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문화의 다이아몬드 모형을 통해 창작판소리의 발전 양상을 생산과 소비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생산적 측면에서는 새롭게 형성된 소 리꾼들의 예술계 네트워크와 창작방식을 전통판소리와 대비하여 파악했 다. 그리고 판소리 외부 지원구조와 소리꾼의 선별시스템의 주체를 국가 에 방점을 두고 살펴보았다. 소비적 측면에서는 판소리 관객의 변동을 예술성과 대중성 취향의 맥락에서 짚어보되 관객을 더 이상 소극적 청중 이 아닌 능동적 해석자로 상정하였다. 더불어 관객들이 다양한 접점을 통해 판소리를 경험하고 문화자본을 축적시킨다는 의미에서 연행 장소와 미디어의 활용 방식에도 관심을 두고 분석했다.
창작판소리의 생산과 수용에 관한 분석 내용들을 집약하면 다음과 같 이 세 가지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창착판소리는 혁신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전 통판소리는 300년 이상 가다듬어 온 예술로 오랜 시간 보호와 전승을 되 풀이하며 명창 중심으로 판소리계의 명맥을 고집스럽게 이어왔다. 창작 판소리 소리꾼들은 고사 상태에 빠진 판소리계에 대해 심각한 위기의식 을 절감했고 새로움 없이 정체되어가는 낡은 전통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자 했다. 베커가 언급한 예술가의 기준에 따르자면 창작판소리 예술가들 이 선택한 혁신의 방략은 이단자(mavericks) 혹은 통합된 전문가 (integrated professionals)였다. 기상천외한 이야기와 재담이라는 측면에 서는 파격적인 새로움을 추구했지만 판짜기 방식과 사회비판의 정신은 전통판소리의 관행을 수용하면서 균형을 이루고자 했다.
창작판소리 예술가들의 흐름은 크게 명창의 계보에서 비가비의 계보 로 이동되었다. 초창기 창작판소리는 박동실 명창과 박동진 명창이 포문 을 열었다. 특히 박동진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 한 소리꾼으로 역대 명창 중 유일하게 복원판소리, 실전판소리, 그리고 창작판소리까지 차례대로 도전하며 새로운 창작 운동의 근간을 다졌다.
1970년대 이후 2000년대까지 창작판소리를 일정한 수준의 장르로 정
착시킨 예술가들은 비가비와 또랑광대였다. 판소리를 민중문화운동의 일 환으로 인식한 비가비, 그리고 소리 공력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또랑광대는 명창들과는 확연히 다른 활동 노선을 선 택했다. 소리 수준을 폄하하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판소리계의 중심에 위치하지 않은 비주류 소리꾼을 자처한다. 판소리의 본질적인 혁 신을 성음이 아닌 이야기에서 찾으며 기존 판소리 예술계가 고수한 관행 에 신선한 충격을 가했다.
낡은 관행을 깨뜨리는 노력은 창작판소리가 전통 예술계의 상징인 ‘유 파’를 극복했다는 점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동안 판소리계는 사제 관계를 비롯해 학맥과 인맥 중심의 활동으로 인해 많은 폐단이 발생했다. 전승 이라는 미명 아래 깊어가는 유파 간 갈등은 판소리계 발전을 가로막았고 박제된 예술로 침잠시켰다. 창작 소리꾼들은 유파를 벗어나 예술적 동료 와 친한 선후배로 뭉쳤고 이들은 상하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에 기반 한 공동 작업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둘째, 창착판소리 소비자는 소수의 진지한 애호가로부터 시작해 지식 인층을 거쳐 근래 다수의 일반 대중으로 관객층이 이동되었다. 이는 소 리꾼들이 전통의 원형 보존이라는 억압에서 벗어나 관객 교감의 접점을 확장해 나갔기 때문이다. 초기 창작판소리는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 영웅 을 그리거나 군사 정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하며 관객을 민중으로 호명했다. 최근에는 일상 속 다양한 에피소드를 이야기로 끄집어내어 보 다 친근하고 단순한 판소리의 양식을 부각시켰다.
예술 소비자를 취향으로 구분 짓는 상징적 경계(symbolic boundaries) 상에서 판소리 관객층의 역사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넘나드는 과정으 로 해석된다. 전통판소리는 소수의 전문 애호가 집단을 위한 고급문화로 굳어져 갔고 창작판소리는 이에 대한 반발로 대중과의 호흡을 중시했다.
