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은 구체적인 경우들에서 뜻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것이 프레게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아야 할 이유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이유 라고 본다. (Fine(2007), p.35) 특히 크립키가 기술주의 이름 이론을 공격 하면서 지적했듯이, 화자들은 예컨대 이름 "파인만"과 "겔만" 둘 다에 대 해서 '유명한 물리학자'라는 동일한 정보만을 연관 지을 수도 있는데, 그 러한 경우 두 이름의 뜻의 차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와 같은 문 제적 사례들에서 두 이름에 연관되는 정보의 차이가 무엇일 수 있을지에 대하여 프레게주의자들은 '이름 "파인만"의 지시체' 등 여러 가능한 차 이의 후보들을 "창의적으로" 제안해왔다. 파인은 서로 다른 두 이름에 각각 연관시키는 정보 간에 어떠한 가능한 차이도 있을 수 없으면서도 두 이름이 각각 서로 다른 대상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고 주장하며, 그러한 경우가 있다면 프레게주의에 대한 결정적인 반례가 된다고 논증한다. 파인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19)
새먼, 솜즈 등 표준적 지칭주의의 대표적 옹호자들이 파인과 관계주의를 두고 논쟁을 벌인 바 있다. 표준적 지칭주의자들과 파인 사이의 논쟁에 대해서는 Salmon(2012), Soames(2010), Fine(2010), Fine(2014)를 참고하라.
19) 아래는 파인 자신이 제시한 예시로, 이해를 돕기 위해 몇몇 표현을 수정한 것 외에는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다.
[프레게적 뜻의 가능한 후보들을 배제하기 위해] 어느 인지주체의 시야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완전히 대칭적인 우주를 상상해보자. 그녀의 왼편에 보이는 것과 오른편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서로 질적으로 동일하게 보 이며 실제로도 질적으로 동일하다. (물론 그녀는 시야의 왼편과 오른편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개념화하지 못한다. 그랬더라면 그점에서 인식이 비대칭적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 두 명의 똑같은 쌍둥이를 알게 되 는데, 쌍둥이 중 하나는 그녀의 왼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오른쪽 에 있으며 그녀는 동시에 각 쌍둥이를 "철수"라고 이름짓는다. ... 두 "철 수" 토큰은 대칭을 깨지 않도록 항상 동시에 사용된다. ... 그녀는 왼쪽 입에서 한 "철수" 토큰을, 오른쪽 입에서 다른 "철수" 토큰을 그리고 가 운데 입에서 비동일성을 뜻하는 단어를 동시에 발화함으로써 두 철수들 의 비-동일성을 주장할 수도 있다. (p.36)
파인은 이러한 가능한 사례가 존재한다는 것이 프레게주의에 심각한 문 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문제의 인지주체가 두 "철수" 토큰으로 정보성 있게 비-동일성을 주장할 수 있으므로 두 "철수"는 서로 다른 뜻을 가져 야한다. 그런데 두 철수 사이에 인식될 수 있는 기술적 차이가 전혀 존 재하지 않으므로, 뜻이 기술적인 것이라면 두 "철수"는 동일한 뜻을 가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프레게주의자가 프레게적 뜻의 어떠 한 후보를 제시하여 그것이 지칭의 매개가 되어준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제시된 후보에 대하여 이 가능한 사례가 반례가 된다.20)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대칭우주 사례에 기반한 파인의 논증이 프레 게주의자에게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선 한 가지 이 유로, 대칭우주 사례는 우리의 실제 언어적 실행(linguistic practice)에 부합하지 않는다. 대칭우주 사례와 그 변주들은 Fine(2007)에 여러차례
20) 이것은 어디까지나 뜻이 순수하게 기술적이라고 보는 입장들에 한정된다. 뜻이 부분적으로라도 비-기술적일 수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대칭우주 사례로 배제 되어버리지 않는 뜻 후보들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파인은 뜻이 비-기술적이 라고 보는 입장이 이해가능하지 않거나, 이해가능하더라도 그러한 입장에서 내놓 은 뜻 후보들에는 독립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Fine(2007), 각주 3번, 그리고 p.37 참조. 또 본고 각주 5번 참조.
등장하지만, 파인 자신도 인정하듯이 그러한 사례들은 "굉장히 인위적인 것이다." (p.71) 대칭우주 사례에서 인지 주체는 자신의 시야 가운데를 중심으로 완전히 대칭적인 우주를 마주하며, 한쪽에 보이는 대상마다 언 제나 단순히 질적으로 동일하게 보일뿐 아니라 실제로도 질적으로 동일 한 대상이 다른 쪽에 존재한다. 인식주체가 이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세계는 주체의 인식에 있어서나 세계의 사태에 있어서나 실제 우리 세계 와는 엄청나게 다르다. 프레게주의자가 프레게적 뜻의 가능한 후보를 제 시하여 그러한 뜻을 매개로 우리가 대상을 표상하고 지칭한다고 주장할 때, 그는 그러한 표상 방식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 언어 생활이 실제로 그러한 표상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레게주의자가 제시할 수 있는 가능한 뜻 후보가 (그 후보가 무엇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세계와 엄청나게 다른 대칭우 주에서 표상과 지칭의 적절한 매개가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프레게주 의자는 우리 세계는 (다행히도) 그런 대칭우주와 같은 세계가 아니기 때 문에 자신이 제시한 뜻 후보가 우리에게 적절한 표상 매개가 되어준다고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파인의 논증이 프레게주의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는 보다 중요한 이유 는, 애초에 대칭우주 사례가 정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사례가 두 철수 사이에 어떠한 기술적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 사례인 이상 그것은 정합적이지 않다. 그 사례가 정합적 사례이기 위해서는 두 철수 사이에 최소한 한 종류의 기술적 차이가 존재해야만 한다. 이는 소 사(D. Sosa)가 다음과 같은 비판을 통해 지적한 바 있다.21) 우주가 대칭 적으로 제시된다면, 그 우주가 "아무 특정한 대칭축도 없이"(not with respect to any particular axis) 대칭적인 것으로 제시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대칭축과 함께 대칭적 우주가 제시된다면, 인식주체는 당연하게도 대칭축의 이쪽 편과 저쪽 편을 개념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녀는 시야의 왼편과 오른편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개념화하 지 못한다”고 한 파인의 괄호 속 언급만으로는 그러한 개념화를 배제할
21) Sosa (2010), pp.350-51.
수 없다.) 그렇다면 두 철수 각각에 대하여 인식주체는 대칭축 이쪽 편 에 있다는 기술적 믿음과 대칭축 저쪽 편에 있다는 서로 다른 기술적 믿 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22) 결론적으로 파인의 대칭우주 사례가 정말 로 상상가능한 정합적인 사례라면, 그것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지시되는 두 철수 사이에 아무런 기술적 차이도 없는 사례가 못되는 것인 만큼, 프레게적 뜻의 어떤 가능한 후보에도 적용되는 반례인 것이 결코 아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