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오랜 기간 당에서 후계자 수업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사망 당시 국방위원장과 최고사령관 등 북한군에 대한 권한과 직책은 이미 승계 받은 반면 당 관련 주요직책 승계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도적 뒷 받침도 받지 않았다. 또한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 김일성의 사망, 고난의 행군으로 이어지는 위기상황에서 군심이반을 가장 우려해 왔 다.80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은 북한군이 김일성의 사망으로 등장한 김정일 정권이 지닌 힘의 공백을 메워주면서 위기상황을 돌파하는 주 역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이 처한 위기국면에서 북한군을
80_북한은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 및 소련의 붕괴가 당의 군에 대한 정치사상 사업 소홀 로 군권을 틀어쥐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군내 사상정치 교양사업을 강조하 였다. 로동신문, 199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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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운 효과적인 대응은 김정일 정권의 출범 이후 얼마 동안 그대로 반영되어 이후 북한의 전반적인 운영과정에 군이 공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군부의 역할과 위상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김일성 사망 후 권력승계 기반을 군 중심으로 한 김정일은 1998년 개정된 헌법을 통해 국가주석직을 폐지하고 대신 국방위원장을 사실 상 최고 권력에 올려놓았다. 북한은 새로운 정치체제와 권력구조에 대 해 김일성의 주체위업을 완성해 나가는 “김정일 동지의 사상과 정치를 빛나게 실현해 나갈 수 있는 혁명적 국가기구체계”로 그 성격을 규정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김정일 체제의 정치체제와 권력구조를 구성하고 있는 당·정·군 관계도 일정부분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조선노동당은 여전히 유일한 집권당이며, 최고의 권력기관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하면서 북한정치의 강력한 구심점으로 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받았다. 김정일 정권에 들어와 서도 수령제를 지탱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당적 지배체제를 헌법적 으로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 사후 위기상황에서 나 타나기 시작한 군사우선시 경향은 당·정·군 관계 변화와 함께 실질적 으로 당의 기능을 어느 정도 이상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사 실이다. 김정일의 군중시 정책은 당의 구조 역시 이원적인 구조로 변 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김일성 시대까지 사회주의 국가 정치체제의 핵심인 당이 제 대로 작동했지만, 김정일 시대에 들어서는 당 우위에도 불구하고 당이 완전히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김정일은 당의 시스템적인 측면보 다는 최고지도자 1인이 국가의 중대 사안을 모두 결정해 지시하는 이 른바 독단적인 ‘수령제’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즉, 북한 정권 수립
이후 김일성 시대까지 유지되던 노동당을 통한 국정 운영이 약화되고, 김정일 개인의 군을 앞세운 직할통치가 이뤄진 것이다. 김정일은 김일 성 사망 이후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제도적으로 보여주는 노동당 총비 서, 국방위원장에 차례로 추대됐다. 그는 이런 직책뿐 아니라 노동당 조직비서 및 선전비서와 해당 전문부서의 부장, 노동당 중앙군사위원 장, 국가안전보위부장 등도 겸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안위와 체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직책을 독점한 절대 권력자 김정일 에게 노동당 회의와 같은 제도적 절차는 필요하지 않았다. 북한의 핵 심적인 정책결정기구인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 등은 김일성 시대에는 빈번하게 열렸지만, 김정일 시대에는 거의 개최되지 않았다.
북한이 5년 또는 10년 단위로 개최하며 각종 비전을 제시했던 노동당 대회도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1980년 제6차 대회 가 마지막이었다.
나. 선군정치의 등장과 당적 통제의 약화
김정일 시대를 대표하는 통치방식은 ‘선군정치’이다. 북한은 선군정 치에 대해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국정을 운영해 나가며 군대를 주력군 으로, 기둥으로 하여 사회주의 위업 전반을 이끌어 나가는 정치”라고 설명하고 있다.81 선군정치의 등장은 당·군 관계뿐만 아니라 당·정 관 계에도 변화를 주었다. 1998년 개정된 헌법은 당의 국가기구에 대한 우위를 보장하고 있으면서도 군사문제에 관한 실제적인 운용과정에서 는 국가기관의 군사기구에 상대적으로 권한을 증대시키고 있다.
김정일 시대의 군대는 노동당을 대신해 국정 운영에 전반적으로 관
81_김재호, 김정일 강성대국 건설전략 (평양: 평양출판사, 2000), p.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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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북한군은 대외적인 위협에 대한 안전보장이 라는 고유의 영역을 넘어서 활동 영역을 확장해 비대해졌다. 경제난으 로 운송체계가 마비된 북한에서 군대는 거의 유일한 물류창구 역할을 했고, 주요 공장·기업소의 복구에 참여하는 것뿐 아니라 각 부대 내에 크고 작은 공장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했다. 김정일은 각 군부대에 만 들어진 양돈장(돼지공장), 양계장(닭공장) 등을 자주 시찰하며 성과를 치하했다. 사회주의권 붕괴로 규모가 크지 않았던 대외무역마저 거의 사라지자 군대에서 담당하는 무기 수출입은 북한의 주요한 외화 수입 원이 됐다. 특히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이란, 시리아와 같은 중동 지역 국가에 수출했다.82
김정일 시대 군은 경제분야뿐 아니라 사회적 모범의 모델 역할도 했 다. 김정일 시대 들어 노동당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북한 당국은 노 동당과 인민에게 ‘따라배우기’의 모범사례로 군대를 제시했다. 특히 김 정일 체제는 지도부에 대한 충실성과 사회주의 위업 달성을 위한 인내 심으로 요약되는 ‘혁명적 군인정신’을 따라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화적인 부문에서는 군대만이 갖고 있는 ‘혁명풍’을 모범으로 내세웠다.
