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전자는 ‘어떤’ 정보인가?
2.2.2 인과적 정보 이론과 유전자 정보 개념
드레츠키의 정의에 따르면 완전한 정보 전달은 예외 없이 명확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명확한 관계는 두 존재자 사이의 관계가 자연법칙에 따른 관계이거나 논리적으로 따라 나오는 귀결일 때만이 성립한다. 따라서 정보 관계는 두 존재자 사이의 관계가 자연법칙에 따른 경우이거나 논리법칙에 따른 경우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 본 봐와 같이 상관 관계 중에는 자연법칙, 논리법칙에 따르지 않은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관계가 포함된다. 따라서 어떤 두 존재자 사이에 완벽한 상관 관계가 존재하여도 항상 정보의 전달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어떤 두 존재자 사이에 자연법에 따른 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하나의 존재자는 다른 존재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Kumar, 2014). 이러한 연유에서 학자들은 드레츠키의 의미 정보 이론을 인과적 정보 이론이라고 칭한다. 왜냐하면 드레츠키 식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상관 관계는 물리적인 인과 관계이기 때문이다(Godfrey-Smith, 2007).
때문이다(Wheeler, 2007). 인과적 정보 이론에 따르면 유전자 시퀀스와 개체의 표현형 사이에는 인과적 상관 관계가 존재하며 유전자 시퀀스가 담고 있는 정보의 내용은 바로 그러한 상관 관계에 의해 정해진다.
인과적 정보 이론에 기반해 유전자 정보의 내용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유전자를 둘러 싼 주위 환경의 변화가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표현형은 가소성을 가지며 이는 환경의 변화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수시로 변화하는 환경 아래서는 표현형과 유전자 정보 사이의 조건부 확률 역시 이에 맞춰 계속해서 변화한다.
따라서 인과 정보 이론에 따라 따라서 유전자-표현형 사이의 의미론적 관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유전자가 발현하는 배경이 되는 비유전적 요소들(환경을 포함한)이 모두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생물학자들이 맥락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고정된 정보 개념은 그들의 논의에서 큰 쓸모가 없다고 본다(Oyama et al., 2000). 이러한 전제는 실제 세계에서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비현실적인 요구이다. 또한 이 경우 다음과 같은 결론이 따라 나온다. 만일 유전자-표현형 사이의 의미론적 관계를 기술하기 위해서 비유전적 요인들을 고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역으로 비유전적 요인들이 변화하며 유전적 요인이 고정된 상황을 상상할 수 있고 이때 우리는 비유전적 요인들과 표현형 사이에도 의미론적인 정보 관계가 성립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어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쌍둥이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영양 상태 등에 따라서 서로 다른 외모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우리는 드레츠키의 정의에 따라서 각각의 환경이 쌍둥이의 외모에 대한 내용을 지녔음을 받아 들여야 한다. 사실 드레츠키는 정보원과 관련된 그 어떤 신호라도 정보를 운반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두 독립체 사이에 어떤 자연적 관계가 존재한다면 한 독립체는 다른 독립체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Kumar, 2014).
인과 이론의 특성 중 하나는 이 이론이 모든 인과 요소들을 정보의 담지자로 평등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발생계 이론(Developmental system theory: DST)가들은 바로 위와 같은 인과 이론의 성질에 주목했다. 이들에게 있어 발생에 관한 모든 인과 요소들이 평등하다는 결론은 인과 이론의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올바른 이론에서 얻어진 당연한 귀결이다. 모든 이들이 유전자만으로는 유기체의 발생과 그 형질을 말하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생물학자들은 유전자는 발생과정에 관여하는 많은 요인들 중에서도 특별하다고 믿는다(Sterelny, Smith, & Dickison, 1996). DST 는 이러한 관점을 거부한다. DST 에 따르면 유기체의 성질이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믿음은 소수의 과학자들이 대중에게 설파하여 널리 퍼졌을 뿐 경험적으로는 틀린 주장이다(P. E. Griffiths &
Gray, 1994). DST 에게 있어 유전자는 발생 과정 중 관여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 복잡한 발생 과정은 유전자뿐만이 아니라 세포질, 단백질, 세포 내 소기관 등 다양한 발생 요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발생 매트릭스를 통해 전개되며 이와 같은 복잡한 관계들을 포함한 모든 과정들이 진화와 선택에 대한 하나의 발생계 단위를 이룬다. 따라서 만일 DST 의 지적대로 유전자가 다른 발생 요인들과 동등하다면 다른 비유전자적 요소들 또한 유전자의 정보적 성질을 공유해야 한다.7 그리고 드레츠키의 인과 정보 이론은 실제로 이와 같은 등가성을 제공한다.
