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사적경제활동 개관
대외무역 부문의 사적경제활동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개인(특히 돈 주)이 국영 무역회사(당· 군· 정 기관 소속)의 무역지도원 또는 국영 무역회사 산하의 외화벌이 기지(또는 외화벌이 사업소)의 대표자 신분 을 획득하고 사실상의 개인 무역업(수출업)을 영위하는 사례이다(그림
Ⅳ-1 참조). 특히 전자의 일부, 후자의 대부분은 광산, 탄광, 수산기지처 럼 자체적으로 수출원천을 창출하는 개인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이 경우 대부분은 돈주 자신의 자금을 투자하여 사업체를 설립하고 개별 노동자도 고용하며 필요할 때는 자체적으로 설비투자도 행한다. 개인광 산이나 개인수산기지를 운영할 정도로 사업력과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 은 개인은 무역지도원의 신분을 획득, 자신의 자금 혹은 주변에서 빌린 돈 등으로 광산, 수산기지에서 수출품을 매집해 중국 등지에 수출하고 수익금의 일부를 외화벌이 사업소 또는 국영 무역회사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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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수출의 영역에서도 사적경제활동이 전개되지만 수입의 영역 에서도 사적경제활동이 펼쳐진다. 가장 단순한 것은 돈주가 풍부한 자금 력을 기반으로 중국에서 상품을 대규모로 수입해 자신의 휘하에 있는 중간 상인들을 통해 종합시장 등지에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 경우 돈주가 국영 무역회사의 산하 조직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수입과 국내 상업이 연계된 사례이다.
즉, 중앙당, 인민무력부, 내각의 각 성·위원회 등 중앙의 이른바 당·군·
정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무역회사들이 중국에서 상품을 수입해 국내에 서 판매하는 경우이다. 이는 7·1 조치 이후 허용되었다.
그림 Ⅳ-1 국영 무역회사와 민간 외화벌이 사업소의 연계 방식
출처: 양문수, 『북한경제의 시장화: 양태, 성격, 메커니즘, 함의』 (파주: 한울, 2010), p. 165 의 그림을 수정.
이 때 무역회사는 상점이나 식당(합의제 식당), PC방, 당구장, 가라 오케 등의 봉사업체(서비스업체)를 새롭게 설립할 수 있다. 이들 업체 는 무역회사가 직접 운영할 수도 있고, 자금력이 있는 돈주에게 명의를 대여하면서 운영을 위탁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들 돈주가 운영하는 식당, 상점, 서비스업체들은 주로 중국에서 설비, 원자재, 제품을 수입 해 북한주민들을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하게 된다. 물론 이렇게 민간에 게 맡기지 않고 국영 무역회사가 직접 국내의 도·소매상을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나. 사적경제활동이 공적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
(1) 국가 재정 확충 효과
국영 무역회사는 자신의 산하에 있는 외화벌이 사업소로부터 수취한 수익금과 자신이 직접 벌어들인 수익금을 합쳐 자신의 상부조직인 당·
군·정 기관을 통해 국가에 납부한다. 이는 수출을 통한 외화획득의 계획목표 달성을 위한 것, 즉 공식적인 것(조세)과 혁명자금 납부와 같은 비공식적인 것(준조세) 두 가지로 대별 가능하다.
평양에서 2013년까지 대외무역 관련 업무에 종사했던 탈북자 D씨 는 국영 무역회사가 국가가 바쳤던 납부금에 대해 “관세와 납부금을 다 합치면 수익금의 17~18%을 바쳤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 때 무슨 일이었는지 몰라도 30%를 넘은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무역회사측에서 강하게 문제제기를 해서 다시 낮춰진 적도 있다”고 밝혔다.151)
151) 2016년 8월 필자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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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에서 보았듯이 무역회사라고 해서 준조세 납부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특히 무역회사의 상부조직인 당·군·정 기관들은 최고 지도 자에게 납부하는 혁명자금의 부담이 결코 만만치 않다. 시간이 갈수록 조세인 국가납부금의 납부보다는 준조세인 혁명자금의 납부가 더 중요 시되고 있다.
한편 개인이 사실상 자신의 소유인 광산 또는 수산기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승인하는 권리를 획득해야 한다. 광산이든 수산기지 든 법적으로는 국가 소유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가 필요하다. 하나는 개인광산 또는 개인 수산기지라도 특정 국가 기 관·기업소의 소속으로 편입되어야 한다. 명의를 빌리고 금전적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또 하나는 국가 및 권력기관에 납부하는 일종의 면허료 (license fee)이다. 사실상의 세금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 액수가 엄청나다.
“바다에서 조개 양식을 하려고 하면 보통 2백~3백 헥타르 정 도를 확보해야 한다. 쓸모없는 지역도 많은데 이를 딱 고를 수 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100헥타르(30만 평)당 1,200달러의 세금을 국토부에 내야 했다(2005년 기준). 이 밖에도 총참모 부에 바다 출입 허가를 위해 약 2천 달러, 국가보위부에 바다 출입증을 위해 500~600달러, 4군단 경비국에 500달러 정도 바쳐야 했던 것 같다. 세금인지 뇌물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엄 청난 돈이 사업비로 필요했다.”(탈북자 M씨)152)
그런데 북한당국은 조세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러한 준조세의 일부도 공적경제 운영, 특히 대규모 건설사업에 투입하는 사실상의 재정자금 으로 사용한다. 이처럼 무역 분야의 사적경제활동은 다양한 경로로
152) 2014년 7월 필자 면담. 김석진·양문수, 『북한 비공식경제 성장요인 연구』 (서울:
통일연구원, 2014), p. 62.
국영 무역회사를 통해 국가 재정을 확충하는 효과가 존재한다.