즉 김정일 정권은 북한 주민들이 군대 문화라고 할 수 있는 혁명적이 고 전투적인 기풍과 낙천적인 생활 풍조, 근검절약하는 생활 태도 등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83
북한군은 또 최고지도자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대외정책 및 대
82_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2013년 1월 31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이 이란과 시리아 등 일부 국가에 대해 탄도미사 일과 관련 물품을 수출하는 것은 북한의 확산 행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2013.2.1.
83_정성임, “조선인민군: 위상·편제·역할,”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 엮음, 북한의 당·
국가기구·군대 (서울: 한울, 2007), pp. 508~513.
남정책에 대해 대외적인 위협에 대한 대응을 명분으로 일정한 영향력 을 행사했다. 북한은 핵무기, 미사일 등과 같은 군사적 비대칭 수단의 개발을 통해 탈냉전기 국제질서에서 유일 초강대국이었던 미국과 직 접 협상할 계기를 마련하고, 협상에서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데 관 여했다.84 남북한 사이의 협상에서도 북한은 이른바 ‘군부의 반대’를 암시하면서 협상력의 우위를 차지하고자 했고, 남북한 사이의 교류·협 력과 관련한 각종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에서는 군부의 ‘군사적 보 장조치’를 내세워 합의 이행을 지연시키는 등 군부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했다. 이같이 김정일 시대 북한에서 군대는 국정 운영의 중심에서 기능 및 역할을 수행했다.
선군정치가 1990년대 중반 위기 상황에서 김정일 정권을 유지하는 데는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북한을 생존시키는 통치 방식으로서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김정일은 군을 앞세운 선 군정치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으나 이러한 통치방식은 오히려 북한체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과잉군사와 과잉안보라는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 가의 상당 부분의 역량을 군사안보 문제에 집중시키고, 군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한다는 전략은 자원배분의 구조를 왜곡시키고 비효율성을 증가시키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85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내세운 이래 일면 군의 힘이 과도하게 강화된
84_서훈, 북한의 선군외교 (서울: 명인문화사, 2008) 참고.
85_선군정치가 대내적인 부문에서 국가자원이 군사부문에 과도하게 집중하여 자원배분 에 비효율성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국내정치의 불안정을 야기시키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황지환, “선군정치와 북한군사부문의 변화전략,” 국제관계연구, 15권
2호 (2010), pp. 105~134; 김동엽, “선군시대 북한의 군사지도·지휘체계: 당·국가·
군 관계를 중심으로,”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 p.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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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86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에서는 당 우위 의 당국가체제라는 사회주의 체제의 통치유형이 무색할 만큼 당의 위 상과 역할이 약화되었다. 당의 주요 직위는 공석인 상태로 남겨졌고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당정치국 전원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대신 김정 일의 선군시대에는 군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군을 통해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군이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김정일이 군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고 당의 군에 대한 통제 기 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었기 때문이다.87
김정일 시기 군부의 위상 강화는 유일지배체제에 충성한다는 전제 하에 기능하는 것일 뿐 최고지도자의 권력과 위상을 침해하거나 위협 하지는 못하였으며 북한이 당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 군은 여전 히 당의 통제를 받는 도구라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따라서 김정일은 군부 인사들 역시 권력 분산·통제 정책을 통해 엘리트들이 정치적 역 량을 키우는 것을 차단하고, 상호 간 견제와 균형을 유지토록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김정일 시기에도 당적 통제가 약화되고 군부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해도 군이 당의 대신할 수는 없는 위치였다.
종합적으로 김정일 시기 북한 정치체제와 권력구조에 나타난 변화 의 핵심은 당·군 관계에서 당의 우위는 그대로 유지된 가운데 군의 상 대적 위상 강화와 역할 증대이다. 이 시기 북한에서는 국방위원회의 위상 강화 등 국가군사기구에 대한 가시적인 조치가 있었고, 선군정치 로 군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당의 기능과 위상의 외형상 약화에
86_선군정치라고해서 당과 군의 지위 변화나 당에 의한 군의 통제방식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군정치에 대한 이해는 이대근, 북한 군부는 왜 쿠데타를 하지 않나
(서울: 한울, 2003); 김동엽, “선군시대 북한의 군사지도·지휘체계: 당·국가·군 관계
를 중심으로.” 등 참조.
87_김동엽, “북한의 군사지도·지휘체계: 당·국가·군 관계를 중심으로,” p.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