DST 와 유전자 중심주의 사이의 논쟁은 생물학적 정보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찍이 동물학자인 콘라트 로렌츠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어떤 생물학자라도 유전자 안에 내제된 청사진이 펼쳐지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환경적 요인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성장하기 위해서 수컷 큰가시고기는
7 생명 주기가 곧 하나의 생명 단위를 이루기 때문에 DST 들은 유전자와 환경을 나누는 이분법을 거부했다.
충분한 용존 산소량을 가진 깨끗한 물과 먹이가 될 물벼룩과 빛, 그의 망각에 비춰질 주변 경치와 그리고 수없이 많은 다른 환경적 조건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러한 환경적 요인들이 인상적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정보들만으로는 큰가시고기가 자신의 라이벌이 붉은 색 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없다(Lorenz, 1971).
로렌츠는 큰가시고기가 자신의 라이벌을 알아 볼 수 있게 만드는 정보는 유전자 안에 들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유전자에 담긴 정보는 건물을 짓기 위한 계획서에, 그 외 요인들은 그 계획서대로 건물을 올리기 위한 벽돌에 비유했다(P. E.
Griffiths & Gray, 1994). 유전자만이 계획서를 들고 있고 나머지 요소들은 전부 계획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벽돌로 취급하는 이러한 태도는 그가 유전자를 특별한 발생 요인으로 여겼음을 잘 보여준다. 그에게 있어서 비유전자 요소들은 유전자에 새겨진 청사진을 실제화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유전자가 유기체에 대한 모든 발생 계획을 총괄한다면 어떻게 우리 인간은 약 삼 만개의 유전자만으로 뇌 속의 약 200 억개의 뉴런을 구성할 수 있었을까? 이 엄청난 수적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유전자가 과연 우리의 모든 특징들을 결정할 수 있을까?(Nathan et al., 2004) 드레츠키의 인과적 정보 이론에 따르면 그는 틀렸다. 만일 유전자가 정보라면 비유전적 요인들 또한 정보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보 이론에 따르면 어떤 것이 정보원이며 어떤 것이 정보를 둘러싼 주변 조건(채널)인지는 정보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안테나의 상태에 따라서 화면의 상태가 변하는 오래된 텔레비젼을 생각해보자.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방송 전파는 정보원이며 화면이 나오도록 돕는 전선, 브라운관, 전원, 안테나 등은 고정된 정보 채널에 해당한다.
하지만 안테나를 고치는 기술자의 관점에서는 안테나의 상태가 정보원이며 방송 전파와 나머지 요인들이 고정된 정보 채널에 해당한다. 기술자는 같은 전파에 따라서 떠오르는 브라운관의 화면 상태가 안테나의 각도에 따라서 달라지는 걸 확인하고 최적의 안테나 위치를 바로 잡을 수 있다. 정보 개념에 기대어 유전자를
정보원으로 그 외 발전 과정의 배경이 되는 비유전적 요소들을 고정된 정보 채널로 보고자 하는 시도는 마찬가지로 정보 이론의 성질에 의해 역전될 수 있다.
정보이론적 해석의 성격에 따라 생체 내 기관들의 역할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무엇이 정보의 송신자, 수신자, 채널인지. 무엇이 암호화 단계이며 해석 단계인지). 인과적 정보 이론은 유전자와 비유전자 요소 간의 등가성을 지지한다8(Oyama et al., 2000).
인과적 정보 이론의 또 다른 문제점은 그것이 유전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여겨지는 오류가능성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과 이론의 조건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보자. 인과 이론은 원인에 따라 결과가 나타날 조건부 확률이 1 일 경우, 다시 말해서 원인이 나타나면 반드시 결과에 해당하는 현상이 따라 나오는 경우만이 의미론적 정보를 지닐 수 있다는 강한 주장을 내세웠다. 언뜻 이러한 조건은 자연 현상의 의미론적 정보를 잘 드러내는 듯이 보인다. 먹구름은 인과적으로 무관한 맑은 날씨를 의미할 수 없으며 스무 개의 나이테는 스물 두 살을 의미할 수 없다. 인과 이론에 따라 얻어진 의미론적 내용은 잘못된 내용을 표상할 가능성이 없으며 그러한 가능성에 대하여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반면 유전자는 오류가능성을 지니고 있다(Sterelny & Griffiths, 1999). 그리고 이러한 오류가능성은 인과 이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만일 기대했던 것과 다른 인과 작용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오작동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인과적 요인이 올바르게 작동했으며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유전자 정보의 잘못된 전달, 해석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8 만일 DST 진영이 주장하는 동등성이 유전자와 비유전자 요인들 사이에는 동등한 정도
의 인과적 관계가 성립하는 강한 의미의 동등성이라면 이들의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 다. DNA는 분명 다른 요소들보다 인과적으로 특별한 역할을 한다. 센트럴 도그마의 비대 칭성은 이러한 사실을 경험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은 유전자가 다른 요인들 과 동등한 범주에 들어 있음을 주장하는 약한 주장이다 (Weber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