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철학적 전통의 가장 일반적인 특징은 그것이 플라톤에 관한 일련의 주석이라는 것에 있다’라는 화이트헤드의 말은 플라톤 철학이 서 구철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하게 한다(Whitehead, 1978: 39). 화 이트헤드의 이 말은 서구의 수사학적 전통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 될 수 있다. 서구의 수사학적 전통은 플라톤의 주석인 것이다. 플라톤의 철학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그 당시의 희랍사람들과 주고받은 말들 을 체계화해 놓은 그의 대화편에 집약되어 있다. 목하의 수사학에 관한 언급은 「고르기아스」, 「파이드로스」, 「소피스트」, 「변명」등의 여러 대화 편에서 확인되지만, 특히 그 중 「고르기아스」와 「파이드로스」는 수사학 에 관한 플라톤의 견해를 확인하는 데에 직접적 단서가 되는 저작이다.
먼저, 「고르기아스」는 수사학이 다루어야 할 내용과 그것이 가져다주 는 실제적 효과를 규명함으로써 수사학의 성격을 밝히고 있다. 다만,
「고르기아스」에서 플라톤은 그 당시 소피스트에 의해 실천되고 있는 수 사학에 비판적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플라톤에 의하면 당시의 소피스트 의 수사학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설득’에 있다. 그러 나 이 설득에는 ‘신념을 심어주는 설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형 성하는 설득’ 또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플라톤의 견해이다(454e). 그 중 신념을 심어주는 설득은 연설가의 주관적 신념이 청취자의 영혼에 확신으로 각인되는 것을 가리킨다면, 지식을 형성하는 설득은 연설가의 내면화된 지식이 이해되어 청취자의 영혼에 자리잡는 것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 설득의 근본적인 차이는, 신념을 심어주는 설득에는 참된 것과 그릇된 것을 구분해 내는 지식이 결여되어 있지만, 지식을 형성하는 설 득에는 그러한 지식이 중요하게 취급된다는 것에 있다. 플라톤에 의하면 지식을 배제한 채 설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연설은 청중의 영혼을 타락 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임에 비하여, 지식이 담긴 연설은 그 연설을 통 하여 청중의 영혼을 고양시켜 준다. 플라톤이 보기에 법정에서나 그 밖 의 민회에서 군중들을 상대로 하여 행해지는 수사학적 연설은 신념을 심어주는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일 뿐, 지식을 통하여 영혼을 고양시 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법정이나 민회에서 대중을 상대 로 하는 연설은 정의나 부정의에 관한 지식을 전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플라톤은, 수사학은 청중의 영 혼을 상대로 한 아첨이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 요리술이나 화장술 과 다름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462c). 요컨대 수사학이 지식의 최 선의 상태를 실현하는 데에 도움을 주지 않는 한, 그것은 사이비 기술 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수사학의 학문적 성격에 근본적 비판을 제기하는 것은 그가 추구하는 사유방식이 그 성격상 소피스트들의 그것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사유방식에 의하면 사물들로 구성된 가시
적 세계―현상―이면에 또는 그 너머에 지식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 비가시적 세계―실재―가 존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실재는, 끊임없 이 변화하며 한시적 형태를 띠는 현상과는 달리, 변화와 불변의 상대적 비교를 초월해 있는 것이다. 실재는 감각의 세계, 사물의 세계와는 차원 을 달리하는 것이며, 그 점에서 실재는 존재와 인식의 근거가 되는 형 식, 바로 그것을 가리킨다. 실재는 ‘현상의 세계가 의미를 가지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논리적 가정’인 것이다(이홍우, 2016: 321).
