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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분석

5.3.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갈등

5.3.2. 정치적 개입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팔길이 기관’을 표방했지만, 문예위의 갈등기를 조장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된 것은 계속된 정치적 개입이었다. 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면서 정치적 자율을 추구했을 때 문예위가 가장 먼저 조치했던 사항은 공무원이 아닌 현장예술인이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것, 그리고 문화체육관 광부 승인 필수 항목을 대거 삭제해 위원회 내부 의사결정 만으로 실제적인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었다. 문예위 갈등기에 정치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사항들이 수정·변경된 것은 아니었지만, 예술계를 정치적 성향으로 재단 하고 관리·통제하는 간접적, 비공식적 관행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8년 새 정권이 들어선 데 이어 위원회도 10월 1기 시대를 마무리하고 1기 위원이자 시각예술 전공 교수인 김정헌을 위원장으로 한 2기 위원회가 출범하게 된다. 2기 위원회는 1기에 비해 예총에 소속된 위원들의 비중이 많고 보수적인 예술가들 중심으로 구성이 되었는데, 진보 계열의 예술가들 및 위원들이 남겨놓은 결과와 유산을 삭제, 재구성하는 시도를 한다. 2009년 1월 진행된 위원회 67차 회의록을 보면 아래와 같이 문예위가 대상으로 하는 예술의 정의와 범위를 재정의, 재정립하는 대화가 나온다.

- 기초예술이라는 것이 처음에 나온 배경을 알고 있는데 민족작가회의의 김형수 사무총장이 오셔서 순수예술이라고 하면 소비성향만 지칭하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기초예술이라는 말로 바꿔서 문화산업이나 응용산업 의 기초를 의미하는 걸로 쓰면 좋지 않겠느냐고 해서 나온 용어입니다.

(67차 회의록 09.1.9 중 정책연구실장 발언)

- 순수예술이 어떻게 소비예술이 될 수 있어요 그건 말도 안 되는 것이죠 아무튼 기초예술이라는 말을 이번 기회에 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예술에 기초가 있고 완성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말이라면 이번 기회에 애매한 것은 없애는 것이 좋겠습니다.

(67차 회의록 09.1.9 중 위원 발언)

‘기초예술’은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새예술정책>의 핵심 개념으로, 문화예술 의 장기적 발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업화, 산업화되지 않은 순수예술(fine

art)의 ‘기초’를 구축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논리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당시 정부나 학계에서 발간된 보고서, 자료들을 보면 문예위의 사업 대상에 속하는 예술을 ‘기초예술’이라 명명하고 있다(“진정한 개혁은 기초예술의 활성화(심재찬, 2005)” 등 다수). 순수예술의 문예진흥을 담당하는 문예위 또한 이에 발맞추어 기초예술의 토대를 닦고 이를 통해 예술적 발전을 이룬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초예술이라는 용어를 진보예술 단체인 민족작가회의에서 만들었다는 이유로, 2기 위원회에서 이 용어를 폐기하고 상업예술의 반대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순수예술’로 회귀한 것이다.

또한 2008년 12월에는 위원회의 수장인 김정헌 위원장을 기금 운용 규정 등 위반에 따른 혐의로 임용 2개월 만에 해임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예위가 국가재정법과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해 기금을 예탁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C등급의 금융기관인 메릴린치증권 한국 지점 등 5개사에 700억원을 예탁해 기금을 부적절하게 운용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해임 사유를 밝혔다. 이에 반발한 김정헌 위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상대로 해임무효확인 청구소송을 진행했 고 2년이 지난 2010년 12월 대법원에서 “해임처분을 취소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 3기 오광수 위원장과 함께 2명의 위원장이 함께 재직하는 초유의 사태가 연출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김정헌 위원장의 해임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 이후 진행된 이념적, 인적 청산 프로그램의 일환(이동연, : 69)이었다. “문예위와 영화진흥위원 회를 좌파문화예술인들의 자금줄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좌파문화예술이론의 생산지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좌파문화예술 이념의 대중선동지로 규정 (이동연, : 69)”하면서 KBS 정연주 사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철호 국립국 악원장, 박래부 언론재단 이사장,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해임당하거나 사표를 냈다. 이 자리는 조·중·동 출신의 보수언론인과, 대기업 CEO 출신의 전문경영인들로 채워졌다.19) 2009년 1월 신임 사무처장에 임명된 동아일보 문화부장 출신이자 전 충무아트홀 사장인 윤정국 씨의 인사에

19) 문예위 오광수(전 국립현대미술관장),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대영(자유주의연대 운 영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박종원(뉴라이트 싱크넷 발기인), 한국언론재단 고학용(전 조 선일보 기자/관훈클럽 총무), 국립극장 임연철(전 동아일보 사업국장),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신재민(전 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 국립현대미술관 배훈순(전 대우전자 사장), 예술의전당 신흥순(전 LG상사 사장), 한국관광공사 이참(벤처기업인 출신) (이하 자세한 내용은 이동연 『문화자본의 시대』 중 “한국의 문화자본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참조)

대해, 문예위 노조에서 “직원 특별채용 때 노조와 사전 협의하도록 명시된 단체협약 을 위반”하였으며 위원장 자리가 공석인 상태에서 임명한 것은 시기상 적절치 않다고 반발하며 사무처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하기도 하였다.

