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관: 사적인 경제활동의 내용과 성격
종합시장은 북한경제의 시장화 및 사적 경제행위와 공적 경제와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일차적으로 시장경제 활동 의 장으로서의 종합시장이 가지는 제도적 지위 때문이다. 종합시장은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허용된 유일한 대규모의 사적인 경제활동이다.
종합시장에서의 상업행위는 정부가 종합시장이라는 경제활동의 공간 을 마련하고,120) 여기에서 상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을 판매하고(매대 분양), 상행위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사실상 조세인 장세를 부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식적으로 허용된 합법적인 사적인 경제활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합법적인 사적경제활동의 장으로서 종합시장의 특성은 여타 사적 경제활동의 법적 지위와 비교해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예를 들어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는 개별 상점이나 식당의 상당수는 사실상 개인이 투자하고, 운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서비스 공급은 사적인 경제활동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의 공급은 형식적으로는 국가기관 소속이라는 외피를 취한 채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식이 사회주의 체제 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개인이 투자하고, 영업 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많기는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사적인 경제활동 그 자체가 공식적으로 허용되었다거나
120) 물론 현실적인 공간으로서의 종합시장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농민시장을 기반 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국가가 창출한 공간은 아니다. 그렇지만 비공식 경제활동 공간인 장마당을 공식적인 경제활동의 공간인 종합시장으로 변화 시킨 것은 국가의 행위이고, 이런 점에서 종합시장은 국가에 의해서 창출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합법화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경제행위들은 언제든지 국가 권력에 의해서 검열당하고, 침탈당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종합시장 에서의 상행위는 거래가 금지되는 상품을 거래하는 등 불법을 저지르 지 않는 한 완전히 합법적인 사적인 시장경제 행위인 것이다.
또한 종합시장에서의 경제활동은 가장 보편적이고, 다른 영역과의 연관관계가 큰 사적인 경제활동이다.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 종합시 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이 종합시장에서 소비재를 구매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주민들이 종합시장에서의 사적인 경제활 동을 통해서 생계를 위한 소득을 획득한다. 종합시장은 사회주의 배급 시스템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소비재에 대한 시장 수요가 구체화되는 공간이며,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급행위가 일차적으로 향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종합시장에서 최종 소비자에게 상품이 공급되 기까지 수입 혹은 생산, 수송, 운송, 중간상, 보관, 도매, 소매 등 여러 과정을 거치며, 각 과정은 사적인 경제활동을 유발시킬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공적인 경제와 관계를 맺는다.
즉, 종합시장은 북한 시장경제의 중심이며, 동시에 사적인 시장경제 활동과 공식 경제 간의 관계가 집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 공적 경제에 미치는 영향
(1) 재정효과
종합시장에서의 사적인 경제활동이 공식경제에 미치는 영향 중 재정 에 미치는 부분이 가장 명확하게 나타난다. 국가는 장세의 형태로 사적 인 경제활동에 대해서 사실상의 조세를 부과하고 있다. 종합시장에서 의 경제활동이 합법적이기 때문에 종합시장에서의 장세의 부과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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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국가가 사적인 경제활동 에 대하여 합법적으로 조세를 부과하는 거의 유일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장세는 상인에게 부과되는데, 주된 거래 품목의 가격, 거래량 등에 따라 차별적으로 부과된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공산품을 주로 거래하 는 상인에게는 더 많은 장세를 부과하고, 저가이거나 거래가 많지 않은 상품을 거래하는 상인에게는 더 적은 장세를 부과한다.
“최근에는 (장세 부과에) 변화가 있었다. 이전처럼 500원, 1,000원 등으로 고정하여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올린다.
그리고 품종에 따라 다르다. 공업품은 2,500원도 받고, 채소 랑 메뚜기장처럼 잘 팔리지 않는 데는 500원씩 받는다.”(탈북 자 H씨)121)
장세는 매대를 가진 상인뿐만 아니라 종합시장 구내에서 매대가 없 이 장사하거나 종합시장 입구나 근처에서 장사하는 상인에게도 부과되 는 것으로 보인다(탈북자 H씨).122) 소득이나 거래량에 비례해서 장세 가 부과되지는 않기 때문에 소득세나 거래세와는 성격이 다르다. 합법 적인 상업을 할 허가증에 대한 대가를 매일 상인으로부터 수취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123)
장세의 징수 주체는 지방정부이고, 장세의 사용 주체도 지방정부인
121) 1999년에 탈북하였지만, 북한과의 지속적인 접촉을 통하여 확인된 동향을 인터뷰 를 통해서 전했다.
