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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 : 맥클루한의 매체이론

맥클루한은 그의 대표작인 「매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 1964)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점에서 맥클루한의 이론이 ‘매체이론’으로

불리는 것은 충분히 있을 법하고 또 적절한 것이다. 그러나 맥클루한의 매체이론을 신문과 방송 등의, 이른바 ‘대중매체’에 관한 설명으로 받아 들이는 것은 그 이론적 의의를 지극히 한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맥클루한의 매체이론이 매체를 다루는 기법이나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닌 것은 더더욱 명백하다. 그 방면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맥클루한의 매체이 론이 ‘매체철학’, 더 한정적으로는 ‘매체존재론’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김균, 정연교, 2006:

146).

「매체의 이해」가 알려져 있는 만큼이나 그 책에 제시되어 있는 ‘전달 매체(medium, media)는 곧 전달내용(message)이다’라는 맥클루한의 명제는 그의 매체이론을 대표하는 주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McLuhan, 1964: ch. 1). 무엇보다도 맥클루한의 그 명제는, 전달매체

―더 간단히는 매체―는 그것에 의해 전달되는 ‘내용’을 싣고 있다는 것 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매체가 그 내용을 실어 전해준다는 식의 ‘수레 비유’로는 맥클루한의 그 명제가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이 점은 매체 가 전달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식의 ‘그릇 비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이다. 매체와 그 내용을 수레 비유나 그릇 비유로 이해할 때에는 전달 되는 내용이 전달하는 매체와 별도로 있다는 것, 그리하여 전달되는 내 용은 전달하는 별도의 매체에 실리거나 담겨져서 누군가에게 전해진다 는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수레 비유와 그릇 비유는 매체라는 말에 들어 있는 ‘매개한다’(mediate)는 의미를 곧이곧대로 해석하여, 매체는 매개 되는 두 가지 항―전달되는 내용과 전달받는 당사자의 마음―을 연결해 주는 제 3의 것이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자아내게 한다.

‘매체는 곧 내용’이라는 맥클루한의 그 명제는, 매체와 그것에 의해 전달되는 내용은 결코 별도로 있는 두 가지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맥클루한의 그 명제는 매체와 그 내용의 비분리 성을 밝혀주고 있지만, 그와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매체가 피전달자의 마음과 맺는 관련이다. 이 점은 특히 ‘매체이론’을 교육적

전달사태와 관련하여 조명할 때에는 반드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 홍우, 2014: 232-3, 295-6). 교육적 전달사태에서는 전달되는 내용이 그 내용을 전달받는 피전달자의 마음과 맺는 관련이 중요하게 취급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맥클루한은 교육적 전달사태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그는 피전달자의 마음에 대한 고려 없이 매체가 그 내 용과 맺는 관련만을 주요 관심사로 삼고 있다. ‘매체가 곧 내용’이라는 맥클루한의 명제는 피전달자가 매체에 의해 전달되는 내용에 의하여 자 신의 마음을 어떤 형태로 형성해 가는가 하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 지 않는 것이다. 이 점을 정당히 존중한다면 매체이론은 매체와 분리불 가능하게 결합되어 있는 내용을 한편으로, 그 매체에 의해 형성되는 피 전달자의 마음을 또 한편으로 하는 양자의 교섭을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매체이론은 교과에 가정되어 있는 마음과 학습 자의 마음의 교섭을 문제 삼는 교과의 내면화이론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하 4장 2절 참조.

여하간 ‘매체가 곧 내용’이라는 명제는, 전달되는 내용은 그 매체를 떠나서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매체가 곧 내용’이라는 명제는, 매체에 의해서 전달되는 내용은 바로 그 매체 안에 있다는 뜻 으로 이해되는 것이다.14) 맥클루한의 그 명제를 조금 더 자세히 파악하 는 데에는 매체와 그 내용의 관련을 ‘번역’(translation) 또는 ‘비 유’(metaphor)로 설명하는 그의 다음의 견해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14) 물리학의 파동이론에 의하면 소리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공기라는 매질(媒質)에 의해 비로소 생성된다. 음파는 공기라는 매질과 결합하여 그 안 에서 하나의 소리로 성립하는 것이다. 물리학의 그 설명에 들어있는 인과적 색채를 완화한다면, 매체와 내용의 관련은 매질과 소리의 관련에 상응하는 면 이 없지 않다. 실지로 맥클루한의 책에 종종 등장하는 다양한 과학이론에 대 해서는 과학과 철학의 학문적 접근의 차이를 늘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 다.

모든 매체가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비유인 것은 그것이 한 경험을 새로 운 형식의 경험으로 번역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비유가 경험 을 변형하여 전달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매체의 기능은 바로 그 비유로 설명될 수 있다(McLuhan, 1964: 85, 88).