「고르기아스」에서 플라톤이, 소피스트들의 수사학이 사이비 기술이라 고 말한 것은 그들의 수사학에는 실재에 관한 탐구가 빠져있기 때문이 다. 플라톤에 의하면, 소피스트들은 인간의 지식(episteme)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실재를 배제한 채, 오로지 감각의 세계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에게 감각의 세계는 주먹구구식의 경험(empeiria)에 지배되는 것이며, 따라서 감각을 원천으로 하는 일체의 것은 오직 의견 (doxa)에 지나지 않는다. 때로 감각에서 비롯된 것에 대해서도 그것을 가리켜 지식으로 지칭하지만, 그것은 지식이라고 부를만한 가치가 없는 것, 지식의 성격에 미달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견해이다. 플라톤이 보기 에 진정한 지식은 감각의 세계, 현상의 세계 너머의 실재를 그 이면에 담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한편, 지식에 관한 소피스트의 견해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프로타고라스의 견해에 집약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로타고라스의 이 견해는 자연에 관한 그 당시의 지배적 관심을 인간에 관한 관심으로 전 환하는 데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 준 것으로 평가된다(Brett, 1912:
57). 소피스트들은 이 프로타고라스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소피스트들은, 프로타고라스의 그 견해에 주목하여 새로운 지식이론의 서막을 연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인간의 삶에서 지식이 도덕 적 판단과 맺는 타당한 관련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소피스트들에게 그들의 시대는 개인이 회복되고 나아가 그 개인의 권리
가 내세워지는 시기로 받아들여진다. 개인을 회복하고 그 권리를 되찾으려 는 것은 계몽적 성격의 주장에 공통된 것으로서, 소피스트들의 저작들에 특유의 색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방면의 사고의 중요성은 소 크라테스에 의하여 최초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느 편인가 하면, 소크라 테스의 사고는 그 경향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소크 라테스 이전에 이루어진 학문적 성취에 소피스트들이 공헌을 하였다는 점 은 마땅히 인정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자아는 도덕적 능력과 지적 능 력의 온전한 결합체로서, 만물에 앞서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면, 자아를 그 스스로 결정하는 자결(自決)의 대행자로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한 지력의 해 방은 소피스트들에 힘입은 것이다(Brett, 1912: 56).
그리하여 소피스트들은, 정의와 부정의에 관한 도덕적 판단은 감각과 경 험을 원천으로 하는 지식의 바깥에, 그것을 넘어서 있는 것으로 간주해 버린다. 소피스트들에게 도덕적 판단은 언제든지 보류될 수 있는 것, 그 들의 탐구대상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소피스트들의 견해는 개 인 각자에게 옳은 것으로 지각되는 것을 지식으로 간주하는, 이른바 지 식의 주관성 문제를 제기하게 한다. 고르기아스가 자신의 저작 「존재하 지 않는 것에 관하여, 즉 자연에 관하여」에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 다음의 명제는 지식의 주관성 문제에 관한 소피스트들의 관점을 짐작하 게 한다.
‘[도덕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에 그 무엇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 다도 어쩌다가 그 무엇을 알게 되었다손 치더라도 그 누구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다’(Boorstin, 1993: 223 재인용).
고르기아스에 의하면 인간과 인간의 삶, 그 이외의 어떠한 것도 존재 한다고 볼 수 없다. 현상의 세계 너머의 실재의 세계를 가정하려고 하 는 것은 위의 인용문에 나타나 있는 세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즉, 1)
도덕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2) 만 일에 그 무엇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는 것, 3) 어쩌다가 그 무엇을 알게 되었다손 치더라도 그 누구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르기아스가 보기에 그 세 가지 명제는 ‘그릇된 철학적 주장’에 불과하다(Boorstin, 1993: 223). 그리하 여 소피스트들은 일상의 잗달은 일상사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는 현상 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일상의 삶을 밝히기 위하여 수사학⋅윤 리학⋅정치학 등에 관심을 둔다. 소크라테스를 불경죄로 고발한 인물들 이 소크라테스를 누구보다 뛰어난 소피스트라고 칭한 것으로 보면 소크 라테스 또한 인간과 그 삶에 관하여 누구보다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고 보아야 한다. 다만, 소피스트들은, 소크라테스와 달리, 인간을 인간답 게 하는 조건―도덕적 판단의 기준을 갖추는 일―이 아니라, 삶을 유용 하게 하는 데에 필요한 기술을 갖추는 것에 관심을 둔다. 고르기아스에 게 지식의 주관성은 지식의 상대성과 다르지 않는 것이다. 목하의 수사 학은 삶을 유용하게 하는 대표적인 것으로서, ‘설득의 기술’을 갖추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소피스트들이 보기에 수사학이야말로 가장 ‘인간적 인’ 학문이었던 셈이다(한기철, 2016: 182).
플라톤은 현상의 세계 이면의 실재의 세계를 밝힘으로써 고르기아스 의 그 견해를 바로잡으려고 하였다. 플라톤이 보기에, 소피스트들이 탐 구의 대상으로 삼은 인간의 삶―감각적⋅경험적 세계라고 볼 수밖에 없 는 그 세계―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한시적인 형태를 띠며, 그 점에서 인 간의 삶은 실재의 외양이요 모상에 해당하는 것일 뿐이다. 플라톤에게 소피스트들은 실재의 모상을 실재 그 자체로, 비가시적 세계를 가시적 세계로 둔갑시켜 실재를 지각 가능한 것으로 변모시킨 인물들이다. 소피 스트들이 스스로 지혜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남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실재는 이러저러한 말로 직접 가르칠 수 있는 그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재를 직접 가르칠 수 있다고 보는 소피스트들의 견해는 실재의 존재방식에 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