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존 법리의 한계
이행보조자에 대한 그동안의 논의는 대체로 채권자 보호 또는 피해자 보호에 관한 것이다.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채무자에게 계약당사자가 아닌 제3자 인 이행보조자에 대하여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요건에 대한 논의 및 피해자 보 호를 위해 자신의 과실이 아닌 제3자인 피용자의 과실에 대하여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요건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다. 이행보조자 또는 피용자를 판단하기 위 한 요건을 강화하면 그만큼 채권자 또는 피해자 보호는 약하여지는 것이고, 반 대로 이행보조자 또는 피용자를 판단하기 위한 요건을 완화하면 그만큼 채권자
또는 피해자 보호가 강해지는 것이다.
채권자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이행보조자의 개념 또는 사용자관계를 넓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 즉 이행보조자나 피용자를 보호하는 측면에 대해서는 아직도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경향이 확실하다. 예 를 들어, 헤이그/비스비 규칙 제4조의2 또는 상법 제798조는 해상운송인의 항변 과 책임제한을 원용할 수 있는 당사자로 협의의 이행보조자에 해당하는 “사용 인 또는 대리인”58)만 가능하다고 하여, 이행대행자 또는 독립계약자는 해상운 송인의 항변과 책임제한을 원용할 수 있는 당사자에서 제외하고 있다.59) 채권 자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는 기존 학설상의 요건이 점차 완화되고 있으나, 그 반대의 경우 즉 이행보조자를 보호하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기존 학설상의 구분 이 고수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상운송인의 항변과 책임제한을 원용할 수 있는 이행보조자로 협의의 이행 보조자만을 인정하는 것은, 이들은 운송인의 지휘·감독의 강도가 강하기 때문 에 운송인의 지휘·감독을 받아 행동하는 자들에게는 운송인의 항변과 책임제 한을 인정하고 운송인의 지휘·감독의 강도가 약한 이행대행자 또는 독립계약 자에게는 운송인의 항변과 책임제한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이유라고 보인다. 또 는 운송인의 항변과 책임제한을 원용할 수 있는 이행보조자를 넓게 이해하면 운송인의 채권자 즉 화주 이익의 보호가 약해진다는 점 때문이라고 보인다.
(2) 해상구간 이행보조자 보호 규정 필요성
해상운송과 관련하여 과연 위와 같은 입장이 타당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초 직접계약관계의 원칙을 강하게 인정하는 입장에서는 해상운송인의 이행보 조자라고 하더라도 운송인의 항변과 책임제한의 원용을 허용하지 않는 입장이
58) “사용인 또는 대리인”이 독립계약자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우리 나라 대법원은 “사용인 또는 대리인”은 운송인의 지휘·감독을 받는 협의의 이행보조자 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59) 대법원 2007. 4. 27. 선고 2007다4943판결; 대법원 2009. 8. 20. 선고 2007다 82530 판결.
었으나,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에 속하는 이행보조자 또는 피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 및 효율적인 운송서비스 제고라는 측면에서 헤이그/비스비 규칙의 히말라야 조항이 제정된 것이다. 그런데 헤이그/비스비 규칙은 단지 ‘사용인 또는 대리인’에게만 운송인의 항변과 책임제한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제 헤이 그/비스비 규칙이 제정된지 50년 이상이 지난 시점에서 그러한 입법 원칙이 타 당한지 여부, 즉 이행당사자인 독립계약자는 헤이그/비스비 규칙의 히말라야 조 항을 향유할 수 없다는 입법 원칙이 여전히 유효한 논리인지 재검토가 필요하 다. 다음과 같은 점들에서 해상운송인의 이행보조자 특히 항만 구간의 독립계 약자도 과도한 책임으로부터 보호할 필요성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가. 이행보조자 사용의 예견
해상운송의 경우에는 상당 부분의 운송 업무가 계약당사자가 아닌 이행보조 자 특히 독립계약자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이러한 사실은 계약 단계에서부 터 참여자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행보조자인 독립계약 자를 보호하기 위한 약관이 이미 운송약관에 삽입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 이다. 본인에 해당하는 해상운송인에게는 여러 가지 항변과 책임제한을 허용하 면서 이행보조자(독립계약자)에게는 그러한 보호 장치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자 칫 이행보조자에 불과한 자들이 본인보다 더 큰 책임에 노출될 것이다. 채권자 와 피해자 보호측면에서 “사용의사”의 해석을 넓게 한다거나 “사용관계”를 폭넓게 해석하는 경향을 보여 온 것처럼, 이행보조자의 경우에도 그것이 운송 계약에서 예견된 업무와 관련된 것이라면 협의의 이행보조자인지 또는 이행대 행자인지를 묻지 않고 보호를 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본인인 해상운송인에게 항변과 책임제한이 주어지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이행보조자 의 활동이 위축되거나 용역 단가 상승으로 결국 계약 당사자의 손해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 해상운송환경의 변화
