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과 자율 개념은 칸트의 도덕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칸트의 도덕은
‘정언명법’148)으로서, ‘목적의 원리’와 ‘자율의 원리’는 인격의 존엄성을 함 의하는 정언명법의 두 가지 원리이다. 말하자면 칸트에게 있어서 도덕의 본질은 목적적이자 자율적인 인간의 초월적 본성에 근거한다.149)
칸트에 따르면, "현상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고, 초 월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유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150) 이러한 사실은 인간을 필연적인 모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말하자면 인간은 자연 법 칙에 구속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유로울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되는데, 이는 칸트에게 있어서 인간이 감각적 욕구를 지닌 존재이자 동시에 도덕을 지향하는 초월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초월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순수 이 성 곧 도덕적 이성의 존재이며, 칸트에게 있어서 이성적인 모든 존재는 목 적 그 자체이다.
인간성과 모든 이성적인 본성 일반은, 목적 그 자체라는 이 원칙은(인간 각 자의 행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최상의 조건인데) 경험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다.
첫째, 이 원칙은 그 보편성 때문에 이성적인 존재 일반에게 적용되고, 따라서 경험은 그것에 대해 어떤 것을 규정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151)
즉 목적 그 자체는 객관적인 목적을 뜻하고, 또한 객관적인 목적은 도덕 법칙을 의미한다. 따라서 목적은 주관적 경험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 다. 목적 그 자체는 인간의 순수 이성 곧 도덕적 이성이자 초월적 자아로 부터 도출되는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서 이성적 존재의 근거가 감각 경험
148) 정언 명령(또는 정언 명법)의 정식들
(1)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에 의해 보편적인 법칙이 되어야 할 것처럼 그렇게 행위하라.
(2) 너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서 대우하고, 결코 단지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3) 너의 준칙을 통하여 너 자신이 항상 보편적인 목적의 왕국의 입법가로서 그렇게 행위하라.
149) I. Kant, 『윤리형이상학 정초』, IV104; p.185.
150) I. Kant, 『순수이성비판』, BXXVII-BXXVIII; pp.189-190.
151) I. Kant, 『윤리형이상학 정초』, B70 IV431; p.151.
의 세계를 초월해 있다는 것은, 인간이 경험 세계 안에서도 결코 수단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즉 도덕적 이성을 가진 모든 인간은 그 자체 로 목적의 주체들152)이다. 따라서 목적의 원리를 따르는 인간은 모두 목적 의 주체임을 의미한다.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동 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 라.153)
이처럼 목적의 원리는 이성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그 자체로 함의하는 원 리이다. 인간은 일반적인 선, 다시 말해 어떤 주관적인 목적을 위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을 수단화하거나 조건화해서는 안 된다. 즉 목적 의 원리는 인격의 절대적인 가치를 드러낸다.154)
사실 경험 세계에서 접하는 모든 현상들은 인간에 의해 가치가 부여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조건적인 가치를 지닌다. 말하자면 현상이 란 가치를 부여하는 존재를 떠나서는, 개념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인격은 현상적 사물과 동일하게, 다른 대상에 의하 여 가치가 부여되거나 상실될 수 없다. 인간은 현상적 사물들과 달리, 초 월적인 본성을 지닌 존재로서 이러한 본성은 경험 세계에서 인간의 순수 이성에 의해 확인된다.
‘목적의 원리’는 순수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순수 이성은 그 자체로 절대적 가치이다. 따라서 칸트에 게 있어서 이성적인 인간은 도덕법칙의 성격과 동일한 무조건적인 존재이 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인간을 단순한 현상적 사물로 인식하 지 않는다. 이는 모든 인간을 보편적인 존재로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내가 타자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타자가 나를 대함에 있 어서, 그 태도가 인격적이고 도덕적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152) I. Kant, 『윤리형이상학 정초』, B70 IV431; p.151.
153) I. Kant, 『윤리형이상학 정초』, B67; p.148.
154) 박찬구 외 옮김, 『윤리학: 옳고 그름의 발견』, (서울: 울력, 2010), p.261.
이처럼 우리가 인간에 대해 의식하는 고결한 인격 가치는 경험 세계의 가치와는 비교될 수 없는 본래적인 근거를 지닌다.
어떤 것이 목적 그 자체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지닌다면, 그것은 한낱 가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적 가치, 다시 말해 존엄성을 갖는다.155)
따라서 인간의 인격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타자 를 목적 그 자체로 의식한다. 예컨대 타자에 대한 인간의 희생적인 행위는 타자의 인격을 목적 그 자체로 의식한 결과이다. 인간은 오직 초월적인 관 점에서 타자의 처지를 나 자신의 처지로 의식한다. 경험적 한계를 넘어서 는 인간의 초월적 의식에 의해 인간은 모든 인간이 무조건적인 존재로 대 우받아야 함을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인다. 요컨대 목적의 원리는 존엄한 인간을 위한 기초적인 도덕 원리이다.
이 같은 인격 가치는 또한 칸트의 ‘자율의 원리’를 통해서도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된다. 기본적으로 칸트의 자율 개념은 ‘자유’156) 개념과 동일 시되며, 이는 곧 ‘의지의 자율성’이다. 칸트는 스스로에게 명령하는 방식에 서 인간의 자율성을 찾는다.157) 요컨대 인간이 자기 자신이 명령한 법칙에 종속되는 일은, 목적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인격 존엄성의 근거가 된다.158) 칸트의 ‘자율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의지가 자기의 준칙에 의해 자기 자신을 동시에 보편적으로 법칙 수립하는 자로 볼 수 있는, 그런 준칙 이외의 것에 따라서는 행위 하지 말라.159)
즉 칸트는 인간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자기 입법성’으로부터
155) I. Kant, 『윤리형이상학 정초』, B77 IV435; p.159.
