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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의 수정과 (재)확정

Dalam dokumen PDF 북한의 통계 - Kinu (Halaman 112-118)

현재까지 공표된 북한통계의 특징과 관련하여 살펴보아야만 하는 또 다른 문제는 이른바 통계의 수정(correction) 또는 (재)확정(revision) 과 관련된 것이다.34 이러한 문제는 이제까지 발표된 북한통계의 상당 부분이 서로 모순되거나 정합적이지 않다는 사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 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앞의 제2장에서 1963년과 1974년 사이 북한 의 곡물생산량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승준(1998)의 저술을 인용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1974년 북한의 곡물생산은 700만 톤을 상회하며, 이는 1963년에 비해 약 2배 가량 증가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언급은 1970년대 간행된 북한의 󰡔조선중앙년감󰡕 속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35 따라서 이러한 수치가 옳다면 1963년 북한의 곡물생 산량은 약 350만 톤 내외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은 1963년 신년사를 통해 북한의 곡물생산은 이미 ‘1962년 500만 톤 생산고지를 점령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1960년대 초반 북한의 통계당국 역시 1963년 북한의 곡물생산량이 최고 520만 톤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 다.36 이렇게 보면 1970년대 북한당국이 말하고 있는 1963년의 생산량

34 _ 이 절의 내용은 Lee Suk, “Reliability and Usability of DPRK Statistics,”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Vol. 15, No. 1 (2006)을 크게 참고한 것이다.

35 _ 조선중앙통신사, 󰡔조선중앙년감󰡕 (평양: 조선중앙통신사, 1975, 1976).

36 _ Joseph Sang-hoon Chung, The North Korean Economy, p. 48.

350만 톤은 1960년대 초반에 발표한 같은 해의 생산량 520만 톤 내외와 는 전혀 맞지를 않는다. 이처럼 한 해의 생산량을 두고 최대 170만 톤 이나 차이가 나는 두 가지 수치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 이 두 가지 수치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이 북한당국의 공식적인 통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처럼 북한의 통계당국은 이제까지 서로 모순되는 수많은 통계자료 들을 발표하였으며, 이러한 북한 공표통계 내부의 비정합성으로 인해 북한통계 자체가 신뢰성이 없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북한의 통계당국은, 비록 외부적으로 발표된 통계에는 서로 모순이 있을지 몰라도,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통계에는 서로 모 순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 북한과 같이 고도로 중앙집중적인 계획경제를 유지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통계당국이 내부적으로 모순적인 통계를 가 지고 있을 경우 전체 계획이 혼란에 빠져 실패를 거듭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의 통계당국이 이제까지 서로 모순되는 여 러 통계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두 가지의 가능성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하나는 북한의 통계당국이 외부로 발표하는 통계를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게 조작하고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북한의 통계당국이 이전에 작성하였거나 발표한 통계들을 이후 (주기적으로) 재점검하여 그것을 수정하거나 (재)확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조작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보다 자세히 논의하기로 하고, 여기 에서는 일단 두 번째 통계의 수정과 (재)확정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 기로 하자.

과연 북한의 통계당국이 이제까지 생산되고 공표된 여러 공식통계를 이후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재)확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흥 미롭게도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여

러 가지 이유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먼저 이러한 통계의 수정과 (재)확정과 관련하여 외부세계에 알려진 실제의 사례가 존재한 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경제의 경우 국가의 공식통계는 비단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국가가 발표하는 통계가 해당 사회주의 경제가 표방하는 공식적인 정책의 정당 성을 입증해 주는 증거로서 간주되기 때문에, 만일 이러한 통계가 국가 의 기존 정책과 상반되게 나타난다면, 그것은 국가 정책의 정당성을 둘 러싼 내부적 권력투쟁 또는 정치투쟁으로 연결될 개연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성립 초기 북한의 경우에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 으며, 이는 특히 당시 발표된 북한의 곡물통계와 관련하여 더욱 그러했 다. 실제로 1950년대 초반 북한의 곡물통계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37 예를 들어, 1954년 11월 북한당국은 한국전쟁 전후의 식 량난에 대응하기 위하여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강제적인 곡물수매 캠페 인에 나서는데, 이러한 캠페인은 농민들의 저항과 농촌지역에서의 소규 모 기근현상으로 인해 곧바로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55 년 초반 공산당의 명령으로 이러한 캠페인은 중단되게 되었으며, 이와 관련된 농업정책 전반을 두고 이 해 말까지 공산당 내부에서는 상당한 정치적 긴장이 초래되었다. 문제는 당시 북한의 농업이 토지를 소유한 소규모 자작농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들에 대한 국가의 곡물수매는 현물 세와 농민들에 의한 자발적(?) 수매라는 두 가지 채널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들 채널을 통한 실질적 곡물의 수매량은 그 해 곡물의 생산량, 더욱 정확히 말하면 그 해의 곡물생산에 대한 국가의 통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1950년대 초반 북한에서 벌어

37 _ 이에 대해서는 Lee Suk, Food Shortage and Economic Institution in the DPRK,

Ph.D. Dissertation, pp. 92~103을 참조.