122) 종합시장의 정식 매대가 아닌 곳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이 다 장세를 내는 것은 아닐 것이고, 허가를 받고 장사를 하고 싶은 상인들만 장세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123) 종합시장에서의 상행위에 대한 라이센스는 일차적으로 매대를 분양할 때 수취하며, 장세는 이후 매일의 상행위에 대한 라이센스로 해석할 수 있다. 장세를 이렇게 해 석하면 매대를 가지지 못한 상인에게 부과하는 장세는 하루치의 임시 상행위 라이 센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매대가 없는 상인이 장세를 납부하는 것은 이를 통해서 일시적이지만 상해위에 대한 합법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것으로 추정된다. 즉, 종합시장에서의 사적인 경제활동은 일차적으로 지방정부의 재정을 확충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종합시 장에서 장세의 형태로 징수된 사실상의 세금은 일차적으로 지방 정부 공무원의 월급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도시나 군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징수된 장세는 군이든 시든 공무원들 월급으로 들어간다.”(탈북자 H씨)
장세로 징수되는 규모가 큰 도시에서는 공무원 월급뿐만 아니라 지 방정부가 감당해야 할 각종 자금부담, 예를 들어 지방정부가 부담해야 할 선물이나 도로 확충 등을 위한 자금원으로도 활용되는 것으로 추정 된다.
“평양시는 물론이고 청진시, 혜산시, 평성시 등 산업이 있는 큰 도시는 월급을 주고도 내화로 돈이 많이 남는다. 그러면 중 앙정부에서 요구하는 2.16 선물도 만들고 4.15 선물도 만들 고, 지방 정부에 할당되는 철길 건설이나 농촌지원 등을 위한 재정으로 사용한다.”(탈북자 H씨)
지방정부 공무원의 월급이 여전히 수천원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중 앙정부의 재정자금 지원이 없거나 현저하게 부족하고, 지방 국영기업 으로부터의 재정자금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장세는 현실적으로 지방 정부가 최소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종래 중앙정부의 기능인 주민에 대한 선물 공급이나 도로 등 인프라 확충 등을 위한 자금에 일정 부분 기여하 는 등 종합시장에서의 사적인 경제활동은 재정부족으로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떠넘긴 공적인 경제활동이 최소한의 수준에서 수행되는데 기여하고 있다. 물론 지방정부가 자신에게 주어진 기능을 수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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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필요한 자금을 장세만을 통해서 조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세 가 북한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장경제 활동에 대하여 부과 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안정적으로 징수가 가능하고, 그 규모 등이 예측 가능하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종합시장은 장세라는 형태로 직접적으로 정부 재정에 기여하지만, 다양한 형태로 간접적인 기여도 한다. 첫째, 주민소득 증대를 통한 준조 세 기반의 확대이다. 종합시장을 통한 상업 및 유통의 확대는 다양한 계층에 소득획득 기회를 제공한다. 수입상에서부터, 중간상, 그리고 최종 소매상, 그리고 종합시장에 상품을 공급하는 직접적인 생산자 등 직접적인 상행위를 하는 경제주체로부터 운송, 보관 등의 기능을 하는 주체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종합시장을 통하여 소득을 획득한다.
북한에 소득세가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에 정부는 주민의 소득에 대해 서 조세를 징수하지는 못하지만 여러 가지 형태의 준조세를 통하여 재정 수입의 상당 부분을 확보하는데, 종합시장에서의 상행위 및 이와 관련된 경제활동을 통해서 발생한 소득은 북한 정부가 준조세를 부과 할 기반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 당국은 수력발전소 건설이나 군부대 보수를 위한 자금의 일부를 각 기관, 기업소에게 부과한다. 이때 많은 경우 종업원 수에 따라 부담금액을 결정하는데, 자체 자금 여력이 있는 기업이나 기관은 자체 자금으로 사회적 기여금을 납부하지만 그렇지 못한 기관, 기업소는 결국 노동자나 소속 기관원에게 부담을 전가한다. 이에 따라 가구원의 일부가 종합시장에서 획득한 소득의 일부가 기업, 기관을 거쳐서 정부 재정으로 흡수된다. 보다 직접적으로 기관, 기업소가 아닌 인민반 등에 대해서도 준조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국영기업의 급여가 매우 낮은 상황에서 인민반 등에 부과된 준조세는 결국 종합시장 등에 서의 사적인 경제활동을 통하여 획득한 소득에 부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