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퉍팭 제29657호 뙞뙟뙠뙡A28
2016년 12월 16일 금요일윤우섭 원장,손동현 교수,홍성기 회장(왼쪽부터)이 우리나라 대학 교양교육의 문제점과 해법에 대해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누고 있다.세 사람은 “교양교육의 정상화 가 대학 정상화와,나아가 사회의 정상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전영한 기자[email protected]
<참석자>
손동현성균관대 명예교수(대전대 석좌교수) 윤우섭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
홍성기한국교양교육학회장
사 회:이인철 동아일보 교육연구소장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세분화된 대학 전공과 기술의 의미가 감소하는 시대.습득 과 암기보다 응용과 소통이 중요한 시대에 교양교 육은 어떤 새로운 의미를 지닐까.우리나라 대학 교양교육의 현실적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 색하기 위해 그동안 이 문제에 천착해 온 전문가 들의 진단을 들어봤다.
▽손 교수=현재 우리나라 대학교육은 국제 경쟁력 부문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가 장 큰 문제는 기초학문 분야가 소홀하다는 점입 니다. 교양교육을 손쉽고 가볍게 생각한 결과
‘잡비학(雜卑學·잡스럽고 비천한 학문)’이란 자 조적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전공 교수들이 자 기 학과 학생만 챙기고 교양과목 강의는 피하기 때문입니다.시각을 넓혀 여러 전공 학생을 대 상으로 한 기초 교양과목 확대에 힘을 쏟아야 기초학문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윤 원장=교양교육은 전공교육과 함께 대 학교육을 이끄는 두 기둥입니다.그런데도 교양 교육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것이 현
실입니다.최근엔 교육부가 시행하는 ‘학부교육 선진화사업(ACE)’과 ‘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 도대학사업(PRIME)’에 교양 부문 평가가 들어 갔어요.외부의 자극에 의해 교양교육 개선 움 직임이 일어나는 셈입니다.
▽홍 회장=교양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향후 10년 후 사회의 직업 상황이 어떨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과거에는 빠르게 습득해 산업 현장 에 투입할 수 있는 표준적 지식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습득한 지식이 10년 뒤 현장에서 응용
가능한 것인지 알 수 없죠.따라서 바로 응용 가 능한 지식보다 창의적 교육이 필요하게 되었죠.
▽윤 원장=각 대학의 교훈에는 대체로 ‘세계 관,도덕,인격,애민,문화,진리,창조’와 같은 가치가 들어 있습니다.이 가치들은 대부분 교 양교육을 통해 길러져야 할 가치들입니다.따라 서 교훈들은 이미 교양교육의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회=내년 인문한국(HK)지원사업 10년을 앞두고 학문 후속세대의 교수 임용 여부를 놓고 대학에 회오리가 불 것이라고 하는데요.
▽손 교수=인문학 전공자들이 중간에 좌절 하는 이유는 전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위를 끝내면 일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대학 말고는 없죠. 공대도 철학을 가르치고 의대도 역사를 가르쳐 이들에게 자리를 제공해야 합니다.현재 의 정부 재정지원사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경우가 많습니다.지원이 끊기면 그걸로 끝입니 다.사범대학 제도도 학문 인구의 저변 확대 관 점에서 보면 문제입니다.사범대 학과들을 보면 모두 기초학문을 담당하는 학과와 중첩돼 있습 니다.과를 나누기보다는 수학과 졸업생이 교육 대학원에 가서 교원자격 과정을 밟아 교사가 될 수 있다면 수학과에 가는 학생도 늘겠죠.
▽홍 회장=학령인구가 크게 주는 것도 큰 문 제입니다.문과와 이과가 통합되면8대 1,심지 어9대 1 수준으로 이과 계열이 압도할 것이라 는 전망도 있습니다.그렇게 되면 현재도 취업에 취약한 인문·사회·자연대는 더욱 위축되겠죠.
▽사회=위기라고 말하지만 문사철(文史哲) 학과들이 정원 감축이나 전공 융합 같은 자구노 력에 소홀하지 않았나요.
▽손 교수=교양교육 과정을 보면 인문학이 절 반 이상입니다.전국에 철학과가 10여 년 전57개 였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지요.현 제도로는 당연 한 결과입니다.10개 정도로 줄여야 합니다.그 교수들은 교양교육을 담당하면 됩니다.‘겨우 교 양교육을 가르치란 말이냐’고 반발한다면 그것이 잘못이죠.철학 교수는 철학과에 소속돼야 정체 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교양교육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입니다.학과 이기주의를 고집하다 학 생이 줄어 결국 폐과되는 상황을 극복해야죠.
▽윤 원장=정원 감축도 필요하겠지요.그러 나 정원 감축에 대해서는 학내 반발이 무척 큰 데,교수들로 하여금 전교생을 내 강의의 수강 자로 만들겠다고 인식을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생각합니다.그렇게 되면 사 실 정원 감축도 큰 어려움 없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융합은 기초가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을 때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따라서 기초 를 얼마나 탄탄하게 만들 것이냐를 논한 연후에 융합을 이야기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홍 회장=강의 수요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현재 교양교육이 파행인 겁니다.현재 교수들은 시야가 자기 학과에만 치중돼 있습니다.대학원 등록금을 지원해 준다고 기초학문이 활성화되 는 것은 아닙니다.등록금이 없어 대학원에 못 가는 게 아니죠.강의 수요를 만들어줘야 합니 다.대학들은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튀는’ 제목 의 인문학 지원서를 내놓기에 급급합니다.시간 강사 비율도 교양교육 쪽이 가장 많습니다.강 사료도 국공립 대학은 그나마 나은 편인데 지 방,사립으로 갈수록 차이가 많고 열악합니다.
