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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시대 당·정·군 관계

가. 김정은의 권력승계와 당 기능의 정상화

김정일 사망 전부터 김정은에 대한 권력승계는 당을 중심으로 제도 적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며 이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면 김정 은은 경험이나 개인적인 능력 면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에 비해 상대적 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어 당의 시스템에 의존하여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권의 안정성을 유지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우선 노동 당 규약이나 사회주의 헌법에 최고지도자의 선출에 관한 조항을 별도 로 명기하지 않은 북한은 권력승계를 위한 해법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왔다. 과거에도 북한은 권력승계 과정에서 후계체제를 정착시키 기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등 권력승계의 제도화 기반을 마련했다.

북한의 헌법과 당규약은 실질적으로 후계체제의 확립에 관한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사안이다.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를 위해서 헌법과 당 규약이 재정비되는 것은 권력승계의 제도화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현 상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를 위해 김정일이 사망하기 전인 2009년에 이미 헌법을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에 맞추 어 개정하였다. 그리고 2010년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노동당 규

88_위의 글, p. 88.

약을 개정하였고, 김정일 사후인 2012년 제4차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추가로 개정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하자마자 김정은으로 권력승계는

이미 준비된 개정 헌법과 당규약에 따라 제도적으로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었다.89 2011년 12월 30일에 김정은은 당·정·군의 직책 중 가 장 먼저 북한군 내 최고위치인 최고사령관직에 올랐다. 이어 김정은 은 2012년 4월 11일 개최된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당 최고직책인 노 동당 제1비서와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 겸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 원장에 추대되었다.90 또한 잇달아 열린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제12 기 제5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국가의 최 고직위에 올랐고 7월 17일에는 공화국 원수가 되었다. 이로써 김정은 은 북한의 당·정·군 모두 최고의 위치에 오르면서 권력승계를 사실상 완료하게 된다. 북한은 김정일이 사망한 지 4개월 만에 김정은으로의 제도적 권력승계를 완료하고 2012년 4월 김정은 체제가 공식 출범한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으로 권력승계가 완료된 2012년 4월 이후 당의 유 일적 영도체계를 강조하면서 3대 세습의 정통성 획득에 함께 나서고 있다. 김정은은 자신의 시대 개막을 알리는 소위 ‘4·6 담화’에서 “조선 로동당을 김일성·김정일의 당으로 강화 발전시키는 데서 중요한 것 은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우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89_김정은이 북한 정치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으로 알려져 있으나, 김정 일은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을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 장에 임명하여 공식적으로 후계자임을 대내외에 알렸다.

90_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최고령도자인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 를 로동당 제1비서로 추대했다”고 보도하면서 ‘로동당 제1비서인 김정은 동지를 수 반으로 하는 당의 령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김정은 제1비서를 북한의 최고령도자로 공식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 2012.4.11.

“전당에 당중앙의 유일적 령도 밑에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혁명적 규 률과 질서를 엄격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였다.91 앞서 2012년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당사업에서 우선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사업은 오 늘도 앞으로도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를 튼튼히 세우는 것”이라고 언 급한 바 있다.92 2015년 신년사에서도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를 세우 는 사업을 끊임없이 심화시켜 전당이 당중앙과 사상과 숨결도, 발걸 음도 같이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93 이는 제도적 권력승 계 이후 김정은의 부족한 권위를 보완하기 위해 당을 중심으로 각종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김정은이 최고지도자에 오른 것은 전통 적 권위에 따른 것이지만, 제도적 절차와 과정의 합리성과 함께 무엇 보다 당을 통해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개정된 노동당 규약을 통해 김정일 시기 선군정치를 거치며 비 대해진 군을 포함하여 당의 통제를 강조함으로써 김정은 체제가 노동당 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94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와 달리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군에 대한 당의 영도와 지도가 더욱 강화되어 북한은 정상적인 ‘사회주의 당국가 체제’

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직위를 갖고 있는 김정은은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를 일면 계승하고는 있으나, 동시에

91_김정은,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우리 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위 업을 빛나게 완성해 나가자(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하신 담화, 주체 101, 2012.4.6.),” 󰡔로동신문󰡕, 2012.4.7.

92_“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2012년을 강성부흥의 전성기가 펼쳐지는 자랑

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 󰡔로동신문󰡕, 2012.1.1.

93_“신년사,” 󰡔로동신문󰡕, 2015.1.1.

94_임재천, “노동당 제3차 대표자회와 당 규약 개정: 규약 개정의 배경과 의도 및 특징을 중심으로,” 󰡔국제문제연구󰡕, 11권 1호 (2011), pp. 9~12.

