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정세 추동 핵심 요소
한반도 평화체제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전 없이는 구축될 수 없다.
북한의 핵 고도화 수준이 상당히 미약했고 북한이 평화체제(협정)를 비 핵화와 연계했던 김정일 시기와는 달리, 김정은 체제는 타협을 통한 비핵 화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이는 고도화된 핵능력 보유가 없다면 체 제의 생존과 생존환경 구축은 불가능하다는 그릇된 정세 인식과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즉 대북 제재와 압박으로 인한 고통은 극복 및 감내 가능하거나, 제재로 인한 단기적 손실보다는 핵 고도화로 인한 장기적 편익이 더 클 것이라는 전략적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셈법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북핵 문제 해결과 평화체제 구축은 상당히 난망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를 유인할 수 있는 조건과 환 경을 향후 정세 전망 속에서 구명하고 예측하는 것이 비핵화를 추동하고 평화체제의 환경을 구축하는 데 중요하다.
본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북한 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 환경 조성을 위해 한국은 어떠한 전략을 선택해야만 하는가?”이다. 북한의 핵 고도화 수준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다. 아마도 북한은 김정은 체제 10년 차 이전 인 2020년 시점을 핵 고도화 목표로 설정했을 것이다. 미 트럼프 행정부 의 임기 마지막 해도 2020년이며, 중국의 시진핑 체제 또한 비슷한 시기 에 집권체제 변동이 진행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3~4년간이 북핵 문제 해결에 분수령이 될 것이다.
2020년까지 북핵 정세 및 한국의 비핵화 전략 구상에 미치는 변수들 은 너무나 다양할 것이다. 북핵 정세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화 동인은 한 국의 대북정책, 북한의 대남정책, 북한의 체제안정성, 미국 및 중국의 대 북 정책, 그리고 관련국 간의 양자 및 다자 관계 등이 될 것이다.93) 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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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비핵과 정책과 전략에 미치는 ‘불확실성’과 ‘영향력’ 차원에서 가장 주요한 결정변수는 ‘미·중의 비핵화 협력 수준’과 ‘북한의 제재저항능 력’일 것이다.94) 미국과 중국의 비핵화 협력 수준은 북미 및 북중 관계와 긴밀히 상호작용하여 역내 구조의 성격을 규정지을 것이다. 아울러 직·
간접적으로 한미관계 및 한중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의 제재 저항능력은 기본적으로 북한정권의 안정성과 북한의 핵 고도화 지속능 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중관계와 북한의 제재저항능력은 상호 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미 관계는 비핵화 정세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 나, 당분간 북미 관계가 개선의 방향보다는 상당히 경색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핵심 변화동인으로서의 불확실성이 그리 높 지 않다.95) 남북관계 및 한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미국을 대상으로 핵 게임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 핵 문제의 남북 관계 포섭력, 한미동맹의 특 징 등을 고려해 볼 때 당분간 영향력과 불확실성이 그리 높지 않을 것이 다. 아래 <그림 Ⅳ-1>은 향후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결정요 소를 불확실성과 영향력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제시한 것이다.
93) 향후 한국의 대북정책 및 전략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할 것이나, (의사)결정 요소 구성에는 대안 당사자(한국)가 반드시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소여야 하므로 요소 구성에서는 제외한다.
94) ‘불확실성’이 높다(high)는 것은 변수가 어느 한 방향으로 경도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확률적으로 50:50임을 의미한다. 즉 2020년경 북한의 핵능력이 파키스탄과 같은 수준의 고도화를 이룰 가능성과 북한의 제재 굴복 가능성이 모두 50:50이라고 추정한 것이다.
95) 신욱희 교수는 북핵 문제와 평화체제 구축 논의가 한국, 북한, 미국의 국내적 변화, 미중 관계의 역동성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지만, 북미 관계 개선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에 있어 어떠한, 그리고 어느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인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신욱희, “북미관계와 한반도 평화체제: 역사적 고찰,” 한국정치외 교사논총, 제33권 제2호 (2012), p. 55.
Ⅳ. 비핵화-평화체제 구축 시나리오 77 그림 Ⅳ-1 2020 북핵 정세 핵심 변화동인
불확실성
High ·미중 협력수준
·북한의 제재저항능력
→ 핵심변화 동인
Mid ·한국의 대북정책
·북한의 대남정책
·미북 관계
·북중 관계
Low ·북한의 체제안정성 ·북핵 고도화 수준
·한미 관계
Low Mid High
영향도 자료: 저자 작성
나. 미중관계와 북한의 제재저항능력 (1) 미·중 협력 수준
북핵 문제가 점차 미중 간 전략 게임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 까지 서로 북핵 문제 책임론을 둘러싸고 지루한 공방을 이어왔다. 미국은 북중 경제가 북한의 전체 대외무역 거래량에 약 90%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과 2차 핵실험 이후 국제적 대북제재가 지속적으로 강화됨에도 불구 하고, 양국 간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중국이 실질적인 북핵 해결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를 진정으로 해 결할 의지가 부족하다고 비난해 왔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북핵 문제의 책임은 북미 양측 모두에게 있으며, 특히 강대국으로서 미국의 평화적 해결 의지가 상당히 빈약하다고 비난해 왔다. 즉 북한 정권의 생존 위협 을 제거할 수 있는 미국의 근원적인 안보차원의 양보가 없는 상황에서, 중국의 역할만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인식한다.
