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 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가장 많이 논의되는 대북정책 과제 중 하나이나 그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정부 출범 초기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12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선정하 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많이 준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 질서를 규정해 온 정전상태가 평화 상태로 전환되고 안보, 남북관계, 대외관계에서 이를 보장하는 제도적 발전이 이루어진 상태”로 정의
(peace-making) 개념의 특징과 차이를 토론하였는데, 참고로 여기서 일부를 되
풀이 한다. “평화구축은 갈등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평화를 공고 하고 견고하게 하는 조치와 구조를 규명하고 지원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평화유 지는 정전상태나 다른 평화조약(합의)의 이행을 모니터하고 촉진하기 위해 적 대적 대치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의 동의 아래, 군대, 경찰 및 민간인을 배치하는 활동(field mission)을 말한다. 그리고 평화창출이란 적대행위에 있는 당사자들 을 설득하여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외교적 수단의 사용을 의미한 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평화외교는 국방력뿐만 아니라 국가이미지와 신인도 제 고, 그리고 평화유지 및 평화재건을 위한 대외 홍보, 지원, 기여 활동의 의미도 담고 있다.”
하였다.93 여기서 평화체제의 ‘제도화’는 평화협정 체결, 유엔사 해체,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 변경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복합적 문 제이며 평화체제 구축의 최종단계에서 완성된다.
노무현 참여정부가 발간한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 평화번영 과 국가안보(2004)」에 따르면,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추진원 칙으로서 (1) 단계적, 점진적 추진, (2) 평화체제 전환까지는 정전체 제 준수, (3) 남북 당사자 원칙 등 3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 중에 서 특히 단계적 추진원칙에 따라 (1) 북핵문제 해결과 평화 증진 가속화, (2) 남북협력 심화 및 평화체제 토대 마련, (3) 평화협정 체결 및 평화 체제 완성 등 3단계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당사자 원칙에 대하여, 평화협정 체결은 남북이 중심되어 추진하여,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지지와 보장을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원칙들은 1990년대 후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을 추진하면서 우리 정부가 이미 유지 하였던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당시 우리 정부는 정전 체제 유지, 남북기본합의서 실천으로 신뢰구축, 미‧중과 협의 하에 남북간 평화협정 체결로 평화체제 전환 등 기본원칙을 견지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진전은 9.19 6자 공동성명(2005)에서 6자가 별도 평화포럼을 지지하고 그 개 최 방침에 합의한 것이다. 6자는 9.19 6자 공동성명 4항에서 “직접 관련 당사국들이 적절한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에 관 한 협상”을 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를 계기로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평화체제회담에 참가하는 당사국 범위, 실질적 조치와 집행시점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93_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홈페이지, “참여정부 12대 국정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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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Ⅴ-3> 평화체제 관련 조치와 합의 연혁
연대 이행조치와 합의 내용
1953 ㅇ 정전협정 체결 1992
~1996
ㅇ 북한의 정전체제 무력화 조치
- 중립국감독위 대표 철수 및 사무실 폐쇄
- 북측 군정위 대표 철수 및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설치 - 공동공동경비구역 무장병력 투입 등
1994 ㅇ 북한, 북‧미 평화협정 제안
1995.8 ㅇ 한국,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3원칙 발표
- 남북당사자, 관련국 협조, 남북합의 존중
1996.2 ㅇ 북한, 북‧미 잠정협정 체결, 북‧미 공동군사기구 구성, 유엔사 해체 주장
1996.4 ㅇ 한‧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 제안
1997.12
~1999.8 ㅇ 4자회담 6차 개최(제네바)
1998.10
ㅇ 3차 본회담에서 긴장완화, 평화체제 분과위 구성에 합의
- 한‧미: 평화체제 구축, 긴장완화, 신뢰구축 중심 논의 주장 - 북 한: ‘긴장완화 분과위’ 의제로 주한미군 철수와 북‧미 평화협정 제기
2005.9
ㅇ 6자 공동성명 4항
-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
2006.11 미 부시대통령, 남‧북‧미 종전선언 서명용의 표명
6자는 9.19 6자 공동성명에서 별도의 평화체제 협상을 위한 포럼을 열기로 합의하였으나, 그 포럼은 2008년 현재까지 열리지 않았다. 비 핵화 과정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협상이 열린다면 그로 인해 비핵화가 모멘텀을 잃을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0년대 말 이미 평화체제를 위한 4자회담이 열렸으나 결렬된 경험 이 있기 때문에 평화체제포럼이 지루하고 비생산적인 협상이 될 것 이라는 우려도 같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평소 평화체제에 대하여 보인 상반되는 입장차를 보면 사 실 포럼이 열렸다고 하더라도 진전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평 소 선 평화정착, 후 평화체제 제도화를 주장하였다. 이에 따르면 우선 북한 비핵화, 군사적 긴장완화, 신뢰구축이 달성된 이후 평화협정 체 결, 북‧미수교, 유엔사 해체 등을 추진하게 된다. 반면 북한은 선 평화 체제 구축, 후 핵문제 해결을 주장하였다. 특히 북한이 주장하는 선 평화체제 구축 조치에는 북‧미 평화협정과 수교가 포함되므로 우리 가 수용하기 어렵다.