이들은 관객이 반드시 귀명창일 필요가 없다고 인식하며 동시대의 예술 로서 관객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창작판소리의 도전과 실험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대립적이었다. 종 교와 컴퓨터 게임, 만화 등 일상생활을 옮겨놓은 듯한 창작판소리의 이
야기에 대해 예술적 진지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에서부터 전문적 소 양 없이도 판소리의 묘미를 부담 없이 느낄 수 있다며 반색하는 호평까 지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모든 예술 작품은 수용자에 의해서 적극적 으로 해석되고 서로 유사한 관객 간에는 ‘해석적 공동체(interpretive communities)’를 형성하기 때문에 당분간 창작판소리 관객은 ‘도무지 받 아들일 수 없는 청중들’과 ‘즐겁게 향유하며 기꺼이 응원하는 청중층’으 로 양분되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창작판소리는 관객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다양한 연행 공간을 모 색했다. 극장식 무대뿐 아니라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판을 펼쳤다. 애초 ‘판’의 본질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이었다. 임진택은 카페 소극장을 비롯해 대학교 운동장과 축제 마당, 명동성당 등에서 관객들을 찾아 나 섰고, 젊은 소리꾼들은 번개소리판, 인사동 거리소리판에서 관객과 혼연 일치되는 연행을 펼쳤다. 최근에는 과거 사랑방과 풍류방, 대청마루처럼 아늑한 감상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옥 마을에서의 공연도 활발하 게 이뤄지고 있다.
유성기 레코드부터 라디오 방송, 음원, 인터넷 등의 매체는 관객들이 가상의 공간에서 판소리를 향유하며 문화자본을 흡수하도록 도왔다. 다 양한 미디어를 통해 판소리를 간접 체험함으로써 판소리에 대한 지식과 감별력을 쌓게 하고 잠재적 관객이 확장되도록 일조했다. 최근 창작판소 리 예술가들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공연 소개를 비롯하여 제작과정과 일상사 공유, 관객 간 커뮤니티 조성, 크라우드 펀딩 등의 활동으로 관객 과 더욱 친밀한 유대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셋째, 판소리 예술계에 ‘자율적인 창작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정부는 사회적 환경에 맞게 예술지원의 방향을 꾸준히 진화시켜 왔다. 지원 정 책은 과거 단순 재정적 지원이라는 차원을 넘어 예술가들의 전문 역량과 자율성, 자립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일제강점기 양반들에 의한 후원체계가 붕괴된 이후 판소리는 새로운 연행 장르에 관객을 빼앗겼다. 자생력을 잃은 판소리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전면에 나서 1964년 무형문화재 제도를 도입했지만 연로한 극소 수의 명창 위주로 지원이 이루어짐에 따라 젊은 소리꾼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데에는 공백이 발생했다. 1973년 문화예술진흥원의 설립과 함 께 창작활동의 지원이 비로소 시작되었고 이후 예술가에 대한 지원은 꾸 준히 확대되었다. 2009년 선택과 집중, 간접지원, 사후지원, 생활 속의 예 술 등의 지원원칙이 발표되면서 현재까지 판소리를 포함한 예술 정책의 핵심 기조로 유지되고 있다.
판소리에 대한 정책 변화는 힐만-차트랜드와 매코히가 국가의 예술지 원 역할을 ‘촉진자·후원자·건축가·기관사’로 비유한 정책 모형에 적용해 보았다. 과거 정부의 역할은 정치적 목적으로 지원을 조절했던 ‘기관사’, 문화부처 주도로 전통판소리를 수호하려는 ‘건축가’ 국가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문가 패널의 심사 평가로 예술가들의 창작 재량권을 확대하는 ‘후원자’, 민간 기업의 간접 지원을 확대하는 ‘촉진자’ 국가로 역할이 변화했다.
유망한 소리꾼을 선별하는 과정 역시 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 술가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게이트키핑(Gatekeeping)’과 같은 일 종의 선별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때 국가는 의사결정 과정의 핵심 게 이트키퍼로 관여한다. 국가의 역할은 경연 심사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 하기보다 선발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창의적인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안정적 지원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또랑광대 콘테스트와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 전주대사습 창작경연 대회 등은 젊은 판소리 예술가를 발굴하는 새로운 형식의 등용문이다.
창작판소리 경연대회의 심사 기준은 전주대사습놀이 등 전통판소리 명창 을 꼽는 전통판소리 선발과정과 다소 상이하다. 노련한 기량, 엄숙한 해 석보다는 참신한 기획, 기발한 상상력 등에 무게를 두면서 소리꾼들의 자유로운 창작 의지를 독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