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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공산주의교양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주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게 된데 이어서, 1962년 당 조직체계에 대한 강화 방침이 전달되 었다.

... 로동계급의 선봉적부대가 사상의지와 행동의 통일을 보장하며 원쑤들 과의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서는 모든 성원들이 하나의 원칙에 의하여 철저하게 조직되여야 합니다. ... 만일 군대내에서 당세포들이 잘 움직이면 .... 농촌에서 당세포가 잘 움직이면 .... 작가, 예술인들 속에서 당세포가 강 화되면 ... 발전할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당조직이 잘 움직이고 당원들 이 잘 발동되면 당사업이 잘되는것이며 당사업이 잘되면 모든 문제들이 다 잘되여나가는 것입니다.31)

1960년대 당세포를 중심으로 하는 조직생활을 강화하고, ‘생활총화’에 대한 논의 역시 시작하였으나, 초기 당세포 활동이나 생활총화는 비교적 느슨하였고, 엄격한 의례의 형식을 보이지는 않았다(이우영·황규진, 2008). 이는 1970년대가 되어 사회의 주요한 생활체계로서 자리잡혔다.

조직생활은 사상단련의 용광로이며 혁명적교양의 학교입니다. 누구나 강 한 조직생활을 통해서만 혁명적으로 단련될수있으며 로동계급의 혁명위 업에 충실한 참된 혁명가로 자라날수 있습니다. 우리는 근로자들속에서 조 직생활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야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 이 다 조직생활에 적극 참가하며 조직규률을 자각적으로 지키며 ... 조직 의 지도와 통제 밑에서 생활하며 끊임없이 혁명적교양을 받도록 하여야 합 31) 김일성, “당 조직사업과 사상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하여(1962.3.8.),” 김일성저작선집 3 (평

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68), 290-295.

니다.32)

이와 함께, 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사로청), 조선민주녀성동맹(여맹), 조 선직업총동맹(직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농근맹) 등 각 단체들의 특성에 맞게 조직을 보다 강화할 것이 강조되었고,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사상 사업을 조직적으로 수행할 것이 요청되었다.33) 당시 당원이면서 외곽단 체에도 가입하거나, 비당원일 경우에도 두 개 이상의 외곽단체에 가입한 중복가입자들이 다수 존재하였다. 김일성은 1974년 당원들의 중복가입을 금지하고, 모든 주민이 각각 하나의 단체에 가입되도록 함으로써, 조직체 계의 단일화와 조직적 통제 체계의 효율성을 강화시켰다.34)

청년동맹은 당, 군과 함께 북한의 3대 보루로서 인식되었다. 청년동맹 은 1946년 ‘(북)조선민주청년동맹’(이하 민청)의 이름으로 공식 결성되었 다. 이는 만 14세부터 28세에 이르는 청년들의 사회조직으로, 청년들의 정치사상을 통제하는 동시에, 북한사회 건설에 필요한 다양한 노동수요 를 충당하는 주요한 사회 기반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북한 단독정 부 수립 후 사회가 안정화되기 시작한 1948년 조직을 편제하고, 1955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통해 민청과 관련한 결정서를 채 택, 사회주의애국주의 사상교육과 의식개조에 적극 노력할 것을 결의하 며 북한 사회 내 보다 확고한 역할과 지위를 보장받게 되었다(차승주, 2011). 사상교양을 위한 주요 수행조직으로서 이들의 성격 및 기능이 보 다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민청단체는 소년들이 소년단생활을 잘하도록 하는 한편, 주로는 초급중학 32) 김일성,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 3. 사상혁명, 온 사회의 혁명

화, 로동계급화 (1970.11.2.),” 김일성 저작선집 5 (조선로동당출판사, 1972), 463-471.

33) 1971-1972년 김일성은 각 단체들의 회의에 참가하여 단체의 특성에 맞는 조직화와 사업을 보 다 적극적으로 이어할 것을 강력히 주문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일성, “청년들의 특성에 맞 게 사로청사업을 더욱 적극화할데 대하여 (1971.2.3),” 1-47; “녀성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할데 대하여 (1971.10.7.),” 112-135; “사회주의사회에서의 직업동맹의 성격과 임무에 대하여 (1971.12.14.),” 164-193; “농업근로자동맹의 중심과업에 대하여 (1972.2.16.),” 김일성 저작선집 6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74), 227-252.

34) ) 김일성, “근로단체사업을 개선강화하기 위한 몇가지 대책에 대하여 (1974.1.3.),” 김일성 전 집 53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2004), 374-375.

교 3학년으로부터 대학 1학년에 이르기까지의 학생들, 특히 기술학교 학생 들과의 사업에 힘을 넣어야 합니다. ... 이 시기 학생들과의 사업을 잘하고 그들에게 교양을 잘 주어야 합니다. ... 학생들에게 로력동원을 제정된 기간 보다 더 시키지 말아야 하며 기술학교 학생들의 로력동원은 줄이고 그 시 간을 리용하여 교양을 더 잘하여야 합니다.35)

이에 따라 민청은 1964년 5월 청년동맹 5차 대회를 개최하고 1,200,000여 명의 인원을 대폭 증가하는 한편, 그 명칭을 ‘조선사회주의로 동청년동맹’(이하 사로청)으로 변경하였다. 만 14세-28세까지의 가입연령 을 만 14세-30세로 확대하고, 당의 사상교양 단체로서 당과 대중을 연결 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며 규약을 재정비하였다(차승 주, 2011).

