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청중의 분화와 향유 공간의 확장

그림 7. ‘문화의 다이아몬드’ 상에서 예술의 소비

문화의 다이아몬드 모형에서 오른 쪽은 예술의 소비를 다룬다. 소비적 접근에서는 예술을 이해하는 핵심 주체로서 소비자와 관객을 강조한다.

바르트(R. Barthes)가 “독자의 탄생은 작가의 죽음에 대한 대가임에 틀 림없다.”169)고 말한 것처럼 작품은 소비자 각자의 취향으로 해석되기 때 문에 여기에서는 예술의 의미와 가치는 창작자가 아니라 소비자에 의해 완성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예술이 사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부인하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을 통해 예술 의 사회적 영향력을 입증하려 한다.

판소리의 여러 가지 변화를 소비자의 변동으로 설명하려는 연구는 방 대하게 축적되었다. 그러나 기존 연구는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까지의 판소리 향유층에 한정되었다. 본 장에서는 예술사회학의 소비 연구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상징적 경계’와 ‘수용이론’의 개념을 활용해 2000년대 이후 청관중으로 소비자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려고 한다. 또한 판소리의 생산과 수용을 매개하는 연행 공간을 예술 소비의 주요 변인으로 지목했 다. 연행 공간 속에는 판소리 소비를 결정짓는 다양한 요소들이 공존하 므로 ‘판’이 변모해가는 동인과 새롭게 지향하는 판의 특성을 규명하고자 했다. 같은 맥락에서 유성기와 방송, 인터넷 등 각종 전달 매체의 출현에 따른 창작판소리의 대응 방식도 함께 살펴보았다.

169) Roland Barthes, The Death of the Author, in Image Music Text, London:

Fontana Press, 1977, p. 142〜148.

2.1. 전통적 관객층의 소멸과 신관객층의 등장 2.1.1. 관객층의 이동과 확대

1988년 전통예술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있었다. 세종문화회관의 산하단체인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단원 49명이 봉급에 대한 불만으로 대대적인 농성을 벌였다. 세종문화회관이 또 다른 산하 단체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봉은 67%로 인상하고, 국악관현악단 의 연봉은 20%로 인상하자 국악단원들은 이를 명백한 차별행위로 간주 하고 서울시를 상대로 처우개선을 요구한 것이다.170) 이에 전통예술계의 교수진, 협회, 단체 등의 인사 200여 명이 국악단원들의 농성을 지지하는 서명을 전개하면서 예술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소개한 일화에서 시위가 벌어진 표면적 이유는 봉급 차이였지만 근본적 원인은 당시 문화정책이 나 사회적 대우에 있어 ‘서양음악은 고급문화’, ‘전통음악은 열등한 문화’

라는 의식이 팽배함에 따라 그간 쌓여왔던 전통 예술가들의 불만이 한꺼 번에 폭발한 것으로 해석되었다.171)

문화 구분에 관한 ‘상징적 경계(symbolic boundaries)’는 어떤 예술이 고급문화로 여겨지고 더 우월하다고 인식되는 이유를 규명하는데 유용한 개념이다. 상징적 경계는 일정한 분류 체계(classification system) 기준 에 따라 어떤 대상은 포함하고 나머지들을 배제하려는 인지적 구분을 뜻 한다.172) 상징적 경계는 주로 순수 예술로 일컬어지는 고급문화와 저급 문화의 경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브루디외(Bourdieu)는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를 가르는 상징적 경계가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사회 계급에 기초해 사람들의 취향에 차이가 발생 한다고 봤다.173) 그는 사회적 계급이 높을수록 고급문화를 향유함으로써

170) 당시 악단 간 봉급을 비교하면 3호봉 기준 시립교향악단이 68만원대, 국악관현 악단이 40만원이었다(「시립국악단원 “국악차별 철폐하라” 농성」,『한겨레』, 1988.05.17).

171) 앞의 『한겨레』 기사(1988.05.17).