해상운송에서 운송인의 항변과 책임제한을 독립계약자에게도 허용해야 하는 이유는 운송환경의 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헤이그/비스비 규칙 제정 당시에
는 대부분의 해상운송계약은 부정기선에 의한 운송이었고, 운송인의 책임은 화 물이 선적항에서 선박의 난간을 지나는 순간부터 양하항에서 다시 선박의 난간 을 지나는 순간까지인 본선인도조건이 보통이었다. 이 경우 운송인의 책임구간 인 해상운송구간에서 운송인의 이행보조자인 선장과 선원은 협의의 이행보조자 이고, 그 외 하역업자는 대부분 화주에 의해 선임되었기 때문에 운송인의 항변 과 책임제한을 허용할만한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대 부분의 개품운송은 컨테이너를 사용하여 운송되고, 이 경우 대부분의 운송계약 은 선적지 터미널 구간과 양하항의 터미널 구간을 포함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해상운송계약에서 운송인의 책임 구간이 선박에서 터미널까지로 확장 되어온 것이다. 이에 맞추어 선적지와 양하지의 하역업자를 수배하거나 터미널 과 보관계약을 체결하는 당사자는 화주에서 운송인으로 변경된 지 이미 오래된 상황이다.60) 이러한 상황에서 선적지와 양하지의 운송인의 이행보조자에게도 운송인의 항변과 책임제한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이행보조자가 본인인 운송인 보다 더 큰 책임에 노출되게 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다. 항만 구간 위험의 성격
항만 구간의 운송인의 이행보조자를 보호할 필요성은 이들이 노출된 위험이 해상 구간의 위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해상운송인에 게 여러 항변과 책임제한을 허용하는 이유는 해상운송에 따르는 위험의 강도와 빈도가 육상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육상운송과 같이 면책이나 책 임제한 없이 해상운송인에게 과실에 따른 책임을 부과한다면, 결국 운임이 크 게 증가할 것이고 이는 원활한 운송을 저해할 것이라는 경제적·사회적 판단에 서이다. 그런데 항만의 경우도 각종 해일, 태풍에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선박이 항만시설에 충돌하는 경우도 다반사이고, 물에 떠 있는 선박에서 화물 을 적·양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 등이 육상 운송 구간의 위험의 정도 및 빈도와 다르다는 점에서 항만 구간의 이행보조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60) Craig Neame, "UK: What Impact will the Rotterdam Rules have on Ship
Owners?",
<http://www.mondaq.com/uk/x/107610/Marine+Shipping/What+Impact+will+th e+Rotterdam+Rules+have+on+Ship+Owners>, 9th Jan 2020, p.6.
본다.
(3) 소결
결론적으로, 그동안 이행보조자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채권자 또는 피해자의 이익 보호에 관한 논의였다. 이를 위하여 이행보조자 또는 피용자 여부를 판단 하는 기준을 점차 낮춰가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우리 법에서는 이행보조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부분에 대한 논의는 소흘한 편이다. 그러나, 후술하듯이 하도 급법에서 하도급 수급자에게 발주자에게 하도급 대금을 직접 청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처럼, 사회·경제적인 필요에 따라 이행보조자 특히 이행대행 자(독립계약자)의 이익 보호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해상운송의 경 우에는 운송 환경이 크게 변화함에 따라, 개품운송에 있어서 해상운송인의 책 임 구간은 이미 항만구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인식이 굳어져 있고 심지어 내륙 구간까지 해상운송인의 책임 구간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해상운송인의 이 행보조자 특히 독립계약자에게 해상운송인의 항변과 책임제한을 허용할 필요성 이 있는지 검토해 보았다. 생각건대, 채무자의 이행보조자에 대한 책임에서 판 례는 협의의 이행보조자와 이행대행자를 구분하지 않고 단순히 채무자의 사용 의사만으로 이행보조자 여부를 판단하는 것처럼, 이행보조자에게 해상운송인의 항변과 책임제한을 허용하는 부분에서도 협의의 이행보조자(사용인 또는 대리 인)과 이행대행자(독립계약자)의 구분은 불요하다고 보인다.
제2절 현행법상 이행보조자 보호의 문제점
상법상 해상운송인의 이행보조자에 대하여 사용되는 표현으로는, 선장, 선원, 선박사용인, 사용인, 대리인, 실제운송인 등이 있다. 이는 다시 운송인의 지휘·
감독의 정도가 큰 협의의 이행보조자에 속하는 부류와 운송인의 지휘·감독의 정도가 약한 이행대행자 또는 독립계약자에 속하는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