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국제질서는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을 중심
으로 양대 진영을 이루는 냉전구조를 형성했다. 이 체제하에서 이데올로 기를 경계로 양 진영이 첨예한 대립을 해왔다. 냉전구도가 붕괴된 후의 세계도 결코 평화롭지 못해서 민족간의 갈등, 종교분쟁 및 지역충돌이 빈 번하게 발생했으며, 특히 2001년에 발생한 9․11테러사건은 평화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주의를 환기시켰다.
오늘날 통용되는 ‘평화학’의 내용은 대체로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 는데 첫째는 평화이론으로, 평화와 폭력의 개념․적극적 평화와 소극적
평화․비폭력 및 갈등 분석 등을 다룬다. 둘째는 평화문제로, 전쟁분석․
사회충돌의 근원․성별과 폭력 및 관련 정치경제요소 등을 다룬다. 셋째 는 평화전략으로, 군비감축과 통제․충돌해소․인권․민족자결․사회발
132이 글은 동북아 평화문화 비교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실시한 전문가 워크 샵에서 발표된 논문으로 발표자의 동의를 얻어 수록한 것이다. 진홍상, “중국 인의 평화철학과 동북아의 평화,” 동북아 평화문화 비교 전문가 워크샵 (2004. 9. 21).
전․환경정치와 세계질서 및 평화운동 등을 다룬다. 그 외에 일부 국제적 갈등 현안에 관한 사례연구도 ‘평화학’의 범주에 속한다.
평화와 전쟁에 관한 문제는 인류역사만큼 오래되었고 고래로 이 문제에 대한 연구와 모색도 부단히 지속되어 왔으며 불후의 명저도 다수 출현했 다. 주지하듯이 중국은 세계 문명발상지의 하나로, 수천 년에 이르는 동방 문명의 큰 흐름 속에서 중화민족은 동방문명의 특색을 지닌 평화철학을 창조했으며, 그것은 중국전통문화의 주요 구성요소이다. 세계 각 민족의 평화에 대한 이해와 비교해 보면 중국 고전철학에서 말하는 ‘和’ 사상은 광 의의 평화개념임을 알 수 있는데, 거기에는 조화․화목․평화․선량함․
중화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단합으로 민중과 어울림(和以處衆)’․
‘마음을 합쳐 곤란을 극복함(和衷共濟)’․‘정치가 잘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화목함(政通人和)’․‘내부적으로 단합하고 대외적으로 순리적임(內和外
順)’ 등의 심오한 처세철학과 인생관을 담고 있다.
이 사상은 중국 역대의 철학 및 각종 전적들에 풍부하게 내포되어 있는 데, 중국과 외국의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져 왔고 관련 저술도 많이 나왔 지만 여전히 국제사회와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부단히 제고되고 역할도 확대되었으며 외부와의 문화교류도 심화 발전함에 따라 평화문화를 포함한 중국의 전통문화에 대 한 세인들의 이해와 관심도 부단히 증대되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실시한 이래로 덩샤오핑(鄧小平)․쟝쩌민(江澤 民) 및 후진타오(胡錦濤)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집단 지도체제가 지속 적으로 ‘평화적 부상(和平崛起)’이라는 발전전략을 추진해 오고 있다. 특 히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한 현 지도층에 의해 더욱 체계화된 이 발전전략 은 중국의 유가적 전통에서 유래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철학적 이념과 정신을 체현하고 있다.
동북아 지역의 대국 중의 하나인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동북아 의 안보와 평화체제구축 등의 문제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 이 글은 이러 한 관점에서 출발하여 중국인의 ‘평화철학’이란 프리즘을 통해 동북아의
안보와 평화문제의 장래를 투시해 보고 ‘동북아의 평화문화’의 구축에 대 한 몇 가지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가 . 유교의 ‘화이부동(和而不同)’․‘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과 그 영향
중국 역대 사상가들의 ‘화(和)’ 사상에 대한 논술이 종적인 면이라면 횡 적인 면에서도 유학, 불교, 도교 등 종교도 ‘화’ 사상에 대해 각기 독특한 논술을 했다. 본고에서는 지면 관계상 유교의 ‘화이부동’과 ‘천인합일’의 사 상에서 체현된 평화철학에 대해서만 분석을 진행하기로 한다.
(1) 중국 전통철학의 삼대 명제와 세 가지 체계
중국의 전통철학은 타민족의 철학과는 다른 일련의 특수한 개념범주 로 이루어져 있고 세 개의 기본명제가 있다. 즉, ‘천인합일’․‘지행합일 (知行合一)’․‘정경합일(情景合一)’의 세 기본명제는 중국전통철학의 진
(眞), 선(善), 미(美)에 관한 특수한 관념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들 특수
관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서구철학 그리고 인도철학과도 다른 이론체계를 형성한다.
