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 평화에 대한 관심
전통적으로 ‘백의민족’으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인식되어온 한국은 역사적으로 다른 국가를 침범한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체제였다. 지 정학적인 이유에서 끊임없이 외침을 받아오면서도 전쟁보다는 평화를 지 향해왔다고 볼 수 있다.30 외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를 제외 하고, 왕조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 단일국가체제가 지속되어 온 것도 전쟁보다는 평화에 익숙하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즉, 전쟁은 민 족을 지키는 차원에서 불가피한 것이고 체제 내에서는 일상적인 문제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식민지 경험 이후 분단과 전쟁을 경험하면서 도리어 한국사회 에서는 평화라는 개념이 생소한 것이 되었다. 일제의 억압적 식민지배에 대항한 반제 투쟁은 독립의 쟁취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분단을 거쳐 한국전 쟁을 경험하면서 한국사회에서는 갈등이 일상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 다. 문제는 전쟁이후에도 체제경쟁을 지속하면서 전쟁의 상처를 씻기는커 녕 남북한은 갈등을 더욱 키워나갔고, 이 과정에서 증오와 적대감이 기본 적인 정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남북한간의 갈등은 남북한 체 제 내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일종의 분단효과라고 할 수 있는데 남북한은 각각 강력한 권위주의체제를 구축하였고 물리적 억압을 바탕으로 유지된 남북한의 권력구조는 체제 내에서도 지속적인 갈등을 유발하였다. 항일빨치산 전통을 핵심적 가치로 생각하는 북한이나 군사문 화가 전 사회적으로 확산된 남한에서 평화라는 개념은 어울리지 않는 것 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평화에 대한 전문적인 논의는 차치하
30한국사람들의 인사말이 안녕(安寧)인 것도 역사적으로 안전과 생존이 중요한 문제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고초가 많았던 이스 라엘 민족이 shalom(평화)를 인사말로 쓰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이삼열, “한
고 평화의 개념에 대한 관심도 희미해졌다고 볼 수 있다.31
한국 사회에서 평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부각된 것은 민주화의 진전과 남북관계의 전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권위주의 체제 가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복원되는 과정에서 인권 등 그 동안 소홀하게 다 루어졌던 가치들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평화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또 한 대결보다 화해협력을 지향하는 남북관계가 정착됨에 따라 평화공존이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평화에 대한 논의가 점차 확산되면 서 동시에 다양한 분야의 평화운동도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 다. 이러한 현상은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전쟁의 위협 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점증하는 평화에 대한 관심에 비하여 평화와 관련된 충분한 논의나 성찰은 충분하 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이루어진 평화와 관련된 연구들은 대부분 서구적 평화-성서, 그리스, 로마의 평화 개념에 기초하는 경향이 있으며, 동양적, 한국적 평 화개념은 구조적 폭력, 심리적 폭력을 함축하고 있지 못하고 개인의 가 족 차원의 평화에만 국한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사실 중 요한 기존의 특정 평화개념이나 평화운동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평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바 탕으로 현대 사회에 지향하는 보편적 평화와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 .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평화개념
역사적으로 한국인은 평화에 대한 지향성을 견지해왔다. 건국신화의 곰 과 호랑이의 경우부터 시작하여 각종 설화에서도 전쟁을 상징하는 것은 거의 없는 반면 평화와 화해를 강조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고대국가와 더불어 유입된 불교와 유교와 같은 종교 그리고
31위의 글, p. 122.
