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전자는 ‘어떤’ 정보인가?
2.3.4 유전자 정보의 오류가능성
오류지향성과 지향성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어떤 관계 속에서 단순한 인과 관계를 넘어선 지향적 관계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가장 표준적인 철학적 방법은 그러한 관계 속에서 우리가 오류 가능성을 포착해 낼 수 있는지 그 가능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다(Wheeler, 2007). 인지 능력을 가진 개체가 외부로부터 어떤 자극을 받아 특정 표상 상태를 가졌을 경우 그 표상이 외부 세계의 자극을 올바르게 표상하지 못했을 때 오표상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안개 속에 나타난 사자 조각상을 보고 이를 살아 있는 사자라고 착각하고서 바위 뒤에 숨었다면 그는 ‘사자 조각상’을 보고 ‘살아 있는 사자’라는 잘못된 표상을 얻었으며 이에 따라 불필요한 행동을 취한 셈이 된다. 이때 이 사람이 표상한 ‘살아 있는 사자’ 는 ‘사자 조각상’ 에 대한 오표상이다.
목적의미론은 유전자에 지향적 표상을 부여함으로서 오표상이 일어날 수 있는 필요조건을 제공한다. 오표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유전자의 표상이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17 목적의미론적 정보 이론에 따르면 유전자 정보의 내용 또는 유전자가 표상하는 바는 자연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오표상은 유전자가 표상하는 내용과 그 결과가 상응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유전자가 담은 정보가 정보 수용자에게 전달되었을 때 발생해야 할 행동이 일어나지 않거나 기대되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실패했을 때 오표상이 발생한다. 목적의미론적 정보 이론은 앞서 살펴본 새넌의 정량적 정보 이론과 드레츠키의 인과 정보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없었던 유전자 정보의 오류 가능성을 훌륭하게 설명해 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와 같은 의미에서 유전자 표상의 내용을 확인하고 그 지향하는 내용 고정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가?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의 생물학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비교적 단순한 표현형이라 하더라도 그 세부적인 성질은 단일 유전자가 아닌 여러 유전자로 이루어진 집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때 집단 내 유전자들은 서로 길항적,
17이는 유전자가 표상하는 표현형이 오직 한 가지로 제한되어야 한다거나 유전자가 지닌 정보가 발현하는 환경의 변화에 상관없이 하나의 표현형만을 표상해야 한다는 요구가 아 니다. 나는 어떤 유전자 정보가 정확히 동일한 환경에서 기능한다면 (그것이 단일한 표현 형이든 여러 개의 표현형을 동시에 표상하든) 항상 동일한 표현형을 표상해야 한다는 의 미에서 고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겠다. 만일 매번 관찰할 때마다 동일한 환경에 속해 있 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유전자 X가 표상하는 대상으로서 기대되는 표현형 Y의 성질이 계 속해서 달라진다면 우리는 X가 Y를 표상한다고 말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유전자가 표현 형을 표상하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인과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가산적 또는 기능적으로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각 유전자들이 집단 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유전자가 어떤 형질을 결정하는데 생화학 또는 발생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함을 밝혀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유전자 집단에 의해서 형질이 결정되는 경우 그 중에서 역할마다 서로 다른 단일 유전자를 특정하는 작업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더해 다면발현성, 우열관계, 가소성, 연속성, 창발적 속성 등 유전자와 표현형 사이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여러 현상, 성질들은 유전자와 표현형 사이의 명료한 인과 관계를 추론하는 작업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Jonathan Michael Kaplan, 2001). 예를 들어 애기장대의 개화 시기는 수개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이 유전자들은 서로 복잡한 상호 작용을 걸쳐서 기능한다.
개중에 어떤 유전자는 정말로 개화 시기를 직접적으로 결정하는데 일조하지만 어떤 유전자는 오로지 그 집단 안의 다른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할 뿐이다(van Treuren, Kuittinen, Kärkkäinen, Baena-Gonzalez, & Savolainen, 1997). 이들 유전자는 집단 내에서 맥락에 독립적인 지향성을 지니지 않는다.
