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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정책

Dalam dokumen 북한개요 (Halaman 115-126)

가. 정책기조

(1) 외교정책의 이념과 목표

북한은 1998년 사회주의 헌법 제17조에서 평등과 자주성, 상호존중 과 내정불간섭, 호혜를 외교정책의 원칙으로 설정하고 있다.1)

이러한 입장은 노동당 규약에도 나타나 있다. 즉“자주성과 프로레 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에 기초하여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단결과 국제 공산주의운동과의 련대성을 강화하고 세계의 모든 신흥세력나라 인 민들과의 친선, 협조관계를 발전시키며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 카 인민들의 반제민족해방운동과 자본주의 나라들의 로동계급과 그밖 의 인민들의 혁명투쟁을 지지하고 광범한 련합전선을 실현하여 미국 을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와 지배주의를 반대하며 평화와 민주주 의, 민족적 독립과 사회주의 공동위업의 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투쟁 한다”2)는 것이다.

또한 1980년 10월에 개최된 제6차 당대회 총화보고에서 김일성은 당시의 국제정세를“혁명력량과 반혁명력량 및 반제국주의 세력과 제 국주의 지배세력간의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대외활동의 기본목표로“반제자주력량의 단결강화와 비동맹운동의 확 대 발전”및“사회주의력량과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단결”을 강조하였 다. 그러나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이 해체되자 종전에 내세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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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사회주의 헌법 제17조에는“자주·평 화·친선은 조선민주주 의 인민공화국의 대외정 책의 기본리념이며 대외 활동 원칙이다. 국가는 우리나라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 완전한 평등과 자주성, 호상존중과 내정불간섭, 호혜의 원칙에서 국가적 또는 정치, 경제, 문화적 관계를 맺는다. 국가는 자주성을 옹호하는 세 계인민들과 단결하여 온 갖 형태의 침략과 내정 간섭을 반대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적, 계급 적 해방을 실현하기 위 한 모든 나라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한 다”라고 규정하고 있 다. 1948년 헌법에는 외 교정책의 이념과 원칙에 대한 언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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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규약 전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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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레닌주의와 프로레타리아 국제주의원칙”이라는 용어를 외교 정책의 원칙에서 삭제하였다.

1992년 헌법은 대외정책의 기본이념 및 원칙으로 자주, 평화, 친선 을 규정하고 자주성을 옹호하는 세계인민들과의 단결을 통한 침략과 내정간섭에 대한 반대 및 자주권과 민족적·계급적 해방의 실현을 대 외정책의 목표로 제시하였다. 사회주의권의 소멸을 반영하여 마르크 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은 사라졌으나‘제국주의 와 지배주의 세력’에 대한 연대투쟁 목표는 아직도 유효하다. 이것은 북한의 국제정세에 대한 대결론적 상황인식이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 을 의미한다.

요컨대 북한은 자주·친선·평화라는 외교정책의 이념과 원칙 하에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체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국제적인 여건과 환 경의 조성 등을 목표로 외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2) 대외활동 방향

북한은 헌법 제17조에서“우리나라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 들과 완전한 평등과 자주성, 호상존중과 내정불간섭, 호혜의 원칙에서 국가적 또는 정치, 경제, 문화적 관계를 맺는다”고 규정하고 있다.3) 그 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외교활동이 사회주의권 및 비동맹국가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미·소 양극을 중심으로 한 냉전체제라는 구조와 사 회주의 국제주의라는 이념적 요인이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외교를 중시 하게 하였다. 비동맹국가들과의 외교관계가 활발했던 이유는 북한이 반제국주의 이념4)을 내세우면서 비동맹국가들을 대상으로 남한과 수 교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 소련의 해체와 동구권 몰락이라는 국제정 세의 변화에 따라 종래 사회주의권내 국가들을 지향한 진영외교 및 비동맹에 주력하던 외교활동은 변화를 맞고 있다. 경직된 통치이데올 로기와 계획경제의 한계 및 내부자원 고갈에 의해 어려움을 겪던 북한 은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사회주의 국제시장이 사라진 현실에 직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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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헌법 제17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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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이른바‘제국주 의의 침탈’을 받고 있는 공동의 처지라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배경하에 북한의 지역별, 대상별 외교활동 방향은 다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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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①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체제안전에 대한 보장과 경제적 실리획득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 다.5)

②중국, 러시아 등과는 전통적 우호·친선관계를 유지·발전시킨다.

③ 전반적으로 비동맹외교의 퇴조 속에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와의 자원외교를 강화한다.

④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들과는 1995년 이후 계속된 식량난 해소 차원에서 유대강화를 도모한다.

요컨대 1990년대 이후 북한의 외교활동은 이념·정치 위주에서 벗어나 실리·경제를 강조하는 현실주의적인 전방위 외교노선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나. 외교정책 전개과정

(1) 1948년 정권수립∼1950년대 초반 : 중·소 의존

북한의 외교관계는 1948년 9월 정권수립시기부터 1953년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진영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당 시의 외교활동은 소련의 영향권 안에 있는 공산국가들과의 관계가 거 의 전부였으며, 수교국도 소련, 중국, 동구 제국 등 12개국에 불과하였 다. 이 시기에는 전세계적으로 공산권 내에서 소련의 리더십이 확고하 였던 반면 중국은 국공내전에 몰두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소련의 한 위 성국으로 지원을 받는 실정이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영향력도 소련 이 거의 독점적으로 행사하였다.

