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도리패총은 경남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 산 33-1번 지와 전 283번지의 구릉 경사면 말단부에 위치한다. 패총 은 해안으로부터 10㎞ 떨어진 섬진강의 우안에 형성된 충 적지에 위치하며, 현재 강안으로부터는 10여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패총의 범위는 동서 19m, 남북 17m이 고, 최대두께는 240㎝이다.
층위는 크게 4개 층으로 구분되며, 패각층·혼패토 층·토층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층에는 주거지·수혈·
노지 등의 유구가 형성되어 있다.
이 패총에서는 Ⅲ층과 Ⅳ층에서 남부지역 신석기시대 전기에 해당되는 영선동식토기가 출토되었다. 이와 같이 단 일 유적에서 다른 문양과 공반하지 않고 출토된 것은 드문 데다가 주거지와 노지 등의 유구로 인해 층위간의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영선동식토기의 세부편년에도 기여할 것 으로 예상된다.
문양을 가진 토기의 출토 층위를 보면, 가장 아래층인
Ⅴ층에서는 융기문과 격자문 등 단일문이 시문된 토기가 출토되었다. 융기문토기는 구연부 아래에서 동체상부에 걸 쳐서 가로방향의 융기대문을 조밀하게 시문하고 그 문양대 의 상하단에 세침선으로 타래문을 장식한 것으로 융기문토 기 단계에서도 늦은 시기에 해당된다.
그 상층인 Ⅳ층에서는 어골문·압인문·집선문·조압 문 등이 출토되었는데, 문양형태로는 어골문이 가장 많으며 단일문이 대부분이다. Ⅲ층에서는 단일의 어골문·압형 문·격자문·집선문·조압문과 복합의 점열문+격자문·점 열문+조압문·점열문+산형문·압인문+조압문·어골문+자 돌문·어골문+격자문 등의 문양이 시문된 토기가 출토되었 다. 전체적으로 보아 Ⅳ층에서 Ⅲ층으로의 변화 양상은 단 일문인 어골문토기가 줄고 복합문토기가 성행하게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영선동식토기 단계 후반에는 압인횡주어 골문의 침선화, 삼각집선문, 능형집선문, 밀집단사선문 등 의 추가와 같은 변화가 나타는데, 보고자는 전기 후반대에 보이는 집선문계 토기들이 거의 출토되지 않는 것을 근거 로 Ⅲ층과 Ⅳ층을 각각 전기 중반과 전기 전반으로 위치지 우고 있다.
한편, 목도패총의 가장 특징적인 토기로 꼬막 껍질을 이용하여 토기를 정면한 것이 있는데, Ⅳ층에서는 정연한 패각정면흔을 의도적으로 남긴 것들도 보인다. 신석기시대 토기 제작에 있어서 패각으로 토기 표면을 다듬은 예는 다 른 지역이나 시기에도 널리 나타나지만, 패각정면토기가 신 석기시대 전기에 성행한 특징적인 양상의 하나가 될 가능 성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고 살펴야 할 것이다.
Ⅲ층과 Ⅳ층의 방사성탄소연대가 각각 4210±120B.P 와 4910±130B.P.로 측정되었다.
국립진주박물관, 1999, 『牧島貝塚』
하동목도패총
융기문토기
2 _ 신석기시대토기의변천- 남부
2 _ 신석기시대토기의변천- 남부
Ⅳ층 출토 토기
Ⅲ층 출토 토기
Ⅳ층 출토 토기
Ⅱ_ 신석기시대토기의변천- 남부
* 자돌문토기/ 거제 산달도 / 잔존높이 18.0cm / 부산대학교박물관
침선문토기/ 부산 동삼동 / 높이 15.3cm / 국립중앙박물관 압인문토기/ 울산 세죽 / 높이 29.0cm /
동국대학교경주캠퍼스 매장문화재연구소 (사진제공 : 국립김해박물관)
압인문토기/ 부산 영선동 / 높이 8.4cm / 국립중앙박물관
Ⅱ_ 신석기시대토기의변천- 남부 조압문토기/ 통영 연대도 / 높이 33.2cm / 국립김해박물관
Ⅱ_ 신석기시대토기의변천- 남부
* 영선동식토기/ 통영 상노대도 / 왼쪽위 높이 14.8cm / 연세대학교박물관
Ⅱ_ 신석기시대토기의변천- 남부 영선동식토기/ 청도 오진리 / 높이 9.0cm / 국립중앙박물관
압인횡주어골문 호형토기/ 제주 고산리동굴 / 높이 25.9cm / 국립제주박물관
* 영선동식토기/ 군산 가도 / 충남대학교박물관
태선침선문토기는 김해 수가리패총 1기층(Ⅴ·Ⅵ층) 출토 토기를 지표로 하 는 토기로 수가리Ⅰ식토기라고도 한다. 한 때 남부지역 신석기시대 토기 중 가 장 이른 시기에 편년되기도 하였으나, 동삼동패총의 층위발굴에 의해 부정된 이 후 신석기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토기로 자리매김되었다.