북핵 문제 해결에 결정적 능력을 보유한 미중 양국이 상호 책임을 미루 는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중국의 영향력은 점차 높아졌으며 북핵 고도화 위협 수준 또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전개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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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2017년 등장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8년간의 전략 적 인내 정책의 실패를 선언하고,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전략을 채택했다. 2017년 4월 발표된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 전략이 그 요체이다. 물론 압박과 관여의 주 대상은 북한이나, 미국은 대북 전략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중국을 직접 강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2017년 4월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은 미중 무역 문제를 중국의 대북정책과 긴밀히 연계시켰다.
즉 미국은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문제, 지적 재산권 침해 문제, 슈퍼 301조 발동 문제, 세컨더리 보이콧 등을 통해 안정적인 미중 무역 관계의 지속이 필요한 중국을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의 도발에 대한 선제타격 등 군사적 옵션의 실행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언급 함으로써 중국의 전략적 이해 또한 자극하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압박으로 인해 중국은 북핵 문제 관련 미국의 전략에 일정 수준 호응하고 있다. 2017년 4월 미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은 북한 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압박에 큰 이견 없이 공동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화성-14형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안 2371호 채택에 반대하지 않았으며, 북한산 광물자원 수입을 원천 거부하는 등의 강력한 제재안에 합의했다. 아울러 2017년 8월 괌 인근에 대한 북한의 추가 미 사일 도발 위협 시, 만약 북미 간 무력 분쟁이 발발한다면 중립을 지킬 것이라는 점 또한 에둘러 표현함으로써,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한 강력한 압박을 구사했다. 아울러 북한의 추가 도발 시 더욱 강력한 제재가 불가 피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렇듯 제재와 압박에 대한 미중 협력 수준이 높아지면 질수록 북한의 향후 전략적 구상은 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미중의 협력이 지속되지 못하고 균열의 가능성도 무시 할 수 없다. 미국에 대한 중국의 지나친 경제적 강압에 대한 중국 지도부 의 불만이 높아지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일정 수준의 영향력을 미국이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면, 중국은 미국의 강압에 저항하
Ⅳ. 비핵화-평화체제 구축 시나리오 79 며 미중 협력의 수준을 급격히 낮추거나, 북중 협력을 오히려 강화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유엔제제결의안의 효과가 반감되고 미국이 독자적 대북 압박을 더욱 강화하면서 북한 비핵화 추진 환경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독자적 군사행동 이 미중 협력 수준에 미치는 영향은 양면적일 것이다. 추가 군사적 조치 를 막기 위해 중국이 마지못해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할 수도 있으며, 반대로 북한 정권의 붕괴를 막기 위해 미국에 저항할 수도 있다.
(2) 북한의 제재저항능력96)
북한이 비핵화 결단을 거부하고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 강력히 저 항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북한이 비핵화 타협을 거부하고 추가 도발을 강행하는 경우 제재와 압박 수준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2017년 6월 한 미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합의한 바처럼 대북 제재와 압박의 목표는 북한 을 비핵화 대화로 견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저항 의지가 높기 때 문에, 결국 대화 재개를 위한 제재와 압박의 효과는 북한의 제재저항능력 을 약화시킴으로써 발생할 것이다. 북한의 제재 저항능력 확보는 대내적 저항능력 강화와 대외적 제재 회피 환경 구축으로 구성된다.
(가) 대내적 제재저항능력 보유
북한의 제재저항능력은 내적으로는 지도부의 제재 저항 결기 정도·경 제취약성 극복여부·외교 및 군사적 압박의 거부 능력 보유여부가 될 것 이다. 현재 김정은 정권은 대북제재에 대한 강력한 불복 의지를 천명하고
96) 대북(경제)제재는 강압의 일종이며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현재 제재 효과를 높이 기 위해 정치·외교·군사적 강압을 동시에 병행하고 있다. 다만 제재의 궁극적 목표가
‘북한의 비핵화’라는 외교안보적 차원이므로 경제적 효과만으로 제재 효과를 단정할 수 없다. 통상 제재 실행 과정은 ‘위협→조정과 실행→감시’로 대별된다. 위협과정에서 는 주로 제재능력·실행에 대한 신뢰성·긴박감 조성 등이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조정과 실행단계에서는 목표수준·수단선택·취약성 공략·강대국들과의 연대·흑기사 국가의 역할차단·제재기간 등이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제재 실효성 조건들은 반대로 북한이 제재를 우회 및 거부할 수 있는 전략적 요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