172) Robin Wagner-Pacifici, Theorizing the Standoff: Contingency in Action,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자신보다 낮은 계층과 보이지 않는 장벽을 유지하려 한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사회적 위상에 따라 예술의 취향이 다르다는 주장은 여러 가 지 비판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예술이 소비계층을 다르 게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뛰어난 통찰력을 드러낸다.174) 실제 관객들을 대상으로 좋아하는 예술 장르를 조사하면 나이, 성별, 직업, 학력, 소득 수준 등에 따라 상이한 결과를 보이는데 이는 사회적 계층에 따라 선호 하는 문화가 다르다는 점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간스(Herbert J. Gans)는 고급문화가 대중문화에 비해 더 복합적 형식 을 보이고,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며, 단순 오락적 기능보다는 진지한 지 적-심미적 경험(intellectual-aesthetic experience)을 제공한다고 설명한 다.175) 그는 예술 작품의 내용이 무엇인가보다 사람들이 예술을 어떻게 즐기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는데 고급문화는 ‘창작자’ 중심으로, 대 중문화는 ‘소비자’ 중심으로 향유된다고 주장했다. 고급문화를 제대로 즐 기려면 소비자가 예술의 형식과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반면 대중문화는 오히려 예술가가 소비자가 어떤 작품을 왜 좋아하 는지에 대해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판소리는 연행사에서 때로는 고급문화로, 때로는 대중문화로 인식되었 다. 향유층이 재인 광대 집단과 서민 등 하층문화로부터 시작해 양반까 지 상층문화로 이동하면서 다양한 소비층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소수의 애호가를 제외하고 향유층은 급격하게 소멸했고 창작판소리를 통해 대중들 중심으로 수용층을 형성해 나가면서 새로운 소비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판소리는 고급문화와 대중 문화를 구분 짓는 상징적 경계를 관찰하기에 적합한 장르다.

173) 부르디외는 프랑스의 사회계층에 따른 소비 상품을 분석하여, 특정 예술상품의 소비가 어떤 계층의 취향을 형성함으로써 계급의 입지를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Pierre Bourdieu, 최종철 역,『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상/하 La Distinction』, 새물결, 1995, 43∼47면.).

174) 부르디외의 이론은 대중예술 소비자에 대해 지나치게 폄하하고 고급 예술과 대 중 예술 모두를 소비하는 문화적 옴니보어(omnivoires)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175) Herbert Gans, Popular Culture and High Culture : An Analysis and Evaluation of Taste. Basic Books, 1974.

근대 이후부터 현대까지 판소리 관객의 소멸은 무엇보다 ‘시장의 실 패’에서 기인한다.176) 18세기 말부터 19세기까지 판소리 관객은 곧 판소 리의 후원자였다. 예술가들의 삶은 양반 사대부를 중심으로 임금, 중인, 서민 부호 등 다양한 후원자의 직간접적 지원 체계로 유지되었다. 이 시 기 청중들은 음악을 중심으로 집중적 청취를 하는 귀명창들로 판소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177)

그러나 20세기 전반 일제강점기 예술계에 시장제도가 도입되며 판소 리의 후원체계는 순식간에 붕괴된다. 시장제도는 판소리를 예술가를 후 원자의 속박에서 해방시켰지만 대중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새롭게 부상한 창극, 여성 국극, 가야금 병창 혹은 서구에서 유입된 문화예술 장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만 했다.

시장경제에서 예술은 ‘가치재(merit goods)’ 성격을 지니고 있어 시장 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이 소비되어야 바람직한 재화 이다.178) 판소리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개입에도 불구하고 이미 흥행 예술로서 생명력을 잃어갔다. 다음 신문 칼럼의 발췌 내용을 통해 당시 청중들로부터 외면당하는 판소리의 현실을 짐작해볼 수 있다.179)

“판소리에 있어서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전통음악으로서의 판 소리의 本質이 異質化되어가고 있는 점이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 가 있다.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노인층이나 일부 南部地方民을 제외 하고는 거의 聽衆을 잃어가고 있는 점이다. 즉흥적이고 관능적인 노래 에 쏠리게 되는 대중들의 감각에 영합하는 바람에 판소리에 있어서는 안될 얕은 장식음과 돌림수 등을 써서 판소리의 법통을 짓밟고 있다.

