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실질적인 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 견인을 위해 한국은 우선 다음 과 같은 다섯 가지 차원의 전략적 고려사항을 유념해야만 할 것이다. 다섯 가지 차원의 전략적 고려사항은 대북 제재 운용 전략, 미중의 전략 변화 대비 전략, 북한의 전략적 셈법의 개입 전략, 북핵 위협에 대한 냉정한 평가 및 대응, 평화프로세스 진입 촉진 전략 등이다. 이러한 고려사항은 소극적 평화체제 구축의 진입단계인 비핵화 대화 시작뿐 아니라, 비핵화 진전 이후 실질적인 평화체제 구축 단계에서도 전략적으로 유의해야만 하는 사항들이다.
가. 대북 제재와 압박 전략
우선 대북 제재의 구체적 목표에 대해 한·미·중 간 일치된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한국이 제재목표를 신중하고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목표는 수단과 메커니즘의 선택과 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보통 제재 목표가 높을수록 제재만으로 목표를 달성할 확률은 낮아진다. 만약 북한이 제재의 최종목표를 정권교체라고 인식한다면, 북 한의 극렬한 저항과 버티기로 인해 목표 달성은 험난할 수도 있음을 유의 해야만 한다. 아울러 제재의 목표는 북핵 문제 해결의 가장 큰 능력을 보 유한 미국과 중국의 이해를 고려해야만 한다. 따라서 제재의 목표는 북한 을 비핵화 대화로 견인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 내는 것이어야 만 한다. 물론 한국의 이해가 반영되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반드시 담
Ⅵ. 결론 147 보될 수 있는 대화여야만 한다. 따라서 대화의 문턱은 탄력적으로 조정될 수 있을 것이나, 대화 시작의 조건은 최소한 북한의 핵·미사일 추가 실험 유예 선언과 IAEA 사찰 수용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북한의 도발 억지를 통해 고조되는 한반도 위기 지수를 낮추고 북한의 핵 고도화 능력을 차단 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첫 번째 시나리오(A) 로 유 인 후, 비핵화 대화 과정에서 세 번째 시나리오(C)로 가려는 북한을 강력 히 견제해야만 한다. 우리의 목표가 북한을 대화에 유인한 후 북한의 실 질적 비핵화 조치까지 확보하는 것이라면, 대북제재를 어떠한 시점에서 무엇을 대가로 철회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대화 프레임을 구축해 야만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 기준과 판단의 문제가 과제로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제재 해제 및 완화가 대화 시작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화 과정에서 북한의 행동을 강제하고 북한의 기만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즉 비핵화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그 내용과 진행에 대해서는 북한의 비핵 화 노력과 연동해 엄격하고 단호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강력한 제재를 통해 북한의 취약성을 극대화시켜 우리의 협상 자원을 확대해야 만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핵화 대화 개최가 목적이 아니라 비핵화 조 치를 확보하는 것이 제재의 궁극적 성공이기 때문에 제재를 전략적 자산 으로 적극 활용해야만 한다.
만약 비핵화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북한은 쉽사리 핵능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대화 과정에서 북한이 과거와 같이 지연 전략을 채택 해 핵 고도화를 지속하고 자신들의 전략적 가치를 시위하기 위해 도발을 계속한다면, 미국과 중국은 더욱 공세적인 비핵화 전략을 채택할 수 있 다. 즉 첫 번째 시나리오(A)의 궤도가 두 번째 시나리오(B)로 전개될 가능 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미중의 태도 변화가 핵심 변인이므로 한국 은 미중과의 협조체계를 강화해 이들의 이해를 존중함과 동시에 제재국 면의 주도권을 강화할 수 있는 [제재-비핵화-평화체제] 프레임을 구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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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섣불리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독자적 비 핵화 추진동력 확보에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당분간 남북관계는 국제 대북제재 메커니즘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성공단 재개·
한국의 독자적 제재 완화와 같은 조치는 자칫 대북제재의 동력을 훼손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제재-비핵화-평화체제] 구축은 궁극적으로 대화를 통해 달성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북한 지도 부가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곧 북한 정권의 종식으로 인식하지 않도 록 주의해야만 할 것이다. 만약 제재의 징벌적 목적을 지나치게 강조하거 나 평화체계 구축 주장이 흡수통일 책략으로 의심받게 되면 북한의 격렬 한 저항 때문에 비핵화와 평화체계 구축에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나. 미국과 중국의 대북 전략 변화 대비
북미 관계의 변화 여부에도 주목해야 한다. 가능성은 높지는 않지만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강압 증가와 중국의 적극적 협조로 인해 북한의 저항능력이 단기간 심각하게 훼손된 다면, 북한이 핵 모라토리엄 선언이나 극히 제한된 핵 사찰 허용 등 전략 적 손실이 크지 않은 사안을 양보하며 대화를 희망할 수 있다. 아울러 미 국이 중국의 제재 강화 노력에 대한 대가로 북한과의 대화에 좀 더 적극적 으로 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도 북한의 최우 선적 목표는 제재국면 회피와 핵무기 개발 환경의 확보일 것이다. 이 경 우 비록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의심되더라도 한국이 북미 대화 재개를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는 없다. 북핵 문제는 궁극적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 해야만 한다. 북미 대화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자칫 한국이 대화를 거부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킴과 동시에 한미동맹에 대한 균열을 의심하게 만 드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한국이 ‘북한의 비핵화 대화 유도→대화 지속 메커니즘 구축→북한의 정책 선택지 변화 견인’과 같은 제재 운용전략을 시급히 확립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 정세 하에서 강력