(2) 가동률 제고 및 고용 증대 효과
무역부문의 사적경제, 특히 국영 무역회사 산하의 특정 외화벌이 기지를 운영하는 돈주들의 경제활동은 자신들 또는 수입상대방의 투자 등을 통해 자신들이 직접 운영하는 광산, 수산기지 등의 가동률을 제고 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아울러 이러한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광산, 수산기지 등의 운영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동원도 필수적인 바, 이들 은 대개 이 분야 또는 타 분야의 국영 부문에서 일감이 없어 사실상의 실업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 많다.
또한 외화벌이 사업소가 자신들이 직접 운영하지 않는 외부의 국영 제조업체에게 임가공을 의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청진에서 외화벌 이 사업소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탈북자 A씨는 자신의 회사가 청진제 강소 회전로 직장에 삼화철이라고 하는 주체철의 임가공을 의뢰한 경 험을 전하면서 북한에서는 외화벌이 사업소에서 삼화철을 많이 만들어 중국에 수출한다고 밝혔다.153)
반면에, 앞에서 보았던, 광산, 수산기지에서 불법적으로 절취, 유용 한 제품을 수출품을 매집하는 현상은 해당 광산이나 수산기지의 가동 률을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효과를 발생시킨다.
153) “우리 외화벌이 사업소에서 무산광산에서 나오는 철 정광을 구입하고 여기에 점토 와 석회석을 사서 섞어서 알갱이를 만들어 이를 가지고 청진제강소 회전로 직장에 가져간다. 그러면 거기 사람들은 일감이 없기 때문에 그걸 가공해 준다. 그러면 그걸 가져다 중국측에 넘겨준다. 국영기업의 80%가 외화벌이 덕분에 살아간다.”
(2015년에 북한에서 나온 탈북자 A씨, 2016년 8월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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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투자 및 생산능력 확대 효과
국영 무역회사 산하의 특정 외화벌이 기지(또는 외화벌이 사업소)를 운영하는 돈주는 광산물, 수산물 등 수출원천을 동원하기 위해 광산 또는 수산 기지에 투자를 해야 한다. 이 때 국영 무역회사가 자금을 주어 설비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물다. 돈주 자신의 자금으로 설비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돈주가 중국의 무역파트너(수입업자)의 선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설비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다.
탈북자 M씨는 “황해도에 20여 개의 광산이 있다. 그런데 그 중에 물이 차 있어서 돌아가지 못하는 광산이 꽤 있다. 그런데 국가는 이런 광산들에게 전기와 원자재를 공급해 줄 여력이 없다. 따라서 이런 광산 들은 사실상 방치되는 것이다. 대략 2004년부터인가? 국가가 광산을 외화벌이 사업소에게 떼어 주기 시작했다. 물론 외화벌이 사업소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개인이 운영하는 것이다. 개인들이 이런 광산에 투자 한다. 발전기, 양수기, 수송기재, 마광기 등을 갖추고 광물을 채취해 수출한다.”154)고 밝혔다.
또한 수산 분야의 외화벌이 기지를 운영하는 돈주들은 자신의 자금 으로 수산물 채취 및 수출을 위한 제반 투자활동을 수행한다. 즉 어선을 구입하고 연료와 각종 어구 및 식량 등을 마련하고 선장과 어부(임금노 동자인 ‘삯발이’)를 직원으로 고용해 수산물을 채취하고 이를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인다.
아울러 외화벌이 사업소가 수출원천을 새롭게 동원할 때 수행하는, 생산활동과 유사한 것들, 즉 수산물 채취·양식, 광산물 채취 등은 기존 의 계획경제체제 하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앞의 탈북자
154) 2014년 7월 필자 면담. 김석진·양문수, 『북한 비공식경제 성장요인 연구』, p. 68.
M씨의 증언에서도 나타났듯이 경제난으로 인해 국가가 방치한 탄광 및 광산, 즉 폐광과 폐갱은 민간 부문, 즉 돈주가 되살린 것이나 다름없 다. 제조업의 경우에 빗대어 본다면 국가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공장을 돈주의 힘으로 움직이게 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도 대외무역 분야의 사적경제활동은 투자 및 생산능력을 확대하기도 한다.
이처럼 무역부문의 사적경제, 특히 국영 무역회사 산하의 특정 외화 벌이 기지(또는 외화벌이 사업소)를 운영하는 돈주들의 경제활동은 여 러 가지 경로를 통해 광산, 수산기지 등 수출원천 동원을 통해서 공적경 제부문의 투자 및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반면에, 국영 무역회사의 무역지도원 또는 국영 무역회사 산하의 외화벌이 사업소장 신분의 개인이 광산이나 수산기지에서 수출품을 매집할 때 이들 제품 가운데는 광산이나 수산기지의 간부, 근로자들이 불법적으로 절취, 유용한 제품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는 정상적 인 무역의 경우에도 그러하지만 밀무역의 경우에는 더욱 현저하게 나 타난다. 이런 식으로 대외무역의 사적경제활동이 광업, 수산업의 공적 경제활동의 투자 및 생산능력을 저하시키는 효과도 내포되어 있다.
(4) 투자재원 확충 효과
국영 무역회사의 무역지도원 또는 국영 무역회사 산하의 외화벌이 기지(또는 외화벌이 사업소)의 기지장(또는 사업소장)의 신분을 획득하 고 수출분야의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는 개인(특히 돈주)은 해당 무역회 사에 매월 혹은 매년 정액 혹은 정률의 수익금을 납부해야 한다. 국영 무역회사는 해당 개인에 대해서 아무런 물질적인 반대급부도 제공하지 않고 오직 명의만 빌려줄 뿐이다. 그런데도 일정 수준의 현금(외화)을 수취하고, 또 이를 이용해 무역회사 자신의 수출계획목표를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