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절에서는 이제까지의 논의에 기초하여 통일 이후 북한지역에 계 속 거주하는 북한주민에게 적용할 사회보장제도를 제안한다. 사회보장 제도는 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보상, 사회복지서비스의 네 분야로 구 분할 수 있는데, 통일 이후 북한에서는 사회보상의 중요성은 그리 크 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사회보상을 제외한 나머지 세 분야로 논 의를 한정한다.
가. 공공부조
(1)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격과 최저생계비
한국의 대표적 공공부조제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142) 국민 기초생활보장제도는 2000년부터 시행된 제도로, 그 이전의 생활보호 제도와는 상당히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다. 생활보호제도는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들과 근로능력이 있지만 질병 등의 이유로 일시적 실직 상태에 있어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으며 급여수준은 최저생계
142)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정기혜 외, 주요국의 사회보장제도:
한국 (서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2); 이채정,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 평가 (서
울: 국회예산정책처, 2013);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로 보는 사회보
장 2014 (세종: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4) 참조.
비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이와 달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근로능 력 유무 및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소득인정액(= 실제소득143)+재산의 소득환산액)’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며, 급여수 준은 최저생계비와 실제소득 간의 격차에 따라 결정된다. 즉, 국민기초 생활보장제도는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만큼 보충급여를 지급하여 수 급 대상자의 최저생계를 보장해 주는 제도이다. 단, 수급대상자는 부양 의무자(1촌 직계혈족과 배우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 능력이 없는 사람들로 한정한다. 다시 말해서 부양의무자가 충분한 소 득이 있을 경우에는 부양을 받는다고 가정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대 상에서 제외한다.
통일 이후 북한지역에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는 것 이 좋을까? 장기적으로 완전통합을 지향하는 점진적·단계적 통합방안 에 따라 북한에도 남한과 같은 성격의 제도를 도입하여 생활보장 혜택 을 제공한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삼을 수 있다. 다만 재정부담을 적정 수준 이내로 제한하려면 기초생활보장 급여수준을 남한보다 낮게 설정 해야 하는데, 과연 얼마나 낮게 설정하는 것이 적절한지가 문제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최저생계비 산정 문제이다. 국민기초 생활보장제도에서 수급자격은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경우에 주어지므로 최저생계비를 산정하면 수급자격, 즉 수급대상자의 범위도 결정된다. 또 최저생계비와 소득인정액 간의 차이가 급여가 되므로 급 여 수준도 최저생계비 산정에 의해 결정된다.
이 문제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는 북한지역 최저생계비는 북한 실정에
143) 실제소득은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공적이전소득(공적연금, 실업급여 등), 사전
이전소득 등 온갖 종류의 소득을 포함한다. 실제소득 조사방법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 2014, pp. 99∼1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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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춰 산정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144) 즉 남한 기준 최저생계비를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지 말고, 북한에서는 별도의 최저생계비를 산정 하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격 및 급여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지역 최저생계비는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통 일비용에 대한 최근의 가장 중요한 연구 중 하나인 국회예산정책처의 연구에서는 남한 대비 북한 최저생계비 비율을 남한 대비 북한의 1인 당 국민소득 비율과 동일하게 설정하고 있다.145) 그러나 북한의 소득 수준이 워낙 낮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최저생계비를 산정할 경우 북 한주민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생존을 보장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으 며, 남북한 주민 간 차별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여 헌법 정신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현재 남한의 최저생계비는 3년에 한 번씩 소득 하위 40% 가구 중에 서 중소도시 거주 표준가구를 선정해 생활실태를 실측 조사하여 산정 하며, 나머지 연도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조정치를 사용한다.146) 그 리고 이렇게 산정된 최저생계비는 지역에 상관없이 전국적인 단일 기 준으로 취급된다. 북한에서도 표준 가구의 생활실태를 실측 조사하여 적정 최저생계비를 산정해야 할 것이며, 그 경우 북한의 최저생계비는 남한보다 훨씬 낮게 될 것이지만, 평균소득 대비 최저생계비 비율은 남한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다. 또 앞의 법적 분석에서 살펴본 대로, 헌 법 정신을 충족하기 위해 남북한 간 사회보장 격차를 되도록 좁힐 필 요가 있고, 통일 이후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북한주민의 생활수준을 되
144) 문형표 외, “북한특구의 연금 및 공공부조제도 운영방안,” 전홍택 편, 남북한 경제
통합 연구: 북한경제의 한시적 분리 운영 방안 (서울: 한국개발연구원, 2012), p.
188.
145) 박용주 외, 한반도 통일의 경제적 효과, p. 86.
146) 이채정,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 평가, pp. 20∼22.
도록 많이 끌어올리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북한의 최저생계비 기준은 통일 이후 재정상황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높게 설정 해야 할 것이다. 또한 통일 이후에는 북한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따라 최저생계비 기준도 지속적으로 상향 조정 해야 할 것이다.