(중략) 듣고싶지 않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들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판소리는 살아있는 예술로서 보다 文化財로서의 가치가 176) 보몰과 보웬(Baumol & Bowen)에 따르면 공연예술의 노동생산성은 정체되어

있는 반면 공연 전문 인력의 인건비는 전체 경제 수준의 임금 비율로 상승하 기 때문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고 항상 외부 자원을 찾는다고 했다(William J. Baumol, William G. Bowen, Performing Arts: The Economic Dilemma, Twentieth Century Fund, 1966.).

177) 서유석,「연희에서 예술로」,『판소리연구』32, 판소리학회, 2011, 186∼187면.

178) 이재희·이미혜(2010), 앞의 책, 467∼470면.

179) 유기용,「판소리의 예술성 보존을」,『동아일보』, 1971.7.2.

더 소중하게 된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는 판소리 本然”의 예술성을 保 存해야겠다고 거듭거듭 다짐하는 것이다.”

판소리의 대중적 기반이 상실되었음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연구들도 존재한다. 전통예술과 클래식, 팝송, 가요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를 조사한 연구 결과들이 이러한 견해를 지지한다.180) 1980∼1990년대 예술 장르별 인식 및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악은 무익하고 고루하며 질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았고, 국악 방송이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는 응답은 무려 60%에 달했다. 2000년대 공연예술 관객을 대상으로 한 설 문조사에서도 전통예술은 응답자의 12%만이 선호하는 것으로 집계되어 대중성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181)

흥미로운 점은 대중들과 멀어진 전통예술이 현대 관객들에게 고급문 화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최샛별은 국내 1419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술 장르별 상징적 경계에 관한 인식을 조사했다.182)국악에 대한 선호 도는 다른 장르에 비해 대체적으로 낮은 편이었지만 클래식, 재즈 등과 함께 고급예술 장르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클래식과 국악만을 놓고 비교했을 경우 고급예술로서의 인식과 선호도 모두 클래식이 높아 서양 문화에 대한 영향력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판소리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소수의 애호가 집단에 의해 고급문화

180) 전통예술을 포함한 장르별 소비자 연구는 다음 논문들을 참조했다. 이인자,

『계열별 고교생의 기호교과와 그 원인조사–음악교과를 중심으로』, 숙명여자 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86.; 김은희,『고등학교학생들의 교과에 대한 선호도 및 원인 조사–음악교과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82.;

손순현,『국악에 대한 중고등학교생들의 인식도 조사 연구』, 계명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84.; 조용복,『고교생의 음악기호에 관한 조사연구』, 경희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92.; 유건석,『청소년들의 음악적 성향과 요구에 관한 조사연 구』, 수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94.

181) 유기용,「판소리의 예술성 보존을」,『동아일보』, 1971.7.2.

182) 음악장르 각각에 대해 ‘매우 고급스럽지 않다’를 1점, ‘매우 고급스럽다’를 5점 으로 하는 Likert 척도에서 고급성 인식 평균 점수는 클래식 4.03, 재즈 3.88, 국악 3.53, 성인가요 2.34, 가요 댄스 2.58, 가요 락 2.80 등으로 나타났다. 선호 도 평균 점수는 국악 2.66, 클래식 3.41, 재즈 3.44, 가요 발라드 3.98, 팝송 팝 3.73 등으로 조사되었다(최샛별,「한국사회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상징적 경 계에 대한 예비적 고찰」,『사회과학연구논총』16,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회과 학원, 2006, 180∼19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