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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시기 마을공동체를 새마을 사업을 꾸려 나가는 하나의 기업 에 비유한다면 새마을지도자는 “마을이라는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가”였다 (한도현 2010, 269; 육성으로 듣는 경제기적 편찬위원회 2015, 191). 새마 을지도자는 새마을 사업의 입안, 자원 동원, 집행에 이르기까지 마을 차원 의 새마을운동 전 과정을 총괄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 기업 등 마을 바깥의 행위자와 접촉하면서 소득이 될 만한 사업을 모색하고 새마을운동에 필요한 자원과 정보를 마을공동체로 끌어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대다수 마을에서 새마을지도자의 손을 떠나 진행될 수 있는 새마을 사업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점에서 새마을지도자의 열정과 지도력은 새마을운동의 성과와 직결되었다(엄석진 2011a, 479; 윤충로 2014, 232).

마을공동체 안에서 새마을지도자는 잘살기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새마을 을 향해 주민들을 선도해 나간 인물이었다(한도현 2010, 283). 새마을지도 자는 마을 회의와 새마을개발위원회를 주재하면서 새마을 사업의 구체적 내 용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마을 안에서 어떤 사업을 먼저 추진할 것이며 사 업에 필요한 자원은 누구로부터 징발할 것인지를 결정했다. 또한 새마을지 도자는 마을 안에서 새마을운동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 하고 새마을 사업에 드는 물자와 노동력을 주민들로부터 확충해야 했는데, 새마을 사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주민들이 마을 공동 부역으로부터 무임승차 를 시도할 위험을 감시하고 제어하는 새마을지도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 다(골드스미스 1981, 444; 한도현 2010, 283-288; 육성으로 듣는 경제기 적 편찬위원회 2015, 125-126).

이처럼 새마을지도자는 쉴 새 없이 회의체와 현장을 오가며 막중한 업무 를 수행해야 했지만 마을공동체 안에서 새마을지도자의 권위는 절대적인 것 이 아니었다. 새마을운동 시기 새마을지도자의 권한과 의무가 명문화된 규 정으로 존재하는 마을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마을공동체 안에서 새마을지 도자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범위는 어디까지나 새마을지도자 개인의 능력과 위신에 달려 있었다. 새마을지도자의 리더십 여하에 따라 어떤 마을 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새마을지도자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새마을지도 자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반면 다른 마을에서는 새마을지도자가 주민들로 부터 인정받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마을 주민들이 새마을지도자의 존재조차 몰랐던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새마을지도자는 마을 주민들을 직접 상대하면서 새마을운동 에 반대하는 일부 주민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새마을운동에의 협조를 구해야 했기 때문에 새마을지도자가 새마을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 서는 마을 안에서의 카리스마와 신망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다(한도현 2010;

하재훈 2014, 276-278). 만약 새마을지도자가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리는 주민들 사이의 갈등 관리에 실패하거나 새마을 사업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 지 못할 경우 새마을지도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주민들이 생겨났고 새마을지 도자의 활동 반경은 크게 위축되었다.

실제로 마을공동체 안에서 새마을지도자의 위신은 주민들로부터 수시로 위협받았다. 새마을 사업에 전념하느라 정작 본인의 가정사를 살필 여력이 없었던 새마을지도자를 위해 마을 주민들이 새마을지도자 집안의 농사일을 거들어 준 미담도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주민들과의 알력으로 인해 새마을 지도자가 고초를 겪은 사례가 훨씬 많았다(육성으로 듣는 경제기적 편찬위 원회 2015, 212). 새마을운동 시기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한 적이 있는 농민 들은 한결같이 새마을 사업에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 하여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토로한다. 새마을 운동에 반대하는 주민들에 의해 본인이나 가족이 구타를 당한 새마을지도자 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고(박진도ㆍ한도현 1999, 62; 한도현 2010, 283) 심지어 새마을 사업에 반발하는 주민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당 한 새마을지도자도 이따금 존재했다(육성으로 듣는 경제기적 편찬위원회 2015, 161-162). 천재지변과 같은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인해 새마을지도 자가 주도한 사업의 성과가 좋지 못했을 때 실패의 책임은 온전히 새마을지 도자에게 전가되었고, 새마을운동을 둘러싼 국가와 마을의 입장이 상충할 때 새마을지도자는 때때로 국가의 앞잡이로 매도되곤 했다(한도현 2010).

이처럼 마을공동체 안에서 새마을지도자의 권위는 새마을지도자 개인의 역 량, 새마을운동에 대한 주민들의 태도, 그리고 새마을운동의 성과에 따라 유동적이었다.

한편 새마을지도자는 마을 밖에서는 마을공동체의 대표자로서 행정 기관 과의 교섭을 담당했다. 새마을지도자는 새마을 사업의 목표와 방법에 대해 공무원들과 협상을 거듭하면서 마을공동체와 국가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새마을운동의 내용을 결정해 나갔다(김수경ㆍ최은봉 2005, 37). 특히 마을 공동체가 새마을 사업에 필요한 지원을 행정 기관으로부터 제때 확보할 수 있는지는 어디까지나 새마을지도자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유병용 외 2001,

77-79). 소득증대를 위한 일거리를 찾아 사업권을 따오고 다른 마을의 성 공 사례를 참조하여 새마을 사업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마을공동체로 들 여오는 것 또한 새마을지도자의 몫이었다(김영미 2009; 이현정 2013; 육성 으로 듣는 경제기적 편찬위원회 2015, 159).

이처럼 새마을지도자는 새마을의 비전을 찾아 마을 주민들에게 제시하고 주민들의 힘을 한데 모아 새마을 사업을 주도한 인물로서 마을 내 새마을운 동의 명실상부한 구심점이었다. 하지만 마을공동체 안에서 새마을지도자의 역할과 권한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마을지도자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새마을운동을 둘러싼 불만과 갈등을 무마하면서 주 민들을 새마을 사업 현장으로 이끌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새마을지도자의 미시정치 역량과 새마을 사업 실력에 달려 있었다. 새마을지도자는 때때로 권위에 대한 도전과 리더십의 위기에 봉착했고, 특히 새마을 사업에서 난항 을 겪을 때에는 주민들을 설득하고 회유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정부 고위 인사와 직접 만나 새마을운동에 대해 의논한다는 사실이 마을공동체 안에서 새마을지도자의 위신을 높여 주기도 했지만(골드스미스 1981, 446;

윤충로 2014, 236) 국가로부터의 후광에만 의존해 마을 주민들의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시도는 극명한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었다(한도 현 2010, 274). 또한 새마을지도자를 박정희 정권의 보조자로 귀속시키고 농촌에서 국가를 대행하는 도구로써 새마을지도자를 동원하고자 하는 국가 로부터의 압력이 새마을지도자의 입지를 더욱 비좁게 만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김영미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