구분 시기 가입원 수

북조선민청 창립대회 1946월 1월 약 252,500명 각 도당 청년사업부장

도민청위원장 연석회의 1946년 5월 약 800,000명 조선노동당 창립대회 민청위원장

보고 내용 1946년 8월 약 1,200,000명

청년동맹 2차 대회 1946년 9월 약 1,300,000명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회 1947년 2월 약 1,400,000명

청년동맹 3차 대회 1948년 11월 약 1,300,000명 청년동맹 4차 대회 1956년 11월 약 1,500,000명 청년동맹 5차 대회 1964년 5월 약 2,700,000명

표 4. 청년동맹 가입원 수

출처: 최대석·김종수. 2006: 85; 차승주, 2011: 49-85에서 재인용.

이러한 변화는 구사회주의 국가들과 비교해볼 때 가장 확대된 형태라

35) 김일성, “출판사업과 학생교양사업을 강화할데 대하여(1962.5.3.),” 사회주의교육학에 대하여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73), 132-133.

고 볼 수 있다. 소련의 레닌공산청년단, 체코슬로바키아의 사회주의청년 단이 만 14세-28세, 동독의 자유독일청년단이 만 14세-25세,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이 만 14세-28세인 것에 비해 사로 청의 가입 가능 연령이 이보다 확대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그 목적이 조직의 확대 자체에 있기 때문이었다고 논할 수 있다(이종석, 2000:

332). 이러한 조직의 확대는 북한 노동당의 사회 내 위상 및 역할을 공 고하게 구축하고 이를 통한 북한주민들의 사회조직화, 체계화를 효과적 으로 구현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정부 수립 이전 건국사상총동원 시기 북한 노동당의 입당 조건을 완화하며 당원의 기하급수적인 확대를 유도함으로써 북한지역 사회 내 입지를 굳힌 것과 같이(김재웅, 2005; 서동만, 2005), 사회 내 북한 청년층의 사회조직 편제 를 확대하고 그 의무를 공고히 함으로써, 당과 학교, 사회 내 사상교육의 조직적 연결고리를 보다 체계적으로 구축하고자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단계에서 청년동맹의 기본업무는 전체청년들을 당 주위에 굳게 단결 시켜 조국의 통일독립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당의 혁명위업 실 천에 적극 조직동원하며 그들을 전면적으로 발전한 공산주의건설자로 교양 육성하는데 있다. ... 향후 사로청의 주요 과업으로 청년들의 공산주의 혁명 투사로서의 교양 육성, ... 그리고 청년들의 교양을 위해서 김일성저작을 심 오히 연구하도록 요구...한다.36)

1964년 제정된 사로청의 사상교양단체로서의 역할은 1970년대 주체사 상이 공고화되고 확산되면서 보다 강화되었다. 사로청의 구조와 정치사 상동맹 조직으로서의 활동은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대부분 그 틀을 유지 하며 운영되고 있다.

2. ‘생활총화’

36) “조선민주청년동맹 제5차 대회 결정서,” 로동신문, 1964.5.17. 이종석, 2000: 314-328에서 재 인용.

‘생활총화’는 김일성의 교시와 당 정책에 비추어 일정 기간에 한 번 씩(2일, 7일, 10일) 개인의 일상생활을 반성하는 행사를 말한다(이우영·

황규진, 2008). 이는 모든 북한 주민들이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37) 북한주민들에 대한 ‘생활총화’의 의무화는 공산주의교양이 공포되고, 사 상교양의 정책방침이 체계화된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나, 보다 강력한 규례화와 의례화가 이루어진 시기는 1970년대 김정일을 통해서였다(이우 영·황규진, 2008: 136). 김정일은 1973년 8월 21일 “전당에 새로운 당생활 총화제도를 세울데 대하여”라는 연설을 통해 ‘새로운’ 생활총화 체계를 구축할 것을 공포하였다. ‘생활총화’에 대한 제도화는 1974년 4월 이루어 졌다. 이는 북한의 유일사상체계가 공포된 1974년 4월 14일 “당의 유일 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의 일부로서 다음과 같이 공포되었다.

8조 3항. 조직생활에 자각적으로 참가하며 사업과 생활을 정규화, 규범화하 여야 한다.

8조 4항. 조직의 결정과 위윔분공을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8조 5항. 2일 및 주 조직생활총화에 적극 참가하여 수령님의 교시와 당정책 을 자로 하여 자기의 사업과 생활을 높은 정치사상적수준에서 검토총 화하며 비판의 방법으로 사상투쟁을 벌리고 사상투쟁을 통하여 혁명적 으로 단련하고 끊임없이 개조해나가야 한다.38)

이에 따라 ‘생활총화’는 북한의 주요 제도로서 모든 북한주민이 의무 수행해야 하는 주요 생활체계가 되었다. 각 개인들은 가입한 근로단체 (사로청, 여맹, 농근맹, 직맹, 소년단 등)에서 정기적으로 지정한 날짜에 생활총화에 참여하도록 강제되었다. 생활총화는 보통 10-15명으로 구성 된 단위에서, 자기비판 또는 상호비판을 통하여 그동안의 생활동향을 살 피고, 이를 생활총화에 참석한 각 최고책임자가 ‘결함’의 경중에 따라 경

37) 조선로동당 규약 제1장 제4조(당원의 임무) 2항 “당원은 당회의와 당학습을 비롯한 당의 조직 및 사상생활에 충분히 참가하고 당조직의 결정과 자기에게 부여된 임무를 정확히 수행하며 자 신의 당생활을 정기적으로 총화하며 비판과 사상투쟁을 통하여 자기를 혁명가로 단련시켜야 한다.” 이우영·황규진(2008): 123 재인용.

38) 김정일,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1974년 4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