그러나 1950년 10월 중공군의 6.25전쟁 참전은 북한의 대중·소 외 교관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은 근 100만 명에 달하는 중 공군을 참전시켜 북·중은 혈맹적 유대를 맺게 되었다. 이러한 중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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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선은 이미 1970년대에 표명된 바 있다. 김일성은 최고인 민회의 제5기 제1차 회 의(1972.12.10)에서“조선 반도의 북과 남에 대해 침략적 성격이 없는 균 등한 정책을 실시하는 자본주의 나라들과도 평 화공존 5개 원칙에서 국 가적 및 정치, 경제, 문 화적 관계를 맺기 위하 여 노력한다”고 표방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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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일시에 중국 편향으로 기울지 않고 중·소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북한의 중·소 등거리외교는 결과적으로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경쟁 적으로 경제 원조를 받는 외교적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2) 1950년대 중반∼1960년대 후반 : 비동맹외교 강화

휴전협정이 성립되자 북한은 전후 복구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우선 중·소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획득하기 위한 협력관계 강화에 주력하였 다. 그러나 1955년 4월 아시아·아프리카지역의 신생독립국 29개국이 참가한 반둥회의에서‘평화 5원칙’이 발표되고6), 흐루시초프가 평화 공존정책을 거론하게 되자 북한은 중, 소, 동구 등 공산국가에 국한하 였던 진영외교를 탈피하여 다변외교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이 중립국들과의 외교적 접근을 시도한 것은 1956년 4월에 개 최된 제3차 당대회에서 다변외교로의 전환방침을 밝힌 때부터이다.7) 이와 동시에 1956년 4월 대외문화연락위원회라는‘인민외교’수행담당 기관을 노동당 외곽단체로 만들어 대중립국 외교활동을 전개하기 시 작하였다. 그 결과 1958년에는 알제리, 기니 등과 수교하게 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은 대중립국 외교를 더욱 강화하였는데 이 것은 아시아·아프리카지역의 신생독립국가들이 대거 UN에 가입하고 1960 년 제15차 UN총회에서 남북한 동시초청문제가 제기된데서 비롯되었다.

1961년 9월 제4차 당대회에서 김일성은 ①사회주의 국가와의 단결

②제국주의 진영에 대한 반대투쟁 ③신생독립국가에 대한 접근8) 등을 강조하였으며, 같은 해 6월과 7월 소련과 중국을 방문하고「조·소 우 호 협조 및 호상원조 조약」과「조·중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 조약」을 각각 체결하여 사실상의 군사동맹관계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1962년 중·소 국경분쟁과 쿠바사태 이후 중·소 분쟁이 격 화되자 북한은 중국에 밀착하였다가 1965년 2월 코시긴 소련 수상의 방북을 계기로 중·소 균형외교 입장을 취하였다. 이러한 중·소 양다 리 외교에서 북한은 그들의 외교적 활로를 찾고자 1966년 8월‘내정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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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5원칙’이란‘영토 주권의 상호 존중, 상호 불 가침, 내정 불간섭, 평등호 혜, 평화적 공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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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총화보고에서

“상이한 사회제도를 가 진 나라들과의 평화공존에 대한 레닌적 원칙을 견지 하여 자주권의 상호존중과 평등권에 입각하여 세계의 모든 평화애호국들과의 정 치적 및 실무적 관계를 맺 기 위하여 노력하여야겠 습니다.”라고 발언하였다.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 주요 문헌집」(평양: 조선 로동당출판사, 1956),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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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저작선집 3」, pp.194~197.

교활동의 지침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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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70년대 : 자주외교의 실현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북한은 내외환경에 중대한 변화들이 발생 하자‘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를 표방하면서 이른바‘자주 외교’를 추진하기 시작하였다.‘자주외교기’에 들어서면서 북한은 중 국 편향 외교정책으로부터 벗어나 중·소 중립입장으로 선회하는 가운 데 보다 다변화되고 실리적인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북한이 실리외교 를 정책노선으로 채택한 것은 1971년 11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국제정세에서 제기된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라는 의제 가 토의되면서부터였다.10)

이러한 배경에는 대외적으로 1971년 9월 중국의 UN가입과 1972년 닉슨 미국대통령의 중국방문을 계기로 한 미국·중국의 관계개선, 일 본·중국의 국교정상화 등 국제적 화해분위기의 성숙, 그리고 UN 및 기타 국제기구에서의 남북한 대결에 대비한 지지국의 확보 필요성 등 이 작용하였다. 또한 대내적 배경으로는 새로운 6개년 경제개발계획의 추진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도입을 위해 서방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의 필 요성 등이 있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북한은 1970년 제5차 당대회 이후 1980년 제6 차 당대회까지 66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북한은 외교에서의 자주적 노력을 통하여 제3세계 지역에서 중국이나 소련의 외교에 의 지하지 않을 수 있는 독자적인 외교활동망을 구축할 수 있었으며, 초청, 방문 등의 외교노력을 통하여 아시아·아프리카 등지에 있는 제3세계 국가들과의 유대를 확대·강화할 수 있었다.

1975년 이후 북한의 제3세계 외교의 성과로는 무엇보다도 1975 년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개최된 비동맹회의 외상회의(8.25~30)에서

‘비동맹회의’에 가입한 것을 들 수 있다. 이어 같은 해 제30차 UN 총회에서 처음으로 한반도 문제에 관한 서방측 안과 공산측 안이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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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성을 옹호하자”,

「로동신문」(1966.8.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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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연감」(1972), pp.26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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