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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국제관계는 국가간의 상호작용이며 외교행위는 정부 의 전유물로만 간주되어 왔다. 그래서 정부간 공식적 대화와 협상을 외교업무라고 부르고, 일반 국민들의 해외활동이나 타국 국민들과의 민간차원 교류와 교역을 영사업무라고 부르며 구별하는 것이 관례이 다. 그러나 최근에는 외교 행위주체에 대한 구별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진전에서 보듯이, 교통‧통신 수단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정부뿐만 아니라 개인, 집단, 기업, 국제기구 등 실로 다양한 행위주체들이 국제문제에 간여하여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 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때로는 국가간 상호작용(inter-sate

interactions)보다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가적인(trans-national) 민간

차원의 행위들이 더 중요하거나 더 영향력이 클 때도 많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가장 문제시 되고 있는 알카이다(Al-Qaida)와 같은 범세 계적 테러조직도 바로 그런 비국가행위자들(non-state actors)의 커 진 영향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에 해당된다. 여기에 세계적인 민주화 의 확산에 따라 정부의 공식적인 외교행위도 타국의 일반국민을 겨 냥하여 직접 추진되는, 소위 대중외교(public diplomacy)가 점차 강 조되는 추세이다.

이런 민간차원의 초국가적 외교활동이나 국제 연대활동의 확대는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1987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민주 화의 진전과 더불어 한국의 시민사회와 NGO들도 빠른 속도로 성장 하였고, 그 결과 1990년대 중반부터는 정부정책의 옹호와 비판, 제언, 감시, 대행 등 여러 차원에서 활발한 참여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비록 다른 정책분야에 비해 다소 시작이 늦어지긴 했지만 외교안보

및 통일정책 분야에서도 상당히 많은 NGO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해 오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시작된 대북 인도적 지원이 활성화되 면서 통일관련 NGO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2000년 남북정상회 담 이후에는 급진전된 남북교류협력에 따라 또다시 NGO들의 종류 와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행위주체라는 측면에 서 한국의 평화‧통일 외교가 냉전기와 탈냉전기를 기점으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가. 냉전기

냉전기간 동안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국외교의 주체는 당연히 정 부일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이유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1970년대 말 까지는 국외문제는 물론 국내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정책적 비판, 감시, 그리고 제언을 하기에는 조직이나 능력 면에서 부족했기 때문 이다. 물론 해방 직후 신탁통치반대운동, 4.19혁명, 반유신 투쟁 등에 서 보듯이, 통일이나 민주화에 대한 한국민의 열망과 의지는 냉전기 에도 내내 대단했고, 그 덕분에 결국은 세계에서 유래가 드물게 짧은 기간 내에 민주화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중을 동원하 거나 집단행동을 통한 의사표시와 압력행사를 넘어 지속적인 정책감 시와 비판, 그리고 합리적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시민사회 가 성숙되는 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한국의 시민사회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적, 물적, 제도적 여 건을 갖추게 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이다.

두 번째 이유는 외교안보라고 하는 정책분야의 특수성 때문이다.

다른 정책분야와 달리 외교안보 영역은 국익차원에서 기밀유지나 신 속한 정책결정이 요구될 때가 많고, 기술적인 복잡성이나 전문성으

로 인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슈도 많다. 그래서 외교안보 분야는 선진 민주국가에서 조차 주로 엘리트들에 의해 정책이 결정 되는 수가 많다. 하물며 과거 한국과 같이 권위주의 정권 하의 개발도 상국에서는 외교안보 정책은 당연히 정부 주도로 결정되고 추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공산당을 통해 북한 전역을 일사분란하게 조직화 한 북한이 대남 통일전선전술 차원에서 계속 남북한 정당 및 사회단 체 연석회의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를 경계한 한국정부측에서 통 일문제에 대한 민간단체의 정책적 관여를 제한하고 통제했던 데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민간 통일 혹은 평화단체들이 외국과의 접촉이나 연대를 시도하는 일은 쉽게 간첩활동이나 반체제 운동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민간단체들의 입장에서도 섣불리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구도하에서 냉전기에 통일을 위한 민간차원의 해외교류는 체 육이나 문화예술 분야에서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대부분은 정부의 기획이나 선전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진정으로 순수 민간 차원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한국 민간단체들이 나서서 외국정부나 민간단체들을 상대로 협의하고 공조하는 일은 거의 없었 다고 하겠다.

요컨대, 냉전기 평화 및 통일을 위한 외교적 노력은 인적, 물적 기 반의 취약성과 법적,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민간차원에서는 거의 이 루어지기 어려웠다. 따라서 모든 외교적 노력은 정부의 주도 내지 주 관으로 기획되고 시행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 탈냉전기

사실 탈냉전기는 세계적으로 시민사회 내지 시민단체의 위대함에 대한 재발견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련의 페 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시작으로 1980년대를 지나면서 점 차 가속화되던 동구 사회주의체제의 변화조짐은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를 계기로 동구진영 전체의 체제몰락과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 던 냉전적 국제질서의 종언으로 이어졌다. 바로 그 사회주의체제의 몰락과 냉전종식의 배경에는 다름 아닌 결집된 시민사회의 힘이 크 게 작용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시민사회의 각성과 조직화는 민주화 와 사회발전의 견인차이자 동시에 발전척도로 간주되었으며, 그 중 요성이 널리 강조되었다. 그래서 그 후 동구 이외 다른 지역에서의 민주화에서도 시민사회의 역할과 기능이 늘 주요 요소로 지적되었다.

