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이념으로서의 수령제
(1) 김일성주의와 김정일주의의 일체화와 혁명적 수령관의 지속
짧은 후계수업과 준비되지 않은 후계자, 그리고 수령의 갑작스런 사 망이라는 권력공백의 위기 속에서 김정은 정권은 권력의 과도국면을 무사히 넘겼다. 이번에도 유훈통치의 효과를 최대한 활용하였다. 이념 적 측면에서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 애국주의를 과도기 이념으로 표방 하였다. 김정일 애국주의의 골자는 김정일이 나라와 인민을 위해 희생 했으니 인민들은 김정일의 헌신성을 따라 배워 김정일에게 진 빚을 김 정은에게 갚아야 한다는 논리다. 북한은 김정일 애국주의를 통해 수령 과 인민 사이의 도덕 의리를 강조함으로써 인민들로 하여금 후계자에 게 채무의식을 갖도록 만들어 이들의 충성을 도모하고자 하였던 것 이다. 북한은 초기에 김정일 애국주의를 설명하면서 인민들에 대한 간
부들의 ‘헌신적 복무정신’을 강조하는 데 방점을 두었다. 그러다가
2012년 5월 13일자 노동신문에서 “우리 시대의 애국은 본질에 있어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라고 하면서 수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 을 정당화하는 혁명적 수령관이 김정일 애국주의의 핵심이라는 점을 드러냈다.42 이와 같이 북한은 김정일 애국주의를 조국, 인민, 후대에 대한 김정일의 사랑관에서 시작하여 종국적으로는 혁명적 수령관에 입각한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 고취로 귀결시켰다.
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pp. 157~159.
42_정성장, “김정은 정권의 통치전략과 우리의 대응방안,” (국방연구원 정책토론회, 2014.6.25.), p. 4.
김정은 역시 권력승계 과정에서 수령-후계자 일체화론의 혜택을 입 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자신이 이념적 해석권을 독점할 수 있는 통치이념을 갖지 못했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에게도 자신만의 통 치이념이 없었지만, 후계자로서 수령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풍부화시키 는 작업을 주도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김정일은 김일성주의에 대한 해석권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이후 주체사상의 계승자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와 같이, 김정일과 김정은은 사상적 기반 에서 차이가 있었다. 반면, 김정은은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의 계승성을 갖고 있지만,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이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측면에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사상적 업적이 없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김정은은 선대 수령들의 사상을 물리적으로 결합한 김일성·김 정일주의를 자신의 통치이념으로 표방하였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보면, 유훈통치의 정당성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는 동시에 취약한 사상적 기반을 다지는 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김일성·김정일주의는 김일성주의(주체사상), 김정일주의
(선군사상)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선 김일성주의와 김정일주의의
관계에 대한 북한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김정일주의는 곧 김일성주의다.43
김일성주의를 바탕으로 김정일주의가 나왔으며 김정일주의에 의하여 김일성주의의 진수가 고수되고 심화발전되게 되었다. 위 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혁명사상은 출발점과 기초도 하나이고 체계와 구성도 일치하며 그 구현을 위한 투쟁도 하나로 통일되 여 있다.44
43_“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힘있게 다그쳐 나가자,” 로동신문, 2012.5.25.
44_“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 만세!,” 로동신문, 201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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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주의는 아무리 파고들어야 김일성주의밖에 없다고 하시 면서 우리 당의 지도사상을 자신의 존함과 결부시키는 것을 극 력 만류했다.45
위와 같이 북한은 김일성주의와 김정일주의를 동일시하고 있다. 그 러면서 김일성·김정일주의는 김일성주의를 계승·발전시킨 사상으로 규정하고 있다.46 이처럼 김일성주의=김정일주의, 김일성·김정일주의
=김일성주의라는 논리가 성립된다면, 결국 김일성·김정일주의=김정일
주의라는 논리로 귀결된다. 북한이 표방한 세 가지 지도사상의 관계가 등식관계라면, 굳이 김일성주의(주체사상)를 지도사상으로 하면 되지 굳이 김정일주의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표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 령의 후계자는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수령의 지도사상을 발전시키 고 풍부화시켜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
정은은 “주체사상은 선군사상의 뿌리이며 선군사상은 주체사상의 빛
나는 구현입니다”47라고 주장하였다. 주체사상에 뿌리를 둔 선군사상 을 만들어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주체사상을 구현하고 발전·풍부화 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승·발전의 논리를 바탕으로 선군사상을 김 정일주의로 정식화하였다.