군과 정부와의 관계에서는 당의 영도를 명확히 하고 있으며, 경제발전 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오히려 내각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권력승계가 마무리되고 세습정권이 공고화되면서 당 기능의 정상화 는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이는 김정은의 공개활동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도 김일성, 김정일이 과거에 했던 것처럼 활발한 공개 활 동을 벌이고 있다. 김정일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유훈통치 기간 중 매년 평균 43회의 공개활동을 벌였다. 김정일은 1998년부터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기 전인 2008년까지 매년 평균 81회가 넘는 공개활동 을 했고,95 후계자 내정 이후 2009년부터 사망하던 2011년까지는 병든 몸을 이끌고 평균치의 2배에 달하는 매년 평균 152회 이상의 공개활동 을 벌였다.96 김정은 역시 아래 <표 Ⅲ-1>에서와 같이 최고지도자로

올라선 2012년 151회의 공개활동을 했고,97 2013년에는 전년도 공개

활동 횟수를 넘어서는 209회의 공개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그의 공개

활동은 2014년에도 172회이며 2015년도 10월까지 129회에 달하면서

김정은의 공개적 활동 강화는 지속되고 있다.

95_이관세, 󰡔현지지도를 통해 본 김정일의 리더십󰡕 (서울: 전략과 문화, 2009), p. 283.

96_통일연구원, 󰡔김정일 현지지도 동향: 1994~2011󰡕 (서울: 통일연구원, 2011) 참고.

97_통일연구원, 󰡔김정은 동향: 2010~2012󰡕 (서울: 통일연구원, 2012) 참고.

표 Ⅲ-1 김정은 공개활동 분야별 분포

순위

2012년 (총 151회)

2013년 (총 209회)

2014년 (총 172회)

2015년 10월 (총 129 회) 분야 비율 횟수 분야 비율 횟수 분야 비율 횟수 분야 비율 횟수 1 군(軍) 32.5% 49회 경제 34.0% 71회 경제 36.0% 62회 경제 44.9% 58회

2 경제 24.5% 37회 군(軍) 29.7% 62회 군(軍) 32.5% 56회 군(軍) 30.2% 39회

3 사회

문화 21.8% 33회 사회

문화 21.0% 46회 사회

문화 16.9% 29회 정치 13.2% 17회

4 정치 19.2% 29회 정치 12.5% 26회 정치 14.0% 24회 사회

문화 7.8% 10회

5 대외 2.0% 3회 대외 1.4% 3회 기타 0.6% 1회 대외 2.3% 3회

6 기타 - - 기타 0.4% 1회 대외 - - 기타 1.6% 2회

자료: KDI 국제정책대학원·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2015 DPRK Country Report󰡕

(세종: KDI 국제정책대학원, 2015), p. 35; 통일부 정세분석국 자료 참고 추가 작성.

그러나 김정은은 김정일과는 공개활동 행태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선군정치를 주창했던 김정일이 공개활동의 절반 이상을 군 관련 활동 에 치중했던 반면, 김정은은 군대와 경제 현장을 거의 비슷한 빈도로 찾고 있다. 김정은도 집권 초기에는 군사부문의 공개활동이 많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부문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 <표 Ⅲ-1>에서 볼 수 있듯이 김정은은 2012년 당시부터 경제부문 시찰활동이 군 시찰 횟 수와 근접하기 시작해 2013년부터 2015년 10월까지는 경제부문 시찰 횟수가 군 시찰 횟수를 넘어서고 있다. 특히 김정은은 2013년 4월 한 반도 긴장 국면이 다소 완화되면서 군부대보다는 경제 현장을 더 빈번 하게 찾고 있다. 같은 해 5~6월 이뤄진 공개활동 가운데 90%는 경제 현장이거나 경제 분야와 관련된 군부대 시찰이었다.

특히 2015년에는 당 창건 70주년을 계기로 건설 등 전시성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인민들에게 한 단계 발전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 김 정은은 활발한 공개활동을 벌이며 부문별 성과를 독려한 것으로 보 인다. 이처럼 경제부문에서 공개활동이 증가된 이유는 이 부문에서의 성과를 통해 ‘인민생활 향상’을 꾀하고 정권의 안정성을 증대시키기 위 함으로 풀이된다. 또한 군부문의 시찰활동이 줄어든 이유는 김정은 체 제 들어 당의 위상 강화에 따른 당·군 관계의 변화 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나. 당을 통한 조직적 통제 강화와 정·군 위상의 변화

김정은 시기에 들어서면서 당의 조직을 확대하고 기능과 역할의 활 성화로 당을 통한 통제체제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조직, 인사, 분배 등에 대한 당 중심 체제의 역할 강화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 통적인 당의 인적, 조직적, 물적 통제는 더욱 강화된 반면 정·군 관계 에 있어서는 미세한 힘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수령제를 중심으로 실제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데 나타나고 있는 당·정·군 관계의 변화를 당적 통제의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김정은 체제가 시작됨과 함께 당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제도적 정당성에 의존해 국가를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 여주는 것이다. 제도적 정당성 차원에서 김정은 시대에 들어 가장 눈 에 띄는 변화는 노동당 관련 회의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주요 사항을 결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국가에서 당 정치국 회의와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가장 중요한 정책결정 기구이다. 노동당 대회 또는 노동당 대표자회는 북한의 중·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과 당·정·군 핵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