진 농촌지역에서의 곡물수매 캠페인과 그에 이은 당내에서의 정치적 갈등은 모두 1950년대 초반 북한의 공식적 곡물생산량 통계를 확정하는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1957년 북한의 통계당국은 기존에 발표한 모든 곡물생산량 통계를 수정하여 (재)확정 한 새로운 통계를 발표하게 된다.38우리가 󰡔조선중앙년감󰡕 등을 통해 알고 있는 북한의 곡물통계는 바로 이처럼 수정되고 (재)확정된 통계이 다. 이러한 사례가 보여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그것은 북한의 경우 이미 1950년대부터 국가의 통계를 수정하고 (재)확정하는 문제가 매우 민감하게 다루어졌으며, 또한 실제로 그러한 수정과 (재)확정이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표 Ⅲ-2> 1957년 북한 곡물생산량 통계의 수정

(단위: 1,000 MT)

țښࣀć țښս܁ࣀć

1946 1,998 1,898

1947 2,178 2,069

1948 2,809 2,668

1949 2,795 2,654

1950 - -

1951 2,601 2,260

1952 2,939 2,450

1953 3,288 2,327

1954 - 2,230

1955 - 2,340

1956 - 2,873

출처: 김성보, 󰡔남북한 경제구조의 기원과 전개󰡕 (서울: 역사비평사, 2000).

38 _ 북한 곡물통계의 수정과정에 대해서는 서동만, “50년대 북한의 곡물 생산량 통계에

관한 연구,” 󰡔월간 통일경제󰡕 (서울: 현대경제연구원, 1996.2)를 참고하는 것도 흥미 로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통계의 수정과 (재)확정이 1950년대만의 고유 한 현상이 아니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앞서 북한통계의 과장과 왜곡의 가능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김일성이 1970년대의 북한을 대상으로 한 ‘각종 통계가 그 수집과 생산과정에서 부풀려지고 거짓 보고되는 사실’을 질타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 다면 김일성은 북한의 통계가 수집과 작성과정에서 부풀려지고 거짓 보고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에는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북한의 통계당 국이 기존에 수집되고 생산된 여러 통계들에 대한 재점검 작업을 수행 하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재점검을 토대로 통계의 수정과 (재)확정 작 업을 실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1950년대 이후의 북한에서도 꾸준히 기존 통계에 대한 수정과 (재)확정이 일어났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이러한 개연성은 북한의 통계수집과 작성에 대한 절차를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앞 장에서의 북한 인구통계 수집 및 작성과정에서 분명히 보여지듯이 북한의 통계체제는 단일한 통계를 복수의 기관이 중복하여 수집·작성하고 있으며, 더욱이 이러한 수집 및 작성기관의 차이에 따라 통계의 내용 자체가 달라질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다. 이는 북한의 경우 공식통계를 최종 확정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차를 두고 다양한 수집·

작성기관에서 만들어진 여러 통계들을 누군가가 재점검하여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발표된 북한통계라 하더라도 그것이 최종 공식통계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정과 (재)확정이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의 통계들은 과연 북한당국이 최종적으로 수정하여 (재)확정한 통계일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

가 알고 있는 공표된 북한의 통계를 무작정 북한의 공식통계라고 가정 하고 이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앞에서 언급한 1963년의 곡 물생산량에 대해 생각해 보자. 만일 1960년대 초반 북한당국은 이 해의 곡물생산량을 520만 톤이라고 발표했지만, 이후 그 통계에 대한 재점검 을 거쳐 그 수치를 350만 톤이라고 수정하여 확정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이후 󰡔조선중앙년감󰡕이나 북한의 저술에서 1974년 북한의 곡 물생산량은 700만 톤이 넘고, 이는 1963년 생산량의 2배에 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한 이 경우 1960년대 초반 북한당국이 발표한 이 해 생산량 520만 톤이라는 수치는 더 이상 북한 의 공식통계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외부세계가 가지고 있는

1963년의 북한 곡물생산량 통계는 520만 톤이라는 수치일 뿐이고, 이후

이 수치가 북한의 통계당국에 의해 수정되고 (재)확정되었는지의 여부 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설사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북한통계가 다수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수정과 (재)확정 여부를 모르는 상 황에서는 이를 함부로 북한의 공식통계라고 가정해 이용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러한 북한통계의 수정과 (재)확정의 문제를 우회하는 한 가지 방법 은 가능한 단일의 통계출처에서 가능한 장기간의 시계열을 갖는 북한통 계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1960년에 발간된 󰡔조선중앙년 감󰡕의 통계부록에서 1945~1960년에 이르는 북한의 곡물생산통계가 모두 한꺼번에 수록되어 있다면, 여기에 수록된 1940년대와 1950년대 의 북한통계는 이미 수정과 (재)확정을 모두 거친 것이라고 가정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북한의 통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1950년대 말까지의 통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북한당국은 1960년대 초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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