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고 나는 공지칭의 전제 이론이 프레게 퍼즐의 해결책으로서 의미론적 관 계주의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인다. 반면 지칭주의자는 뜻을 거부하고 이름에 지시체 외의 의미론 적 내용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하므로, 어쩌다가 성립하게 되는 공지칭 관계와 보다 더 강력한 공지칭 관계를 구분하기 어렵다.
프레게 퍼즐과 프레게주의
이는 생각보 다 대단한 일인데, 대부분의 독자는 저 문장을 처음 들어보았을 것일 뿐 더러 저 문장은 세계를 올바르게 묘사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예 컨대 “트럼프는 미국의 물리학자이다”라는 문장 자체는 새롭게 발화된 것이지만, 그것을 의미있게 발화하기 위해서 화자인 나는 그것을 이루는.
프레게주의와 지칭주의
그러므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가 참이다. 프린스턴에 산다”는 것의 내용은 양쪽에 모두 동일하게 포함되었으니 말이다.).
지칭주의와 프레게 퍼즐
프레게 퍼즐에 대한 표준적인 해결책은 명제 (proposition)와 명제를 받아들이는 방식(way of taking a proposition)을 구분하는 데서 출발한다.9) 동일한 명제를 믿는다 해도 명제를 받아들이 는 여러 방식으로 그 명제를 믿을 수 있다. 그 문장들의 인식적 의의 차이는 화용론적 으로 전달된다(practically imparted).10).
파인의 관계주의
두 표현이 대상을 같은 것으로 표상할 때, 표현들의 내용에서 대상의 나타남들은 서로 “조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 고 그에 반대되는 대실 공지칭이란 뜻이 동일하지 않은 표현들이 어쩌다 가 공지칭하게 되는 것이다.
파인의 대칭 우주 논증
다시 말해 프레게주의자가 프레게적 뜻의 어떠 한 후보를 제시하여 그것이 지칭의 매개가 되어준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제시된 후보에 대하여 이 가능한 사례가 반례가 된다.20).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대칭우주 사례에 기반한 파인의 논증이 프레 게주의자에게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타쉑의 이행성 실패 논증
반면 피터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정치인 파데레프스키와 피아 니스트 파데레프스키가 각각 별개의 사람으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는 피터가 합리적이라는 가정에 어긋나므로, 가정된 상황 에서 피터가 (7)로 표현한 믿음과 (9)으로 표현한 믿음에서 파데레프스 키의 나타남들은 조정되어 있지 않다고 해야 한다.
피닐로스의 이행성 실패 논증
피닐로스는 이 사례들에서 대법 공지칭의 이행성이 실패한다고 지적한 다. 그러므로 이 사례들에서 대법 공지칭은 이행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피닐로스 논증의 평가
나는 ‘조건적 공지칭의 지식’이 대법 공지칭에 대한 지나치게 강한 기 준이라고 생각한다. 이어지는 장에서 나는 대법 공지칭에 대한 대안적 이론을 제시할 것이다.
전제를 통한 피닐로스 사례들의 설명
즉 '샛별'과 '개밥바라기'는 첫 문 장이 발화된 시점에는 대법 공지칭하지 않다가, 두번째 문장이 발화된 이후 시점에는 대법 공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13)의 첫 문장의 두 표현이 대법 공지칭하지 않다가 대법 공지칭하게 되면 그 표현들의 뜻들이 동일하지 않다가 동일하게 바뀌는 것으로, 그 뜻들이 구성하는 문장의 의미론적 내용 역시 바뀌어야 한다.
반복되는 이름들 간의 대법 공지칭
정리하면, 표현들이 대법 공지칭한다는 것은 그 표현들이 공지칭한다 는 것이 전제되는 것이다. 깨비는 깨비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하자.
의미론적 전제? 화용론적 전제?
만일 철자법적으로 동일한 이름의 반복적 사용이 규칙 적인 전제 유발자라면 (18)에서 역시 의미론적 이상이 발생했어야 할 것 이다. 내 제안은 대법 공지칭 이 공지칭의 전제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동일성 퍼즐
파인의 비판은 논리적 형식을 통해 두 문장의 정보성 차이를 설명하려는 시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20)과 같이 동일한 철자법적 이름들이 반복적으로 포함된 문장이 발화되었을 때 일 반적으로 화자와 청자는 그 이름들이 동일한 대상을 지칭한다는 전제를 공유할 것이다. 그러므로 “키케로 = 키케로”의 논리적 형식을 분석할 때 자연언어 이름들을 동일한 상항으로 대치할 수 있다.
자연언어 추론의 퍼즐
파인의 비판은 논리적 형식을 통해 두 문장의 정보성 차이를 설명하려는 시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그가 키케로가 툴리우스와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지 않은가.
내용의 구조와 표상의 형식
사 고 언어 가설이란 명제 태도의 대상인 심적 표상들이 마치 언어의 문장 들처럼 통사 구조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 심적 표상이 어떤 사고 언어 문장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에 따라 명제 태도의 추론적 잠재성이 결정된다는 가설이다.52) 프레게주의와 러셀주의 사이의 논쟁에서 사고 언어 가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리처드 헥(Richard G. Heck)의 설명을 살펴보자. 프레게적 뜻]은 클레멘스가 죽었다는 그의 믿음의 내용과 트웨인이 죽었다는 그의 믿음의 내용을 구별하고, 클레멘스가 죽었다는 그의 믿음 의 내용과 클레멘스가 이웃사람이라는 그의 믿음의 내용을 관련짓는다.53) 그러니까 [표준적 러셀주의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 믿음들을 구별하고 관련짓되 그 믿음들의 내용을 구별하지 않는 것이다.
믿음 보고의 퍼즐
이때 믿음 보고자가 “피터는 파데레프스키가 피아니스트라고 그리고 파 데레프스키가 정치가라고 믿는다” 라고 보고한다면 이는 잘못된 보고일 것이다. 하지만 믿음 담지자가 대상에 대한 이름 없이 대상에 대해 분절된 믿 음들을 가지는 경우가 위의 피터와 같은 경우에 국한되는 것 같지는 않 다.. 믿음 보고의 부적절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파인이 피터의 경우를 설명한 방식이 적용될 수 없는 사례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