문예위 조직을 정치적 틀에 맞추어 재점검하고 수정하는 과정과 함께 진보 예술단체에 대한 본격적인 통제와 검열도 시작되었다. 2010년 2월 문예위는 한국작 가회의에 ‘불법 폭력 시위 불참 확인서’를 제출해야만 정부 보조금 3,400만원을 주겠다는 공문을 보내 큰 파장을 일으켰다. 확인서는 작가회의 측에 2008년 열린 광우병 관련 촛불집회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다는 사실 확인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향후 불법 시위 사실이 확인되면 보조금을 반환한다’는 서약까지 요구하였다.

이 3,400만원은 작가회의가 전 해 신청해 보조금을 지원받기로 결정된 사항이어서 정부 지침을 핑계로 보조금 지원 결정을 뒤집는, 문화예술 지원에 관변 논리가 개입된 경우라서 문예위 존립의 이유를 망각했다는 우려가 커졌다. 작가회의는 확인서 제출을 공식 거부하고 문예위 보조금 지원을 받지 않기로 결정하게 된다.

결국 관변 논리에서 자유로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조직을 꿈꿨던 문예위 초기의 비전은 조직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목으로 남을 뿐 문예위를 자율적으로 만드는 실질적인 운영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문예위의 존립을 둘러싼 다양한 갈등 국면을 형성하게 되었다.

5.3.3. 위원회의 역할 축소

이런 변화와 더불어 문예위 기금 및 조직 운영에 관해 위원회의 합의제 원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현장 예술계의 입장을 정책에 반영하고 실질적인 조언자 역할을 하는 위원회의 역할이 상당히 축소되었다. 2008년 위원회의 기금운 용 심의 권한이 별도의 기금운용심의회 조직을 운영하면서 권한을 분리하게 된다.

기금운용 심의란 매년 문예위에서 운용하는 문예진흥기금의 운용액, 사용 범위 등을 결정하는 과정으로 위원회의 주요 권한 중 하나였다. 기금운용심의회를 분리, 운영하게 되면 전체 기금 운용에 대한 틀과 골자는 심의회에서 결정하게 되고 위원회는 사업별, 장르별 분배 정도와 수준을 조정하는 정도의 부수적인 의사결정에만 머무르게 된다. 2008년 10월 진행된 60차 회의록에는 “기금운용심의 회가 명백하게 상위기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위원회에서 논의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라며 위원회의 역할 축소를 우려하는 의견이

< 그림3 > 소위원회 변천도 제기된다.

그러나 위원회의 역할 축소는 다양한 국면에서 이루어지는데, 위원회 구조의 핵심으로 간주되던 소위원회 제도가, 2008년 2기 체제로 넘어가면서 장르별 소위원 회에서 기능별 소위원회로 변경된다(그림3 참조).

장르별 소위원회는 NEA 모델을 그대로 차용한 것인데, 각 장르별 전문성과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 장르의 현실 상황에 근거해 기금지원을 심사, 평가하는 모델이다. “소위원회를 제대로 운영, 활성화 하는 것이 진흥원에서 위원회 체제로 바뀌는 것의 핵심사항(3차 회의록, 05.9.29)”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소위원회 제도는 위원회 체제의 중추라고 판단되었다. 그러나 1기 위원회에서 불거진 장르 이기주의를 둘러싼 여러 진통 끝에 장르별 소위원회가 폐지되고 문예위를 ‘사업조직’의 하나로 발전시키기 위한 아젠다 중심의 기능별 소위원회가 도입된다. 위원들은 기금운용계획, 중장기전략 등 사업 전략용 소위원회에 3~5명씩 배치되어 활동하였는데, 2010년 장르별 소위원회를 대체한 책임 심의위원제도를 신설하였다. 이 제도는 1년 동안 장르별 심사 안건을 총괄 담당하는 위원을 각 장르별로 5명 내외 선발하는 것으로, 1기 때 대두된 장르 이기주의나 위원이 관계된 예술단체에 지원이 편중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특정 계파, 경향성이 있는 인사를 배제하고 예술관련 주요 협회장도 제외하는 여러 제한 조건을 마련하였다.

결과적으로 위원회 조직과 위원이 ‘기금’, ‘장르’ 양 측면에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문예위의 존립을 지탱할 명목적인 기구로 역할이 상당히 축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