기형은 발형·심발형·호형·완형토기가 있고 저부는 대체로 원저 또는 첨 저가 대부분이며 원판상圓板狀또는 모서리를 둥글게 한 말각평저抹角平底가 소수 포함된다. 가장 많이 출토되는 것은 발형토기로 구연부 형태는 직립 내지 내만 하고 직립구연은 대체로 구순을 평탄하게 처리한다. 이때 구연부 쪽이 동부 이 하보다 약간 더 두터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토기군은 문양구성과 문양시문기법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우선 문양시문 기법을 보면압인 또는 압날기법의 단사선문短斜線文과 침선沈線기법이 있는데,단 사선문을 제외하고 대부분 직선적인 침선문으로 시문하며 침선문의 시작부분에 서 시문구로 눌렀다가 긋거나 종결부분에서 시문구를 눌렀다가 떼는 식으로 시 문한다. 대체로 봉상의 단치구를 이용하기 때문에 시작과 종결점에 둥근 홈이 깊게 남아 있으며, 침선의 깊이가 깊고 굵으며 또렷한 것이 특징이다. 침선문 시 문기법상의 이러한 특징 때문에 태선침선문토기太線沈線文土器라고 불린 것이다. 시 문은 기본적으로 구연부 바로 아래쪽부터 시작하는데 약간의 공백을 남긴 것도 있다.
문양구성은 크게 복합문과 단일문으로 나눌 수 있다.
복합문은 구연부문양대口緣部文樣帶와 동부문양대胴部文樣帶로 나누어 각각 서로 다른 문양단위가 시문되는 것이고, 단독문은 기면 전체를 하나의 문양대로 보거 나 구연부 내지 동체상부의 문양대에 한가지 문양형태만을 시문한 것이다.
복합문일 경우, 구연부 문양으로는 단사선문短斜線文·어골문魚骨文3)·집선문集 線文·사격자문斜格子文이 시문되며,동부 문양은 거의 대부분 횡주어골문이 된다.
종주어골문이 시문되지 않는 것이 이 형식 토기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 다(부산대학교 1981).
단일문에는 기면 전체에 횡주어골문을 시문한 것과 구연부 또는 동상부
胴上部에만 단사선문·집선문·사격자문이 시문된 것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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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_ 신석기시대토기의변천- 남부
* 능형집선문
제형집선문 삼각집선문
* 태선침선 시문기법
* 단사선문
3) 기면 전면에 횡주어골문을 시문한 것이지만, 구연부문양대와 동부문양대의 침선 길이를 다르게 하거나 구연부문양대의 횡주어골문의 중간에 공백부를 두는 것에 의해 문양에 변화가 나타나도록 만들고 구연부
太線沈線文土器
태선침선문토기
구연부문양대와 동부문양대 사이에 구연부종속문양대口緣部從屬文樣帶나 문양 대구획문을 시문하거나 구연부문양대 중간에 부가문附加文을 삽입하는 경우도 있다. 구연부종속문양으로는 주로 거치문鋸齒文·파상문波狀文·집선문·격자 문·종주어골문계의 문양이 사용되며, 암사동유적의 예와 같은 타래문이나 중 호문重弧文은 없다.
전면시문 태선침선문토기의 저부底部는 먼저 저부 중심으로부터 5~6등분한 후 공백부분을 삼각집선문과 같이 메꾸는 순서로 시문하는 것이 전형적이며, 중 서부지역 침선문토기의 저부시문 방식과 차이를 나타낸다.
