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전자는 ‘어떤’ 정보인가?
2.2.1 인과적 정보 이론
의미론적 성질을 지닌 정보를 일반화하기 위하여 생물철학자들은 드레츠키의 인과적 정보 이론에 주목했다(Griffiths, 1994; Sterelny, 1999; Griffiths, 2001;
Godfrey-Smith, 2007).6 드레츠키는 특별한 종류의 인과관계에 대하여 새넌의 정량적 정보 이론을 접목시키는 방법을 통해 정보의 의미론적 속성까지 포착하고자 했다. 일찍이 새넌은 자신의 이론이 가지는 함의와 주요 관심사를 정보의 의미론적 측면을 배제한 정보의 정량적 성질에 맞추었음을 직접 언급한 바 있다(Shannon 1948). 하지만 드레츠키는 새넌 자신이 인정한 이론적 한계를 거부하고 이를 의미론적 성질로까지 확장시키고자 한 것이다.
드레츠키는 정보의 의미론적 속성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나무줄기의 단면에 그려져 있는 스무 개의 나이테는 그 나무가 스무 살이 되었음을 ‘의미’하며 수은온도계 안에 들어 있는 수은이 상승함은 그 온도계가 놓여 있는 장소의 기온이 올라갔음을 ‘의미’하며 세 번의 짧은 노크는 친한 친구가
6 종전에도 카르납과 바-히렐과 같은 철학자들이 의미론적 정보를 상호 간 의사소통적 정
보와 구분하고자 시도하였지만 이들은 생물학적 정보를 포착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 지는 않았다. 이들은 언어 구조 내에서의 의미론적 특성을 포착하고자 노력했을 뿐이었 다.
도착했음을 ‘의미’한다. 각각의 신호는 어떤 특정한 내용을 의미한다. 어떻게 이러한 신호들이 각 내용을 의미할 수 있는 걸까? 드레츠키에 따르면 어떤 일련의 사건들이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 중 원인에 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결과에 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날 조건부 확률이 1 일 때 오직 그럴 때에만 정보는 의미를 지닐 수 있다(Dretske, 1981).
어째서 드레츠키는 조건부 확률이 1 인 조건에 주목했을까? 드레츠키는 어떤 신호가 특정 정보의 내용을 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우선 어떤 신호가 “s 는 F 다” 라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 신호는 s 가 F 임을 알 수 있는 정보양 만큼의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한다( 조건 A). 예를 들어 만약 s 의 색깔이 2 비트 만큼의 정보양으로 표현될 수 있다면 적어도 s 가 붉은색임을 알려주는 신호는 2 비트 이상의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한다. 주어진 신호가 붉은색의 채도와 명도 중 채도만을 알려준다면 이 신호는 s 가 붉은색임을 알려줄 수 없다. 이는 정보의 양적 조건이다. 그러나 양적 조건만으로는 정보의 내용을 특정할 수 없다. 양적 조건은 정보의 내용을 결정하기 위해 요구되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예를 들어 2 비트 이상의 정보를 가지는 모든 신호는 붉은색도, 노란색도, 파란색도 나타낼 수 있다. 정보의 내용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조건이 추가되어야 한다.
어떤 신호가 “s 는 F 다”라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s 는 F”이어야 한다(조건 B). 만일 어떤 신호가 “s 는 파란색이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사실 s 는
붉은색이라면 이 신호는 “s 는 붉은색이다” 라는 정보를 전달하는데 실패한다.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도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A 와 B 조건은 서로 독립적이지만 두 조건이 모두 갖추어 진다 하더라도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s 가 붉은색 사각형이라고 하자. s 가 붉은색이라는 정보와 s 가 사각형이라는 정보는 각각 3 비트의 정보양을 가진다. 두 정보는 서로 독립적이다. 이 때 어떤 신호가 3 비트 이상의 정보량을 가지고 “s 는 사각형이다” 라는 정보를 전달할 때 s 는 충분한
정보량을 지니고 있으며(조건 A) s 는 붉은색이지만(조건 B) 이 신호는 “s 는 붉은색이다” 라는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다. 이 신호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하나의 조건이 더 추가되어야 한다. 어떤 신호가 s 에 대해 전하는 정보의 양은 “s 가 F”일 때 발생하는 정보양을 포함해야 한다(조건 C).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전 지식 k 가 주어졌을 때 s 가 F 일 조건부 확률이 1 보다 작고 r 이 추가적 으로 주어졌을 때 s 가 F 일 조건부 확률이 1 이라면 신호 r 은 "s 는 F 이다”
라는 내용의 정보를 전달한다.
신호 r 이 주어졌을 때 s 가 F 인 조건부 확률이 1 일 때에만 조건 B 를 만족할 수 있다. 1 보다 작은 확률이 얻어질 경우에는 “s 가 F 이다”라는 확신을 얻을 수 없다.
조건부 확률 1 의 조건에 따라 우연한 상관관계는 정보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헤르만의 자식들이 모두 홍역에 걸린 경우를 상상해보자. 이들은 모두 곳곳에 떨어져 생활하고 있지만 우연히 동시에 홍역에 걸렸다. 만일 당신에게 앨리스는 헤르만의 자식이라는 정보가 귀에 들어왔다면 이 사실로부터 당신은 앨리스가 홍역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가? 이는 당신이 사전에 헤르만의 자식들은 모두 홍역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에 달려있다. 즉 사전 지식 k 에 따라 조건부 확률이 달라진다. 사전 지식에 따라 조건부 확률이 달라지는 이유는 새넌의 정보가 맥락 의존적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쉬이 납득할 수 있다. 앨리스 홍역에 걸렸다는 사실과 앨리스가 헤르만의 자식이라는 사실 사이의 상관 관계는 우연에 기댄,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약한 관계이다. 만일 헤르만의 자식들이 공통으로 특정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고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홍역에 걸린다면 이러한 상관 관계는 상대적으로 훨씬 강화된다. 상관 관계에는 이처럼 관계의 성격에 따라서 강하고 약한 차이가 존재한다.
드레츠키의 정의에 따르면 완전한 정보 전달은 예외 없이 명확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명확한 관계는 두 존재자 사이의 관계가 자연법칙에 따른 관계이거나 논리적으로 따라 나오는 귀결일 때만이 성립한다. 따라서 정보 관계는 두 존재자 사이의 관계가 자연법칙에 따른 경우이거나 논리법칙에 따른 경우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 본 봐와 같이 상관 관계 중에는 자연법칙, 논리법칙에 따르지 않은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관계가 포함된다. 따라서 어떤 두 존재자 사이에 완벽한 상관 관계가 존재하여도 항상 정보의 전달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어떤 두 존재자 사이에 자연법에 따른 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하나의 존재자는 다른 존재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Kumar, 2014). 이러한 연유에서 학자들은 드레츠키의 의미 정보 이론을 인과적 정보 이론이라고 칭한다. 왜냐하면 드레츠키 식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상관 관계는 물리적인 인과 관계이기 때문이다(Godfrey-Smith,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