김정은 역시 김일성주의와 김정일주의의 계승자이면서 이를 발전·
풍부화시켜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 그런데 김정은은 김일성주의와 김정일주의를 계승하면서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는 자기의 사상을 만
45_김정은,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우리 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위 업을 빛나게 완성해나가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 조선 중앙통신, 2012.4.6.
46_“김일성·김정일주의는 김일성주의의 계승발전,” 로동신문, 2013.3.26.
47_김정은, “김정일동지의 위대한 선군혁명사상과 업적을 길이 빛내여나가자,” 로동 신문, 2013.8.25.
드는 데 상당한 시간 제약에 봉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애당초 북한 은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출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강성국가 대문 진입을 선포하는 동시에 김정은 후계체제의 화려한 출범을 기획하였다.
그러나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김일성
출생 100주년 기념식을 후계자 책봉식에서 수령 대관식으로 변경해야 했다. 김정일 사망 직후 북한 지도부 내에서는 이미 수령 대관식을 위 한 준비가 착수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은 김정일 사망 직후 5대 권 력기관 명의로 다음과 같은 보도문을 발표하였다.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 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령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 서 서계신다. 김정은 동지의 령도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 서 개척하시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승리에로 이끌어 오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완성해 나갈수 있는 결정적담보로 된다.48
그런데 공식적인 후계자 책봉식과 달리, 수령 대관식에는 후대 수령 의 사상적 업적이 필요하였다. 김정일처럼 전대 수령의 사상을 발전·
풍부화시켜 이념적 해석권을 독점하는 수준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김정은 시대의 지도사상을 표방해야 하는 수준 정도는 필요하였다. 이 런 맥락에서 김정은은 2012년 4월 6일 수령 대관식 직전에 이른바
‘4·6 노작’을 통해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김정은 시대의 지도사상으로
표방하였다. 이후 북한은 “제1비서로 추대한 것은 천재적인 예지와 정 력적인 사상리론활동으로 절세의 백두산위인들의 혁명사상을 발전 풍 부화하시여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빛내시고”라고 표현으로 김정은의
48_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 각 합동,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 로동신문, 201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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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적 업적을 부각시켰다.49
이와 같이 북한은 4월 11일 당대표자회 개최를 통한 수령 대관식에 맞춰 김일성주의와 김정일주의를 물리적으로 결합한 김일성·김정일주 의를 김정은시대의 지도사상으로 만들었다. 물리적 결합으로 보는 이 유는 우선,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체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 지 않고 있다. 다만, 김정은은 4·6 담화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주 체의 사상, 이론, 방법의 전일적 체계이며 위대한 사상”이라는 정도로 설명하였다. 다음으로,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주의의 내용 역시 자세히 밝히지 않고 있다. “김정일·김정일주의는 로동계급의 혁명사상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루는 완성된 혁명사상으로서 주체시대, 선군시대 의 유일하게 올바른 지도사상, 지도리론, 지도방법”이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수준에서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김일성·김정일주의는 김정은 이 김일성주의와 김정일주의의 계승자라는 점을 과시하는 한편, 김정 일의 급서로 발생한 응급상황에서 수령의 대관식을 치르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예식절차의 일환으로 등장한 통치이념이다. 만약 김일성·김 정일주의가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이 화학적으로 결합한 새로운 지도사 상이라면 나름의 사상적 체계를 갖추고 혁명발전의 변화된 조건에 맞 는 새로운 내용이 반영되어야 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선군사상이 주체사상에 뿌리를 두고 이를 구현하는 사상인 것처럼,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주체사상과 선군 사상에 뿌리를 두고 이를 구현한 사상이다. 그리고 김일성·김정일주의 는 양자의 화학적 결합이 아니라 물리적 결합이므로 김일성·김정일주 의는 주체사상의 혁명적 수령관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
49_“김정은동지를 조선로동당 제1비서로 높이 추대,” 조선중앙통신, 2012.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