태선침선문토기의 분포는 대체로 남해안지역을 중심으로 하고 강원도 동해 안, 남부 내륙지역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남부 내륙지역의 출토 예가 많아지는 대신 남서해안과 제주도지역에서는 태선침선문토기 유적이 거의 확인되지 않아 앞 시기의 영선동식토기문화에서 태선침선문토기문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토 기분포권에 약간의 변화가 엿보인다. 태선침선문토기단계에 외해外海의 패총유 적 수가 줄어들고 내륙지역으로 유적이 확산된 이유에 대해서 해수면 상승과 기 후 온난화 효과로 바다자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내륙자원으로 눈을 돌 리게 되었다는 의견, 중서부지역의 강안江岸적응방식 확산의 영향이라는 의견, 인구밀도에 대한 압력, 충적지의 제한된 입지조건의 영향이라는 등 여러 가지 견해가 제시되었다(이영덕 2004).
태선침선문토기문화의 발생과 더불어 한반도 전체에 전면시문 침선문토기全 面施文沈線文土器문화가 확립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므로 그 기원 지와 확산과정 등에 대해서 현재까지도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태선침 선문토기가 격자문, 집선문, 횡주어골문, 단사선문 등의 문양요소와 문양형태 면에서 그 이전 시기의 토기문화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성을 가진다는 점에 는 일찍이 많은 연구자들의 공통된 인식이 형성되어 있었다(有光敎一, 1962, A. Mohr·C. S. Chard·L. L. Sample 1967, 이동주 1997, 송은숙 2002).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선침선문토기의 기원이나 발생과정에 대해서는 현격 한 의견차로 인하여 논의의 접점조차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전면시문 침선문토 기는 중서부지역의 궁산이나 지탑리유적에서 한강유역을 거쳐 동해안과 남해안 으로 확산되며, 그 중 일부가 일본 큐슈지역으로 건너가면서 소바다식曾畑式토기 문화로 발전한 것으로 보는 관점4)이 일반적이었다(이동주 2003).
Ⅱ_ 신석기시대토기의변천- 남부
* 구연부부가문
동체부 횡주어골문
저부 시문방법 사격자문
* 구연부종속문
중서부지역의 구분계토기가 남해안의 침선문토기 성립에 영향을 주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 확산과정이 동해안을 거쳐 남부지역으로 파급되어 태선침 선문토기를 성립시켰다는 의견(송은숙 2002)과 중서부지역의 구분계토기가 전 기단계를 지나 동쪽으로 확산되면서 태선침선문토기로의 변화-다단화多段化된 단사선문, 기형상의 변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남한강수계를 거쳐 남해안지역으 로 내려갔다는 의견(임상택 2004b) 등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중서부지역의 전 면시문 침선문토기문화가 그대로 유입된 동해안과는 달리 남해안 신석기시대인 들은 그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남해안만의 독특한‘태선식’침선문토기로 발전시 켰다고 한다(송은숙 2002).
이와 대립되는 의견으로, 태선침선문토기의 남해안지역 자체 발생설을 주장 하는 연구자는 동해안의 오산리식토기가 남해안지역의 영선동식토기문화와 복 합되면서 남해안지역에서 전면시문 침선문토기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한다. 특 히 전면시문 침선문토기의 가장 큰 특징인 구연부 단사선문에 대하여 양양 오산 리유적과 부산 범방패총에서 수직방향의 압인 또는 압날에 의한 단사선문이 이 미 출현했으며, 부산 범방패총 하층에서는 단선문이 같은 압인문계의 횡주어골 문과 결합하고 있다고 하며 이를 구분계토기의 원류로 보았다. 나아가 남해안의 압인문, 자돌문토기가 서산 휴암리 등의 서해안에서도 나타나며, 자돌에 의한 원권상圓圈狀의 문양이 시문된 평저토기가 남해안 뿐 아니라 암사동과 지탑리에 서도 출현한다는 점을 근거로 이들 토기 또한 남해안의 영향으로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는 견해도 있다(이동주 1997).
