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공공갈등관리 시스템 도입의 의의
참여정부가 공공갈등관리의 해결 방식으로 공중참여(public participation), 대화 와 타협, 참여, 숙의 및 합의형성 등을 제시한 것은 조합주의적 갈등관리방식 이외 에는 다른 갈등관리방식을 체계적으로 적용하지 못하였던 과거 정부에 비하여 갈등 관리에 있어서 진일보를 이룬 것이다. 또한 참여정부가 이러한 새로운 갈등관리방 식을 구체적 사례에 적용해 왔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를 떠나 새로운 갈등관리기법 을 적용한 사례가 축적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국가적 자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사례들은 향후 한 단계 성숙한 갈등관리시스템 및 갈등관리기법의 발전을 위하여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자산의 축적은 상당한 시일이 경과 한 후 에 국가적 갈등관리를 효율적으로 이끄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07년 2월 제정된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의 충실한 이행은 이러한 새 로운 사회운영방식에 대한 공직자들의 경험의 폭을 확대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측면 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공공기관의 갈등관리에 관한 법률안이나 공공갈등의 해결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에 담겨져 있는 갈등관리절차는 대부분 갈등관리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는 선진국으 로부터 도입한 것들이다. 이들 절차들은 이해당사자의 참여 하에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합의를 이루고자 한다는 점에서 행정기관의 권한과 사법부의 판단에 주로 의존해온 과거의 갈등해결 방식보다는 진일보한 갈등관리 방식이라 할 수 있 다. 또한 이들 절차가 제도화된다면, 아직 우리 사회에서 도입단계에 있는 참여민주 주의, 숙의민주주의 및 거버넌스 체제도 한 단계 발전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제화된다고 해서 그 절차들이 실효성 있게 운영되고 입법 취지대로 갈등이 크게 예 방되고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결론부터 말하면, 새 로 도입되는 절차적 접근이 제대로 착근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추가 로 충족되어야 한다. 그 하나는 갈등관리 절차를 수행해 나갈 전문 인력의 양성 및 공급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의 원활한 작동을 뒷받침해줄 사회적·문화적 인프라의 구축이다.
그 중에서 문화적 인프라는 화해와 평화를 중시하는 가치 구조를 말한다. 갈등이 불가피한 보편적인 사회적 과정이라면, 평화는 화해의 결과로서 오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갈등이 수단적 가치라면 화해와 평화는 궁극적 가치다. 화해와 평화가 갖 는 궁극적 가치를 인정할 때 타협, 양보, 관용, 승복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확산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타협은 회색을, 양보는 패배를 의미하는 것으 로 통용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합의를 지키지 않더라도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절 차무용론도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도 화해와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굳 건한 전통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상대의 처지를 공감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역지 사지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화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또한 ‘싸움은 말리고 흥정 은 붙여야 한다’는 경구도 갈등 해소와 협상·타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우리의 문화 적 자원이다.
나. 정책추진 상의 한계와 해결노력
(1) 갈등관리의 전문성과 전문 인력의 부족
참여정부가 시도한 공공갈등관리기법은 선진국들이 활용하고 있는 선진기법으로 서 이에 정통한 전문 인력의 확보가 선결적인 과제였다. 하지만 단시간에 전문가를 다수 양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갈등관리정책은 다소 전 문성이 부족한 토대 위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참여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공무원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였으며, 지속위를 중심으로 전문가 풀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례가 아직 많지 않기 때문이다. 참여적 의사결정방법과 조정·중재·협상은 그나마 소 수의 적용사례를 찾을 수 있지만, 갈등영향분석은 이번 법 제정과 관련하여 국무조 정실 주도 하에 시행되고 있는 시범사업 사례를 제외하면 적용 사례가 거의 전무하 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각각의 절차에 따라 양성해야 할 전문 인력의 규모 는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는 전문 인력의 양성은 시급한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2) 정부정책 및 갈등관리과정의 일관성과 신뢰성 부족
갈등관리에 있어서 행정기관에 대해 항상 장애요인으로 지적되는 점은 정부정책 이나 갈등관리과정에 있어서의 일관성 결여와 ‘신뢰의 위기’의 문제였다. 이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이기는 하지만 정부의 정책역량의 강화와 정책 결정과정의 개선을 통해 해결해나가야 한다. 참여정부로서는 정책조정기능의 강화 를 통해 나름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3) 중립적 제3자에 의한 갈등관리 및 시민단체의 역할 미흡
종래 우리나라의 갈등관리는 정부가 직접 이해관계인 등을 대면하여 대화하는 형 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갈등관리의 효율성이 떨어졌다. 참여정부는 중립적 제3 자에 의한 갈등관리의 필요성를 인식하였으나 전문 인력의 부족, 관계법령의 미비 등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장애요인을 극복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공공갈등의 해결에 있어서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은 매우 크다. 하지만 시민 사회단체들은 공공적 문제제기에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이지만 사회적 이슈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대안을 모색함에 있어서는 충분한 문제의식과 역량을 확보했다고 평 가하기 어렵다. 따라서 향후 정부는 시민사회단체의 역량 강화와 운동방식의 변화 를 위해 시민단체와 함께 필요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4) 참여 거버넌스(Governance)에 대한 인식 부족과 집단이기주의
공직자, 국회의원 등이 갈등관리의 중요성이나 참여 거버넌스의 시대적 의의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이 참여정부의 새로운 갈등관리방법의 제도화와 실행에 있어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우리 국민의 준법정신의 부족과 집단이기 주의 경향이 갈등관리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참여정부는 갈등관리교육의 확대를 통하여 갈등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 산하고 새로운 갈등관리의 방법론과 참여 거버넌스의 의의에 대해 홍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향후 정부는 법제개선을 통하여 법제의 집행률을 높여서 법에 대한 경 시풍조를 단계적으로 불식하고 준법의식을 고양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집단이기주의 적 경향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집행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집단이기적 분쟁을 일으킬 수록 이익이 돌아오며 국가시책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퇴행적 학습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5) 정책결정단계에서 집행단계까지의 참여적 의사결정구조의 결여
새로운 갈등관리 방법론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책결정단계에서부터 집행단계에 이르기까지 갈등의 전 단계에 걸치는 참여적 의사결정의 구조가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참여정부가 추진해왔던 갈등관리에서도 이러한 측면이 다소 부족하 였다. 그리고 이것의 제도화나 의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갈등관리정책의 추진 에 애로요인으로 작용했다. 참여정부는 갈등관리의 제도화를 위하여 법제개선에 노 력하여 왔으나 이 또한 다양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물론 이런 현실을 분석함에 있어서 참여정부가 관여했던 대부분의 대형 공공갈등 은 이미 참여정부 출범 이전에 참여적 의사결정을 거치지 않고 의사결정이 이루어 진 사안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공중참여에 의한 갈등관리가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천성산 터널 갈등의 경우 참여정부 출범 이전에 실질적인 공중참여가 이 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철도노선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지율스님을 비롯한 환경론 자들의 주장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용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을 반영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것 이 갈등을 장기화시킨 원인이 되었다.
또한, 한탄강댐 갈등의 경우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새로운 갈등조정기법을 적용 하여 갈등 해결에 착수한 사례이다. 그러나 합의가 이루어진 다음 이해관계자 등 일
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제기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고 협의체를 다시 소집할 수 있 는 여지를 남기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합의가 집행되기까지 문제제기나 불만 제기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으므로 집행단계에서의 문제제기에 대해서조차 대응할 수 있는 참여적 의사결정구조의 지속적 유지가 필요하다. 이러한 점은 선진국의 참 여적 거버넌스를 통한 갈등관리의 사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