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중요한 사실은 인간이 그 자체로 파악 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라는 것 이다. 칸트에 의하면 우리가 인식한 ‘나’는 현상적인 ‘나’로서, 진정한 ‘나’
가 될 수 없다. 우리에게 인식된 현상적 자아는 자연적 인과법칙에 의해 조건적으로 규정되고 해석된, 피상적인 ‘나’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그것도 인간이 자기에 대한 내적 감각을 통해 얻은 지식에 의거해서, 인간 그 자체가 어떠한 것인가를 인식한다고 감히 주장 해서는 안 된다. 무릇, 인간은 자기 자신도 이를테면 창조하는 것도 아니고, 그 에 대한 개념을 선험적으로가 아니라 경험적으로 얻는 것이므로, 그가 내감에 의해, 따라서 오로지 그의 자연 본성의 현상에 의해서, 그리고 그의 의식이 촉 발되는 방식대로만, 자기에 대한 지식도 얻을 수밖에 없음은 자연스런 일이 다.215)
즉 칸트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인식해서 얻은 내용들이 단지 현상 세계 의 ‘나’에 대한 정보임을 지적한다. 칸트에 따르면 제한된 인간의 인식 능 력은 사물 그 자체를 파악하지 못한다.216) 칸트는 그의 초월 철학에서 먼 저 인간 인식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토대로 인간의 본래적인 의미에 대 해 밝힌다.217)
215) I. Kant, 『윤리형이상학 정초』, B106; p.189.
216) I. Kant, 『순수이성비판』, BXIX; p.184, 『윤리형이상학 정초』, B106; p.189.
칸트 철학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그가 스스로 던진 1) 나는 무엇을 알 수 있 는가, 2)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3)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세 가지 물음 및 이 모두를 종합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속에 압축적으 로 표현되어 있다. 칸트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임을 이미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218)
즉 칸트의 초월 철학은 기본적으로 인격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전제되 어 있다. 이러한 믿음을 토대로 칸트는 인간이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임을 주장한다. 요컨대 칸트에게 있어서, 인간은 자신의 보편적인 가치를 의식 하는 초월적인 존재이자, 타자와의 윤리적인 삶을 지향하는 도덕적인 존재 이다.219)
실제로 인간은 일상적인 삶에서 보편적인 도덕 가치를 지향하고, 자기 자신의 도덕적인 권리들을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인다. 인간은 현상 세계 속에서도 그 자신을,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는 칸트 에게 있어서 인간이 경험에 근거하지 않는 순수 이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 문이다. 즉 인간은 이성에 의해 보편적으로 사고하며, 그 자신도 보편적인 존재로 생각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긴 자신을 ‘인간이기 때문에 존엄한 존재’라고 보편타당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자기 자신을 보 편적 ․ 초월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해 초월적 자기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초월적 자기의식은 현상적 자아가 아닌 초월적 자아에 대한 의식 이자, 곧 자기 자신을 초월적인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인간은 초월적 자 기의식을 통해서 그 자신을, 현상적 제약을 넘어서는 존재로 생각할 수 있 다. 따라서 초월적 자기의식은 인간 자신으로 하여금 보편적인 도덕을 지 향할 수 있게 해준다.
217) 문성학을 비롯한 많은 칸트 해석가들은 칸트철학의 근저에 지극히 인간학적인 사고가 놓여 있 음을 발견한다. 칸트 철학에 있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물음은 형이상학과 도덕, 그리고 종교 등의 근본 물음들을 포괄하는 물음이다. (문성학, 『칸트 철학의 인간학적 비밀』, (울산대학교 출판부, 1997), pp.31-33 참조)
218) 박찬구, 「칸트의 인격론」,『인격』, p.96.
219) I. Kant, 『윤리형이상학 정초』, B65; p.146.
강영안은 초월적 자아의 실현을 도덕에 임하는 인간의 태도를 통해 설명 한다. 요컨대 경험 세계에서 인간이 도덕을 실천해야 한다고 의식할 때, 인간은 초월적 존재로서 자아를 실현한다.
도덕적인 기본 태도는 예지체로서 인간의 태도이다. 그것은 인간이 예지적 주체로서 취하는 태도와 행위에 달려 있다. 칸트에 따르면 예지적 주체에는 시 간적 선후, 생성과 변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예지적 능력으로서의 순수 이성은 시간 형식과 시간 연속의 조건에 종속되지 않는다. (…) 예지적 주체는 말하자면 무시간적 주체이다. 이것은 도덕적 기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시간 중 의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예지적 주체의 작용은 (…) 자연 법칙을 벗어나 있고, 따라서 자유롭다. 자유는 오직 예지체로서의 인간, 예지적 무시간적인 주체에게만 귀속된다.220)
따라서 경험 세계에서 도덕을 의욕하고 실천하는 인간은 그 자체로 초월 적인 존재이다.221) 칸트에게 있어서 도덕을 따르고자 하는 태도는 이성을 지닌 존재라면 누구나 의욕할 수 있는 태도이다.222) 예컨대,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실천할 때, 그때의 ‘나’는 경험 세계에서 이성적이자 초월적 인 존재가 된다. 따라서 초월적 자기의식과 도덕적 실천은 인간의 실제적 인 삶에서 인간 자신을 본래적인 존재로 살아가게 한다.223)
이렇게 볼 때 초월적 자기의식은 인간의 인격적인 삶을 위해, 우리가 갖 추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의식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초월적 자 기의식은 학생들의 올바른 자의식 또는 도덕적 인격 형성과 관련하여 도덕 교육적 관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220) 강영안, 『도덕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서울:소나무, 2000), p.95.
221) I. Kant, 『윤리형이상학 정초』, IV455; pp.196-197.
222) I. Kant, 『윤리형이상학 정초』, B100-101; pp.182-183.
223) 박찬구, 「칸트의 인격론」, 『인격』, p.10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