이들은 집단으로 뭉쳐 있을 때만이 ‘꽃을 피우는 시기를 결정’하는 기능을 지닌다.
또 주변 환경과 유전자 상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병하는 질병이 전체의 98%를 차지한다 (Jablonka et al., 2014). 유전자는 독재 체제가 아니라 의회제를 채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유전자의 집단이 표현형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그 집단 속에서 유전자들이 각각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그러한 역할은 고정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을까?
갓프릿 스미스에 따르면 비록 집단 내에서 각 유전자들이 표현형을 표상하기 위한 부분적 역할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작업일 뿐 어떤 유전자가 표현형을 표상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전화로 피자를 주문한 경우를 상상하자. 이제 피자는 적당한 시간 동안 오븐 속에서 구워져야 하고 박스 안에 잘 포장되어 나에게 ‘피자’ 라는 형태로 배달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피자를 주문했다는 정보에는 오븐과 포장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들어 있지 않다. 즉, 전화에 담긴 정보만으로는 피자가 만들어 질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표현형이 만들어지는데 있어서 유전자가 지닌 정보에는 표현형까지 도달하는데 필요한 정보의 대부분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유전자는 표현형을 표상할 수 없다 (Godfrey-Smith, 1999). 이 둘은 인과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Sarkar, 2003).
반면 쉐이에 따르면 우리는 같은 예시를 두고서 위와는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생명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개체발생적 방식과 계통발생적 방식의 두 가지 방식이 있으며 후자에 대해서는 유전자에게 표상을 부여하는 설명 방법이 유의미하다 주장했다(Shea, 2007). 개체 발생적 설명에 따르면 생명체는 유전자에 저장된 정보를 바탕으로 센트럴 도그마 과정을 거쳐서 단백질을 형성하며 이 단백질들이 모종의 형태를 취하여 생명체가 발현하는데 필요한 기능을 제공한다. 개체 발생적 설명은 단계 후 단계(stage-by-stage) 형식의 설명 방법을 취하며 수정란부터 성숙한 하나의 개체로 성장하기까지의 모든 단계들에 대한 발생학적 진술들의 집합을 통해 설명을 수행한다. 반면 계통 발생적 설명은 이러한 모든 단계들을 생략한 채 오직 원인과 결과에만 집중한다.
그것은 의미목적론적(teleofunction) 설명에 의존한다. 생명체는 방대한 정보를 담은 유전자에 의해 복잡한 적응적 성질들을 발현해낸다. 유전자의 목적(생명체의 발현)은 자연선택에 의해 고정된다. 두 설명은 상호보완적이지만 결코 하나의 법칙으로 묶일 수 없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피자를 주문한 전화가 피자를 표상한다는 계통발생적 설명이 가능하다.
앞서 유전자의 지향성에 대해 논하면서도 언급했듯이 유전자가 표현형을 표상함을 밝혀내는 바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유전자에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기작은 밝혀졌지만 이러한 사실로부터 그러한 기작이 표현형 전체로까지 확장될 것이라 낙관할 어떠한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Sterelny, 2000). 현재 우리의 생물학적 지식으로는 유전자와 표현형 사이의 정확한 인과 관계를 밝히는데 있어서 방법론적인 한계를 지니며 설사 유전자와 표현형 사이에서 유의미한
정도의 상관관계를 발견하더라도 이것이 정말로 생물화학적으로 이어진 인과적 관계인지, 그렇기 때문에 유전자가 표현형을 표상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아니면 유전적 무임승차의 경우처럼 단순한 상관관계에 지나지 않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필요로 한다(Jonathan Michael Kaplan, 2001). 그렇지 않는 한 이는 단순히 근거 없는 긍정론에 그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유전자의 정보가 표상하는 범위를 단백질에 한정 짓는 차선책 또한 유전자가 지닌 정보만으로는 어떤 단백질을 표상할지 결정지을 수 없으므로 받아들일 만한 결론이 아니다.
유전자의 정보는 무엇을 표상하며 그러한 관계는 어떻게 오류가능성을 포섭하는가? 유전자의 정보를 올바르게 설명하는 이론은 이러한 오류가능성을 포섭하고 설명해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