한국의 민주화도 예외 없이 바로 그런 시민사회 성장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례 중 하나였다. 즉, 1987년 “6.29선언”을 계기로 한국의 민 주화는 급속도의 진척을 이루게 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1970~1980 년대를 통해 이룩한 경제발전과 그로 인해 많아진 중산층, 그리고 그 들의 발전된 정치의식이 크게 작용하였다. 다시 말해, 경제발전으로 물질적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됨에 따라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에 대 한 관심이 높아진 상태에서 권력승계를 통한 권위주의체제 연장조 짐이 나타나자 시민사회의 강력한 저항과 반발이 생겼고 그것이 결 국은 민주화의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일단 민주화의 물꼬가 터지자 사회의 분화와 조직화는 더욱 더 가 속화되었고, 그로 인해 민간단체의 수와 종류도 더욱 더 많아지고 다 양화되었다. 사회 전반에 걸쳐 그 동안 억눌려 왔던 욕구들이 일제히 표출되었고, 그들은 다시 조직화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보다 많이

더 효과적으로 얻고자 하였다. 그로 인해 말 그대로 자발적 결사의 붐이 일어났던 것이다.81 그런 사실은 <표 Ⅲ-2>에서 보듯이, 1990년 대 설립된 민간단체가 그 이전 시기에 생겨난 모든 단체들을 다 합친 것보다 수적으로 훨씬 더 많음에서 확인된다.

<표 Ⅲ-2> 민간단체 설립 추이

(전체 분포: 892 / 단위: %)

구 분 시민 사회

일반 여 성 청년

학생 법 행정 정치

인권 추모 사업

평화

통일 소비자 생활 전 체

1940~49년 4.39 2.35 3.28 0 0 1.02 0 2.02

1950~59년 0.88 3.76 4.92 0 1.03 1.02 0.59 1.79

1960~69년 6.14 6.75 1.64 0 4.12 3.06 1.18 4.26

1970~79년 6.58 11.74 9.84 0 1.03 9.18 1.76 6.61

1980~89년 9.21 21.60 11.48 4.0 18.56 15.31 15.88 15.13

1990~99년 61.84 38.97 57.38 56.0 54.64 51.02 57.06 53.03 2000~02년 10.97 15.01 11.48 40.0 20.62 19.38 23.53 17.15 출처: 시민의신문, “21세기 NGO의 대동여지도,” 2003 한국민간단체총람 출판기념회(2003.1.28) 배포 자료,

p. 11.

물론 이들 단체들 대부분은 주로 국내에서 한국정부와 북한을 상 대로 평화와 통일에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고, 외국의 정부나 국민 혹은 단체를 상대로 한 초국가적 활동을 하는 단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지역 특성상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정부간 관계와 마찬가 지로 민간차원에서도 아직은 국제적인 다자간 협력활동이 미약한 편

81_ 6.29이후 시민단체와 이익집단 결성의 과정에 관해서는 유팔무, “비정부사회운

동단체(NGO)의 역사와 사회적 역할,” 유팔무‧김정훈 편,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서울: 한울, 2001)을 참조.

이다. 따라서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국외교 활 동은 탈냉전기에도 정부에 의해 추진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민간차원 활동이 거의 전무했던 냉전시기에 비한다면 탈냉전기 이들

NGO들에 의한 국제적 연대활동 시도는 상당히 인상적이며, 계속 증

가하는 추세임에는 틀림이 없다.

동북아 지역에서 NGO들의 국제적 협력은 비록 성과는 아직 좀 미 흡하지만, 추진 분야는 환경, 여성, 인권, 평화‧반전, 역사인식, 위안부 문제, 긴급구호 및 인도적 지원 등 의외로 상당히 다양하다. 그 중에 서 보다 직접적으로 한반도 평화 및 통일에 연관이 깊은 것은 평화정 착 및 분쟁방지, 대북 인도적 지원, 북한인권문제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평화정착 및 분쟁방지 분야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세계 무력갈등방지연대(Global Partnership for Prevention of Armed

Conflict, GPPAC) 동북아위원회를 들 수 있다.82 GPPAC는 갈등의

“사후대응보다 사전예방”을 강조하면서 시민사회와 유엔을 포함한 정부간 기구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존과 화해를 위해 협력하는 조 직이다. 이는 2001년 코피 아난(Kofi Atta Annan) 유엔 사무총장의 무력갈등 예방을 위한 시민사회의 참여를 촉구한 데 대해 네덜란드 유럽갈등 예방센터(ECCP)가 중심이 된 국제적 NGO들의 화답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2005년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갈등‧분쟁 예방 국 제회의”를 준비하는 네트워크 모임을 제안한 후 각 지역별로는 지역 회의를, 세계적으로는 예비회의를 매년 개최하면서 조직과 활동을

82_ GPPAC에 대해서는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2005 갈등·분쟁예방국제회의 한국

위원회 활동보고서 (서울: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2005)와 최대석 외, “동북아 NGO 교류협력 현황에 대한 진단과 문제점 파악,” 동북아 지역내 NGO 교류협 력 활성화 및 인프라구축 방안 (서울: 통일연구원, 2006) 등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