156) “여기서 칸트의 ‘자유’ 개념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의적 인 자유 개념’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법칙에 따르는 ‘자율로서의 자유 개념’이다.” (김영진, 「칸 트에 있어서 정언명법의 정당화 문제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p.46 151번 주석)
157) 칸트는『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자율’ 개념과 ‘자유’ 개념을 동일시한다.
158) I. Kant, 『윤리형이상학 정초』, B79 IV436; p.161.
159) I. Kant, 『윤리형이상학 정초』, B76; p.157.
도출시킨다. 곧 자기 입법성이란 내가 세운 하나의 준칙이 보편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다시 말해 내가 입법한 행위 원리가 언제라도 내가 따 를 수 있는 보편적 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나로부터 발생된 법 칙의 구속력160)은 그 법칙이 바로 나 자신에 의해 입법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자유롭다.
따라서 칸트의 ‘자율성의 원리’는 타율적인 원리와는 전혀 다른 것이 다.161) 예컨대 타율성의 원리를 따르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외부의 권위 에 의해 결정한다. 행위의 구속력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행위는 비록 행위 자가 그 권위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명백하게 자유가 상 실된 행위이다. 또한 칸트는 타율적인 행위가 인간으로 하여금 숙련된 지 식과 육체적인 수고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의사의 자율 원리에 따라서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가는 평범한 사람에게도 아주 쉽게 아무 주저 없이 통찰될 수 있다. 그러나 의사의 타율의 전제 아래서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가를 통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세상사에 대한 지식 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 무엇이 의무인가는 누구에게나 자명하게 드러나지 만, (…) 실제로 이익에 맞춰진 규칙을 적절히 예외를 인정하면서도 알맞은 방 식으로 생의 목적에 적중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영리함을 필요로 한다.162)
한마디로 말해서 자율의 원리로 작동된 도덕법칙의 경우에는 단지 그 법 칙이 ‘보편 순수한가’만이 문제가 되나, 타율의 원리에 의한 명령의 경우에 는 그것이 외적 강제이기 때문에, 욕구하는 대상을 실현시킬 힘과 능력 등 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163) 곧 타율의 원리는 현상적 존재들 간 의 계급적 차이를 전제할 수밖에 없고, 결국 이러한 원리는 인간에게 있어 서 비인격적이고 불평등한 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요컨대 구속력이 외부 로부터 주어지는 타율의 원리는, 구속되는 대상의 인격이 훼손될 수 있음
160) 구속력은 발생 근원에 따라 인간에게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자 율적 강제성’은 그 자체로 도덕적이지만, 자기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타율적 강제성’은 도덕적 의 무와 거리가 멀다.
161) I. Kant, 『실천이성비판』, A59; p.95.
162) I. Kant, 『실천이성비판』, A64; p.100.
163) I. Kant, 『실천이성비판』, A65 V37; p.101.
을 함축한다. 따라서 타율의 원리는 현상적인 존재자들의 관계에서 비롯되 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칸트는 자율의 원리를 자아의 이중적인 존재 조건을 토대로 설명한다.
칸트에 따르면 초월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현상적인 ‘나’에게 도덕적 명령 을 부과하는 권위를 갖는다. 이는 칸트에게서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초월적 자아인 내가 현상적 자아인 나에게 도덕적 실천을 명령하는 것이다. 여기서 ‘실천적 지 침을 부과하는 나’와 ‘실천을 완수해야 하는 나’는 동일한 하나의 주체이 다. 따라서 도덕 명령은 본래적인 나로부터 도출된 것이므로 외적 강제가 될 수 없다. 도덕법칙은 인간 자신의 보편적 명령이다.
감성 세계의 존재자들의 원인성 그 자체의 규정은 결코 무조건적일 수 없었 다. 그럼에도 조건들의 모든 계열에 대해 반드시 무조건적인 어떤 것, 그러니 까 또한 자기를 전적으로 규정하는 원인성은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절대적 자 발성의 능력으로서 자유의 이념은 순수 사변이성의 필요가 아니라, (…) 분석 적 원칙이었다. 그러나 현상들로서 사물들의 원인들 가운데서 절대적으로 무조 건적인 원인성 규정은 발견될 수 없으므로, 자유 이념에 알맞은 실례를 어떤 경험 중에서라도 제시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 롭게 행위하는 원인이라는 사상(생각된 것)만을, 우리가 이 사상을 다른 한편 으로는 예지체로도 고찰되는 한의 감성 세계의 한 존재자에게 적용할 때에, 변 호할 수 있었다.164)
즉 칸트는 자유의 원리를 인간의 규제적 도덕 원리로 삼는 것이 모순되 는 것이 아님을 자아의 존재 조건을 통해서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 이 초월적인 존재인 한에서 초월적 자아가 명령하는 무조건적인 도덕원리 는, 인간을 그 자체로 자유롭게 하는 인격적 행위의 원리이다.165)
이처럼 자율성의 원리는 인간이 초월적 주체임을 나타낸다. 인간은 타고 난 경향성을 포함하여 어떠한 외부 세력에 의해서도 규정될 수 없는 자유 로운 존재이다. 칸트에게 있어서 자발적으로 도덕법칙을 따르는 인간이 그
164) I. Kant, 『실천이성비판』, A84 V49; p.117.
165) I. Kant, 『실천이성비판』, A84 V49; p.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