매체에 관한 맥클루한의 위의 견해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매체는 ‘번 역의 원리’ 또는 ‘비유의 원리’로 설명된다는 점이다. 이 비유를 맥클루 한은 ‘한 경험을 새로운 형식의 경험으로 번역하는 힘’으로 설명하고 있 다. 매체는 경험을 이편에서 저편으로 옮겨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비유를 뜻하는 metaphor라는 말은 희랍어 어원에 충실하게 번 역하자면 “이편에서 저편으로 옮겨주는 것”을 가리킨다’(임병덕, 2001b:

304). (metaphor의 어원인 희랍어 metapherein은 meta(저편)와 pherein(옮기다)의 합성어이다.) 매체는 인간을 ‘저편’으로 이끄는 도구 인 것이다. 맥클루한은 ‘매체는 곧 번역가이다’라는 의인화된 표현을 써 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McLuhan, 1964: ch. 6).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매체에 의해서 전달되는 ‘저 편’이 무엇을 가리키며 그것이 매체와 관련하여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 가 하는 것이다. 전자의 질문―매체에 의해 전달되는 내용(‘저편’)이 무 엇을 가리키는가 하는 것―은 이하에서 다루겠지만, 후자의 질문―그

‘저편’이 매체와 관련하여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하는 것―은 ‘매체 는 곧 내용’이라는 맥클루한의 견해에 충분히 시사되어 있다. 매체가 그 내용으로 전달하는 ‘저편’은 매체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매체와 분리불가능한 형태로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

맥클루한에 의하면 매체 안에 있으면서 바로 그 매체에 의해 전달되 는 ‘저편’은 ‘인간의 감각의 확장’을 가리킨다. ‘모든 매체는 인간의 감 각의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Mcluhan, 1964: 34). 이 점에 대하 여 맥클루한은 그의 「매체의 이해」에 앞서 출간된 「구텐베르크 은하계」

(The Gutenberg Galaxy, 1962)에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맥클루한의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활자매체에 이어서 현대인에게 점점 광범위하게 퍼져가는 전자매체를 통사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구텐 베르크 은하계」는 문자없이 입말만 있던 고대에서부터 시작하여 구텐베 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에 의해 도입된 활자가 점차 사 용되기 시작한 중세를 거쳐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알려지게 된 전자매체의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매체의 역사를 문학과 철학과 심리학 등 다양한 방면의 사상가들의 관점에 의거하여 기술하고 있다. 이 점에 서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매체이론에 근거하여 인류의 사고의 편린을 다루고 있는 일종의 사상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언어가 비유인 것은 그것이 경험을 저장할 뿐만 아니라, [경험의] 한 형 태를 다른 형태로 번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폐 또한 비유이다. 그것은 기술과 노동을 저장하고 한 기술을 다른 기술로 번역해내는 기능을 한다.

교환과 번역의 원리, 즉 비유는 이성적 능력에 의존하여 우리의 모든 감각 을 다른 하나의 감각으로 번역해내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매순간마다 번 역의 그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번역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도구 는, 그것이 수레바퀴이든 문자이든 라디오이든 간에, 인간 감각의 거대 ‘확 장’을 가져다주지만, 그 감각의 거대 확장은 때로 ‘폐쇄적’ 체계를 구성하 는 대가를 지불하기도 한다(McLuhan, 1962: 6).

맥클루한의 관심사인 ‘매체’는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과 같은 의사 전 달을 위한 도구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앞서 시사한 바와 같다. 맥 클루한은 인간이 고안하여 만들어 낸 ‘기술적 도구’ 중에서 ‘번역’을 가 능하게 하는 것은 모두 매체에 해당한다고 본다. ‘경험의 한 형태를 다 른 형태로 번역한 것’이거나 ‘한 기술을 다른 기술로 번역한 것’에는 위 의 인용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과 같은 ‘언어’, ‘화폐’는 물론이요, ‘수 레바퀴’와 ‘라디오’ 등이 포함될 수 있으며, 도로, 숫자, 의복, 주택, 무 기, 자동차, 자동제어체계 등 이른바 ‘기술적 도구’는 그것이 번역의 기 능을 수행하는 한, 얼마든지 매체가 될 수 있다. 맥클루한에 의하면 우

리의 모든 감각을 다른 또 하나의 감각으로 번역해 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기술적 도구는 매체의 하나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매체에 관 한 맥클루한의 독특한 관점은 바로 이 점, 즉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적 도구들은 그 성격상 매체가 될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 있다. 맥클루한 은 그의 「매체의 이해」, 특히 그 8장에서 33장에 이르기까지 위에서 언 급한 것 이외의 다양한 기술적 도구를 소개하며 그 도구들이 어떤 점에 서 매체가 될 수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이를테면, 인간의 체온을 저장 하고 피부를 확장하는 기술적 도구라는 점에서 의복은 매체의 하나이며 (12장), 인간의 육체적 힘을 저장하고 발을 확장하는 기술적 도구라는 점에서 바퀴는 매체의 하나이며(19장), 인간의 정보를 저장하고 두뇌의 인지작용을 확장하는 기술적 도구라는 점에서 자동제어체계는 매체의 하나이다(33장).

맥클루한의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기술적 도 구는 매체가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그 자체로 매체인 셈이다. 그러나 기술적 도구―더 간단히는, 도구―와 매체가 맥클루한의 저작에서 거의 동일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양자 사이에는 차이 또한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에 비추어 설 명될 수 있다. 먼저, 도구와 매체의 차이는 번역의 원리 또는 비유의 원 리에 비추어 설명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비유의 원리를 단순히 이것 에서 저것으로 옮기는 것, 다시 말하여 ‘경험의 한 형태를 다른 형태로 번역한 것’이거나 ‘한 기술을 다른 기술로 번역한 것’이라는 점에 한정 하여 파악할 때에는 도구와 매체의 차이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도 구 또한 그 성격상 인간의 한 경험을 다른 형태의 경험으로 번역해 내 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도구와 매체의 차이 를 파악할 때에 맥클루한의 ‘매체론’은 ‘도구론’으로 불러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것으로 된다. 도구와 매체의 차이는 비유의 원리를 이것에서 저것으로 옮겨 준다는 측면에서 파악하기 보다는 그 저편이 무엇을 가 리키는가 하는 측면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도구는 매체와 다름없이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