Ⅵ. 결론 149 한 대북제재와 압박만이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미중관계의 변화여부에도 주목해야 한 다. 앞선 시나리오 D가 현실화될 경우 미중 간 갈등이 현재보다 더욱 증 폭 될 것이다. 이는 미중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전략적 타협을 거부할 가능 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하고, 북핵 국면이 미중 간 상호 영합적(Zero-Sum) 게임에 직면하였음을 뜻한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면 미중 양국은 한반 도 문제에 있어 각각 상대방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대안들과 관련한 타협은 전적으로 거부할 것이다.
특히 미중 간 한반도 빅딜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목해야만 한다. 북핵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중의 빅딜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북핵을 포함 한 한반도 문제를 놓고 미중 간의 상호 경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더 크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전략적 방책은 우선적으로 한미동맹 관리에 방점이 놓여 져야 한다. 우리가 동맹관리를 제대로 못한다면, 한 중관계는 물론이고 남북한 평화안보 프로세스도 제대로 가동되기가 힘 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미·중·러의 전략적 삼각관계가 동북아와 동아 시아 전략구도에 미치는 영향은 당분간 이 지역의 안보구도가 매우 불확 실하고 유동적인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 의 대다수 국가들은 특정 국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결정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 관점에서 유동적인 상황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상황 적응력을 높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한국은 제한적 헤징전략(limited hedging strategy)을 안보전략으로 채택하여 미·
중·러의 전략적 삼각관계로 인한 지역안보환경의 불확실성과 유동성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중·러의 전략적 삼각관계에 따른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동 북아 안보환경에서 강대국 정치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한반도 평 화번영을 위한 굳건한 발판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명확하고 강한 정책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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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와 전략 의도를 일관되게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및 향후의 정세 전망을 고려했을 경우, 한반도나 동북아의 상황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순 응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보다는 유연하고 탄력적인 외교력을 발휘하여 상황을 헤쳐 나가고 또한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 있는 능동적 이면서도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환경에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해 나갈 수 있는 전략적 방책이자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다. 북한 지도부의 전략적 셈법 개입 전략
우리의 의지와 노력과 별개로 대화 국면 진입이 어려울 수 있다. 오히 려 북한의 추가 도발과 이에 대한 제재 강화라는 악순환 국면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제재의 목표를 단기적으로는 비핵화 대화 재개에 둘 수밖에 없으나, 북한의 제재 결기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중 장기적 차원에서 제재와 압박의 지속을 통한 북한 내부 균열도 동시에 겨냥하는 제재 메커니즘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제재 수준을 격상 시키고 이의 장기간 투사가 궁극적 효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결국 제재의 성패는 제재의 내용과 강도, 제재의 투사 기간 외에도 제재의 전략적 메 커니즘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제재에 대응하 는 북한의 전략적 셈법에 한국이 적극 개입해야만 한다. 아울러 전략 구상 은 앞서 분석했던 북한의 전략 구상에서 ‘상수(常數)’로 설정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다섯가지 맹신 및 기대를 좌절시키는 노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북한 지도부의 행태와 발언등을 고려해 볼 때 북한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차원의 맹신과 기대를 전제로 국가 전략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 분명 하다. ① 시간은 내 편이며, 핵 무력만 완성되면 핵 보유국 지위는 인정받 을 것이다. ② 미 본토 핵 공격력만 갖추면 미국은 절대 우리에 대한 핵공 격을 하지 못할 것이다. ③ 중국이 우리를 압박하더라도 결코 우리를 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