최저생계비가 산정되면 수급 대상자의 범위가 정해진다. 남한식 제 도를 북한에 도입한다는 기본 전제에 의하면,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 비에 못 미치는 가구는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 에 포함된다. 이 점을 고려하면, 안종범 외의 연구와 같이 실업자 가구 가 수급 대상이 된다고 가정하고 관련 비용을 추계하는 것147)은 부적 절하다. 북한의 소득수준이 워낙 낮으므로 통일 이후 북한에서는 실업자 가구뿐만 아니라 취업자 가구 중에서도 상당히 많은 가구가 기초생활 보장 수급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남한식 제도를 그대로 적용해 수급자격을 따지려면 취업 여부와 실 제 소득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데, 통일 후 과도기에는 이런 조사를 위 한 행정체계를 갖추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장사 하는 많은 북한주민의 실제 소득을 확인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초기에는 취업 여부와 소득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부 경우를 제외 한 나머지 주민에 대해서는 되도록 수급자격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즉, 최저생계비 산정의 경우처럼 적절한 취업자 표본 가구를 선정하여 소득을 실측함으로써 표준 소득인정액을 산정하고, 이를 소득 확인이 어려운 취업자 가구의 소득인정액으로 간주하는 방 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147) 안종범 외, 통일재원 마련방안 연구, p.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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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표 외는 또 하나의 중요한 수급자격 조건인 부양의무자 기준을 한시적으로 적용하지 않는 방안도 제안하고 있다.148) 북한의 소득수 준이 너무 낮다는 점, 통일 초기 혼란기에 북한사회를 안정화시킬 필 요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수급 대상자를 가능한 한 폭넓게 인정 하자는 것은 합리적인 제안으로 생각된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 지 않을 경우 북한의 은퇴세대 대다수가 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에 포 함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 기초생활보장 급여수준
북한주민에게 지급하는 기초생활보장 급여는 어떻게 결정할 수 있 을까? 안종범 외의 연구는 두 가지 급여수준 결정 방식을 예시하고 있다.149) 하나는 남한 급여수준에 남북한 1인당 소득비율을 곱하여 결정하는 것 이고, 다른 하나는 남한 급여수준의 일정 비율(통일 시점에 따라 50%,
90%, 100%로 가정)로 산정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소요 비용은 전
자보다 몇 배나 큰 규모에 이르게 된다.
전자와 같이 남한 급여수준에 남북한 1인당 소득비율을 곱하는 방식 을 택하면, 북한 급여수준이 너무 낮아 기초생활보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또 후자와 같이 북한 급여수준을 남한 급여수준의 50% 등 일정 비율로 본 것은 통일비용 계산을 위한 편의적 가정에 불 과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앞에서 지적했 듯이 실측 조사를 통해 북한 여건에 맞는 최저생계비와 소득인정액을 산정한 다음, 그 격차에 따라 급여수준을 산정하고 표준 소득인정액을
148) 문형표 외, “북한특구의 연금 및 공공부조제도 운영방안,” p. 187.
149) 안종범 외, 통일재원 마련방안 연구, p. 150.
대다수 가구의 소득인정액으로 간주하는 방법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 런 방식을 채택하면, 다수의 북한주민에게 비슷한 수준의 급여가 지급 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수급자격을 확인하고 급여수준을 결정하는 행 정체계도 대폭 간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최저생계비 및 급여 산정, 그리고 수급자격 결정은 통일 후 북한지 역의 임금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얼른 보기에는 북한의 임금이 빠르게 올라갈수록 기초생활보장 지출은 줄어들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임금수준뿐만 아니라 실업률도 중요한 변수가 되며, 임금 이 과도하게 올라갈 경우 실업률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주의 해야 한다.
북한지역의 임금수준은 남북한 간 노동시장 통합 및 노동 관련 제도 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통일 후 북한의 임금에 대해 두 가지 서로 다 른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의 임금이 북한의 생산성 수 준에 맞춰 결정되는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성보다 훨씬 높은 수준 으로 올라가 버리는 상황이다. 남북한 간 이주가 매우 제한적이어서 노동시장 통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북한의 임금은 생산성에 맞춰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달리 북한주민이 대거 남한으로 이 주해 취업할 수 있다면, 즉 북한주민이 고임금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 는 기회가 커진다면, 북한의 임금도 급속히 상승할 수 있다. 또한 통일 후 북한지역에서 실시되는 사회보장제도와 최저임금제 같은 정책도 임금을 올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의 임금이 생산성 대비 적정 수준을 유지한다면 북한지역에 대 한 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나 취업자 수도 크게 늘어날 수 있으므로, 어 느 정도 시일이 경과하고 나면 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반면 북한의 임금이 생산성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