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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가설 1: 경제평화론의 논리와 구성

우리는 앞에서 경제평화론을 남북교역의 효과에 대한 가장 중 심적인 가설의 하나로 설정하였다. 그런데 매우 의외이겠지만, 이 제까지 이 가설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를 굳이 짐작하자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개입되지 않았을까 판단한다. 우선 남북한의 경제적 교 류로 평화를 증진시킨다는 이 가설 자체의 직관적 호소력이다.

누구나 이 가설을 들으면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힘들여 그것의 논리적 구조를 체계화 시킬 필요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이 가설은 당위론적 호소력 역시 갖고 있다. 남북한 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대다수 우리국민의 입장으로서는 이 가설이 맞지 않았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여타의 정책적 대안이 사 실상 별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가설은 당위론적으로 맞아 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가설

은 이미 남북교역의 확대를 추구하는 우리정부의 정책적 비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굳이 스스로의 내용을 정련하고 세련화 시킴으로써 그 정책적 영향력을 확대해야 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경제평화론은 그간 우리사회의 대북인식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중심가설의 지위를 누렸으면서도, 그 내 용이 체계적으로 구조화되거나 심지어는 공개적인 학술토론의 대상이 된 적도 많지 않았다. 따라서 여기에서 이 가설의 내용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위험한 방법을 동 원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가설의 논리적 구조를 그와 관 련된 다양한 주변 논의들을 토대로 역추적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연구자의 임의적 판단에 따라 대상 가설의 논리적 구조를 함부로 재단해 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 리가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 경제평화론의 논리적 구조를 보다 명시적으로 드러내어 그에 대한 대립 가설들과 서로 비교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이 가 설의 논리적 외연을 확장시켜 그 함의를 찾아내는 일 역시 사실 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 글에서 전개될 논의 는 이러한 위험성과 실용성을 모두 감안하여 제한적으로 해석하 여야 할 것이다.

가. 경제평화론의 논리

만일 어떤 연구자가 ‘남북교역이 증대하면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가 진전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려 한다면, 그는 이러한 주 장을 어떻게 전개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이 질문과 관련하여 다

84 북한경제의 대외의존성과 한국경제의 영향력

음과 같이 서로 연결된 일련의 세부적인 부분 명제 또는 주장들 에 대해 생각해 보자.

[A-1] 현재 북한은 1990년대의 경제위기 이후 극심한 경제적

피폐상황에 놓여 있다. 그 근본원인은 북한 내부의 경제 적 자원이 모두 고갈되어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경제위 기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북한경제가 유지ㆍ발전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자 원 유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북한당국 역시 이를 위 한 대외거래 확대와 국제적 원조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 고 있다. 현재와 같은 경제적 피폐상황이 지속될 경우 북한체제의 유지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러한 의미에서 현재의 북한경제는 대외의존적, 아니 보 다 정확히 표현해서, 원조의존적 경제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성격은 북한당국이 좋건 싫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A-2] 북한경제의 대외의존적ㆍ원조의존적 성격은 앞으로 약

화되기 보다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북한경제가 현재의 피폐상황으로부터 점차 호전되어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이의 유지ㆍ발전을 위한 경제적 자원 소요량 역시 증대 할 수밖에 없는데, 현 북한경제의 상태로는 이러한 소요 량 또한 외부에 의존하지 않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재화의 양과 질이 극히 열악한 만성적 무역적자국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추가적 외부자원 유입을 위해서는, ① 기존의 경제체제 를 보다 외부 지향적으로 개조함으로써 더 많은 대외거 래를 수행하거나, ② 그도 아니면 더 많은 추가적 원조 유입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 모두는 북한경 제의 대외의존적ㆍ원조의존적 성격이 향후에도 더욱 강 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B-1] 이러한 북한경제와 한국의 교역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달

리 말하면 그것은 한국경제에 대한 북한경제의 의존성이 그만큼 증대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물론 교역은 양국 모두의 상대에 대한 의존성을 높인다. 그러나 양국의 경 제적 규모가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한국경제 와 북한경제의 상대적 의존성의 차이는 서로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곧 한국이 한반도의 평화 와 관련된 경제적 레버리지를 갖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B-2] 우선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남북교역의 증대란 한국으

로부터 경제적 과실이 들어오고 그 규모 또한 계속 늘어 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과실은 한 반도의 긴장상태가 고조되어 남북교역이 축소될 경우 줄 어들게 될 것이고, 이는 다시 북한경제의 유지ㆍ발전에 문제를 일으켜 북한의 체제에도 부담을 줄 것이다. 이는 남북교역이 증대할수록 북한 스스로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만한 유인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다. 따라 서 한국으로서는 단순히 남북교역을 증대하는 것만으로

86 북한경제의 대외의존성과 한국경제의 영향력

도 북한의 정치군사적 일탈 가능성을 억제하는 경제적 레버리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얻는다.

