 으며, 2010년경 이후 내부 통제 특히 국경통제와 외래 문물에 대한 통 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총정치국은 군부를 통제하는 데서 가장 중 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과거 총정치국장은 군부 장령 출신이 임 명되는 것이 관례였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당료 출신의 민간인이 기용되었다. 최룡해와 황병서가 대표적 인물이다.
셋째, 국방위원회와 군부의 위세는 약화되고 중앙당 기구, 공안 기관 그리고 내각이 강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공안 기관의 강화에 관련해 서는 이미 언급했다. 당기관과 관련해서 보면, 중앙당 기구가 재정비 되고 인물이 보충되었다. 중앙당 기구가 복구되는 과정에서 2009년 9월 제3차 당 대표자회, 2012년 4월 제4차 당 대표자회를 거치면서 이루어 졌다. 정치국, 당 중앙군사위원회, 당 중앙위원회 등과 같은 당 기관들 에서 그 동안 빈자리로 남아있던 인물의 충원 그리고 교체가 있었다.
또한 이 기관들이 정기적으로 회합을 열고 주요한 정책을 발표하는 매 체로 활용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다음으로, 김정은 집권 이후 경제관리
에서 내각의 중요성과 책임이 강조되었다. 물론 내각의 위상은 북한에 서 통상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내각의 역할과 위상을 강조하는 것은 자원과 업무를 배분하는 데서 군부에 의한 경제활동 및 국방위원회가 맡아오던 경제 역할을 얼마간 감소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당 기관이 강화되는 양태를 보자. 이는 특히 2013년 3월부터 ‘경제건설 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이 내세워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105 북한은 핵무기 보유에 맞추어 국방체계를 핵무기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핵무기의 생산 및 개발을 담당하 고 있는 당 전문기관의 위상과 역할이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연계된 기관과 인물을 보면, 김춘섭 당군수담당비서, 홍영칠 당기계공 업부부장, 조춘룡 제2경제위원회 위원장 등이 있다. 또한 2014년에 전 략군으로 승격된 미사일 부대, 그리고 사이버 사령부 등 비대칭 전력을 담당하는 기관이 더욱 중요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집권 이후 핵 및 비대칭전력을 중심으로 한 군사 체계 건설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전통적 야전군의 비중은 낮게 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반영하여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 작전 국장 등 군의 주요 간부 들이 빈번하게 교체와 숙청 그리고 강등과 복권을 반복하는 모습이 나 타나고 있다.
넷째, 김정은은 집권한 이후 북한의 당-국가가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는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동향은 김정은이 후계자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0년 9월 제3차 당 대표자 회가 열려 김정은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공식 등장했다.
이 대회를 거치면서 그동안 공석임에도 방치되어 왔던 중앙당의 주요
105_홍민, “김정은 정권 핵무기 고도화의 정치경제,” (통일연구원 Online Series CO 15-25, 2015.9.21.).
Ⅰ
Ⅱ
Ⅲ
Ⅳ
Ⅴ
Ⅵ
Ⅶ
한 직책이 충원되었다. 아울러 김정일 사후 김정은의 최고지도자로서 의 등장은 2012년 4월 11일 제4차 당 대표자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여 기서 그는 중앙당 제1비서의 직함을 받았다. 뒤이어 열렸던 4월 13일 의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5차 회의에서 그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이 되었다. 2012년 김정은 등장 이후에는 4월에 최고인민회의가 열리 기 전에 당중앙위 또는 정치국 회의가 먼저 개최되었다. 이는 당이 인 선과 정책을 결정하고, 국가가 수행한다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었다.
아울러 당 중앙군사위원회도 과거와 비교할 때 빈번히 공개적으로 개최 되어, 군사정책에 대한 최고 결정기관임을 과시하고 있다. <표 Ⅲ-1>
은 김정은 등장 이후 당-국가기구의 주요 행사를 정리했다.
다섯째, 이러한 상층 통치 체제의 정비와 아울러 주목할 수 있는 것 은 통치조직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각종 대중 단체를 강화하고자 하 는 노력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당-국가의 허리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각종 단체 대회가 연달아 개최되어 오고 있다. 이러한 단체별 대회는 해당 단체를 새로운 지도자가 내세우는 과업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재 정립시키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단지 당 조직 과 관련된 대회뿐 아니라 각종 대중 단체, 아울러 분주소와 사법일꾼 대회와 같은 치안조직, 그리고 중대장 대회와 같은 군사조직을 망라하 여 대회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김정은은 각종 군중 집회를 자신의 정당성 제고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김정은은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과 3차 핵실험 성공 등의 계기로 대규모 경축대회를 개최했다. <표
Ⅲ-2>는 김정은 등장 이후 각종 대중 단체 행사 및 주요 경축 행사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