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촌 입주민들의 일상을 가장 두렵게 하였던 건 대인지뢰 사고다.
전략촌 주민들은 “이웃 어른들이 지뢰사고를 당하는 것을 눈으로 보면 서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하고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 로부터 공부하라는 말보다 지뢰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듣기도 했다.151) 지뢰 피해 등에 대해 입주민들이 입주 당시에 “‘죽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에 서명을 했기 때문에 불의에 사고를 당했음에도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생각을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52) 평 화나눔회는 2011년 지뢰 피해자 228명에 대한 조사 결과 지뢰 사고가 발생하였음에도 보상 청구를 하지 못한 이유로 “보상 및 배상에 대한 절차를 몰라서(128명), 군부대에 밉게 보이면 불이익을 당할까봐(33 명), 사고가 나도 본인 책임이라는 각서 때문(11명)”을 꼽았다.153)
150) 이종훈‧정춘근‧임철순‧송은정‧박은‧김다혜, 민북마을 역사 기록물 발간사업 : 대 마리 역사 이야기, p. 234.
151) 위의 책, p. 9.
152) 위의 책, p. 149.
153) 위의 책에서 재인용.
<표 Ⅵ-7> 강원도지역 지뢰피해자 발생 현황(2011년 현재까지의 조사결과) 철원 고성 화천 양구 인제 평창 홍천 춘천 양양 합계
인원(명) 67 31 9 89 9 3 8 10 2 228
전체비율(%) 30 14 4 39 4 1 4 4 1 100
출처: 평화나눔회‧한국대인지뢰대책위원회, 강원도 민간인 지뢰피해자 전수조사 보고서, 미발 행, 2011, p. 33.
<표 Ⅵ-8> 강원도지역의 시기별 지뢰사고 현황
시기 피해종류 철원 고성 화천 양구 인제 평창 홍천 춘천 양양 합계
1950년대 사망 - 10 - 5 1 2 4 3 - 25
부상 - 6 2 5 1 1 3 - - 18
1960년대 사망 9 7 - 19 3 - 1 - - 39
부상 12 1 2 19 - - - - - 34
1970년대 사망 9 3 - 5 - - - 3 - 20
부상 12 - 3 7 1 - - 4 2 29
1980년대 사망 5 - - 6 - - - - - 11
부상 7 - 1 3 - - - - - 11
1990년대 사망 5 1 - 6 1 - - - - 13
부상 3 2 1 8 1 - - - - 15
2000년대 사망 2 - - - - - - - - 2
부상 3 1 - 3 1 - - - - 8
미상 사망 - - - 1 - - - - - 1
부상 - - - 2 - - - - - 2
합계 사망 30 21 - 42 5 2 5 6 - 111
부상 37 10 9 47 4 1 3 4 2 117 출처: 위의 글, p. 34.
평화나눔회에 의하면 강원도 지역 전체 피해자 중에서 양구군에서 발생한 지뢰피해가 가장 많고(39%) 그 다음으로 철원군에 피해자가 30%를 차지한다.154) 특히 사고가 발생한 시기별로 살펴보면 한국전 쟁 직후 시기보다 1960년대에 발생한 사고가 가장 많았는데, 이는 철 원군의 대마리‧생창리‧유곡리 등 민통선 내의 지뢰지대에 전략촌을 형성하기 위해 민간인을 입주시키면서 피해 규모가 커진 것이다.
접경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피해의 구체적인 장소와 그 장소에 접근 하게 된 이유 등을 살펴보면 재건촌에서 이루어졌던 개간의 과정과 주민의 일상을 유추해볼 수 있다. 특히 “이주의 동력인 땅을 개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는 주민들이 토지소유권을 주장하는 서사와 매 우 긴밀하게 연관된다.”155) 따라서 피해 발생의 맥락과 이유를 주요 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림 Ⅵ-6> 대마리 입구 표지석
“향군촌 대마리”
<그림 Ⅵ-7> 대마리 개척비 제막식
(5사단장 및 철원군수 등이 참석)
출처: 연구진 촬영(2019.8.). 출처: 철원군청 사료, 2016.
154) 평화나눔회‧한국대인지뢰대책위원회, 강원도 민간인 지뢰피해자 전수조사 보고서, 미발행, 2011, p. 33.
155) 김연정, “민통선북방마을 여성-땅 관계의 경험서사를 통해 본 여성의 토지 ‘소유’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p. 13.
한편, 2014년 10월 15일 법률 제12790호로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 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2015년 4월 16일부터 시행되었다. 그러나 피 해자에 대한 ‘위로금’의 지급 기준이 사고 당시의 월평균 임금을 기준 으로 하고 있어 ‘위로’의 역할을 하기에 부족하고, 사고 시점에 따라 금액의 차이가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156) 이 에 따라 2016년 3월 22일 법률 일부를 개정하여, “사망 또는 상이를 입을 당시의 월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한 위로금이 2천만 원에 이 르지 아니할 경우 이를 2천만 원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피해 자의 취업가능기간 및 장해정도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조정‧지급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2019년 4월 23일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일부 개정을 통해 앞서 ‘위로금 등의 지급신청은 이 법 시행 후 2년 이내에 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개 정하여, 위로금 등의 지급신청을 2021년 5월 31일까지로 연장하였다.
156) 이종훈‧정춘근‧임철순‧송은정‧박은‧김다혜, 민북마을 역사 기록물 발간사업 : 대 마리 역사 이야기, p.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