▽사회=기초 교양학문 전공자들의 진로가 별로 없는 것도 큰 문제 아닙니까.
▽손 교수=제자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하면 ‘오지 말라’고 합니다.외국에 가서 공부하 라고 해요.국내 대학은 학업의 양과 질이 모두 떨어집니다.일본을 보면 1950년대부터 외국에 서 취득한 학위가 오히려 잘 인정되지 않습니 다.나름대로 지식생태계가 일본 안에서 정립되 었기 때문이죠.반면 우리나라는21세기가 왔는 데도 여전히 지식식민지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 다.대학에서 교수를 충원할 때도 국내 학위는 별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윤 원장=대부분의 대학이 교양 전담교수 를 비정년으로 임용하고 있는데 연봉이 3000 만∼3600만 원밖에 안 됩니다.이는 그들의 진 로가 별로 없다는 것과 대학에서는 특히 글쓰기 교수가 필요하지만 재정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다는 문제가 결합되어 나타난 문제입니다.글쓰 기 교수는 보통 과목당 학생30명을 담당하는데 학생들의 글을 봐주고 토론, 첨삭지도를 하다 보면 교육 부담이 상상외로 큰데 그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그 런데 이마저도 자리가 제한되어 있으니 이를 타 개할 정책 지원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홍 회장=일본 도쿄대는 교양대학 출신이 사회에서 유능한 제너럴리스트로 인정을 받습 니다.이런 부분이7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 습니다.한때 일본도 교양교육을 폄하하는 시기 가 있었지만 잘 이겨냈고 현재까지 잘 지속되고 있습니다.미국에도 시카고대 같은 매우 오래되 고 성공적인 교양교육의 사례들이 있습니다.
▽손 교수=윌리엄스대, 웰즐리대, 애머스트 대 같은 미국 대학들은 유명 대학이라고 할 수 는 없지만 기초학문 분야를4년간 집중 교육합 니다.미국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의 학부 이력을 조사해 보니 작은 칼리지를 나온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홍 회장=교양교육은 평생교육입니다.앞으 로의 직업세계는 수시로 변해 개인이 평생4, 5개 직업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평생 본인이 새롭게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기초 교양 교육입니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의 경우 한국 학생들이 최상위권이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을 해서 직장에 가면 학업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기초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사회=한국교양기초교육원이 2011년 설립 됐는데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손 교수=초대 원장을 맡아 아무것도 없는 데서 정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국가과학기술 자문위원회에서 교양교육 강화 이야기가 나와 교육부가 예산 10억 원을 마련해 기구가 탄생했 죠.기구는 대학교육협의회에 있는데 활동은 한 국연구재단을 통해야 하는 등 행정적으로 좀 복 잡하게 시작했습니다.
첫해에는 교양교육 연구비에 대한 지원을 시작 했습니다.이후 범대학적인 기구가 돼야 하기 때 문에 노하우 확산에 중점을 뒀습니다.대학들이 교양교육에 대해 노하우가 적은 교수들을 상대로 컨설팅을 했습니다.몇 년 지나다 보니 성과가 있 었다고 자평합니다. 교양기초교육원은 법적 토 대가 없는 임의기구라는 취약점이 있습니다.기 획재정부가 예산을 안 주면 없어지는 겁니다.
▽윤 원장=124개 대학에 대한 컨설팅 사업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13개 대학은 재신 청해서 재차 실시했습니다.컨설팅 효과의 증거 입니다.지방대의 경우 기초 교양학문 분야의 교 수 초빙이 어렵습니다.이를 지원하는 사업을 강 화할 계획입니다.강의 내용을 개발해 인근 대학 들이 공동으로 교수를 위촉 관리하는 것입니다.
▽손 교수=‘담당 교수 강사 워크숍 지원사업’
같은 것이 한 예입니다.방학 때 철학이면 철학 과목 교양교육을 담당하는 교수,강사가 모여서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지 논의하는 모임에 지원이 필요합니다.
▽홍 회장=앞으로 할 일도 많습니다. ‘고전 아카이브’ 같은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외국의 경우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같은 아카이브를 통해 고전 텍스트를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그 런 것을 마련해 놓으면 중고교생을 비롯해 누구 나 고전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죠.
▽사회=교양교육 활성화를 위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손 교수=‘소프트웨어 리터러시(literacy)’ 같은 디지털 기술도 기초학문의 개념에 넣어 필수적으 로 배워야 합니다.이제는 디지털 기술도 생활과 현 업에서 꼭 배워야 하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윤 원장=기초학문을 인문학으로만 생각하 지 말고,자연과학 물리학 같은 이과 계통의 기 초학문도 포괄하는 것이 기초학문이라는 인식 이 필요합니다.교양교육의 분류체계가 교육학 의 하위 개념으로 되어 있어 각종 연구 지원 등 에서 불리한 점도 개선됐으면 합니다.
정리=유윤종 전문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