세 가지 체계로는 정치화한 유학, 도통(道統)의 유학 및 학통(學統)의 유학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학통으로서의 유학의 의의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2) 유학의 발전단계
先秦유학이 유학의 제1기라고 한다면 宋․明유학, 즉 신유학은 유학
발전의 제2기이고 유학 발전의 제3기 발전이 가리키는 것은 근 백년 이래 로 서구사상의 충격 하에서 발전해 온 현대 신유학이라고 할 수 있다.
‘5․4운동’ 이래로 ‘민주와 과학’이 중국인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어 현
대 신유학의 대표들은 ‘內聖’의 학문이 현대 민주정치의 요구에 부합하는
‘外王’의 도리를 전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여 중국 전통철학 중의 ‘내 성외왕(內聖外王)’의 구도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힘을 쏟는 것과 동시에
‘심성(心性)’의 학문이 ‘양지의 결함(良知的缺陷)’을 거쳐 과학의 인지체
계를 열 수 있음을 증명하여 중국철학도 서양철학과 병립하는 지식론 체 계를 갖출 수 있게 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우리가 반드시 이 길을 통해서 만 중국철학의 가치와 의의를 고려해야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3) ‘화이부동’과 ‘천인합일’ 사상
학문적 전통으로서의 유학에는 다수의 매우 합리적인 관념을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화이부동’의 관념은 인간관계 및 국제관계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모두 훌륭한 역할을 한다.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르지만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 국제무대에는 많은 서로 다른 국가들이 각기 다른 역사적 배경, 종교 및 관념을 갖고 있는데, 이들 국가들이 어떻게 지내야 할까?
물론 그러한 차이성을 인정하여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하고 전쟁을 해서 는 안 되며 상대방의 문화를 상호 존중해야한다. ‘천인합일’의 관념은 오 늘날의 생태계문제를 해결하는데 지대한 의의를 갖는다. 서양철학에서는 천인이 이분되어 있다. 러셀의 『서양철학사』에서는 정신과 물질은 그 중 한가지만을 연구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인간을 연구하면서 하늘을 연 구하지 않을 수 있고, 하늘을 연구하면서 인간을 연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전통문화는 그와 달라서 인간을 연구하면 반드시 하늘을 연구해야 하고 하늘을 연구하면 반드시 인간을 연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주희(朱熹)는 “하늘이 곧 인간이요, 인간이 곧 하늘이다(天卽人, 人卽
天)”라고 하여 하늘을 인간과 뗄 수 없고 인간도 하늘과 뗄 수 없음을 표 현했다. 이는 오늘날의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는데 지대한 의의를 갖는다.
다시 말해 인류가 자연을 무제한으로 개발하고 무정하게 침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학의 관념은 인류의 평화와 발전에 큰 의의 를 갖는다.
‘화이부동’과 ‘천인합일’ 사상은 현시대의 평화와 발전과 같은 주제들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철학들이 중국철학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철학은 다 나름대로의 장점 이 있어서 인류사회에 공헌을 했다.
역사적으로 모종의 문화가 확실히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현상이 있는 데, 오늘날의 서양문화는 의심의 여지없이 강세의 문화이다. 열린 사고를 가진 사상가는 자신의 문화의 장점뿐만 아니라 약점도 보아야 한다. 세계 화의 과정에서 문화는 다원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대화를 주창하며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면서 함께 발전해 야만 한다.
소위 ‘화이부동’이라고 하는 것은 먼저 차이점을 인정하고 그 차이점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된 조화라야만 사물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
이다. ‘화이부동’의 사상에 의하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각자의 의견이 달라
도 서로 화목하게 지낼 수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 종교, 이데올로기를 가진 다양한 국가들과 민족들이 상대방의 문화를 서 로 존중하고 평화공존 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화하고 있는 오늘날 세계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문명 간의 모순과 갈등은 역사상의 어떤 시대보다도 현저하고 격렬해지 고 있다. 이것이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이 ‘문명 충돌론’을 주장 한 이유이다. 그러나 문명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결코 일시적으로 우 세를 점한 특정의 문명으로 다른 문명을 동화시키거나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문명충돌의 해소는 문명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문명의 조화로운 발전을 보장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현실 세계에서 ‘화이부동’의 정 치문명관을 주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한편 ‘천인합일’의 사상은 현재 당면한 생태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큰 의의를 갖는다고 본다. 즉 인류가 자연계를 무한대로 개발하고 무정하 게 착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 줄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