[B-3] 남북교역은 한반도의 평화와 관련된 한국의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적 레버리지의 효과 또한 보유한다.

남북교역의 경제적 과실은 상대적으로 북한경제에 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이 남북교역에 영향을 미쳐 북한이 얻는 경제적 과실의 규모를 통제하 려 할 경우, 북한으로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에 상응 하는 정치군사적ㆍ정책적 양보를 한국에 제공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기 때문이다.20

[B-4] 다만, 이러한 레버리지는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만일 한국이 남북교역이라는 경제적 레버리지를 이용해 북한의 체제와 관련된 중요 변수에 영향을 미치 려 한다면, 이는 북한의 특성상 극심한 정치군사적 반발 을 불러와 한반도의 긴장이 오히려 고조되고 남북교역 자체가 불가능해짐으로써 경제적 레버리지가 사라지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C-1] 경제적 교역과 정치적 평화 사이의 인과관계는 이미 수많

20 실제로 그간 한국이 거의 모든 남북교역을 구체적인 대북정책의 목표 달성을 위한 레버리지로 사용해왔다는 주장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일례로 이 에 대한 한국의 북한경제 연구자들의 상호 토론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KDI 북한경제팀, “북한경제제재가 북한 경제ㆍ사회에 미치는 영향:

효과와 한계, 전망,” 󰡔KDI북한경제리뷰󰡕, 2006년 11월호.

은 경험적 사례를 통해 검증된 바 있으며, 이를 토대로 한 이론적 뒷받침 역시 매우 튼튼한 사실 명제의 하나이다.

과거 전쟁을 벌였던 유럽의 제국들이 전후 경제적 교류의 확대와 통합에 주력하면서 나토(NATO)와 유럽연합(EU) 그리고 종국에는 유럽통합이라는 정치안보적 동맹체의 형성으로 나아간 것이나, 이를 토대로 제기된 이른바 ‘자 본주의 평화론(capitalist peace)’이 그 좋은 예이다.21

[C-2] 남북교역과 한반도 평화 사이의 상관관계 역시 그간의

남북관계 발전과정에서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 다. 2000년 이후의 급속한 남북교역 증대를 바탕으로 당 국자 회담을 포함한 양국간의 교류와 회담이 정례화ㆍ 제도화 되었고, 개성공단이나 금강산에서 보듯이 한국의 경제적 진출에 상응한 북한의 정치군사적 양보가 가시 화 되었으며, 무엇보다 양국 국민들의 신뢰회복이 진행 됨으로써 그 어떤 돌발적인 정치군사적 변화에도 불구 하고 양국의 교류가 지속될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된 것 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위의 각각의 주장들을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 을 것이다. 각각의 주장 자체가 논리적으로 복잡하지 않은데다, 북한을 바라보는 외부 관찰자들이라면 이들 주장 모두에 매우 익 숙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들 주장 각각에 대

21 이에 대한 이론적 시각으로서 예를 들어 조민, “평화경제론,” 󰡔통일정책연구󰡕, 제15권 1호(2006)를 참고.

88 북한경제의 대외의존성과 한국경제의 영향력

해 부연 설명을 하기 보다는, 이들을 몇 가지의 그룹으로 묶어 그 것이 어떻게 경제평화론의 가설로 연결되는가를 이야기하는 것 이 더욱 유용할 것이다.

나. 경제평화론의 구성

먼저 [A-1]과 [A-2]를 묶어 보면, 이는 현재의 북한경제를 대 외의존형 원조경제로 본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앞에서 북한의 대외거래를 검토한 바 있으며, 그 결과 북한경제는 대외거래 특 히 외부로부터의 무상지원이 없으면 유지되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만일 이러한 결론이 맞다면, 북한경제를 원조경제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다. 현대 경제의 가장 기초 적 투입요소라고 할 수 있는 식량과 석유의 절대량을 외부세계의 무상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경제를 원조경제라고 부르지 않는다 면 그것이 더욱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조경제 론적 시각은 우리의 관심인 경제평화론과는 어떻게 맞닿아 있을 까? 우선 이러한 시각에 서게 되면,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남북 교역이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과의 무역규모 축소에 직면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남북교역이야말로 경제의 유지와 운영에 필요한 외부 자원을 흡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채널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남북교역의 확대가 스스로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선택할 수 있고 또 실현할 수도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는 말이 된다. 평화 경제론에 주장하는 ‘남북교역 확대 → 한반도 평화의 증진’이라는 채널의 전반부가 한국경제의 선택여하에 따라서는 얼마든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