나.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접근방법
평화체제와 관련해서 당사국간 입장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내 에서도 2000년 초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남남갈등’을 연상시 키는 입장차가 존재한다. 크게 3개의 시각이 존재하는데 이를 편의상 안보론(또는 동맹론), 남북론, 절충론으로 각각 부를 수 있다.
우선 전통적인 접근법으로 ‘안보론’이 있다. 안보론자 또는 한‧미동 맹론자들은 전통적으로 평화협정과 평화체제의 논의에 대하여 매우 신중하며, 가능하면 그 협상을 최대한 미루자는 입장이다. 북핵문제 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에 평화체제 협상을 시작하면, 북한의 논리, 즉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핵무장 원인이며 북‧미 평화협정이 해결 책”이라는 논리를 정당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또한 평화체제 협상이 열리면 세간의 관심이 핵문제에서 평화협정과 북‧미수교로 전환되고, 국내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론이 등장할 것이 라고 지적한다. 요약하면, 안보론자의 기본 입장은 ‘선 비핵화, 긴장 완화, 실질적 평화정착, 후 남북평화협정, 북‧미관계 개선’으로 정리 된다.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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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남북중심론은 북한의 안보위협 해소,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 책 종식, 북‧미관계 개선 등을 조기에 추진하여 한반도에 평화를 정 착시키며, 이와 더불어 비핵화도 촉진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미‧북 간 적대적인 불신관계 속에서 평화정착을 위한 한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남북한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 주도권을 행 사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주변국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미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주한미군의 지위 와 역할 변경, 유엔사 해체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위의 두 입장이 상충하고 있는 가운데 양측을 타협한 실용적인 절충론이 있다. 사실 위의 두 입장은 지나치게 원칙적이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현실주의적 절충론 은 비핵화, 평화협정, 북‧미수교, 동북아다자안보협력 등 동북아와 한 반도의 다양한 평화프로세스를 병행하여 추진할 것을 제기한다. 사실 이런 방법론은 9.19 6자 공동성명과 2.13 6자합의에서 채택되었다.
동맹론과 남북론이 충돌하는 가운데 실용적인 절충론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사실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 북‧미관계개선 등은 단 시간에 완성되는 조치가 아니라, 각각 장기간에 걸친 일련의 조치 또는 프로세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단계별로 병행 추진이 가능하다.
비핵화 조치만 하더라도 폐쇄, 불능화와 신고, 폐기 등 단계가 이미 설정되어 있으며, 불능화와 폐기 조치도 그 범위와 정도에 따라 세분 화가 가능하다. 북‧미관계 개선도 수교협상 개시, 테러지원국 지정
94_ 김성한, “6자회담 진전에 따른 평화체제 논의의 쟁점과 전망,” 주요 국제문제 분석 , 봄호 (서울: 외교안보연구원, 2007. 5. 30). 이와 대비되는 ‘남북중심론’은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해 평화체제를 이용한다는 차원에서 ‘평화체제 수단론’으로 불린다.
해제, 연락사무실 개설, 경제제재 전면 해제, 수교 등 다양한 단계가 있고, 평화체제 구축도 평화협상, 평화선언, 잠정조치, 종전선언, 평화 협정 등 단계를 나눌 수 있다. 이 때 각 분야(프로세스)의 단계별 조치 를 상호‘등가’의 원칙에 따라 상호 연계하여 이행하는 방법이 있다.
향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그 접근방법에 대한 논쟁도 확산될 것이다. 특히 북한이 비핵화에 비협조적인 자세 를 보이고 위기고조 전략에 의존한다면, 이에 대한 대응을 두고 심각 한 정책논쟁과 더불어 남남갈등이 재현될 우려도 있다. 반대로 북‧미 간 대화가 급진전될 경우, 국내적으로 이에 대한 우려와 반발이 비등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실용적이고 전략적이며 단계적 병행 추진 방법은 국가간 이견 또는 국내 남남갈등으로 인하여 정책마비가 발 생하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