문자를 중시하는 학문적 성향도 평화 지향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내전을 치루고 설립한 신라나 고려의 경우에는 초기에 군부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지만 점차 문신들이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게 되었고, 고 려시대 무신정권을 제외하고는 군부는 전통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집단이었다는 것도 평화지향적인 분위기를 반증한다고 할 수 있 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 와서 보다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조선이 정통으로 확립한 성리학은 유교 가운데서도 공자와 맹자를 핵심으로 하는 주자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 다. 공자의 경우도 그러하지만 조선사회에서 핵심적인 사표로 생각한 맹 자는 ‘성선설(性善說)’이 대변하듯이 인(人)을 강조하는 유학 가운데서도 특히 화해를 강조하는 학자였다. 맹자적 세계관을 체제의 기본 관점으로 채택하였다는 것 자체가 결과적으로 평화지향적인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유교는 과거제를 바탕으로 하는 관료충원 시스템과 연결되 어 학문을 중시하고 문신을 강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임진왜란과 병자 호란과 같은 외침을 경험하기는 하였지만 성리학이 지배이념으로 공고화 되는 과정에서 이전까지의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하였다. 양반제를 토대로 한 중앙집중적인 권력 제도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다른 국가들이 경험한 분권적 봉건제는 존재하지 않았고, 내적 갈등도 무력을 동반하지 않았다 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평화개념에 대 한 연구는 충분하지 않다. 이런 가운데 한국적 평화 개념의 탐구에는 세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 첫째, ‘내용적 보편주의’의 입장이다. 이것은 차이 에 대한 섬세한 인정 대신에 우리의 전통을 형식적으로 절대화함으로써 세계적인 보편타당성을 가진 거시적 이론을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
째, ‘절충적 보편주의’의 입장이다. 이것은 동양과 서양의 패러다임을 비
판적으로 비교 분석함으로 해석학적 지평융합을 시도하는 것이다.32 셋
째, ‘실천적 보편주의’의 입장이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 보편적 가 치가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방안과 지점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하나의 입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국의 평화 개념은 다양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경험이 전수된다는 차원에서 한국 민족의 다양한 민족 개념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가운데 현재성을 고려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유교의 평화관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교 는 조선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였을 뿐만 아니라 유교적 전통은 오늘날 에서도 일상적인 수준까지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한 국의 전통적인 평화개념의 핵심으로 유교의 평화사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유교는 기본적으로 평화의 가치를 강조하는 사회철학이다. 유교사상에 서 평화는 화평(和平)을 말한다. 화평이란 천지만물과 더불어 일체가 되 는 것이다. 화평의 이론적 근거는 유교의 자연관이다. 자연계의 모든 사물 과 사건들은 상호작용하면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사이에 일시적인 불균형 상태가 야기될 수 있지만, 결국 평형과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상도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평화로운 사회는 만물을 기원 하게 하고 생성하게 하는 근원으로서 평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천(天) 의 형상 질서를 모방한 것이다.
유교의 핵심은 「대학(大學)」의 평천하(平天下), 「중용(中庸)」의 중화
(中和), 그리고 「예기(禮記)」의 대동(大同)이다. 평천하는 인간에게 주어
진 최고의 의무가 평화세계의 실현임을 의미한다. 중화는 협정이나 협약 과 같은 깨지기 쉬운 외형적 평화가 아니라 내면적인 진정한 평화를 말한 다. 진정한 평화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그리고 세계, 자연과 원용회 통하여 상호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대동사상은 분열을 초래하는 사적 자아의 소멸이라는 근본정신을 지향한다. 평화가 실현된 평천하, 대
32김국현, “한국유교의 평화사상과 평화교육에 관한 연구,” 국민윤리연구 43, (2002. 2), p. 191.
동, 중화는 궁극적으로 인간본성에 대한 신뢰에 기초하여 인의 도덕성에 근거한 덕치(德治)를 근본으로 한다.33
공자는 대학에서 인(仁)을 평화의 출발점으로 본다. 인 사상은 맹자의
인정(仁政),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이념으로 계승되었고, 특히 송명대에
는 만물일체설로 확대되어 인간간의 평화뿐만 아니라 만물간에도 일체를 이루는 적극적 평화사상으로 전개되기도 하였다.
한국의 평화사상은 선과 악, 인간과 신, 고통과 괴로움 같은 양극적 가 치들 사이의 갈등 대립, 투쟁보다 화해와 조화를 추구하는 무속의 평화사 상을 가지고 있다. 인간 사이뿐만 아니라, 인간, 신, 자연간의 관계도 원칙 적으로 공존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무속의 평화사상이 가진 사고방식 은 본질적으로 음양대립의 변증법이 아니라 음양조화의 합일사상이다.34 이러한 무속의 평화사상적 전통은 후에 한국이 유교사상을 수용하고 그 평화사상을 삶의 원리로 채택하고 발전시킨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인과 국가의 평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쳐온 것은 유교적 평 화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 평화사상의 특성은 무속적 평화정신 위에서 중국유교의 평화사상 전통을 수용하고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한국의 평화사상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평화사상에서 중국유학사상과 이론적으로 다른 새로운 이 론이나 해석이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평화에 대한 접근방식이 매우 특징적이다. 특히, 한국사상은 성리학의 발달과 함께 인성에 대한 탐구에 중국 이상으로 몰두함으로써 평화의 실현 내지 정치학적 이론 수립에 매 우 적극적이었다. 인애, 사단, 도심, 인성 등을 통한 본성 탐구에 대한 한 국 사상가들의 열정적인 탐구는 원천적으로 본성이라는 신성의 본유 및 발견에 대한 신뢰에 의해 평화를 이루려는 의지가 강했음을 뜻한다. 한국
33정인재, “국욱의 평화사상,” 서강대 철학연구소 편, 평화의 철학 (서울: 철학 과 현실사, 1995), p. 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