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분석틀: 정치적 위기의 맥락분석
1) 맥락분석(contextual analysis)의 방법
리더십 연구방법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사례 수(n)=1”이라는 사례 결핍의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King 1993). 특히 대통령의 리더십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가설에 대한 과학적 검증을 시도하기 힘들다는 한계를 보여 왔다. 대통 령 연구에서 엄밀성과 타당성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은 질적 연구와 양 적 연구에 모두가 직면하는 한계였다. 1990년대까지 미국 대통령제 연구의 주요 저작들은 대체로 계량적 연구 방법을 택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20) 이러한 측 면 때문에 1970년대 이래로 대통령제 연구는 타 분야의 연구보다 열등하다는 비 판을 받아왔다.21)
최근의 대통령 리더십 연구는 보다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전제는 대통령을 하나의 인격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도, 이름도 없는”(faceless, nameless) 제도적 산물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Moe 1993, 379). 최근 모(Terry Moe) 는 “대통령 연구의 혁명”(The Revolution in Presidential Studies)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간결성, 논리적 엄밀성, 귀납적 설명력을 확보함으로써 고질적인 대통령 연구의 문제를 지양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Moe 2009, 704). 모가 미국 대 통령 연구의 다른 한 축으로 간주하는 조류는 ‘역사적 제도주의’22)인데, 그는 역
20) 미국 대통령제 연구사에서 논쟁을 주도해 온 코윈(Corwin 1948), 로시터(Rossiter 1956), 바버(Barber 1972), 그린스타인(Greenstein 1982), 노이스타트(Neustadt 1990), 스커른넥 (Skowronek 1993) 등의 저작은 모두 질적 연구방법에 의존한 결과물이었다(Howell 2009, 10).
21) 1970년대에 킹(Anthony King)은 “기존 대통령 연구는 매우 기술적이고 이론과 동떨어져 있다. 주요 가설은 거의 진전되지 않으며 진전된다고 하더라도 거의 검증된 적이 없다.”고 비판한 바 있으며, 헤클로(Hugh Heclo)는 대통령 연구문헌들의 겉치장을 들어내면 그 안에 는 거대한 괴리와 결함들이 발견된다고 말했다(King 1975, 173; Heclo 1977, 5).
22) 모가 언급한 대표적인 학자는 오렌(Karen Orren), 스커른넥(Stephen Skowronek), 피어슨 (Paul Pierson), 스카치폴(Theda Skocpol) 등이다.
사적 접근이 제도 변화의 동학과 권력 간의 투쟁, 우발적인 사건들의 의미를 분석 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사실상 합리적 선택이론이 발전시켜 온 개념들에 의존 하는 절충적(eclectic) 접근에 불과하다고 비판하였다(Moe 2009, 715). 모는 최 근의 연구 중 하웰(William Howell, 2003), 케인스론(Canes-Wrone 2006), 루달 비지(Rudalevige 2002) 등의 연구가 엄밀성을 확보에 성공한, 대통령 연구의 진 일보를 가져온 역작이라 평가하였다.23)
반면, 제도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대통령 연구가 개별 행위자의 특정 행위에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판에 공감하지만, 모든 제도 개혁은 불안정하고 언제나 변화에 노출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제도적 균형보다는 제도 내의 갈등과 동학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James 2009, 54-5).24) 이들은 이론과 경험 자 료의 필요성에 대해 부정하지 않더라도 간결성을 추구하는 ‘거대 이론’이 대통령 연구에 적용될 때 발생하게 되는 문제에는 우려를 표한다.25) 제이콥스(Lawrence Jacobs)는 모가 주장하는 바대로 엄격한 이론에 근거한 분석을 시도할 때 부정확 성(inaccuracy)의 오류가 등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사르토리(Giovanni
23) 하웰은 Power Without Persuasion(2003)에서 노이슈타트(Neustadt)의 논의를 전도시켜 현대의 대통령들은 때때로 협상할 필요 없이 일방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 을 내놓았다. 그는 이와 관련된 형식 모델(formal model)을 발전시켰으며, 대통령의 행위가 매우 드물게만 의회와 법원에 의해 방해받았다는 사실을 경험 분석을 통해 뒷받침하였다.
케인스론은 Who Leads Whom? (2006)에서 커넬(Samuel Kernell)의 대중호소(Going Public) 이론을 형식 모델로 발전시키고 보다 정교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케인스론은 대통령 의 리더십과 영합을 구분하여, 대통령이 언제 사회전체의 이익을 위해 비인기 정책을 추진 하는가(리더십), 언제 인기 영합을 위해 사회에 해가 되는 정책을 추진하는가(영합)를 경험 자료를 통해 분석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루달비지는 Managing the President's Program (2002)에서 거래비용(transaction cost) 분석에 근거하여 권력의 우발적 집중(contingent centralization)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선별된 400개의 입법 쟁점에 대한 분석을 통해 대통 령은 단지 특정 조건 하에서만 정책결정권을 집중시키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24) 제도의 역사성을 간과하고 대통령령, 연설문, 법안의 발의 수 등 비교적 최근에 입수하기 쉬운 데이터에만 의존한다는 비판은 양적 연구자들이 내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기도하다 (Howell 2009, 25).