한편, 남부지역 전면시문 침선문토기의 출현을 중서부지역으로부터의 일방 적인 문화파급에 의한 것이 아니라 중서부지역과 남부지역의 상호교류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즉, 남부지역 초기 태선침선문토기군의 문양형 태 중 구연부종속문이나 구연부부가문에 자돌·압인문계토기군의 문양형태와 흡사한 요소들, 그리고 횡주어골문·집선문·사격자문과 같은 남부지역 토기전 통과 중서부지역 침선문계토기군에 특징적인 문양형태인 자돌점열의 타래문이 나 중호문重弧文과 유사한 문양형태, 단사선문이라는 토기전통이 복합적으로 영 향을 미쳐서 성립되었다는 것이다(田中聰一 2000).
태선침선문토기는 단사선문 아래에 종속구연문이 시문되고 동체부에 횡주 어골문이 시문된 전면시문 침선문토기에서 종속구연문이 탈락하여 단사선문+
횡주어골문으로 변하고, 이어서 집선문 또는 격자문+횡주어골문에서 동부 문양 이 생략되는 구연부 집선문 또는 격자문으로 변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Ⅱ_ 신석기시대토기의변천- 남부
소바다식토기
이는 구연부 단사선문과 동체부 횡주어골문이 시문된 토기가 보다 하층에서 출토되었다는 김해 수가리패총의 층위구분을 근거로 한 것이지만, 각 단계의 토 기변화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유적은 아직 조사된 예가 없다. 따라서 각 단계로 의 변화가 단절적이지 않고 발생순서와 소멸시기를 달리하면서 동시에 존재했 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집선문도 융기문토기 단계부터 계속해서 남부지역 전통 의 문양으로써 존재하였으므로 구연부 단사선문과 함께 앞 단계부터 시문되었 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 수가리패총에서 출토된 태선침선문토기는 이후 퇴화과정을 걷게 된다.
퇴화침선문토기退化沈線文土器라고도 불리는 수가리Ⅱ식토기가 그것이다. 수가리 패총 Ⅲ·Ⅳ층에서 출토된 토기를 지표로 하며 태선침선문 시문방법에서 퇴화 되어 스친듯한 찰과상침선문擦過狀沈線文또는 세침선문細沈線文으로 바뀌는 것이 가 장 큰 특징이다. 복합문양이 완전히 사라지고 문양부위는 구연부에만 한정되면 서 구연에서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 시문이 시작되는 예가 많다.
문양의 형태로는 찰과상 사격자문·삼각집선문·평행집선문·장사선문 등 이 있다. 앞 단계의 전통을 계승하며 구연부 문양대에 사격자문이나 삼각집선문 이 조잡하게 시문되는 단계(Ⅱ기 전반)와 문양의 기하학적 특성이 완전히 사라 지고 극도로 퇴화 내지 조잡화되는 단계(Ⅱ기 후반)로 나뉘어진다. 이러한 특징 의 퇴화침선문토기는 태선침선문토기의 중기에 이어서 신석기시대 후기를 대표 하는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수가리패총의 층위를 근거로 한 편년과 시기구분의 문제 점을 지적하는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주로 중기의 하한을 문제삼는 의견으로, 후기로 편년한 Ⅲ층과 중기로 편년한 Ⅴ층의 방사선탄소연대가 거의 비슷한 수 치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문양구성과 기형변화에 주목해서 Ⅵ층의 구 연부 단사선문과 동체부 횡주어골문의 전면시문토기를, Ⅴ~Ⅲ층의 격자문과 집선문의 단독문양을 동체상부에 시문한 토기와 분리해서 시기를 구분하였다 (이동주 1996). 또, Ⅵ~Ⅳ층까지는 태선침선문과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의 존 재, 문양의 정형화가 나타나면서, Ⅲ층 이후와는 확연히 구분된다는 것을 근거 로 Ⅵ~Ⅳ층까지를 중기로 설정한 견해도 있다(최종혁 2000).
Ⅱ_ 신석기시대토기의변천- 남부
세침선 사격자문
퇴화침선 평행집선문
찰과상 장사선문
■ 수가리패총 보고서의 시기구분 층위 탄소연대 시기 시문방법
Ⅵ
Ⅴ 4,510±105B.P.
중기 태선침선 4,490±70B.P.
4,330±90B.P.
Ⅳ
Ⅲ 4,380±70B.P. 후기 퇴화침선 4,290±90B.P.
Ⅱ
Ⅰ 3,130±80B.P. 만기 이중구연 3,390±70B.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