25) 하웰(William Howell)은 최근의 연구에서 지난 25년간 미국의 대통령제를 연구한 논문들 의 성향이 게재되는 저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대통령제 연구 전문저 널인 Presidential Studies Quarterly에 수록된 90%가 질적 연구논문인 반면, 상급 저널인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Journal of Politics 등은 반대로 관련 논문의 90%가 양적 연구논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연구 자들은 반대 성향의 저널에 거의 기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Howell 2009, 24).
Sartori)의 논의를 원용하여, 상이한 맥락에 적용할 수 있는 엄격한 법칙을 추구하 는 거대 이론의 접근 방식 대신,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맥락의 유사성을 경험적으 로 확인하는 중범위(middle-range) 이론의 관점이 대통령 연구에 필요하다고 지 적했다. 나아가 대통령 연구에 대한 계량적 분석 방법 이외의 대안적 접근이 분석 을 퇴행시키거나 이론을 몰아내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은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 다(Jacobs 2009, 773-4).
본 연구는 엄밀한 이론에 근거한 인과관계의 검증보다는, 후자의 입장을 따라 권력의 인격화를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맥락분석(contextural analysis)을 시도하고자 하며, 특히 ‘정치적 위기’에서 ‘인격화된 권력’이 등장하는 메커니즘에 주목하고자 한다. 틸리(Charles Tilly)와 구딘(Robert Goodin)은 귀납 적 간결성(reductive parsimony) 대신 ‘맥락’(context)에 대한 분석이 정치 과정 에 대한 혼탁한 설명을 가져오지 않으며, 오히려 체계에 대한 지식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Tilly and Goodin 2006). 틸리와 구딘은 사회과학의 이상 적 목표로 ‘인과관계 분석’을 강조했던 킹(Gary King), 커헤인(Robert Keohane) 및 버바(Sidney Verba)의 입장과 사회현상의 어떠한 규칙성도 부정하는 인류학자 기어츠의 입장을 대조시키면서(King et al. 1994; Geertz 1983), 그 대안으로 양 자의 한계를 지양할 수 있는 ‘메커니즘 기반 설명’(mechanism-based account)을 제안한다. 제이콥스의 주장과 유사하게, 틸리와 구딘은 인과추론에 근거한 형식 분석에 치중할 때 일반적인 논리에서 유리되는 ‘설명의 부정확성’이 등장할 수 있 다고 보는데, 형식 분석은 입증과정에 적용될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초기의 문제제기와 분석 결과의 최종적인 해석에서는 약점을 노출할 수 있다고 보았다(Tilly and Goodin 2006, 19). 틸리와 구딘이 제안하는 메커니즘 기반 설 명이란 에피소드의 두드러지는 특징, 에피소드 간의 중요한 차이를 선택한 후 그 것을 보다 ‘상대적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선별적으로 설명하는 방법 이다(Tilly and Goodin 2006, 13-4).
정치적 상황에 주목한 이러한 ‘메커니즘’ 분석 방법은 일반법칙(general law)과 회의주의(skepticism)의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것’(something in between)으로 설정되기 때문에 여전히 모호한 바가 있다(Tilly and Goodin 2006, 7-9). 그러나
상황분석은 ‘권력의 인격화’ 문제에 접근하고자 할 때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의의 를 갖는다. 첫째, 맥락 분석은 권력의 인격화 현상을 지도자 ‘개인’에 대한 연구로 환원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대통령 연구의 혁신을 강조했던 모가 비판한 바대 로 ‘사례 부족’의 한계에 대해 어떠한 문제제기도 없이, 특정 지도자에 대한 서술 적 연구에 치우치는 접근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국가수반이라는 분석 대상의 특 성상 명확한 인과관계의 가설을 설정하기 힘들지만, 리더십의 특징을 결정하는 특 정한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권력의 인격화 현상을 과도하게 ‘특 수화’하는 접근을 지양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맥락 분석은 정치적 위기와 인격화된 권력의 관계를 과도하게 ‘일반화’하 는 접근을 역시 피할 수 있도록 한다. 1970년대의 정치적 위기에 관한 기존 논의 들은 ‘위기’가 경향적으로 인격화된 리더십을 가져온다는 설명을 시도하였으나, 그 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는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분석하지 않았다. 특히 프랑 스 국내에서 ‘보나파르티즘’의 일환으로 권력의 인격화를 분석하는 접근은 정치과 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위기’ 자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도외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상황분석은 인격화된 권력의 배경을 이루는 ‘정치적 위기’의 구성에 별도의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셋째, 인격화된 권력이 등장하는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는 대통령과 대중의 관 계에 보다 확장된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한다. 대통령과 대중들이 맺는 상호적인 관계는 그 자체가 ‘제도’와 ‘인물’을 넘어서는 변인이 될 수 있으며, 인격화된 권력 의 이면에 존재하는 ‘정당성’ 문제를 조명할 수 있게 해준다. 정당성의 쇠퇴와 ‘정 치적 위기’가 오히려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요구를 불러일으키는 역설적인 과정을 설명하고자 할 때, 이 과정을 뒷받침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상황 분석은 반드시 필 요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권력의 인격화에 대한 맥락분석은 X라는 환경이 아니라 Y라는 환경에서
‘어떻게’ 권력을 독점한 리더십이 등장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 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상황분석은 과도한 일반화를 피하는 동시에 지도자 일인 에게 집중된 인물 연구를 지양할 수 있는 대안적 접근이다. 메커니즘 기반 설명을 통해 인격화된 리더십의 분석 수준을 인위적으로 구체화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